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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줄이면 과세” 정부 탄소세 추진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온실가스 감축 목표 높일 강제방안 구상... 유인책 역할 못한 배출권거래제도 원인

▎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면서 불거진 지구온난화가 기후위기로 치닫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국내 기업들에 탄소세 ‘비상등’이 켜졌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높여야 하는 정부가 NDC 이행 수단으로 탄소세를 검토하고 나서면서다. 탄소세는 기업의 이산화탄소(온실가스) 배출량 절대치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탄소세를 시행하면 국내 온실가스 배출 1위 포스코는 연 3조원(t당 4만원 기준)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 관계자는 “NDC 상향 조정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어 배출권거래제만으로 NDC를 맞추기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달 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환경부와 공동으로 '탄소가격 부과체계 개편‘ 관련 연구용역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발주했다. 기획재정부는 “탄소세 제도 시행 과정과 그에 따른 역효과 등 사례를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는 모델을 구상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도 탄소세를 추진하고 나섰다. 3월 12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2021년부터 1t당 4만원 수준의 탄소세를 도입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 ’탄소세 배당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미국 NDC 상향 압박에 나온 탄소세 카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NDC 목표 상향이 정부와 국회의 탄소세 도입 추진으로 이어졌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우선·고립 외교 대신 국제 리더십 복원에 나서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 한국을 향한 NDC 상향 조정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NDC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당사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NDC는 파리협정 목표(지구 온도 상승 1.5도 이내 제한) 달성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2030년까지 2017년 국가 온실가스 총 배출량(7억910만t) 대비 24.4% 감축’을 골자로 한 NDC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했었다. 이는 산정 방식이 달라졌을 뿐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제출한 기존 목표치(5억3600만t)와 동일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페트리샤 에스피노자 UNFCCC 사무총장은 “지금보다 더 급진적이고 전향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응해야 하며, 화석연료를 조속히 폐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함께 NDC 상향 요구를 받았던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은 이미 NDC 상향을 결정했다. 일본 현지 언론은 4월 14일 일본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현재 26%에서 최소 40%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관계자는 “일본의 NDC 상향에는 미국의 입김이 자리하고 있다”면서 “유럽연합은 2030년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1990년 40%에서 55%로 상향 조정했고, 영국은 2030년 목표를 57%에서 68%로 올렸다”고 말했다.

이에 2030년 2017년 국가 온실가스 총 배출량(7억910만t) 대비 24.4% 감축을 NDC에 담은 한국은 최소 40% 상향을 밝힐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4월 17일 방한, 한국 정부에 NDC 상향 요구를 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4월 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여는 기후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다”면서 “NDC 추가 상향과 해외석탄 공적 금융 지원 중단 등에 대한 얘기가 오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탄소세가 더 높아진 NDC를 실현하는 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시행했던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탄소배출량 감축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매년 기업의 탄소배출 총량을 정해 배출권을 할당하면, 기업이 탄소배출량을 줄이거나 배출권이 남는 기업이 사서 충당토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당초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온실가스 감축 유인 효과를 낼 것으로 봤지만, 제도 시행에도 탄소배출량은 증가했다.

탄소세는 보다 실질적인 탄소배출량 축소 제도로 꼽힌다. 무상 할당권이 포함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아도 배출권이 남는 배출권할당제와 달리, 배출량 절대치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탄소세는 쓰레기를 버리는 양이 많을수록 더 많은 봉투를 사야 하는 것과 같이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제도”라며 “탄소세는 이산화탄소 환산톤(tCO2eq)당 일정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탄속세가 기업 경쟁력에 디딤돌” 전망

당장 기업은 반발하고 있다. 탄소세를 시행하면 온실가스 배출량 미감축이 세금 폭탄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용혜인 의원이 발의한 법안(2021년 온실가스 1t당 4만원)을 적용할 경우 2019년 8148만톤 온실가스를 배출한 포스코는 3조260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온실가스 1t당 탄소세를 10달러(1만2000원)로 해도 철강업계와 화학업계가 각각 연간 4조1000억원, 2조1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NDC 상향과 탄소세 도입에 기업이 적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럽연합과 미국이 탄소누출 제품에 대해 탄소국경세 도입을 예고, 온실가스 미감축이 되레 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탄소국경세란 유럽과 미국이 온실가스 규제가 약한 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입할 때 자국 기업들이 부담했던 수준의 온실가스 비용을 부과하는 조치다. 홍종호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는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못한 기업은 가격, 해외시장 등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1583호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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