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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양성모 금강제화 기정 

‘손’으로 만든 편안함 대한민국의 발을 사로잡다 

유부혁 포브스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금강제화 브랜드의 경쟁력은 ‘사람’이다. 금강제화와 함께 성장해 ‘구두 장인’이 된 이들이 이젠 금강제화의 가장 큰 자산이 됐다. 금강제화가 만드는 수제화의 핵심은 재료만큼이나 ‘누구의 손길’을 거쳤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많이 찾고 있는 금강제화 최고급 수제화 라인 헤리티지의 양성모 기정(생산직 직급으로 장인을 의미)을 만났다.

양성모 기정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군화를 신고 축구를 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죠?”

기자 “딱딱한 군화를 신고 어떻게요?”

양성모 기정 “2년 동안 훈련 받다 보면 자신의 발에 맞춘 가장 편한 구두가 되죠”

양성모 기정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테이블에 앉아 나눈 이야기 일부다. 양 기정은 “우리 대화에서 ‘가장 편한 신발’의 비밀은 다 나왔네요”라고 말했다. 양성모 기정은 1991년 금강제화에 입사 해 라스트 개발 기능사로 근무하다 2007년부턴 헤리티지 비스포크 라인에 근무하고 있다. 1979년 일을 처음 시작했으니 36년 째 구두를 만들고 있다.

구두를 통해 배우는 지혜


양성모 기정은 금강제화의 고급 수제화 라인 ‘헤리티지’의 라스트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구두 제작에서 라스트(족형)는 시작과 끝이라 불릴 만큼 중요하다. 쉽게 말해 발에 최적화 된 구두 모양을 잡아주는 역할이다. 디자인을 살리면서 발 모양에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쉬운 작업도 아니다. 구두를 만드는 그의 손을 봤다. 세월의 흔적, 평생을 가죽과 나무 그리고 본드와 사투한 흔적이 손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역시 “구두의 핵심은 라스트이고 라스트의 차이는 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양성모 기정은 “친구 덕분에 구두를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구두를 하나의 인격으로 생각하는 그의 말 속에서 구두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졌다. 그는 구두와의 인연을 계속 이야기했다.

“재밌겠더라고요. 그래서 일을 시작했어요. 과거나 지금이나 다들 시작은 아주 단순하잖아요? 그 때가 1979년이었습니다. 19살이었죠. 처음엔 구두를 닦으며 구두 가죽을 공부했어요. 신발 모양도 유심히 살폈죠. 구두를 닦고나니 본드칠을 시키더군요. 다음엔 밑창을 깎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레스모아(금강제화의 중저가 구두 브랜드) 창설멤버로 들어갔죠. 5년이 지나야 숙련공이 될 수 있었지만 저는 손기술 덕분에 2년 만에 됐어요.” 뿌듯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졌다.

그는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는 “저는 구두를 통해 겸손을 배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저가 아무리 숙련됐다고 해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하고는 뒤를 둘러봤다. 그의 뒤에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구두를 디자인하고 밑창을 붙이는 숙련된 기정들이 보였다. “이들의 손이 모여 구두가 된 겁니다.” 그의 말이 시처럼 들렸다.

양정모 기정이 앉은 테이블에는 몇 개의 라스트와 함께 구두 제작에 쓰일 것 같은 가죽이 놓여있었다. 의아했다. 가죽 색상이 우리가 대개 알고 있는 갈색이나 검정색이 아니라 흰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구두가죽은 3~4번의 약품처리를 거쳐야 합니다. 원하는 색상이 나올 때까지요. 여성들이 화장하듯 가죽에 겹겹이 색칠을 하는 거죠.”

일부 명품 제화 브랜드만 구두 색상을 바꿀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금강제화 헤리티지 역시 색상을 바꿀 수 있었다.

양 기정에 따르면 수제화 1족을 만드는 데는 보통 일주일이 걸린다. 라스트, 패턴, 재단, 재봉, 저브(바닥창) 에 각 하루가 걸리고 다시 구두 틀을 성형하고 고정시키는 작업까지 하면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 기정이 앞서 이야기했던 군화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손이 만들어 낸 편안함이 진정 빛을 발하려면 시간도 필요하다는 거죠. 밑창의 코르크가 자신의 발에 맞게 완벽한 ‘자기화’가 되는데 필요한 시간이요. 그 시간차를 줄여주는 게 기술이기도 하고요.”

