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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몰려온다] 한국 로봇 어디까지 왔나 

수술·경비·전쟁 뭐든 시켜만 주세요 

글 남정미·오선진 인턴기자·사진 각 사 제공

▎김해중앙병원 인공 관절 수술 장면. 큐렉소의 로보닥이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제조 로봇 강국인 독일과 일본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미국은 최근 전문 서비스 로봇을 통해 로봇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도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인간형 로봇보다 재난과 위험 지대에 급파할 수 있는 전문 서비스 로봇 개발에 관심을 쏟고 있다. 전문 서비스 로봇은 군사, 경비, 의료, 교육 등 전문화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을 말한다. 분야별로 관련 기술 개발과 상용화가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국내 기업들을 통해 살펴봤다.

군사 로봇


전쟁터에서 로봇끼리 전투한다

28㎏ 무게의 로봇이 험준한 산길을 거침없이 달려간다. 시야에 1m 높이의 바위가 포착됐다. 동체의 회전 각도를 바꿔 날렵하게 피해 간다. 낭떠러지에서 발이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난다.

군사 로봇 ‘스카봇’ 얘기다. 스카봇은 중소기업인 퍼스텍에서 개발했다. 주 임무는 감시, 정찰이다. 퍼스텍은 방위산업 시장에서 T-50, K-9 등 훈련용 무기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다.

이 회사가 로봇 개발에 착수한 건 2008년이다. 독자적인 전자·정밀기술을 바탕으로 로봇 개발에 나선 것이다. 퍼스텍 측은 군사 로봇이 상용화돼 방어 인력을 대체할 수 있다면 감시·정찰 부문에서 상당한 경비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에서도 일부 국가 주요 시설에 경비 로봇을 도입할 예정이다. 울진 원전 침투 훈련이 대표적이다. 6월 8일 열린 ‘2011 육군 대토론회’에서 이원승 예비역 준장은 “위험 지역에 로봇을 투입하는 방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군대처럼 한국도 로봇을 전장에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 때부터 군사 로봇을 투입했다. 30여 종류의 2만여 대 로봇을 실전에 배치했다. 인간 대신 로봇만 싸움터에서 전쟁을 치를 날도 멀지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다.

심민보 보나비젼 대표는 “팩봇의 경우 6만~10만 달러에 달하지만 미군의 생명과 직결된 곳에 바로 투입되면서 이미 6만 대 이상 팔렸다”며 “실제 한 명의 군인을 양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 보면 저렴하고 실용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재난 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군사 로봇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아이로봇의 팩봇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후쿠시마 원전 내부에 투입돼 상세한 피해 상황을 확인, 사고 현장 지원 업무를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비디오를 촬영한 모습은 네티즌에게도 화제가 됐다. 감시 로봇의 경우 감시·정찰은 물론 화생방 탐지, 폭발물 처리 등에 쓰이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군사 로봇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대로템은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지뢰 탐지 로봇을 개발 중이다. 지뢰 매설 의심 지역에서 로봇이 지뢰를 발견하면 위치를 저장해 담당자에게 전송한다.


▎(주)큐렉소가 만든 인공 관절 수술 로봇 로보닥(위), 동부로봇이 만든 경비로봇 EGIS IV

삼성테크윈은 보안·감시에 초점을 맞춰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파노라마 형식으로 감시하다가 움직이는 물체가 있으면 자동으로 렌즈를 확대해 경로를 파악한다. 야간엔 열 영상 장비를 이용해 침입자를 찾아낸다. 침입자가 나타나면 빛이나 총을 쏴 추방하는 기능도 갖췄다. 한화 역시 올 초 방위산업에 로봇 기술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교육 로봇

원어민 교사처럼 영어 수업 ‘척척’

2월 21일 경기도 안양시 호원초등학교 영어체험센터에서 외국어 교육 로봇 ‘로봇샘’의 공개 수업이 열렸다.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로보샘을 바라본다. 이름과 나이 같은 개인정보가 입력된 RFID 팔찌를 찬 아이가 로봇샘을 껴안자 로보샘의 등에 붙어 있는 리더기에서 소리가 난다. “반가워, 친구야. 오늘 기분이 어때?”

로봇샘이 아이의 팔찌를 인식해 출석을 확인한 것이다. 로봇샘의 머리 역할을 하는 모니터엔 8개의 얼굴 표정 버튼이 나타난다. 아이는 그중 자신의 기분에 맞는 표정을 터치한다. 선택된 ‘오늘의 기분’은 데이터로 저장돼 학부모에게 전송된다.

영어 수업이 시작됐다. 로봇샘이 “What is your name?”을 외치며, 아이들의 이름을 물어본다. 아이들이 앞다퉈 영어로 대답한다. 틈이 날 때마다 로봇샘에게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어 수업이 진행되기 힘들 정도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로봇샘은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자고 권유하고 노래도 들려준다.

