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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3.0시대 (10)주류업계] 화요(火堯) 조태권 회장·조희경 이사 

세계적 명주 꿈꾸는 부전여전(父傳女傳) 

조득진 포브스 차장 ·사진 전민규 기자
광주요의 도자기와 전통주 화요, 그리고 한식전문 레스토랑 비채나와 가온…. 광주요 2세 조태권 회장과 3세 조희경 이사는 전통주와 한식의 글로벌화를 빚어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딸에게 술을 따르는 아버지의 표정이 밝다. 조태권 회장이 “화요의 글로벌화는 딸의 몫”이라고 말하자 조희경 이사는 “아직은 부족해 늘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한 듯 드레스 코드가 맞았다”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인사말과 함께 ‘짝’ ‘짝’ 손바닥 맞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오셨네요.” 조희경 화요 해외총괄마케팅 이사 겸 가온소사이어티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입구 쪽을 향했다. 그리고 곧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이 나타났다. 그는 직원들을 만날 때면 하이파이브로 인사를 나눈다. “광주요그룹의 모든 직원은 가족이다. 아빠와 아들, 딸처럼 편하게 인사하고 즐겁게 일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는 게 조 회장의 설명이다.

서울 한남동 리움 미술관 앞 한식전문 레스토랑 비채나에서 만난 조태권(68) 회장과 조희경(35) 이사. 명품 도자기 광주요와 전통주 화요, 그리고 한식당을 통해 한식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조 회장과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가업을 잇고 있는 조 이사는 닮은 데가 많았다. 외모는 물론 거침없는 말투,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까지 판박이다. 조 회장은 “튀는 건 나를 닮았다. 딸은 나보다 더 사교적이며 도전적”이라고 말했고, 조 이사는 “아버지와 성격이 비슷해 청소년 시기엔 마찰도 잦았다”고 말했다.

드라마틱한 가업승계


미국 미주리 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74년 대우에 입사한 조 회장은 1982년까지 아프리카 유럽 등을 누비며 대우그룹 방위산업의 수출을 담당했다. 이후 중동국가를 대상으로 무기사업을 해 큰 부를 일군 그는 광주요를 창업한 부친 조소수 선생이 1988년 별세하자 회사를 물려받았다. 가업은 2세 조태권 회장에 의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그는 “일본 왜사기와 영국 본차이나가 대세이던 시기에 비색청자, 분청사기 등 전통자기를 복원한 생활도자기를 내놓자 인기가 좋았다”며 “광주요의 성공을 거치면서 잊혀가고 있는 ‘한국적인 것’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민은 한식과 전통주 사업으로 이어졌다. 2002년 회사 내 외식사업부인 가온소사이어티를 설립해 한식당 가온과 비채나를 오픈했다. 2005년엔 전통 증류식 소주 ‘화요’를 선보였다. 그는 ‘한식 전도사’로 통한다. 2007년 사재를 털어 미국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 관계자들에게 1인당 320만원 상당의 한식 만찬을 선보인 일화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전통주와 한식에 우리 민족의 문화가 함축돼 있다. 고급화의 옷을 입혀 음식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하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광주요 3세인 조희경 이사가 가업을 잇게 된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해외지사 근무가 많았던 아버지 탓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과 초등학생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뒤 유학길에 올랐다. 조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더 많이 보고 배워야 창의성이 커질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낸 조 이사는 미국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일본에서 동서양 조리&스타일링, 이탈리아에서 슬로우푸드 식품 경영과 식문화 마케팅을 전공했다. 2010년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프렌치 요리로 유명한 스타 셰프 토마스 켈러 밑에서 인턴 과정을 거쳤다.

조 이사는 토마스에게서 ‘완벽의 추구’를 배웠다고 한다. “토마스는 ‘완벽이라는 것은 없지만 그 때문에 매일 추구해야 하는 가치’라고 강조했어요. 아침에 출근해 바에 보낼 과일주스를 짜고 셰프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았어요. 일을 빨리 끝내야 또 다른 셰프에게 일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죠.” 이후 비자 연장을 위해 들어온 조 이사를 조 회장이 붙잡았다. 그 정도 경험과 노력이면 가업을 이어도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0년 광주요 그룹 기획이사로 합류했다.

