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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 사업도 우정도 신뢰로 다져야 

 

다이소아성산업 박정부 회장과 뮤지컬 ‘저지보이스’를 봤다. 문화예술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그는 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박정부 회장은 뮤지컬 속 포시즌스 멤버들의 우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다이소는 전국 940개 매장에 연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국내 1위의 생활용품 전문기업이다.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인 박정부(70) 회장은 예술의 전당 후원회의 모란회원(5000만원 이상 기부)으로 활동할 만큼 재계의 소문난 문화예술 애호가다. 박 회장을 1월 17일 서울 용산구의 복합공연장 블루스퀘어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만났다. 그는 이날 국내 초연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뮤지컬 ‘저지보이스’ 관람을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오후부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성가신 미세먼지까지 괴롭혔지만 아내와 함께하는 모처럼의 뮤지컬 관람에 그는 설레는 듯했다.

‘저지보이스’는 1960년대를 풍미한 미국 뉴저지 출신의 4인조 남성 보컬그룹 포시즌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의 주크박스 뮤지컬(특정 가수·그룹의 노래로 이야기를 꾸민 작품)이다. 가난한 소년들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험난한 여정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저지보이스’는 오는 4월 개봉한다.

“예전부터 문화예술에 남다른 애착이 있어요.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년에 거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낼 정도로 바빠 여유롭게 공연을 즐길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문화예술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지인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연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는 칠순을 넘긴 남편이 요즘도 한 달 중 일주일은 해외에서 보낸다며 “뉴욕 출장을 가도 브로드웨이 뮤지컬 한 편 볼 여유가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 회장은 사업 초기부터 싸고 좋은 제품을 찾아 전 세계를 발로 뛰었다. 남들이 중국으로만 향할 때 그는 해당 제품을 가장 잘 만드는 곳을 찾아 20개국을 돌아다녔다. 예를 들면 인도는 면제품과 스테인리스, 터키는 유리 제품이 우수하다. 이익률이 1% 정도로 낮다 보니 구매 단가 10원을 깎기 위해 6개월 동안 협상을 벌인 적도 있다.

공연 시작 전 피자와 커피를 곁들인 간단한 식사를 들며 가족과 사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박회장의 두 딸 중 큰딸은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다. 3년간 부친 사업을 돕다가 ‘도저히 아빠만큼 못하겠다’며 경영에서 한 발 물러섰다. 작은딸은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만 아직 미혼인데다 남자도 하기 힘든 유통 사업이라 후계를 논하기엔 시기상조라고 그는 말했다.

“ 일본 기업으로 오해받아 속상했다”

“자식이라도 뚜렷한 철학이 없으면 회사를 물려줄 생각 없습니다. 자기 할 일은 곧잘 하지만 내가 5~10년은 더 뛸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결혼부터 하라고 했습니다.” 이 여사는 남편이 작은딸을 너무 혹독하게 교육시킨다고 불만이다. 하지만 박 회장은 “어느 한 분야만 잘해도 되는 제조업과 달리 유통은 모두 몸으로 익혀야 한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일본 기업으로 오해받아 속상했던 마음도 털어놓았다. 박 회장은 1988년 44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역과 국내 기업의 일본 현지교육 아웃소싱을 전문으로 하는 한일맨파워를 설립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다 보니 어린 두 딸을 둔 아내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 못하면 다 죽는다는 각오로 일했어요. 한가할 틈이 없었죠.” 당시 삼성과 현대, 대우 등이 모두 박 회장의 고객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교육사업을 접고 서울 천호동에 아스코이븐플라자 매장을 열면서 균일가 생활용품 유통 사업에 집중했다.

다행히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며 100호점을 낸 2001년, 오랜 사업 파트너인 일본 다이소산업으로부터 34%의 지분 투자를 받고 상호를 다이소로 바꿨다. 이 때문에 ‘다이소는 일본기업’이라는 오해와 억측이 인터넷을 통해 번지면서 박 회장은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다.

“한국 다이소는 안정적인 일본 수출을 위해 일본 다이소와 브랜드를 공유할 뿐 배당이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인적 교류도 없습니다.” 현재 다이소의 최대주주는 박 회장(43%)이며 일본 다이소산업은 2대주주(34%)다. “일본 지분이 있으니 일본회사 아니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대한민국 주요 기업 중 순수 국내 회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다이소는 제품 가격을 정할 때 생산 원가에 마진을 붙이지 않고 판매가격(1000~5000원)을 먼저 정한 후 포장간소화, 경비 절감을 통해 마진을 남기다 보니 그 액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 회장은 저렴한 제품을 취급한다고 ‘싸구려 매장’이 돼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아직도 틈만 나면 전국 매장을 직접 방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매장 조명을 밝게 하고 진열대 높이를 사람 키보다 약간 낮춰 고객의 시야를 확보해 줘 고객이 자존심 상하지 않고 즐겁게 쇼핑할 수 있도록 늘 신경 씁니다.”