로봇샘은 첨단 기술을 교육 현장에 접목해 학습 효과를 높이자는 취지로 개발된 프로젝트 로봇이다. 방향 지시, 인사 등 다양한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 음성을 인식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이동한다. 수업 중 떠드는 학생에게 주의를 주기도 한다. 로봇샘을 무선인터넷과 연결하면 로봇의 얼굴 역할을 하는 모니터엔 원어민 교사의 얼굴이 뜬다. 원어민 교사를 구하기 힘든 농어촌 지역에서 로봇샘이 이들을 대신하는 셈이다.

로봇샘은 지능로봇 기업 유진로봇이 만들었다. 지식경제부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 지원을 받아 3년 만에 태어났다. 유진로봇은 이르면 올해 안에 시중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올해 시범 수업을 거쳐 향후 3년간 국내 초등학교에 3000대가량 보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교육용 로봇 개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KT의 유아용 로봇 ‘키봇’도 교육 로봇이다. 안선희 KT 마케팅팀 매니저는 “높은 교육열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먼저 교육용 로봇이 개발됐다”며 “향후 수출을 통해 시장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업용 로봇을 개발해 오던 유진로봇은 1990년대 말 서비스 로봇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교육용 로봇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으며 지난해 21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유진로봇 신경철 대표는 “교육 로봇을 시작으로 청소 로봇, 공공 서비스 로봇을 만들고 있다”며 “아직 소비자의 기대와 개발 속도에 차이가 커 더 많은 투자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 로봇

의사보다 수술 더 잘한다

최근 의료계에선 수술 로봇들이 화제다. 세계 3대 수술 로보으로 꼽히는 로보닥, 마코플래스티(Makoplasty), 다빈치(da Vinci)가 그 주인공이다. 이 중 다빈치는 전립선과 심장병을, 마코플래스티는 무릎 관절 수술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반면 로보닥은 정형외과 수술 전문이다.

다빈치와 마코플래스티는 사람이 조이스틱을 잡고 조종해야 하는 반자동 로봇이다. 하지만 무릎, 엉덩이뼈 인공관절 수술에 사용되는 로보닥은 20분 동안 혼자 수술한다. 진정한 로봇 의사인 셈이다.

로보닥은 CT 영상을 이용해 인공관절의 삽입 위치를 검토하고, 수술 전 인공관절의 위치를 조정한다. 이는 보통 정형외과 의사의 업무지만 로보닥이 더 세밀하게 해낼 때가 많다. 보통 의사는 환자의 2차원 엑스레이 영상을 보고, 자신의 경험에 의존해 임플란트의 크기와 삽입할 위치를 결정한다. 하지만 로보닥은 3차원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통해 수술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수술법을 결정해 더욱 완벽한 수술을 할 수 있다.


▎2월 21일 경기도 안양시 호원초등학교에서 영어수업 중인 로봇샘.

인공관절 삽입 및 장착을 위한 커팅도 정확하다. 고도의 정교함이 요구되는 뼈의 절삭작업을 로봇이 대신한다. 이 때문에 기존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수술 오차율이 상당히 낮다. 아무리 경험 많은 의사가 하는 수술이라도 인공관절 수술에서 10~15%는 3㎜가량 오차를 낸다. 반면 로보닥의 경우 인공관절 수술에서 0.1㎜ 내외 오차로 의사에 비해 훨씬 정확도가 높다.

이 같은 정확성은 재수술 가능성을 크게 줄여 준다. 수술 후 예후도 좋다. 수술 부위를 적게 절개해 회복도 빠르고, 합병증에 걸릴 위험이 작다. 로보닥은 전 세계에서 2만8000여 건 이상 시술에 참여했다. 단 한 차례의 부작용과 사고도 없었다. 그 결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받았다.

인공관절 수술에서 독보적인 로보닥의 특허권을 갖고 있는 업체는 한국 회사 큐렉소다. 이 회사는 미국 현지 자회사인 큐렉소 테크놀로지를 통해 로봇 관련 24개의 원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IBM의 수술 로봇 관련 특허권 4만여 개에 대한 이용 권한도 확보하고 있다.

김태훈 큐렉소 회장은 “전 세계 기업 중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IBM 특허를 사용하고 있다”며 “2020년 특허 만료 전까지 시장 점유율을 늘려갈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선 2002년 이춘택 병원을 시작으로 강동 가톨릭 병원(현 친구병원), 전남대 화순병원,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연세SK병원, 시화 센트럴병원 등에 로보닥이 설치됐다. 국내 총 수술 건수는 7500여 건에 달한다.

