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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GYO-TECHNO VALLEY | IT·BT·CT 기업이 이웃사촌 

 

사진 지미연 기자
‘한국형 실리콘밸리’가 판교테크노밸리에 조성되고 있다. 넥슨·엔씨소프트 등 국내 유명 IT기업들이 서울을 벗어나 이곳에 사옥을 짓는다. 여기에 700여 개의 기업이 모여 시너지 효과가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판교테크노밸리 전경, 그 중심에 랜드마크로 떠오른 엔씨소프트가 있다.



4월 8일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신분당선을 탔더니 15분만에 판교역에 도착했다. 1번 출구로 나온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3년 전 취재 왔을 때와 크게 달라졌다. 흙먼지 날리며 덤프 트럭이 오가던 거리에 빌딩 숲이 생겼다. 촘촘이 들어선 서울의 빌딩가와 달리 빌딩 샛길이 넓고 녹지가 많다. 한마디로 답답하지 않고 시원스럽다. 1번 출구 맞은편으로 10분가량 걸으면 운중천이 보인다. 이곳의 개나리교를 지나면 판교테크노밸리의 초입을 알리는 빌딩이 있다. 바로 엔씨소프트다.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판교로 이사했다. 아예 사옥을 지었다. 약 1만1570㎡(약 3500평) 대지에 지하 5층, 지상 12층 규모로 세웠다. 땅만 축구장 1개 반 크기다. 건물 외관은 영문 회사명 ‘NCSOFT’ 머리 글자 N의 소문자 ‘n’을 닮았다. 특히 건물 바로 앞에 운중천과 공원이 있어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엔씨소프트는 이 공간을 얻기 위해 네이버, SK C&C 등과 입찰 경쟁을 벌였다. 최적의 입지와 독특한 외관 덕에 엔씨소프트 빌딩이 판교테크노밸리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이곳에선 눈 돌리는 곳마다 국내 유명 IT기업의 간판이 보인다. 길 건너편에 안철수연구소가 있고, 대각선으론 넥슨, NHN엔터테인먼트, 네오위즈게임즈 등이 있다. IT기업 특성상 직원들의 연령대가 낮다. 점심 무렵이면 편한 캐주얼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직장인들이 거리로 쏟아진다. 오히려 정장 입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경기도가 성남시 분당구 판교택지개발지구에 조성한 판교테크노밸리엔 2월 기준 700여 개 기업이 둥지를 틀었다. 근무하는 직원 수는 무려 3만8000명에 이른다. 입주가 마무리되는 2015년까지 1000여 개 업체가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 5만 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클러스터(산업집적지)가 형성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에 입주한 기업의 업종이다. 분야별로 안철수연구소 등 IT업종 331곳이 있고 SK케미칼 등 생명공학기술(BT)업종은 75곳이다. 문화산업기술(CT)업종도 61곳이나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IT기업이 절반이상인 51.8%를 차지하지만 IT, BT, CT 세 업종이 한곳에 모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쾌적한 공간과 인세티브가 장점

판교 입주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넓고 쾌적한 공간을 장점으로 꼽았다. 대표적인 곳이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유명한 카카오다. 2012년 9월 남들보다 빨리 판교로 옮겼다. 판교테크노밸리 중심지인 H스퀘어 빌딩 두 개층을 사용한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수시로 직원을 채용하다 보니 기존 사무실 공간으로는 부족했던 것. 당시 카카오는 220여 명의 직원이 서울 역삼동 C&K 빌딩 3개 층을 임대해 사용했다.

카카오의 이수진 팀장은 “서울에선 직원들이 함께 일할 넓은 공간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 찾은 곳이 판교였다. 지금 사무실 한 층이 3967㎡(1200평)에 이른다. 그는 “그동안 흩어져 일하던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일의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엔씨소프트의 윤진원 실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게임 개발은 집단 창작을 통해 이뤄진다”며 “직원들이 의견을 공유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고 했다. 엔씨소프트 내부를 둘러보면 곳곳에 작은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 다양한 부서와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

직원을 위한 복지 시설도 상당히 공들였다. 직원 만족도가 높은 곳 중 하나가 ‘웃는 땅콩’이라는 이름의 어린이집이다. 200여 명의 유아를 돌볼 수 있는 사내 보육공간으로 여느 사설 어린이집 못지 않은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췄다. 이 밖에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는 직원을 위한 메디컬 센터를 비롯해 스파, 피트니스센터, 체육관 등이 있다.

