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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 팝콘 심리학] 플린 효과의 역설 

 

도시화·문명발달이 IQ 점수 끌어올려… 공교육은 상식·기초 전하는 최후의 보루

▎ 사진:© gettyimagesbank
세상은 진보하고 있을까. 아니면 퇴보하는 걸까. 대부분의 지표는 전자 쪽이다. 인류의 규모가 76억명을 넘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후자를 암시하는 모습도 있다. 국지적인 분쟁과 그로 인해 험악해진 환경을 벗어나기 위한 난민은 오히려 늘어났다. 기후는 불안정해졌고, 예전에 없던 질병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지적인 영역에서도 진보의 증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플린 효과(Flynn Effect)’다. 뉴질랜드의 통계학 교수 제임스 플린(J.Flynn)이 발견한 현상으로 이전 세대보다 다음 세대의 평균 지능지수(IQ)가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는 처음엔 미군 입대지원자들의 IQ 검사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신병들의 평균 IQ가 10년마다 약 3점씩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나라로 대상을 확대해서 조사한 결과도 비슷했다.

1980년대 기준 벨기에·네덜란드·이스라엘 국민의 평균 IQ는 30년 전인 1950년대 평균에 비해 거의 20점이나 높아졌다. 여러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다른 연구결과에서도 지난 30년 동안 동일 연령대 국민들의 평균 IQ 점수가 5~25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IQ의 향상 현상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십 년간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90년대 한국의 16세 평균 IQ는 1980년대의 같은 연령 평균에 비해 11.8점 높았다.

초등학교 학업적성 검사가 지능검사(IQ)로 둔갑

플린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우선은 IQ라는 것이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필요한 ‘읽고 쓰고 셈하는 능력’을 주로 측정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시다시피 지능검사는 보통교육의 역사와 함께 한다. 1900년대 초반 프랑스는 자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상식, 지식과 가치관을 습득시키기 위한 보통 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이 표준 교육 체계에 적합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를 구별하기 위해서 알프레드 비네(A.Binet)에게 검사 개발을 위탁했다. 그러니까 원래 지능검사는 당시 초등학교 입학생용 학업적성 검사였던 셈이다.

이 검사가 수완 좋은 사업가의 눈에 띄어 미국으로 수출되면서 마치 인간의 지적능력을 알려주는 ‘지능검사(Intelligence Quotient test)’인 것처럼 둔갑한 것이다. 그래서 IQ 점수는 그 사람의 학업성적은 잘 예측하지만 그가 얼마나 현명하게 살 것인지 판별하는 척도는 될 수 없다. IQ가 높고, 공부도 잘하지만 의외로 멍청한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있지 않던가.

플린 효과의 이유는 신세대의 생활환경이 학교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플린 효과가 나타난 국가의 공통점은 그동안 도시화가 진행되고, 전반적인 인프라가 발전되었다는 점이다. 농경사회의 아이들은 자연에서 뛰어다니며 놀았다. 읽고, 쓰고, 셈하기는 학교에서나 하는 예외적인 활동이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전기와 인공조명의 보급 덕분에 밤에도 읽고, 쓸 수 있게 됐다. 일상생활에서 글을 쓰고 셈할 일도 늘어났다.

인터넷은 더욱 그렇다. 원래 인터넷은 문자와 숫자로 점철된 공간이다. 웹서핑은 결국 게시물을 읽고, 댓글을 쓰는 활동이니 읽기와 쓰기가 여가활동의 기본이 된 거다. 컴퓨터 게임도 기여를 했다. 컴퓨터 게임을 잘하려면 시간과 공간도 계산해야 하고, 동료나 상대의 메시지도 빨리 인식해야 한다. 눈과 손의 민첩성은 덤이다. 이 모든 것은 지능검사에서 측정하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신세대는 그냥 도시에서 살면서 인터넷과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능검사 연습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플린 효과가 역행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신세대의 지능지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 1975년 출생자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이 현상은 최근 미국·영국·프랑스·덴마크·호주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다행히 아직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역플린 효과가 발견되지 않았다.

요즘 세상을 보면 역플린 효과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마스크를 쓰라는 방역 지침에 ‘개인의 자유’를 내세우며 저항하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자. 5세대(5G) 통신망이 코로나19 전염병을 퍼트린다는 소문에 통신 중계기를 파괴하고, 불 지르는 일이 유행했던 영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 사람들의 행태는 또 어떤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백신주사를 피해야 한다거나 코로나 백신이 사람들을 세뇌하기 위한 빌 게이츠의 음모라는 주장을 진지하게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자면 과연 이들이 21세기 사람인지 중세 사람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역플린 효과의 원인도 아마 환경이다. 우선 기술이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예전 자동차는 부품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고칠 수도 있었다. 지금은 그 기능들이 작은 컴퓨터 칩에 담겨있다. 예전 컴퓨터는 사용자가 프로그래밍하고, 고치기도 했다. 이제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작동을 멈추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껐다 켜는 것뿐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시 제 기능을 하는데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른다.

기술이 첨단이 될수록 보통 사람들에게는 마법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그 첨단 기술은 읽고 쓰고 셈하는 능력보다는 직관과 본능을 이용하도록 진화한다.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란 결국 설명서를 읽거나 머리 아프게 계산할 필요 없이 내가 느끼고 원하는 대로 행하기만 하면 알아서 기능을 실행시켜준다는 뜻이 아니던가.

기술 첨단화가 읽고 쓰고 셈하는 능력 약화시켜

사이버 공간의 주류는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와 동영상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 유저들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했던 빈약한 이미지들은 더 이상 없다. 이제 게임은 현실 모사를 넘어 거의 새로운 현실이 되어간다. 인터넷은 여전히 무한한 정보의 바다다. 하지만 반(反)지성주의자와 음모론자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 결과 인터넷은 사해동포를 아우르기보다는 극과 극의 생각이 국지전을 벌이는 공간이 되었다. 최근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사태를 주도한 세력의 핵심은 ‘큐아넌(QAnon)’이라 불리는 음모론자들인데, 이들의 세계관은 외계인 침공을 다룬 헐리우드 영화나 만화, 그리고 디지털 게임의 세상에 더 가깝다. 그들은 세상을 게임처럼 이해하고 상대한다.

이런 세상일수록 공교육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공교육은 새로운 세대에게 상식과 기초를 전달하는 최후의 보루다. 지난해 재택수업을 받은 초등학생들 중에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는 조사결과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1577호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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