여러 나라에서 로보닥에 대한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큰 의료기기 시장이다. 나고야 교리쓰 병원, 도쿄 메디컬칼리지병원 등 10여 개 대학이 로보닥 구매 의사를 밝혀왔다. 김태훈 회장은 “고령화에 따른 인공관절 수술이 증가함에 따라 수술 정밀도가 높고 수술 예후가 좋은 로보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고관절, 슬관절뿐 아니라 뇌신경 수술, 골절 수술 등 수술 로봇을 고난도 분야로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큐렉소에서는 로보닥 외에도 세계 최초로 자연분만 시간을 단축하고, 기구 분만율을 줄여주는 자연 분만 유도기 베이디(BAIDY), 약물의 방출 기간과 정도를 목적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약물 전달 시스템도 선보였다. 김 회장은 “과거 의료용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지만 지금은 더 전문적이고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며 “매년 20%씩 성장하는 세계 수술 로봇 시장이 이를 증명한다”고 강조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세계 의료 로봇 시장 규모는 2013년까지 73억49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시장 규모는 1000억원에 달한다.

경비 로봇

체온으로 사람 감지, 불도 끄고 도둑도 잡는다

경비 로봇이 낮에 하는 일은 평범하다. 입구에서 손님들의 손길을 받으면 머리를 돌려 “어느 부서를 찾아오셨습니까”라며 반갑게 맞이한다. 체온으로 사람을 인식한다.

로봇의 가슴에 달린 터치스크린엔 각종 버튼이 표시돼 있다. 회사 부서들에 대한 설명이 많다. 원하는 부서의 버튼을 누르면 로봇은 “저를 따라오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움직인다. 그러곤 방문객을 원하는 곳까지 안내한다.

안내가 끝나면 로비에 있는 가로, 세로 50㎝ 크기의 상자 모양 접촉식 충전기 앞으로 간다. 플러그를 꽂을 필요 없이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자동 충전된다.

밤이 되면 경비 로봇 본연의 업무로 돌아간다. 경비업체 에스원과 제휴해 안내는 물론 순찰, 화재 진압 등을 담당한다. 순찰은 입력된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20여 개의 센서, 적외선 카메라와 레이저 레이더가 있어 아무리 어두워도 순찰하는 데 문제가 없다.

10m 안 장애물에 한해 미리 인식해 동작할 수도 있다. 센서로 낯선 움직임을 포착하면 침입자의 위치 정보를 받아 최고 5.4㎞/h 속도로 출동한다. 도착한 로봇은 열화상 카메라로 침입자를 찾는다. 필요에 따라선 통제센터의 원격 조종도 가능하다.

만약 로봇이 침입자로 인식한 경우 로봇 머리 위에 있는 1600루멘의 LED 조명이 켜진다. 침입자가 눈을 뜨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또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며 침입자를 당황시킨다.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무선인터넷을 통해 로봇의 신호를 받은 보안업체 직원들이 출동해 침입자를 제압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화재가 나면 건물에 설치된 화재 감지기에서 신호를 로봇에게 보낸다. 로봇에도 화재 감지 센서가 있어 스스로 불이 난 곳을 찾을 수 있다. 일단 화재가 난 곳을 발견하면 로봇 팔 끝에서 진화용 헬륨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화재 발생 후 5분의 초기 진화를 로봇이 맡는 것이다. 그 덕에 큰불로 이어질 수 있는 화재를 90%까지 예방할 수 있다.

로봇이 들어갈 수 없을 때는 또 다른 기지를 발휘한다. 로봇 동체에 내장된 음료수 깡통 크기의 캡슐 로봇 2개가 튀어나와 스스로 움직이며 현장을 카메라로 찍는다. 이 영상은 보안업체에 전송돼 화재 진압 계획을 짜는 데 쓰인다.

이 경비 로봇은 동부로봇이 고유 기술로 생산한 것이다.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쓰고 있다. 로봇을 개발한 동부로봇 김형철 연구소장은 “경비 로봇은 보안업체와 연동됐을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한다”며 “위험을 감지해 초기 대응을 하는 것은 물론 보안경비업체의 고민거리인 오보 출동으로 인한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사테크로 시작한 동부로봇은 1997년 6명의 전문가가 모여 로봇을 개발, 판매했다. 주로 직각 좌표 로봇, 다관절 로봇 같은 산업용 로봇을 개발하던 다사테크는 2004년 서비스 로봇 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산업용 로봇 개발로 정밀하고 안정적인 모터 기술을 확보했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전년 대비 85% 성장한 316억원의 매출과 1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미국, 일본, 독일, 이스라엘 등에선 실내 자율 주행 로봇이 개발되고 있다. 이 로봇들은 주로 건물의 안내와 보안을 위해 쓰인다. 아직은 개발이나 시험 단계인 경우가 많다. 고급 승용차 한 대 가격 정도로 비싸다. 로봇 대중화가 이뤄지고 대량생산으로 가격이 낮아지면 가정에서도 경비 로봇을 사용하는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김형철 소장은 “에스원과의 시스템 구축이 완성된 후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질 것”이라며 “소득 수준 향상으로 향후 1000억 달러까지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107호 (201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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