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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 보여준 예언서 같은 수필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어려울 때일수록 더 공격적으로 기회를 선점하자” 

 

‘혁신이 곧 살길’ 끝없이 고뇌... 정부·국민·기업 삼위일체 거듭 강조

‘먼저 개발하고 먼저 판매하고 먼저 철수하는 선발자 논리에 충실해야 한다.’ ‘모든 변화는 나부터 시작해야 하며, 방향을 하나로 모으고, 쉬운 일부터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공격적으로 변신하는 기회선점 경영이 요구된다.’ ‘무한경쟁 시대다. 전체 파이를 키우는 분자 경영이 필요하다.’

10월 25일 별세한 고(故) 이건희(향년 78세) 삼성전자 회장이 손수 집필한 수필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동아일보)에서 반도체 산업을 일구던 때를 기억하며 남긴 어록이다. 그는 수필집을 통해 초일류로 거듭나려면 ‘퍼스트 펭귄(선구적 도전자)’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세계 변화를 위기로 깨닫고 ‘혁신이 곧 살길’임을 수없이 강조했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임직원에겐 ‘공황 때문이 아니라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만과 착각에 빠져 기업이 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무서워할 것은 경제적 공황이 아니라 심리적 공황’이라며 무사안일과 패배의식을 극도로 경계했다. 안으로는 ‘made in(어느 나라에서 만드냐)가 아니라, made by(누가 만드냐)가 중요한 시대’라며 브랜드 자부심을 일깨웠으며, 밖으론 ‘정부·기업·국민이 삼위일체로 경쟁하는 국가경쟁력시대’라며 국가의 역할을 호소했다. 한편으론 일본에 뿌리 깊이 의존하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맹점에 대해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은 후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김완용·박완용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고뇌했다.

경영진의 반대, 경쟁사의 파상공세를 넘어

수필집은 그가 대기업 총수 시절 손수 쓴 107편의 글과 그를 만났던 명사 5인(이어령·박경리·송자·홍사덕·후안안토니오사마란치)의 추억담으로 구성돼 있다. 그 속엔 그가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던 1974년부터 1987년 회장 취임, 1993년 삼성 신경영 선언, 1997년 외환위기까지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했던 흔적들이 담겨 있다. 특히 미래 산업에 대한 전망은 20년 전에 쓴 글이지만 예언서 같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수필을 따라 당시 그의 생각의 자취를 따라가 봤다.

눈에 띄는 내용은 반도체기업으로 탈바꿈하던 과정이다. 한국에 반도체 개념조차 없던 1970년대 초, 그가 반도체사업을 하겠다며 맘먹은 계기가 있었다. 1973년 오일쇼크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뒤 ‘자원 하나 없는 한국이 생존하려면 첨단기술 산업에 나서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반도체는 미래에 전자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항공기 등에서도 없어선 안 되는 기술’이라고 판단했다. 경영진의 극렬한 반대와 부친(고 이병철 삼성 설립자)의 만류에도 그가 사재까지 털며 나선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인수한 한국반도체는 ‘간판만 반도체였지 트랜지스터나 만드는 수준이었다. 한미합작 기업이어서 여러 제약이 예상됐다’고 고심했다. 인수 직후에도 기술이 없어 난관에 부닥쳤다. ‘선진국에서 기술을 들여와야 하는데 오일쇼크 여파로 나라마다 기술보호를 앞세웠다. 심지어 미국은 일본 산업스파이가 반도체 기술을 훔쳐갔다며 한국에게도 적대감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그래서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동분서주했다.

‘내가 공장과 일본을 오가며 기술 확보에 매달렸다. 매주 일본에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 때 일본 기술자를 그 회사 몰래 토요일에 데려와 우리 기술자에게 밤새워 가르치게 하고 일요일에 보낸 적도 많았다.’

절박한 심정 몰라주는 원망과 위기의식도


▎1996년 영국 윈야드에서 열린 삼성전자 복합단지 준공식에 참여한 엘리자베스 여왕과 이건희 회장.
기술은 익혔어도 판매는 더욱 어려웠다. 미국 기업들의 특허소송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었으며, 일본 기업들의 인하전략으로 가격이 폭락해 ‘1985~1986년엔 2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회상했다. 1986년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로열티 소송, 1992년 미국 마이크론의 반덤핑 소송 등 삼성의 특허분쟁은 30년 넘게 계속됐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특허권만 사들여 소송을 거는 특허관리기업(NPE)들의 편법 공세도 여전하다. 그가 특허의 중요성을 깨닫고 1987년 삼성종합기술원을 세워 독자기술개발에 나선 배경이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 시작 20년만인 1993년에 메모리 분야 세계 정상에 오르면서 그의 선견지명은 입증됐다.

