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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기술의 미래, 유니스트 연구지원본부] 세계적 연구성과 주춧돌, 지역 산업 떠받친다 

 

반도체 기술 지원부터 게놈까지 산·학·관 중심축

▎방진복을 입은 유니스트 연구지원본부 연구원이 미세 소자 공정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유니스트
12월 22일 유니스트 연구지원본부(UCRF)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겨울방학으로 한산한 학내 풍경과 딴 세상이었다. 제1공학관 지하 기기분석실에선 하얀 가운을 걸친 장비 운영 전문 인력이 각기 장비를 활용해 소재 구조 형상 등 측정에 골똘했다. 자연과학관 지하 1층 나노소자공정실에서는 방진복을 입은 연구원이 기판에 1마이크로미터(μm) 보다 얇은 막을 입히고 전기적 특성을 관찰했다. 제4공학관 바이오메드이미징실에선 신경세포를 3차원으로 구성하는 손길이 바빴다.

울산 경제의 구원투수로 주목받고 있는 유니스트의 현재가 UCRF의 분주함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정부 주도 공업도시로 ‘무겁고 두텁고 길고 큰(중후장대)’ 산업의 요충지였던 울산은 최근 4차 산업혁명, 친환경 등으로의 산업 변화 속에서 유니스트의 기술에 희망을 걸고 있다. 유니스트는 논문 피인용도 4년 연속 국내 1위(THE 세계대학랭킹 기준) 기록 등 질 높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반도체 소재, 게놈분석 등에서 자체 성장 기반을 갖췄다는 평가다.

260종 429대 장비, 첨단연구 인프라 구축


▎유니스트 연구지원본부 연구원이 광학현미경을 이용해 세포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 사진:유니스트
기기분석실·나노소자공정실·바이오메드이미징실·방사광활용실 등 8개 부속실에 260종 429대 장비를 갖추고 있는 UCRF가 유니스트 연구성과 기반이 됐다. 유니스트 UCRF를 이끌고 있는 신태주 본부장은 “사이언스나 네이처, 셀 등 저명 과학 저널에 게재된 이른바 질 높은 유니스트 교내 연구 논문의 80% 이상이 UCRF를 거쳤다”면서 “우수 장비에 전문 운용 인력까지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해 연구를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2020년 6월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들 수 있는 핵심 신소재로 주목받은 유니스트의 비정질 질화붕소를 활용한 ’초저 유전율 절연체’ 개발 배경에도 UCRF가 자리했다. 유전율은 절연체가 외부 전기장에 반응하는 민감도로, 유전율이 낮으면 전기적 간섭이 줄어 반도체 소자 내 금속 배선의 간격을 줄일 수 있다.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들어 집적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UCRF는 기기분석실 ‘수차보정 투과전자 현미경’등을 활용해 비정질 질화붕소가 가진 유전율 특성을 포착해냈다.

기기분석실 전임교원 정후영 교수는 “비정질 질화붕소가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는 원자 배열 구조를 확인해봐야 알 수 있다”면서 “유니스트 연구진은 UCRF 내 장비를 활용해 필요한 때 빠르게 구조를 살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본부장은 “질화붕소는 소재의 특성을 알 수 있는 구조를 전자현미경으로 살피는 것 자체도 어려운 물질”이라며 “정 교수 등 전문 운용 인력이 소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알고 있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UCRF는 나노소자공정실을 통해 소재를 직접 공정에 적용하는 기반도 갖췄다. 기기분석실에서 분석한 소재를 곧장 나노소자공정실을 통해 생산 공정에 도입할 수 있다. 김형일 UCRF 나노소자공정실 행정원은 “수직 층류 방식의 나노소자공정실은 위아래 10m 규모 공기정화 필터를 설치해 공정 1세제곱평방미터 공간 내 미세먼지 입자(0.5μm 이상)가 100개 이하인 클래스100 등급 클린룸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소재 공정을 진행할 장비·인력·체계를 고루 갖췄다”고 말했다.

UCRF는 최근 울산 변화의 주춧돌이 되고 있다. 기술 개발 한계에 부딪힌 울산 내 기업들이 UCRF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울산에 공장을 둔 한 화학원료업체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UCRF에 상주하며 UCRF 교원 및 전문 운용 인력과 반도체 칩 보호필름인 펠리클(Pellicle)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신 본부장은 “새 제품을 내놓기 위해선 장비를 통한 분석, 새로운 조합 시도가 반드시 필요한데 UCRF는 여기에 특화돼 있다”고 자신했다.

유니스트에 따르면 UCRF의 산업체 지원 건수는 지난해 11월까지 2547건을 기록했다. 기업 등 외부로부터의 장비 활용 요구가 잇따르며 2019년에 비해 400건 넘게 늘었다. 덕분에 UCRF가 장비 운용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연 38억원 수준으로 증가했다. 김학찬 유니스트 대외협력팀장은 “UCRF는 구축한 장비의 교내 활용에 그치지 않고 지역과 상생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화가 급한 울산시는 UCRF와 협력을 강화하고 나섰다. 특히 울산시는 UCRF가 진행하는 ‘찾아가는 기업 컨설팅’에 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UCRF에 미세 구조 형상 측정, 원자 수준의 화학적 특성 등의 분석을 의뢰 후 추가 기술 개발 여지는 없는지 직접 확인, 기업과 UCRF 간 기술 개발 비용을 울산시에서 지원하는 방식이다.

최근 울산시 소재 기업은 반도체 산업으로의 진입을 위해 UCRF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밀화학기업이 밀집한 울산시 기업들이 불순물 수준을 줄일 경우 반도체 산업으로 진입도 가능해서다. 실제 2019년 8월 문을 연 ‘유니스트 미래 반도체 연구센터’는 UCRF 나노소자공정실을 기반으로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또 유니스트는 UCRF 내 ‘반도체 소재부품 융합대학원’을 신설해 소재 미세화 한계에 도달한 미래 반도체 연구를 이끌어 간다는 계획이다. 이용훈 유니스트 총장은 “울산시 소재 8개 기업이 UCRF와 함께 반도체 산업으로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중후장대 산업 기반이 변하는 초석을 UCRF가 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10년 500억원 추가 투자 계획

UCRF는 이외에도 울산시가 ‘게놈 서비스산업 규제자유특구’를 통해 추진하는 한국인 게놈 연구 사업인 ‘울산 1만 명 게놈(Genome) 프로젝트’에도 관여하고 있다. UCRF 8개 부속실 중 하나인 바이오메드이미징실이 기증받은 한국인 1만명 유전자 내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허진회 UCRF 바이오메드이미징실 연구원은 “광학현미경 등 20여대 장비를 이용해 유전자 본체(DNA) 세포 하나하나를 모두 살필 수 있는 기술을 갖췄다”고 말했다.

UCRF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500억원 추가 투자를 기획하고 있다. 신 본부장은 “기초실험에서 시제품 제작까지의 기업 전주기 지원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장기적으로 지역 산업 발전을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울산=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67호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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