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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에너지 허브 가교’ 노리는 울산항만공사] 석유 중심 항만에서 친환경 항만으로 변신 

 

LNG 넘어 수소 터미널 계획… 수소 인수기지 모델도 수립

▎동북아 오일·가스 허브 사업부지. / 사진:울산항만공사
'산업 수도’ 울산은 한국 제조업 도약과 도전의 역사와 다름없다. 정유·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을 아우르는 점에서 전 세계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산업 집약도시로 승승장구했지만, 급변하는 세계 경제와 친환경 흐름 속에서 대변혁이 요구되는 전통 제조업 도시다.

최근 울산광역시가 추진 중인 동북아 오일·가스 허브 사업도 변화하는 제조업에 발맞춰 친환경 연료 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친환경 항만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울산항만공사는 이 같은 동북아 에너지 허브 구상의 가교나 마찬가지다. 탄약수에게 새 탄약을 공급하는 중책을 맡은 것이다.

2024년 연간 LNG 물동량 600만톤 예상


12월 22일 울산 북신항에 조성될 예정인 동북아 오일·가스 허브 1단계 사업부지를 찾았다. 착공 초기의 허허벌판인이 부지에 대규모 친환경 연료 저장시설이 들어선다. 14만3100㎡에 달하는 부지에 2024년까지 코리아에너지터미널의 21만5000㎘ 용량 액화천연가스(LNG) 탱크 1기와 연간 생산량 100만톤 용량의 기화송출설비 등이 건설될 예정이다. 코리아에너지터미널은 2019년 한국석유공사(지분율 49.5%), SK가스(45.5%) 등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다. 동행한 김희경 울산항만공사 물류기획실장은 “1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울산항이 연간 600만톤 이상의 LNG 물동량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동북아 오일·가스 허브 사업은 68만4000㎡ 부지에 약 3조원을 투입해 2430만 배럴 규모의 저장 시설과 8선석(항구에서 배를 대는 자리)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울산 북신항 1단계, 남신항 2단계 등으로 나눠 추진된다.

정부 역시 동북아 오일·가스 허브 사업을 적극 지원한다.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울산 북신항 방파호안을 민자에서 재정으로 전환하고, 물류비 절감과 교통 여건 개선 등을 위해 울산항 배후도로(8.8㎞) 개설 등을 추진한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울산항에 총 18선석, 배후부지 781만㎡가 추가로 조성되며 울산항의 연간 화물 처리 능력은 8974만 톤(현 7811만 톤)으로 14.9% 증가할 전망이다. 화물 처리 물동량 역시 연평균 1.8% 증가한 2억4600만 톤(현 2억2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당초 울산항만공사는 전체 물동량 중 약 80%가 액체화물인 특성을 살려 동북아 오일 허브 사업을 추진했으나 석유 산업의 시황 악화 등으로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2017년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으로 한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가 악화되자 투자를 약속했던 중국 국영석유회사 자회사인 시노마트가 발을 뺐다.

반전은 국내 기업과 친환경에서 시작됐다. SK가스가 1조원 이상을 투자해 울산에 LNG와 액화석유가스(LPG)를 사용하는 친환경 가스복합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면서 LNG 직도입을 위한 저장시설 확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울산항만공사는 울산시, 한국석유공사 등과 협업해 오일 허브 1단계 상부 저장시설 투자자로 SK가스를 유치했고, 사업 명칭을 오일 허브에서 오일·가스 허브로 변경했다. 또한 기존 사업에서 유류 전용 부두로 계획된 6만DWT급 1선석, 1만DWT급 1선석을 LNG 전용 선석으로 바꿨다. 오일 허브에 LNG 시설이 추가되면서 사업비는 5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세 배 증가했다. 사업 확대에 따른 지역 생산 유발 효과는 약 4조5000억원, 고용 유발 효과는 1만2000명으로 예상된다.

수소 챙겨 ‘동북아 에너지 허브 가교’ 목표

울산항만공사는 급증하는 LNG 수요를 소화하기 위해 LNG 벙커링(LNG를 선박 연료로 주입하는 것)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단순 LNG 운송 항만을 넘어 저장과 연료 공급을 아우르는 LNG 터미널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고상환 울산항만공사 사장은 “지금의 항만은 물류 자체를 가둘 수 있는 터미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항만공사는 수소 전용 터미널로의 도약도 꿈꾸고 있다. 정부의 수소 경제 비전을 달성하려면 향후 수소 수입 비중이 증가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수증기 메탄 개질(LNG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 방식만으론 탄소 저감 목표 이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 8월 발간한 보고서‘수소경제가 온다’에서 “2040년까지 수소 생산 포트폴리오에서 해외로부터 수입되는 무탄소 수소의 비중을 56.6%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해운업계와 전문가들은 울산항이 수소 터미널로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울산항이 동북아 에너지 허브 특화 항만인 데다, 지난 1963년 개항 이래 현재까지 석유·화학 원료 등 위험물을 취급해온 경험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울산항만공사 관계자는 “부산항과 인천항에 LNG 벙커링 사업이 추진된 바 있으나 안전에 대한 우려로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울산항은 이미 LNG 전용 부두를 확보했으며, LNG 저장시설 2기에 대한 착공도 이뤄진 상태”라고 말했다. 국민정서상 LNG보다 더 위험 물질로 인식되는 수소를 취급하는 항만으로 울산항이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울산시를 수소 도시로 육성하고 있는 것도 울산항의 수소 터미널 계획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 12월 울산을 수소시범도시로 선정했으며,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6월 울산을 수소 관련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다.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자동차를 양산한 현대자동차와 지난해 10월 세계서 처음으로 상업용 액화수소 운반선 인증을 획득한 현대중공업이 울산 대표 기업이라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2020년에 타 지역에 있는 수소 관련 강소기업 12개 업체가 울산으로 이전하는 등 이미 기업들의 움직임은 활발하다.

울산항만공사는 현재 수소 인수기지 모델을 수립해 공동 개발을 논의 중이다. 여기에 울산항 배후단지에 수소 충전소를 구축하는 사업에 대한 협의도 진행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울산항 장생포 소형선 부두에 국내 최초의 선박용 수소 충전소 1기가 구축될 예정이다. 수소 충전소와 연계한 수소 선박 및 충전소 실증 사업과 수소 연료전지 기반의 육상전원공급장치(AMP) 구축도 추진되고 있다.

- 울산=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1567호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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