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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2년이나 남았는데”… 끊어진 ‘신세계의 강남벨트’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2018년 7월18일.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이 센트럴시티에 문을 열었다. 명동점에 이은 두 번째 시내면세점. 은둔형 경영자로 불리던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정 사장은 강북권에 몰려있는 대기업 면세점과 달리 ‘강남 시대’를 열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그만큼 숙원사업 중 하나였지만 그룹차원에서 주는 의미도 남달랐다. 시내면세점 강남점은 하남 스타필드와 삼성동 코엑스몰 운영권에 이은 신세계표 ‘강남벨트’ 형성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승자의 저주일까. 면세점이 ‘황금알’로 대변되던 2015년~2016년. 2년 연속 서울 시내면세점 추가 특허권을 획득하면서 면세업계 ‘3강’으로 자리를 굳힌 신세계면세점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1호 명동점이 고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승부수를 띄웠던 강남점이 3년 만에 폐점수순을 밟게 됐다. 영업일은 오는 7월 17일까지다. 이에 따라 신세계면세점이 운영하는 매장은 명동과 부산, 인천공항점 등 3개로 줄어들게 됐다. 동시에 정 사장과 신세계의 ‘강남벨트’도 맥이 끊겼다는 평가다.

강남 or 강북… 안 먹힌 정유경 전략


강남점 철수설이 불거진 건 지난해부터다. 코로나19로 중국 관광객과 따이궁(보따리상) 등의 발길이 끊기며 누적 손실액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어났다. 매장 손실율은 더 컸다. 신세계디에프의 지난해 매출은 1조9030억원. 전년대비 42.4%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426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이 와중에 지불해온 연간 임대료는 150억원 가량. 더 이상 버티기엔 한계에 도달했다는 곡소리가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폐점이 구체화된 건 한 달 전부터다. 지점별 물건을 받아야 하는 면세점 측이 브랜드에 철수 관련 공문을 배포하면서 업계에선 대략적인 소문이 돈 상황이다. 업계는 당초 4분기 폐점을 예상했지만 주로 연간 계약을 진행하는 브랜드와 관계 정리 편의상 딱 3년이 되는 날인 7월17일로 정해졌다는 후문이다.

실적 부진이 강남점 폐점의 표면적 이유지만 신세계 측의 전략이 어긋났다는 평가도 있다. 강북 ‘명동점’, 강남 ‘강남점’에는 정 총괄사장의 이원화 전략이 담겨있다. 보따리상 위주 판매가 이뤄지는 게 명동점이라면 국내 매출 1위 백화점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연결돼 있는 강남점은 개별관광객 중심으로 판매가 이뤄지는 곳으로 방향성을 정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강남점의 유동인구는 내국인이 90% 외국인은 10%정도에 불과했다. 입지가 취약한 점도 한몫했다. 강남의 노른자땅인 센트럴시티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타 면세점보다 여행객들의 접근성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뜸했다.

신세계 측은 ‘새 관광수요 창출’이라는 포부를 내걸었지만 업계에선 국내 이용객과 관광객 수요, 변수를 정확히 예상하지 못한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면세업이 활황일 때 이동권이 있는 관광객들이 강남에서 북으로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에 물량확보 측면에서만 보면 신세계 전략이 어느 정도 맞았다”면서도 “면세점의 가장 큰 손은 따이궁이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따이궁 역할은 더 큰 데, 애초부터 따이궁을 벗어난 전략을 취한 강남점이 잘 될리 만무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현대서울에 뺏긴 ‘최대 규모’ 탈환


▎신세계면세점 강남점 비디오파사드.
잘 나가는 백화점에 힘을 싣는 복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면세점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2년 연속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높은 실적도 실적이지만 최근 오픈한 현대백화점의 신규점포 더현대서울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의도에 자리 잡은 더현대서울이 문을 열면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수년간 가지고 있던 ‘서울 최대 백화점 타이틀’ 자리를 빼앗겼다. 더현대 서울은 지하 7층~지상 8층, 영업면적 8만9100㎡(2만6952평)로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으로 화제를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신세계 강남점은 하반기 1층과 2층에 중층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 1000평 공간을 추가 확보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하지만 여기에 센트럴시티 면세점 약 4100평 규모가 더해진다면 상황은 확실해진다.

업계에선 서울 최대를 넘어 “수도권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면세점이 떠난 강남점 자리엔 ‘신세계백화점 명품관’이 확대 운영 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입지가 상대적으로 뒤편에 위치해 있어 명품보다는 SPA브랜드 위주의 대형점포들이 들어올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고용문제·바잉파워… 넘어야 할 ‘산’


▎서울 중구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사진:뉴시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을 접으면서 신세계가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우선 고용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의 특허기간은 5년. 이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3년 만에 중도하차하는 셈이라 직고용 인원과 아웃소싱·브랜드 직원 약 350명의 고용을 담보해야 한다.

신세계면세점 측도 고용 논란을 우려해 협력업체를 포함한 강남점 직원들을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등을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 하지만 업계에선 다른 점포 역시 상황이 안 좋긴 마찬가지라 기존과 같은 고용 승계 의미로 봐선 안 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외부 이미지 때문에 강남점 고용 인력을 다 떠안더라도 순환배치나 출근시간 조정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면세점 사업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사업. 강남점을 접는 의미는 향후 신세계면세점의 3강 굳히기가 더 어려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내면세점 하나를 운영해서는 수익성을 늘릴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면세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주력 면세 품목인 향수·화장품 등은 빅3 면세점과 기타 면세점 간 구매력 차이로 인한 마진 차이가 이미 5% 이상 발생하고 있다. 명동점과 강남점까지 더해 브랜드와 단가 협상을 맞춰온 신세계면세점 입장에선 향후 운영조건이 불리해 질 수 밖에 없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바잉파워가 줄어들 수 있지만 현재는 사업 재정비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1년 이상 장고 끝에 매출이 엄청나게 줄어든 상황에서 무조건 운영하는 것보단 면세사업 체질개선이 더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강남점에 들어올 향후 시설과 관련해선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며 “고용과 관련해서도 아직 3개월 기간이 남아서 점포와 협의하고 나머지 인력을 명동과 다른 지점에 배치하는 방향으로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1583호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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