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ULSAN - 울산 신흥부촌 옥동·신정동 - 억대 연봉 7만 명이 만든 부의 도시 

 

한국 최고의 부자도시 울산은 고액 연봉 노동자, 의사 등 전문직이 소비를 주도한다. 그들은 주택에 투자하기보다 자녀 교육과 여가를 즐기는 데에 지출한다. 생산도시에서 정주형 도시로의 변신은 울산의 숙제다.

▎오전 근무를 끝낸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오후 3시 30분 울산시 북구 현대차 명촌정문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23일 오후 2시 30분쯤 울산 태화강 명촌대교 인근. 강변도로에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줄을 잇는다. 가까이는 북구 명촌동 아파트단지, 멀게는 남구 신정동 고층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현대차 울산공장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3시쯤 명촌정문 앞은 2조 근무(오후 3시 30분~오전 1시 30분) 노동자들의 출근 행렬로 피크를 이룬다. 부품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 한 차선에서,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노동자들이 또 한 차선에서 공장으로 향한다.

출근 행렬이 끝나고 잠시 후 또 다른 진풍경이 벌어진다. 1조 근무(오전 6시 50분~오후 3시 30분)를 마친 노동자들이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선두에 서고 승용차가 뒤를 잇는다. 오토바이 중에는 할리데이비슨, BMW가 심심찮게 눈에 띄고 승용차 또한 제네시스, 그랜저 모델이 상당하다. 평균 연봉 8000만원대의 현대차 울산공장 노동자들의 출퇴근 모습이다.


▎백화점·호텔이 모여 있는 남구 삼산지구 상권은 울산 최대 상권이다(왼쪽). 울산에는 대형 스크린골프장이 즐비하다.
유흥주점 울상, 스크린골프장 희색

1962년 공업센터 지정 당시만 해도 울산은 동해안의 소도시였다. 어업 외엔 태화강 줄기 ‘미나리꽝’(미나리를 심는 논)이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하지만 50여년이 지난 지금 울산은 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중후장대산업이 밀집한 ‘대한민국 제1의 산업도시’로 성장했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SK에너지, 에쓰오일, 한화케미칼, 삼성정밀화학, 금호석유화학 등 글로벌 기업이 이곳에 몰려있다. 울산 인구 118만 명 중 노동자가 40만 명에 달한다.

울산은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지역총소득, 개인소득부분에서 전국 최고의 부자도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지역소득’에 따르면 울산의 1인당 지역내 총생산은 6330만원으로 전국 평균의 2.5배다. 1인당 개인 연소득은 1831만원으로 전국 평균(1477만원)보다 400만원가량 많고 서울보다 높다. 노동자의 평균 연봉도 최고다.

지난 4월 기업정보사이트 재벌닷컴이 1713개 상장사의 평균 연봉을 조사한 결과 울산 소재 26개 기업이 6881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현대중공업(평균임금 7232만원), 삼성정밀화학(8400만원), 경동도시가스(7699만원), 현대미포조선(6900만원), 현대하이스코(6665만원) 등 높은 연봉의 제조기업 본사가 울산에 소재하기 때문이다. 울산시와 울산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울산지역엔 1억원 이상 고액연봉 노동자가 7만 명을 넘는다.

고액 연봉의 노동자들이 만든 소비트렌드는 타 지역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현대차가 지난해 3월 종전의 주야간 맞교대 근무 형태를 주간 2교대로 바꾸면서 울산 상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다. 현재 현대차 3만4000여 명(사내 협력업체 포함)과 세종공업 등 11개 부품협력사를 포함해 모두 4만여 명이 주간 2교대로 근무한다.