대통령의 구두

알려진 대로 금강제화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구두를 만든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인데다 다양한 토종 제화기업들의 제품을 즐겨 신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전 대통령들은 이 회사 제품을 즐겨 신는 걸로 알려졌다. 양 기정은 이명박 전대통령과 노무현 전대통령의 발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양 기정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65사이즈를 신는데 디자인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8개의 디자인을 고르셨는데 모두 특색이 있었습니다. 세련된 멋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편안한 신발을 원하셨어요. 발 볼도 조금 넓으셨는데 대통령의 실제 발 사이즈보다 널찍한 신발을 원하셔서 그렇게 제작해드렸습니다. 디자인은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양 기정이 강조했던 발 폭을 넓혀 주는 서비스는 금강제화 매장 어디서든 가능하다. 양 기정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 아들의 첫 구두도 제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뿌듯하고 자랑스럽더군요.”

양 기정은 구두에 대한 소소한 상식 몇 가지를 들려줬다. “우선 구두가 가볍다고 다 좋은 건 아니에요. 가볍다고 해서 관절에 무리가 안가는 것도 아니고요. 걷는 습관이 더 중요하죠. 다들 구두 수명을 많이 물어보시는데 10년 이상 충분히 신을 수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해요. 가죽은 피부잖아요. 신고 나면 크림을 발라주세요. 그리고 신문지를 말아 구두 안에 밀어 넣어 두면 모양도 변하지 않고 냄새도 잡힐뿐더러 습기 조절도 됩니다.”

양 기정이 라스트 모형을 만지작 거리며 말을 이었다. 금강제화는 라스트가 1400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구두 패션만 변하는 게 아니라 발도 변합니다. 계속 연구해야 하죠. 발 사이즈만 하더라도 과거 10년 전과 비교해 250mm에서 260mm로 커졌어요. 볼도 5mm이상 넓어졌죠.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우선 체형이 커진 것도 원인이 있을 겁니다.”

금강제화 헤리티지 비스포크팀의 현안은 고객이나 기술이 아니다. 사람이다. “결국 편안함을 만들어 내는 손. 그 손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요즘엔 잘 안 하려고 합니다.” 3D 직종이라는 인식이 강해 젊은이들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데 문제 없는 직업이고 꽤 안정적입니다. 근무환경도 쾌적하고요.” 금강제화 부평공장은 작업장이나 사무실 모두 쾌적했다. 인터뷰 중에 공장과 사무실 전체에 벨소리가 울렸는데 ‘휴식시간 종소리’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둘러본 작업장 역시 가죽을 깎고 본드칠을 하고 있었지만 먼지가 날리거나 냄새가 나지 않도록 상당히 공들여 놓은 모습이었다. 양 기정은 “배우고 습득하는데 최하 5년 정도 걸립니다. 그 시간을 버티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아요.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진득함만 가졌다면 충분히 전망이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젊은 층에 헤리티지 인기


국내 제화업계는 2000년 초반부터 해외 유명 브랜드의 인기 그리고 소비 패턴, 구매 패턴 변화로 위기를 맞았다. 금강제화는 살아남았고 토종 제화기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금강제화가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금강제화의 홍보수단은 서울과 지방의 주요상권에 위치한 대형 매장이었다. 덕분에 정장화가 한창 유행인 시절 금강제화는 늘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후 상품권이 유행했다. 지명도와 신뢰도를 갖춘 스타나 유명인이 ‘금강제화 상품권’을 홍보했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금강제화 상품권은 명절이나 졸업, 입학식 선물로 각광받았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다른 제화업체 역시 같은 전략으로 성장했다.

불법유통과 할인판매, 잦은 트랜드 변화에 따른 재고관리의 어려움 등 상품권이 점차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던 구두 업체들에겐 도리어 악영향을 끼쳤고 경영악화의 길을 걷게 된다. 게다가 다양한 패션이 유행을 하면서 구두 수요가 줄어들고 중소 제화업체들의 난립, 명품 구두업체 국내 진출 등으로 금강제화를 포함한 국내 제화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기성화로 성장했고 여전히 기성화 판매가 회사 매출 비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금강제화는 ‘고급 수제화’로 눈을 돌렸다. 브랜딩 때문이다. 업계에서 조차 “금강제화 제품이 명품 브랜드 제품에 비해 모자란 건 브랜드 뿐이다”라고 말할 만큼 금강제화는 품질력에선 경쟁력을 갖췄다. ‘금강제화’ 브랜드는 해외 명품 브랜드에 비해 상당히 열악했다. 2005년 발표된 우리나라 구두산업을 분석한 보고서에서도 가장 취약한 점을 브랜드 파워로 꼽고 있다. 시장의 양극화, 다양화 속에서 금강제화는 기존의 브랜드는 그대로 두고 헤리티지 라인을 새로 만들었다. 양 기정도 헤리티지 라인을 만들 당시 합류했다. 금강제화는 기계만큼 아니 그 이상 양 기정과 같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고 이것이 경쟁력임을 인정한 것이다. 제화시장이 어렵다고 하지만 최근엔 젊은 층도 수제화를 즐겨 찾을 만큼 금강제화 헤리티지는 인기다.

- 글 유부혁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511호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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