▎옛 종로서적 자리에 위치한 다이소 종로점(왼쪽)과 뮤지컬 ‘저지보이스’ 내한공연의 한 장면.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뮤지컬 관람을 위해 공연장으로 갔다. 저지보이스는 아바의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맘마미아’, 비지스의 히트곡으로 스토리를 구성한 ‘토요일 밤의 열기’,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올슉업’ 등에 비하면 국내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는 부족해 보였다. 무엇보다 음악적인 무게감이 떨어진다.

포시즌스 무대의 감동 같은 경영 추구

포시즌스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비틀즈나 비치보이스, 비지스 등 다른 인기그룹에 비해 국내에서의 인지도가 떨어진다. 포시즌스는 1962년 데뷔, 8년간 30여 개의 히트곡을 냈다. 비틀스에 맞선 미국의 자존심을 지킨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리드 싱어였던 프랭키 밸리가 큰 사랑을 받았다. ‘천상의 목소리’라는 별명처럼 3옥타브 반을 넘는 고음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한석규 주연의 영화 ‘접속’ 등 많은 영화와 CF에 사용되며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은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비롯한 몇 곡을 빼면 일반 관객에게는 대부분의 곡이 낯설다. 프로그램을 살펴보던 박 회장은 (포시즌스의 전성기에 대학시절을 보냈음에도) 아는 노래가 거의 없다고 했다. 4명 멤버의 우정에 초점이 맞춰진 까닭에 ‘로맨스라인’이 약한 것도 아쉽다.

하지만 막이 오르고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박 회장을 비롯한 관객은 작품을 통해 구현된 1960년대의 미국 그룹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약한 원곡의 인지도는 잘 짜여진 스토리라인과 속도감 있는 연출로 상쇄됐다. ‘맘마미아’류의 주크박스 뮤지컬은 원곡의 가사를 스토리에 꿰어 만들다 보니 스토리 전개가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지기 어렵다(사실 ‘맘마미아’의 성공의 80% 이상은 아바의 음악의 생명력이다).

반면 ‘저지 보이스’는 주인공인 포시즌스의 실제 이야기를 4계절(포시즌스)에 맞춰 그들의 주요 음악을(공연의 일부가 아닌 당시 그들의 공연 모습으로) 곁들여 한결 자연스러운 느낌을 줬다. 그룹의 리드보컬인 프랭키 밸리가 솔로 전향 후 발표한 ‘Can’t Take My Eyes off You’가 흘러나오자 관객이 열광하는 모습은 뮤지컬의 일부가 아닌 1967년 당시의 역사적인 무대를 그대로 옮겨온 느낌이었다.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무대연출도 돋보였다.

또 배우들이 극중의 객석을 등지고 공연하도록 연출해(마치 공연 스태프가 된 기분으로 보도록) 역사적 사실감을 더한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4명 중 가장 어린 밥 고디오가 다른 멤버들을 찾아가 피아노를 치며 자작곡을 부르자 그의 재능을 반신반의하던 멤버들이 하나 둘씩 화음을 더해 마침내 제대로 된 포시즌스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명장면 중 하나다.

박 회장 부부는 배우들의 노래솜씨와 무대연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네 남자의 변함없는 우정에 감동을 받은 듯했다. 특히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토미를 끝까지 믿고 감싸주며 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프랭키의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고 했다. “사업할 때도 꼭 나와 맞는 사람과 일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실수하고 나를 좀 섭섭하게 해도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참으면서 끝까지 믿어줘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러다가 결과가 좋으면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밝은 표정으로 “좋은 자리를 마련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공연장을 떠나는 그에게(다음날 일찍 상하이로 출장을 떠난다고 했다) 올해 다이소의 목표를 물었다. “큰 시장인 중국에는 90개 매장이 입점해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올해 안으로 국내 1000번째 매장을 열 계획이에요. 하지만 외연을 키우는데 욕심을 내기보다 숨고르기를 좀 하면서 안정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

201403호 (201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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