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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 쏠리드 대표 - 1조원 매출 벤처기업 계속 나와야 인재 몰려들어 

4명으로 시작해 한해 2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벤처기업가의 롤 모델인 정준 쏠리드 대표. 설립 20주년을 맞은 벤처기업협회 회장까지 맡아 성공 노하우를 함께 나누고 있다. 

최영진 포브스 차장 사진 전민규 기자

▎정준 쏠리드 대표는 해외 시장의 매출 비중을 70%~80%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언론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있나?”라는 질문부터 나왔다. 벤처로 시작해 한해 2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키워낸 사업가. 흔히 자본력이 없는 벤처는 제조업에 도전하기 힘들다는 속설을 깨고 과감히 통신장비 제조업에 도전했다. 이젠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이 기업의 성공 스토리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는 “나에게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별로 없다. 인터뷰를 해도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며 웃기만 했다. 2014년부터 국가과학 기술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할 만큼 통신장비 전문가로 인정받는 정준(53) 쏠리드 대표 얘기다.

그는 지난 2월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벤처기업협회 11대 회장을 맡아 벤처기업의 활성화를 이뤄야 하는 역할까지 맡게 됐다. 벤처 창업가이자 벤처기업협회 회장으로서 그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왜 이런 말을 할까. 경기도 판교에 있는 쏠리드 본사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198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단에 서서 후학을 가르치는 꿈을 꿨다. “공부를 할 때 창업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연구소나 대학 강단에 설 것이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실제로 강단에 설 기회도 있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그 꿈을 포기했다. 학자 대신 창업가로 나섰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열풍에 자극받아

창업에 대한 매력은 유학시절 피부로 느꼈다. 스탠포드 대학교는 실리콘밸리 부근에 있다. 그가 유학을 했던 시기에도 실리콘밸리는 창업의 본거지였다. “주변을 보면 석·박사 학위자들이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박사학위를 따고도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자주 보면서 창업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을 가르쳤던 교수들을 보면서 “30~40년 동안 지치지 않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열정이 없으면 교수를 해서는 안되겠다고 느꼈다. 유학 시절 교수의 꿈을 포기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일본 히타치중앙연구소를 거쳐 KT 연구개발본부 선임연구원으로 경력을 쌓아갔다. 창업에 대한 꿈은 1998년 이뤘다. “당시 KT에는 직원이 창업을 하면 초기자본금의 일부를 투자해주는 창업지원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도 그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창업했다”고 설명했다. 창업 멤버는 자신을 포함해 4명뿐이었다. 엔지니어, 창투사 근무 경력자, 그리고 산학협력 차원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정 대표와 친분이 있던 대학교수도 합류했다. 창업 아이템은 이동통신망에 사용되는 무선통신중계기 제조였다. 쏠리드(Solid)라는 이름은 ‘건실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자본력이 약한 벤처가 제조업에 뛰어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믿었다. “제조업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던, 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실행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공부와 연구만 했던 이가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을까. 정 대표는 “그때는 정말 무대책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4명의 창업 멤버 중 혼자만 미혼자였고, 나머지는 기혼자였다. “당시 창업 멤버로 참여했던 이들은 정말 어려운 결단을 한 거다. 그런데 나는 미혼이라서 큰 부담이 없었다”고 웃었다. 무엇보다 정 대표는 4명의 창업멤버가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기관이나 기업의 용역 프로젝트를 맡으면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건비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창업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던 것.

