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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CEO플랜’은 복지일까, 해고일까] 깜깜이 정보에 기준 없는 지원… 사실상 회사 입맛대로 

 

상시 희망퇴직 제도 운영하는 기업 잇따라

▎ 사진:현대카드
“퇴사하면 지원금 많이 준다고 ‘안내’ 하는 게, 더 줄 때 알아서 나가라는 말 아닙니까?”

현대카드의 ‘CEO 플랜’과 ‘재취업 지원금’이 논란이다. 사실상의 명예·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직원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퇴직은 인력을 감축하려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신청을 받아 퇴직금 이외의 위로금을 주고 퇴직시키는 제도다. 보통은 구조조정을 앞둔 기업이 직원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행하는 대표적인 방식이지만, 최근에는 기업이 상시로 인력을 줄이는 수단처럼 이용하기도 한다. 형식적으로는 ‘희망’하는 사람만 신청을 받아야 하는 제도인데, 다양한 수단으로 노동자의 퇴직을 유도하는 일도 있어 사실상 ‘해고’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11월 11일 현대카드가 진행한 창업설명회 CEO 플랜 온라인 설명회에서 회사 측은 ‘창업지원금 2배, 정착지원금 신설, 창업을 원치 않는 직원에게는 재취업 지원금으로 약 3년 치 연봉’을 제시했다. 이를 두고 현대카드의 한 직원은 “CEO 플랜을 사실상 상시 희망퇴직 프로그램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카드 측의 설명은 다르다. CEO 플랜은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퇴직자를 위한 창업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퇴직하는 직원에게 창업지원금을 주고 시장조사나 세무처리 같은 사업 정보도 알려준다.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를 안내하기도 한다. 회사 측은 2015년 시작해 쭉 이어오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직원을 위한 ‘복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회사가 인력 감축 의지를 가지고 신청을 받아야 하는데, 그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감축해야 할 인원 규모나 시기 등도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2년 전 회사가 제시했던 조건으로 퇴직할 수 있느냐고 묻는 직원들이 많아 당시와 비슷하게 퇴직 조건을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퇴직자를 위한 복지일 뿐 희망퇴직이나 구조조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화한 ‘CEO 플랜’ 사실상 상시 희망퇴직 제도

올해 현대카드가 강화한 ‘CEO 플랜’에서 현대카드는 2년 전 희망퇴직을 진행했던 당시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이전보다 창업지원금을 더 주고, 정착지원금도 따로 준다. 창업을 하지 않는 사람에겐 ‘재취업 지원금’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데 쓰라고 돈까지 주는 셈이다. 사내에서 ‘희망퇴직 위로금’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대카드가 퇴사하는 직원에게 퇴직금 이외의 돈을 주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2018년 11월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했을 때 이후 2년 만이다.

당시에도 현대카드는 ‘희망퇴직’이나 ‘구조조정’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2018년에는) 인력감축의 필요성이 있었고, 어느 정도 회사의 의지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현대카드 관계자는 말했다. 사실상의 희망퇴직이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이후 현대카드는 ‘퇴사 지원금’ 선택지를 없앴다가 이번에 새로 만들었다.

현대카드 직원들이 CEO 플랜을 ‘복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기준의 불명확성 때문이다. 복지시스템이라면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카드는 ‘CEO 플랜’을 통해 퇴사 후 창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직원에 대한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원 규모나 방식은 상담 후 결정되는데,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청한다고 누구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아예 지원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현대카드 노조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사가 제시하는 조건이 다 다르다. 어떤 것이 기준이고 팩트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보의 불투명성 때문에 회사가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사가 내보내고 싶은 사람에게만 지원금을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현대카드 직원은 “과연 회사의 핵심 인력이 나간다고 할 때도 회사가 재취업 지원금까지 줘가며 잘 가라고 등을 밀어주지는 않을 것 같다”며 “결국 내보내고 싶은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퇴사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했을 때 회사에 애정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지원을 받으며 퇴사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다시 회사에 남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직원은 언제든 회사를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최혜인 직장 갑질119 노무사는 “이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좋은 제도일 수 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대카드가 ‘복지’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대기업 관계자는 “회사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희망퇴직은 사실상 구조조정의 전초전으로 해석되는 일이 많은데 이는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많은 기업이 상시 희망퇴직과 비슷한 유연한 인력 감축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복지’라고 하는 것은 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정비 줄이려고 상시 희망퇴직 운영하는 기업

2014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발표한 ‘명예퇴직 운영 지침 및 위로금 산정 표준모델’을 보면 “경영상 해고는 충족해야 할 법적 요건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추진 과정에서 빈번하게 노사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조직 내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유휴인력을 적기에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명예퇴직제도의 활성화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대기업 가운데 상시 명예·희망퇴직 제도를 운용하는 곳이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이 희망·명예퇴직 등 대규모 고용인원 변동을 보고하는 대량 고용조정 신고 사업장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54곳, 2018년 384곳, 2019년(8월 말 기준) 202곳으로 집계됐다.

지난 3월 삼성디스플레이는 연내에 대형 LCD 생산을 중단을 예고하면서 일부 직원들의 전환배치 계획과, 상시적 희망퇴직 운영을 밝혔다. 또 르노삼성자동차도 2월 “회사가 경영적인 판단에 따라 상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며 “인위적인 구조조정 계획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61호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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