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전경일의 경영리더십-폴크스바겐 사태로 본 패러다임 전환 

기후변화 시대의 주도권을 잡아라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기후변화는 새로운 산업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폴크스바겐 사태도 미국이 주도하는 전기차 산업과 무관하지 않다. 이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많은 사람이 경제 현상의 속살을 살피기보단 겉에 치중한다. 그러다 보니 본질은 보지 못하고 현상만 훑는다. 최근 벌어진 폴크스바겐 연비 조작 사건을 보자. 배출가스 저감장치(EGR) 눈속임으로 2010년 일본 토요타 자동차의 리콜 사태 이후 최대 자동차 업계 이슈가 된 폴크스바겐은 알다시피 유럽 디젤 차량의 대표주자다. 폴크스바겐·아우디·스코다·피아트·람보르기니·벤틀리·부가티 등 12개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자동차 판매 1위 회사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폴크스바겐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소송전이 벌어지고 1년쯤 지나면 토요타가 가속 페달을 교체해 주었던 것처럼 폴크스바겐도 문제가 된 차량을 수리하는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차량을 수리하는 데에만 26조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금전적 손실보다 더 큰 것은 토요타 리콜 사태 때처럼 고객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당시 토요타는 차량 결함 문제를 은폐함으로써 고객의 신뢰를 잃었다. 폴크스바겐도 유사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배출가스 눈속임이 메르세데스-벤츠·BMW 등으로 확대되면 독일 자동차 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고, 타 유럽 국가로까지 문제가 번질 여지마저 있다.

폴크스바겐 사태에 드러난 미국식 질서

시각을 달리 해보자. 왜 이 사태가 지금에서야 터진 걸까? 미국을 비롯한 자동차 선진국의 경쟁사들이 오랫동안 까마득하게 몰랐던 것일까? 지상 최대의 장치 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 업계가 경쟁사 제품의 장·단점을 모르거나 무관심한 분야여서일까? 아니다. 이번 폴크스바겐 사태는 석유자원을 쓰는 차량과 새로운 기술, 즉 전기차로의 일대 회전을 예고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 지구가 이산화탄소로 인해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제에 대놓고 반대할 국가나 기업은 없다. 이런 현실에서 1997년에 만들어진 ‘교토의정서’가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선진국이 배출 규제권을 주도하게 된다. 국제 정치와 경제가 따로 움직이지 않음을 보여준 셈이다.

이 시기 미국은 무엇을 했을까? UN까지 움직이며 지구 온난화 문제에 열을 올리는 한편 차세대 차량인 전기차 관련 특허 등 주요 아젠다(의제)를 선점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로 방향 전환한 새로운 미국식 질서에 여전히 미온적인 데다 디젤 기관이라는 자신들의 강점을 계속 유지하려 하자, 폴크스바겐 사태가 터졌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으로선 막대한 자금이 투자된 전기차 보급 속도를 늦추게 한 유럽 자동차 업계에 강한 메시지 전달이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이 분석은 타당성이 있을까?

최근 폴크스바겐 사태를 전후로 한 일련의 상황을 보자. 전 세계 사람들이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알래스카를 방문해 곰이 먹다 남긴 연어를 먹는 장면을 지켜본 게 지난 9월 8일이었다. 이어서 미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조차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역설하고, 미 대통령과 입을 맞춘 게 9월 22일이다. 같은 날 독일 정부는 부랴부랴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의혹을 받는 폴크스바겐의 모든 디젤 차량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지시한다. 이때부터 세계 뉴스의 중심엔 폴크스바겐이 서게 된다. 3일 뒤인 9월 25일 오바마 미 대통령은 다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중국도 탄소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할 것임을 발표한다. 이번에 미·중 정상 회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미국이 주도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중국을 초대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왜 전기차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기후변화 시대의 주도권을 잡는 여하에 따라 차세대 1000년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을 움켜쥘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디젤차에서 전기차로 넘어가도록 함으로써 세계 자동차 업계 판도를 다시 짜고, 전기차 선점 효과를 발판삼아 무인차 시대를 열려는 것이다. 앞으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보험 업계는 보험요율 등 자동차 보험사업의 구조를 통째로 바꾼다. 무인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미국의 회사들은 고객의 운전 방식, 운행 정보, 습관 등 모든 데이터를 독점하게 된다. 대중교통 업계도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 대형 할인점들은 고객의 이동 정보를 구매해 고객이 오기 전 생필품을 준비해 두거나 특별 할인 행사를 이들에게 맞추게 될 것이다. 세계의 비즈니스와 사업구조가 지금과는 현격히 달라지는 것이다. 전기차는 단순히 자동차 업계의 변화만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실익에 기반을 둬 미국은 디젤차 퇴출을 위해 총력전을 펴는 것일 수도 있다.

산업적 희생양 되지 않으려면 대비해야

2010년 토요타 리콜 사태 때와 같이 이번 사태의 시발점도 미국이다. 당시 미국 내 미국산 자동차의 시점점유율이 1% 내려갈 때마다 한국 자동차의 점유율은 0.24% 올라갔다. 이번엔 어떨까? 단기적으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차가 표적이 되기엔 아직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다. 정작 한국의 자동차업계가 대비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전기차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업계가 산업적인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혁신적 사고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다수 기술혁신은 경영 내부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때 나타난다. 지금은 국제 정치·경제의 판도 아래 ‘혁신 요구’가 나타나고 있다. 모든 사물과 사건 또는 현상에는 모종의 변화가 내재해 있다. 대상별 전후 관계의 득실관계를 따져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마련이다. 마치 일본 속담에 ‘바람이 불면 나무통 장수가 돈을 번다’는 말처럼 ‘원인추적형’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이것이 세계 경제와 경쟁력을 전망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그 진가를 알아보는 게 통찰의 힘이다. 다들 보는 것 같으나 못 보고 지나치는 것, 겉만 봤지 속은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남다른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물의 속살을 보는 눈만이 세상을 꿰뚫는다는 얘기다. 자동차 업계를 통해 우리는 지금 매우 중요한 학습을 하고 있다. 한번은 토요타에서, 또 한 번은 폴크스바겐에서. 그다음엔 우리 차례가 될지 모른다.

전경일 - 인문경영연구소 소장으로 인문과 다른 분야의 경계를 허무는 통섭적 관점을 연구한다. 저서로『 조선남자1,2』와『 이끌림의 인문학』 등이 있다.

201511호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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