기술력을 기반으로 창업했기에, 그 효과는 바로 나왔다. 7개월 만에 매출이 생기기 시작했다. 쏠리드의 제품이 KTF에 공급됐다. 창업 후 1년이 지나면서 임직원도 20여 명으로 늘었다. 주변에서 쏠리드의 매출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별다른 목표가 없었는데, 주위의 관심 때문에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정 대표는 회고했다. “외부의 기대가 높아지면서 내부 직원들도 회사 성장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쏠리드는 KT와 SK텔레콤에 무선통신중계기를 동시에 납품하는 유일한 기업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5년 7월 코스닥에 상장됐다. 성장세도 가팔랐다. 2006년에는 매출 1200억원을 넘어 ‘벤처 천억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중계기 시장 상황이 나빠져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들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는 “해외 시장이 더 크고 기회가 많기 때문”이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정 대표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두드렸다. 2011년에는 미국 스프린트사와 버라이즌의 공식 벤더로 등록됐다. 2012년 뉴욕 지하철 277개 전 구간에 DAS(대형 건물이나 지하철 등에 설치되어 무선통신 등을 원활하게 해주는 장비) 2000만 달러 규모의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를 기반으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듀크대 등 미국 주요 시설에 DAS 납품사로 선정됐다. 쏠리드는 미국 중계기 시장에서 4위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현재 해외 매출 비중은 30~40% 정도. “장기적으로 70~80% 정도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정 대표는 강조했다. 올해 초 쏠리드는 멕시코와 브라질에 DAS 장비 공급을 시작했고, 하반기에는 러시아, 불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수출할 예정이다. 2013년 12월 쏠리드는 누적매출 1조원을 달성했고, 2014년 처음으로 매출액 2000억원을 넘어섰다.

아이디어 얻기 위해 회사 내 논문 제도 운영


정 대표는 쏠리드의 성장을 ‘능력 있는 임직원’의 공으로 돌렸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 가장 신경을 쓰는 것도 인력 선발이다. “초창기부터 규모에 비해 실력 있는 인력을 많이 뽑았다. 대다수 회사에 남아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쏠리드의 전체 인원은 250여 명. 사원번호는 530번 대다. 17년 된 기업임에도 이직률이 상당히 낮은 셈이다. ‘회사 성장과 개인 발전의 조화’라는 인사철학을 가지고 운영했기 때문이란다.

체계화된 직원 교육은 쏠리드의 자랑이다. 2006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독서 교육이 대표적이다. 임직원들은 1년에 4회, 분기별로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한다. 독후감은 사내 인트라넷에 게재되어 모든 임직원이 읽어볼 수 있다. 도서를 구입하거나 학원에 등록할 수 있도록 매월 자기개발비를 지급하고 있다. 13개 언어 300개 언어 교육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온라인이나 전화로 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 과장, 차장, 부장에 오르면 2년 마다 주제를 정해 논문을 작성해야만 한다. 엔지니어부터 관리직까지 예외없이 적용된다. “회사 성장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논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승진을 하려면 논문을 꼭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분기별로 특강이 진행되고, 직급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학자를 꿈꿨던 내가 창업하면서 가장 부담을 느끼는 것은 직원들이다. 직원을 어떻게 하면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다. 직원이 발전하면 회사도 성장한다.”

쏠리드는 기술력을 인정받는 중견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많다. 능력있는 이들이 몰리는 이유다. 벤처기업에 좋은 인력이 모이기 위해서 벤처기업에서 성공 롤 모델이 계속 나와야 한다는 게 정 대표의 진단이다. 성공 모델의 기준은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다음카카오와 네이버의 뒤를 잊는 성공 벤처 기업이 계속 나오면 한국 경제의 체질도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대기업이 아닌 벤처로 찾아오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이다. 정 대표는 “미국은 4%의 벤처기업이 전체 일자리의 60%를 책임지고, 영국은 6%의 벤처기업이 54%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벤처기업 육성은 선진국들이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벤처 인증을 받은 기업들의 매출 총합은 200조원이 넘는다. 벤처 기업평균 고용인원은 25명, 총 69만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고용창출 면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 정 대표는 “모든 사람이 창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안정적인 직업만 선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벤처가 리스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도해 볼만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2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벤처기업협회의 수장으로서 창업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벤처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도움을 주는 것과, 우수 인력을 벤처기업 쪽으로 유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12월에 협회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를 통해 향후 20년의 목표를 새롭게 할 것이다.” 그의 다짐이다.

-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201507호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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