어린 나이에 유학길에 올라 16년 동안 해외에서 지낸 조 이사에게 한식이라는 영역은 낯설었을 터. 하지만 그는 “두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께 배운 것 중 하나가 ‘두려워하지 말자’는 거예요. 무엇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는 광주요의 정신,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저도 잇고 싶었어요.” 조 회장은 딸을 지그시 바라보며 “이리 말해도 처음엔 마음고생이 컸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 나와의 소통 문제 등으로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부딪히며 적응하더군요.”

조 이사에게 떨어진 특명은 ‘화요로 세계인의 입술을 적셔라’다. 화요(火堯)는 밀 누룩 대신 100% 우리 쌀로 빚은 술로, 압력을 낮춘 상태에서 전통 증류식으로 만들어낸다. 숨 쉬는 그릇 옹기에서 3~6개월간 장기간 숙성한 덕에 깊은 향을 더했다. 조 회장은 “화요는 국내에서 위스키와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전통주”라며 “소비자 개성에 따라 즐길 수 있도록 17도에서 53도까지 도수를 다양화했다”고 말했다. “조 이사는 영어, 일본어에 능통하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어도 가능해 화요의 글로벌화에 적격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 진출은 국내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가능합니다. 제가 국내에서 마케팅을 잘 해야 조 이사의 업무도 빛을 보는 셈이죠.”(웃음)

화요에 합류 후 조 이사는 수출 기반을 닦는데 매진했다. 2013년 전통주 최초로 아시아나 기내면세점에서 판매를 시작했고, 지난해 7월부터는 주한미군에 납품을 시작했다. 조 이사는 “주한미군 사이에서 화요 위스키의 인기가 높다”며 “근무지 이전이 잦은 이들을 통해 전 세계 미군으로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 9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그 결과 2011년 이후 매출은 연평균 30% 이상 증가하고 있다. 주력인 도자기 사업이 수입산 도자기그릇의 파고에 밀리는 상황에서 화요 매출이 회사를 떠받치고 있다.

지난해 말엔 영국의 최고급 식료품백화점인 포트넘앤메이슨에 입점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유명한 한국계 셰프 쥬디 주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다. 쥬디 주가 중화권 대기업과 손잡고 오는 11월 홍콩에 레스토랑을 오픈할 예정이어서 이를 통한 홍콩·마카오 시장 확대도 기대하고 있다. 최근엔 미국, 특히 뉴욕에서 동양계의 젊은 셰프들이 화요를 선택하는 일도 늘고 있다.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해 현지에 돈을 쏟아 붓는 게 글로벌 마케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화요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죠. 화요의 글로벌 진출은 이제 첫걸음을 뗀 정도입니다.”

진심 통해야 고객·직원 움직인다


조 회장은 여전히 조 이사가 걱정이고 안쓰럽다고 한다. 그는 “먼저 경영에 나선 선배로서 조 이사가 겪는 어려움이 다 보인다”며 “하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야 하기 때문이 그냥 놔둔다”고 말했다. “성과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업은 이윤을 남겨야 지속성장할 수 있는데 딸의 좌충우돌하는 과정이 소모전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죠. 그래서 늘 진심을 강조합니다. 직원과 고객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경영자의 진심입니다. 마음의 파동은 진심으로부터 시작하니까요.”

조 이사에게 ‘단기 목표가 뭐냐?’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서른 중반은 참 애매한 나이인 것 같아요. 마흔이 되기 전에 제 인생의 틀을 잡고 싶어요. 사실 올해 많이 힘들었거든요. 회장님의 활발한 활동에 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 또 해야 하는 분야에서 너무 미흡한 것 아닌가 하는 자책이 컸죠.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원동력을 찾고 싶어요. 화요의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 그리고 가온·비채나의 안정적 경영에 답이 있겠죠.”

인터뷰를 마치고 “음식점에 왔으면 맛을 보고 평가해 주는 것이 도리”라는 조태권 회장의 성화에 못 이겨 족발김치찜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고급스러운 그릇에 얹어 나오는 한식의 비주얼에 연신 입에 침이 고였다. 찜이며 나물, 김치와 젓갈은 정갈하면서도 감칠맛이 났다. 대낮이라 화요 한 잔 곁들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 글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201511호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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