수필집 곳곳엔 그가 1987년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 후 겪었던 마음고생이 서려있다. 위기의식과 혁신의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임직원들에 대한 원망도 담겨있다. ‘세계경제에는 저성장 기미가, 국내경제엔 그늘이 드리우고 있는데 삼성은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2창업을 선언하고 변화와 개혁, 의기의식을 수없이 얘기했으나 몇 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50년 동안 굳어진 체질이 너무 단단했다’며 삼성의 내부 실상을 얘기했다. 이에 그는 ‘등골이 오싹해질 때가 많았다’, ‘하루 네 시간 넘게 자본 적이 없었다’, ‘불고기를 3인분은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대식가인데도 하루 한 끼를 간신히 먹을 정도로 식욕이 떨어져 체중이 10㎏ 이상 줄었다’며 당시 절박한 심정을 그렸다.

그는 1993년 ‘질 경영’을 기치로 내건 삼성 신경영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호통을 쳤던 일화도 소개했다. 직원들의 자기개발을 위해 도입한 ‘7·4제’(7시 출근 4시 퇴근)가 시간외수당 지급 문제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이었다. 품질 향상을 위해 시작한 ‘라인스톱’(불량 발견시 누구든지 생산을 중지시키는 권리)도 일일생산목표 달성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시대가 저성장·시장개방·세계무한경쟁으로 바뀌었는데도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을 바꿔 의식을 바꿔보자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해 야속함을 느꼈다’며 답답했던 심경을 서술했다. 그 속엔 ‘기업은 곧 사람’이라고 숱하게 당부했던 부친의 유지를 받들지 못한 자아에 대한 한탄도 섞여있었다.

그는 이 때 깨달은 경영기법을 후대를 위한 유언처럼 수필에 남겼다. ‘변화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성공하는 지름길이다’, ‘모든 변화를 한 번에 이루려고 해선 안 된다. 작은 변화라도 지속적으로 실천해 변화가 주는 좋은 맛을 느껴보고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 안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통일하고 조직의 철학과 가치관이 함축된 용어를 개발해야 한다. 이는 의사소통에 드는 비용과 시간, 오해를 줄이고 경영방침에 대한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에 대한 아쉬움도 남겼다. 충남 대산에 삼성종합화학(1991년 준공) 단지를 조성할 땐 평당 200만원 들었는데, 영국 윈야드에 삼성전자(1996년 준공) 단지를 지을 때는 땅값이 평당 5000원 들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외국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저렴한 토지, 도로·항만 확충 등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데, 한국에선 복잡한 인허가와 규제로 기업 발목을 붙잡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세계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정책으로, 국민은 따뜻한 격려로 기업을 응원하고, 기업은 이윤으로 국민과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며 ‘국민·정부·기업이 삼위일체가 돼 국가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1995년 중국 방문 때 이런 충정을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로 표현했을 뿐인데 취지가 왜곡되면서 사회적 파문이 일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적었다.

미래 기업들을 위한 당부 ‘1+1 〉 2’ 경영

그는 기업과 경영자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수필집의 절반 정도가 미래 산업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의 천리안으로 채워져 있다. 디지털 사회에서 기업 생존전략, 상생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기업 역할, 초일류가 되기 위한 기업 준비에 대한 견해다. 그 속엔 그가 못다 이룬 꿈과 희망도 묻어 있다.

그는 여기서도 ‘세계시장은 앞만 보고 정해진 트랙을 달리는 게임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치고 말도 달려야 하는 폴로게임으로 바뀌었다’며 ‘국가행정은 규제가 아니라 서비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기업에겐 다변화하는 미래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려면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경영은 1+1=2가 아니라 1+1〉2가 되는 시너지가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상충하는 요소들을 조화시키는 패러독스(paradox) 경영 ▷시설·기능·기술 등을 결합해 효율을 높이는 박물관식 경영 ▷다양한 업종·상품 등을 연결해 한계를 돌파하는 기술융합 ▷다양한 요소들을 복합 판단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퍼지(fuzzy) 사고 ▷한 가지 일로 여러 효과를 거두는 시너지 경영’을 고민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와 함께 미래는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된다’며 ‘기계·전자·화학 같은 하드산업보다 미디어·유통·문화 같은 소프트산업이 성장하고’, ‘디자인·브랜드·기업이미지가 기업 경쟁력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주인공·조연·감독·촬영기사 각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이유도 입체적·창의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수필집 첫 글에 두 분의 스승을 먼저 언급했다. 그가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떠올린 사람이라 했다. 부친인 고 이병철 회장과 장인인 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이다. 부친은 구체적인 해법이 아닌 내가 현장에서 스스로 익히는 방식으로 ‘경영은 이론이 아닌 실제며 감이다’를 일깨워준 분이며, 장인은 ‘효율적인 기업 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의 활용법을 깨닫게 해준 분’이라고 회상했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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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호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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