같은 날 오후 5시 울산 남구 달동 울산문화예술회관 인근의 한 스크린골프장. 4층 건물 전체가 스크린골프장인 이곳은 96개 타석의 절반가량이 차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홍모(46) 씨는 현대차 생산라인의 노동자다. 그는 “이번 주는 1조 근무라 퇴근 후 오후에 주로 골프연습을 한다”며 “주간 2교대 도입으로 여가시간이 늘면서 라이프스타일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주중엔 이렇게 스크린골프장에서 연습하고 주말엔 울산 인근의 필드에 나간다”고 말했다. 스크린골프장 직원은 “1000여 명의 회원 중 절반 정도는 생산직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울산의 고액연봉 노동자는 골프 외에도 요트, 산악자전거,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고급 레저 활동을 즐기며 여가문화를 이끌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맞은편에 위치한 여천동 태화강 하구에서는 윈드서핑과 요트 등 해양 레저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각 구청에서는 이런 수요에 맞춰 태화강과 해안에 요트계류장, 스킨스쿠버 교육장 등을 조성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홍보팀 박영훈 부장은 “주간 2교대 근무 시행 후 전반적으로 음주문화가 줄었고 대신 가족과 함께하거나 취미 등 자기계발 시간이 늘었다”며 “스킨스쿠버 등 사내 70여 개 동아리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회사에서 마련한 자격증 프로그램이 많은데 최근엔 웃음치료, 도배, 마사지 등 자격증을 딴 후 주말을 이용해 봉사활동에 나서는 직원이 특히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고액 연봉의 노동자들은 지역 상권을 바꿔 놓았다. 울산 북구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의뢰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대차 울산공장 인근의 6개 동 음식점 대부분이 매출 감소세를 나타냈다. 대신 1년 새 당구장은 45개에서 55개로 22%, 스크린골프장은 50개에서 68개로 36% 늘었다. 퇴근 시간이 오후 3시 30분으로 앞당겨지면서 취미와 여가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울산 최대 상권은 남구 삼산지구 상권이다. 현대백화점 정문에서 롯데백화점 정문까지 이어진 삼산로는 주점 등 음식점, 각 금융업체, 병원이 즐비하다. 특히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삼산동 1526-12번지 현대백화점 울산점 옆 상가건물은 지난해 3.3㎡(1평)당 공시지가 2900만원으로 울산 최고 땅값을 기록했다.

이곳은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롯데영프라자에 이어 지난해 지역 최대 규모의 복합쇼핑몰 ‘업스퀘어’가 오픈하면서 대형 쇼핑몰의 각축장이 됐다. 백화점을 찾는 40∼50대 외에도 젊은 층이 모이면서 삼산동 상권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23일 저녁에도 삼산지구 일대는 현대차, 현대중공업, SK에너지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울산 남구 공업탑로터리에서 바라본 옥동·신정동 일대. ‘울산의 대치동’으로 불린다.



옥동 학원가 앞엔 수입차 빽빽

“늘 이 시간이면 학원 건물 앞에 저렇게 빽빽하게 차가 들어서요. 아이들 학원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음 학원으로 옮기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죠.” 남구 옥동 문수로아이파크1차아파트 입구 한 학원빌딩 앞. 1층 공인중개소의 오모 사장은 “이곳 옥동은 ‘울산의 대치동’으로 불린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아파트단지 앞 건물은 각종 학원 간판으로 어지러웠다. 건물 앞은 30여 대의 승용차가 들어서 차 댈 공간이 없을 정도. 대부분 BMW, 아우디, 벤츠, 폴크스바겐 등 수입차 브랜드였다.

남구 옥동과 신정동은 울산 최대 부촌으로 꼽힌다. 공업탑로터리에서 보면 오르막을 따라 도로 양쪽으로 롯데캐슬킹덤과 아이파크 1·2차아파트, 코오롱파크폴리스 주상복합건물과 월드메르디앙아파트가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명문학군에다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울산 최고의 주거지라는 평가다.

도보거리에 롯데마트가 있고 하이마트, 홈플러스, 뉴코아아울렛,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등 대형 쇼핑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또 울산대공원, 울산박물관, 울산문화예술회관 등 문화시설까지 풍부한 생활편의시설을 갖췄다. 총 364만㎡(약 110만 평)의 울산대공원은 대형 광장, 동물원, 레포츠시설 등을 갖춘 울산 최대 공원으로 SK그룹이 1000억원을 투자해 조성했다.

공인중개소 오 사장에 따르면 이곳에는 주로 SK에너지 등 화학단지 노동자와 법원 직원, 의사, 교육 공무원 등 전문직이 거주한다. 급여 수준이 높은 사람이 모인다는 말이다. 넓은 평수에는 대기업 1·2차 협력사의 오너나 CEO, 병의원 원장들이 산다. 오 사장은 “최근 울산에서도 의사들이 신흥 부유층으로 크게 늘고 있다”며 “지역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기본적인 치료뿐 아니라 성형이나 안티에이징 등 미용에 대한 지출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메리트는 교육 환경이다. 남구의 교육열은 서울 대치동 못지않다. 지금은 고교 평준화가 됐지만 옛 명성을 유지한 학성고, 울산여고가 있고 유명 입시학원들이 대부분 이곳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오 사장은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1인당 과외비가 100만원을 넘어설 정도였다”며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입시·보습·예체능 등 학원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집값 역시 ‘교육 프리미엄’이 반영돼 울산 최고 수준이다. 특히 문수로아이파크1차아파트(1176세대)는 2003년 분양 당시 평당(3.3㎡) 1000만원에 달해 울산 아파트 가격을 한 단계 올려놓은 곳이다. 단지 바로 옆 문수로아이파크2차아파트(1085세대)도 한창 입주 중이어서 아이파크 대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오 사장은 “옥동, 신정동 주민은 지역 내에서 주거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오래되면 지역 내 신축 아파트로 이동한다. 그리고 지인을 불러 모으면서 자연스레 정보를 교환하고 문화를 공유하며 이너서클을 형성한다. 그리고 자녀 교육이 끝나면 시내를 벗어나 전원주택단지로 옮겨간다.”

