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1석 4조 미술품 계 모임 ‘호요미’ 

호요미는 작품 구매라는 실전을 통해 미술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젊은미술작가들을 지원한다. 이 모임을 직접 찾아가봤다. 

글 함승민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호요미 회원들이 갤러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박은관 시몬느 회장, 최정표 건국대 교수, 김낙회 전 제일기획 사장, 김순응 김순응아트컴퍼니 대표, 김신배 SK 부회장, 조태훈 건국대 교수,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
2014년 12월 8일 저녁,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두가헌 갤러리에 들어섰다. 흥미로운 동호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길이다. 이름은 ‘호요미(好樂美)’.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계’ 형식으로 매달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독특한 형식의 미술 동호회다.

예정된 모임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갤러리 1층에는 단 한 명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순응아트컴퍼니의 김순응 대표다. 서울옥션과 K옥션 대표를 거친 그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단 브랜드로 젊고 유망한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그는 갤러리에 들어선 기자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취재에 대해 모르고 있는 듯했다. 자초지정을 설명하니 “포브스코리아와는 인연이 많다”며 반갑게 맞았다.

김 대표는 2013년 마지막 모임의 ‘호스트’이기도 했다. 호요미 회원들은 매달 돌아가며 호스트를 맡는다. 호스트는 그달 모임 장소를 섭외하고 갤러리스트를 초청한다. 갤러리스트는 화랑에서 전시기획과 미술관련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초청된 갤러리스트는 적당한 작품을 선정해 모임 장소에 갖고 와 소개한다. 간혹 일반 음식점에서 진행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소개할 수 있는 작품 수가 제한되기 때문에 보통 전시가 용이한 갤러리 내에서 식사를 겸한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다른 회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호요미는 CEO, 교수, 변호사 등 각계각층의 인사 13명으로 이뤄져 있다. 미술을 매개로 한 모임이지만 미술계 관계자는 김 대표가 유일하다. 이날 모임에는 김낙회 전 제일기획 사장, 김순응 대표, 김신배 SK 부회장, 박은관 시몬느 회장,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 임영철 법무법인 세종대표변호사, 조태훈 건국대학 경영대 명예교수, 지동현 삼화모터스 사장, 최정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홍준형 한국학술단체총엽합회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등 10명이 참석했다.

인사를 나눈 회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갤러리를 한 바퀴 돌았다. 벽에는 이미 이날 소개될 10여 점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모임 때마다 적게는 네댓 점, 많게는 스무 점 정도의 작품이 소개된다. 작품을 둘러보며 나누는 대화는 심각하지 않았다. “이 작가가 요새 뜨는 작가라죠?” “이건 전에 봤던 거랑 느낌이 비슷하네요”정도의 가벼운 내용이다. 김순응 대표가 “그림을 살 땐 너무 취향에 매몰되지 말고 객관적으로 좋은 작품을 사야 한다”며 노하우를 귀띔하기도 했다.


▎2014년 마지막 모임에서 호요미 회원들은 3점의 작품을 구입했다. (위부터) 정주영 作 ‘북악산 No.18’(2012), 김덕기 作 ‘집과 가족’(2009), 김성윤 作 ‘좀비를 위한 연구’(2014).
200만~300만원, 30대 작가 작품 위주로

예정된 인원이 모두 모이자 하나 둘 자리에 앉았다. 본격적으로 갤러리스트의 설명을 들을 차례였다. 와인 한 잔과 함께 작가와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회원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때로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대부분 200만~300만원대의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의 작품이 소개됐다. 이는 ‘300만원 이하, 30대 작가 작품 위주로 취급한다’는 호요미의 가이드 라인 때문이다. 이 모임을 주도한 최정표 교수는 “사치를 피하고 유망한 작가의 작품을 싸게 사면서 미술계의 트렌드도 짚을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한 것”라고 설명했다.

이 모임이 시작된 건 2007년이다. 당시에는 그림 공부를 위한 모임이었다. 주로 미술평론가 등 전문가의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3년 여가 지난 어느 날 색다른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론으로만 하지 말고 ‘필드’에서 직접 그림을 구입하면서 배워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어려운 국내 미술 시장에서 고생하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사서 도움을 주자는 취지가 더해졌다. 일종의 ‘메세나’ 활동인 셈이다. ‘300만원 이하, 30대 작가’라는 규칙도 이 때문에 만들어졌다. 이날 모임에 초청된 손유정 갤러리현대 아트디렉터는 “지금처럼 어려운 때 작품이 팔린다는 것만으로도 작가나 갤러리에게 큰 도움이 되는 모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뜻이 맞는 13명의 회원이 모여 ‘계’ 형식으로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곗돈은 월 20만원. 모인 260만원 중 60만원은 식사비와 기타 부대 비용으로 쓰고, 200만원으로 그 달의 호스트에게 준다. 호스트는 이 돈으로 그날 소개된 그림 중 맘에 드는 작품을 산다. 단 200만월을 초과한 그림 값은 호스트가 개인부담한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돌면 회원들은 적어도 1년에 한 작품씩을 갖게 된다. 호스트가 아닐 때도 소개된 작품을 자유롭게 살 수 있기 때문에 회원들은 보통 한 해에 3~5점 정도의 작품을 구매한다.

한 해 1인당 3~5개 작품 구매

갤러리스트의 설명이 끝난 후 저녁식사가 이어졌다. 대화는 미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인 만큼 대화의 주제도 다양했다. 사회적 현안부터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조태훈 교수의 질문에 박은관 회장은 중국과 동남아의 노동시장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시몬느는 현재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지에서 공장을 운영중이다. 박 회장은 “직접적인 이해관계 없는 이들이 미술이라는 매개체만으로 모였기 때문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멋진 그림을 보고, 또 살 수 있어 바쁜 와중에도 호요미에는 매달 참석한다”고 말했다.

저녁식사가 끝나갈 때쯤 회원들은 메모지를 나눠 가졌다. 각자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르는 순간이다. 소개된 그림 중 각자 구매 의사가 있는 작품을 메모지에 적어 제출했다. 간혹 한 작품에 여러 사람이 몰리면 제비뽑기로 우선권을 정한다. 그러나 이날은 구매의사가 겹치는 작품이 없었다.

2014년 마지막 호요미 모임에서는 평소보다 적은 세 점의 그림이 팔렸다. 김순응 대표는 “오늘 그림이 전반적으로 회원들 취향보다 약간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이 많았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호스트인 김 대표가 그림을 사지 않아서 곗돈은 작품을 구입한 다른 회원에게 먼저 주고 그 회원의 호스트 차례 때 김 대표가 곗돈을 받기로 했다. 다음 호스트는 김신배 부회장이 맡기로 하면서 이날 모임은 정리됐다.

회원들이 서로 연말 인사를 하며 돌아갈 때쯤, 최정표 교수가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많은 직장에서 호요미 같은 모임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문화적인 소양도 기르고, 더불어 우리나라 미술 시장도 활성화시키면 좋지 않겠습니까. 즐기는 마음으로 안목을 기르고 젊은 작가의 작품을 사다 보면 20년 뒤에는 돈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동안 걸어놓고 감상도 할 수 있으니 1석4조가 되겠네요.”

- 글 함승민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501호 (2014.1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