윤 실장은 경기도의 적극적인 지원도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경기도는 2006년 단일기업 또는 컨소시엄에 ‘일반연구용지(연구소 또는 사옥용)’를 실거래가의 절반 정도에 공급했다. 여기에 재산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 면제 혜택을 줬다. 다만, 준공 후 10년간 매매를 금지하는 전매 제한 규제가 있다. 투자 목적이 아니라 사옥이 필요한 기업에는 매력적인 입지 조건이었다.

판교테크노밸리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도 많다. 7층 높이의 삼성테크윈 판교 R&D센터는 경기도 수원시 기흥, 경남 창원시 등지에 흩어져 있던 연구 부서를 한곳에 모아 만들었다. 맞은편엔 용인에서 옮겨온 LIG넥스윈 R&D센터가 있다. 이곳 역시 분산됐던 내부 역량을 모으기 위해 판교를 택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연구소를 공사 중이다. 이 건물은 8개 층 규모로 약 1500명의 연구설계인력을 수용할 수 있다. 거제 본사의 설계 인력을 비롯해 서울 사무소와 수원의 전기전자사업부분 인력이 합류할 예정이다. 요즘 제너럴일렉트릭(GE), SK C&C등 국내외 기업의 R&D센터가 판교로 집결하는 모습이다.

입주 기업간 협업 늘어

다양한 분야의 기업이 몰리면서 교류가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자동차부품회사 만도가 R&D센터를 다른 기업들에 잇따라 공개했다. 대기업이 직접 나서 연구센터를 개방하긴 쉽지 않다. 만도 측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업 방법을 찾는 기회로 봤다.

판교엔 코스닥 상장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모임인 ‘1조 클럽’이 있다. 노정호 IBK기업은행 판교테크노밸리 지점장과 장준호 인포뱅크 공동대표가 주축이 돼 만들었다. 노 지점장은 “2012년 10월 10곳으로 시작해 현재 KG모빌리언스, 인포뱅크 등 코스닥 상장사 27곳이 참여한다”며 “한 달에 두 번 오찬 모임을 한다”고 했다.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최신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그는 예비상장기업 CEO 모임인 ‘프리1조클럽’도 운영한다. 현재 15곳이 참여한다.

실제 협업 사례도 나오기 시작했다. 생명과학 전문기업인 서린바이오사이언스(이하 서린)는 2011년 코리아바이오파크에 입주했다. 지난해 2월 한국파스퇴르연구소와 유전자 기능 탐색기술 상용화에 협업하기로 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고유의 유전자 기능 탐색 기술을, 서린은 국내 학계 네트워크를 연계해 신약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신기동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판교테크노밸리는 기반 구축 단계를 지나 클러스터 형성기로 집입 중”이라고 했다. “요즘 강남 테헤란밸리의 IT 중소기업은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서울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반면 판교테크노밸리엔 대기업(19.35%)과 중견기업(51.8%)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그만큼 경쟁력이 크다는 얘기죠.”

판교의 최대 장점으로는 접근성을 꼽았다. 특히 테크노밸리가 들어선 삼평동 일대는 교통과 자연, 교육환경 분야에서 입지 조건이 좋다고 덧붙였다.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외곽고속도로가 접해 강남권 접근이 용이하다. 게다가 판교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15분 안에 강남에 도착한다. 신 연구위원은 “상당수 우수 인력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기피하기 마련인데 판교는 경기 지역 안에서도 서울권 진입이 쉽다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신 연구위원은 “판교테크노밸리가 성장하려면 글로벌 수준의 연구 개발과 개방혁신 클러스터’를 목표로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판교는 경기도의 정책적 지원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됐습니다. 조성원가 수준으로 용지를 공급했고, 전체 용지를 기능별로 나눠 설계한 점이 주효했죠. 여기에 IT중견기업간 융복합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교류 공간을 만들고 벤처캐피털과 결합해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201405호 (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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