하지만 옥동의 외관은 해운대의 마린시티나 인천의 송도에 비하면 ‘동네 골목 수준’이다. 여기엔 주택에 대한 울산 시민의 인식 차이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신정동의 아이파트공인중개소 황모 사장은 “울산에선 초고층주상복합 건물이 대부분 실패했다”며 “울산 사람들은 집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했다. “큰 수익을 내기 어려운 탓도 있지만 대부분 소득이 높고 젊다 보니 수익보다는 삶을 즐기는 데 관심이 있다. 초고층에 살며 월 100만원씩 유지비를 내는 것보다 차를 바꾸고, 골프 등 여가생활을 즐기는 데 주력한다.”

향후 주목받을 지역은 우정혁신도시다. 중구 우정동과 성안동 사이 298만㎡(약 90만 평)에 계획인구 2만233명 규모로 들어서는 우정혁신도시는 부산 대현혁신도시와 함께 기존 시가지와 연계 개발되는 도심형 혁신도시다. 이곳에는 근로복지공단, 한국석유공사, 에너지관리공단 등 서울·수도권 소재 10개 공공기관이 입주한다.

배후에는 6048가구의 대단위 아파트단지와 1235가구의 단독주택 단지를 비롯해 상업 업무시설, 구민문화센터, 육아종합지원센터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신세계백화점이 2018년 우정혁신도시 내 개점 계획을 밝히자 아파트 분양가에 웃돈이 붙기 시작했다.

소비의 역외 유출은 울산이 해결해야할 큰 숙제다. 울산 시민은 부산에서 쇼핑하고, 서울지역 병원을 이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은행 울산본부가 지난해 울산 시민의 소비 패턴을 조사한 보고서 ‘울산지역 소득의 역외 유출 현황 및 정책과제’에 따르면 울산 거주자의 카드 사용액은 전국 카드 사용액의 1.9%인 반면 전국 카드 사용액 중 울산지역 사용 비중은 1.3%에 불과해 소비의 역외 유출을 보여준다.

백화점에서의 역외소비 비중이 24.3%로 부산(11.9%), 대구(7.5%)보다 높았다. 역외소비 지역 비율은 부산이 48.4%로 울산 사람들은 부산 백화점을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0년 KTX 울산역 개통은 울산의 쇼핑 인구와 의료 인구 유출을 가속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소비 역외 유출 막고 정주도시로 키워야

한국은행은 직장 때문에 울산에 사는 1인 가구 소득이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가족의 생활비로 지출되는 비중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울산은 30~50대 남성 1인 가구 비중이 7대 광역시 중 가장 높고, 이 가운데 기혼자 비중도 22.4%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울산은 쇼핑, 유통, 교육 등 인프라가 소득 수준에 비해 열악한 편”이라며 “기업체 본사 이전과 정주 여건 개선 등 울산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울산에서 소비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답은 산업과 환경· 문화·관광이 조화를 이룬 정주형 도시로 거듭나는 것이다.

강영훈 울산발전연구원 경제산업연구실장은 “울산지역에 집적화된 3대 주력산업은 안정적인 고용과 생산, 수출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지만 울산지역의 내생적 발전과의 연계성은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 정책에 의해 개발되면서 지역사회의 주도권은 사라지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성장기반도 형성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비약적인 산업발전에 비해 지역 내 문화, 예술, 의료, 복지 등 사회적 여건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선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서비스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울산의 지역총생산 대비 서비스 산업의 비중은 2010년 23.5%로, 전국 평균(58.7%)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제조업 편중도가 더 심화되는 형편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 울산상공회의소 등 지역 경제단체는 ‘울산지역 서비스산업 발전전략’ ‘국제금융도시 구축방안’ 등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서비스산업이 수출 정체기에 접어든 울산 경제에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201406호 (2014.05.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