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입양은 행복~노래로 전합니다♬ 

 

유부혁 포브스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성악가로서 자신의 노래가 아닌 입양아들의 노래가 세상에 울려 퍼지길 소망하는 사람. 김수정 교수를 만났다. 그는 입양을 통해 우리 사회가 그리고 가정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2012년 9월 21일, 미국 워싱턴DC의 심장부에 위치한 케네디 센터(The John F. Kenned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무대엔 잔뜩 긴장한 35명의 소년소녀 합창단이 서있다. 이내 준비한 연주가 흐르고 아이들의 입술에선 향기로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감동의 무대가 끝나고 환호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하염없이 우는 여인이 있었다. 김수정 교수. 무대에 선 아이들을 가르친 숨은 주인공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소년소녀 합창단은 모두 입양아들로 구성됐다. 김 교수가 이 아이들을 이 큰 무대에 세운 이유는 한 가지다. “아이들이 행복해 하니까!” 그리고 시나브로 입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다.

무대에 서 있는 합창단원들은 이미 입양이 확정돼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부모가 자의든 타의든 ‘포기한’ 아이들이 대부분이기에 보이지 않는 ‘상처’와 알리고 싶지 않은 ‘사연’이 저마다 가슴속 한편에 배어 있다. 보호시설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친구들에 대한 걱정까지.... 이들은 무대에서 노래할 때마다 많은 걸 경험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노래가 입양을 고민하거나 주저하는 이들의 부담감을 누그러뜨리고 마음을 열어젖힌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김수정 교수는 “어떤 음악가도 아이들의 진정성을 능가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감사해하는 감정을 관객들이 스폰지처럼 고스란히 흡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입양어린이합창단 사단법인 만들어


▎김수정 교수와 한국입양어린이 합창단원들.
김수정 교수 자신이 본래 성악가다. 지금도 오페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녀가 가장 중점을 두는 활동은 ‘입양어린이합창단’을 가르치는 일이다. 가르침은 또한 배움이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서야 할 또는 서고 싶은 무대에 아이들을 세우고 더 기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미혼인 김 교수와 입양아들의 인연은 2005년 시작됐다. 우연한 기회에 입양아들과 한 무대에 서게 됐고, 그때의 강렬한 감동과 행복감을 계기로 지금까지 아이들과 함께 노래 연습을 빠지지 않게 됐다. 2010년부턴 아예 ‘한국입양어린이합창단’이란 사단법인까지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개신교 신자인 그는 “나에게 주어진 분깃은 입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양아동들을 가르쳐 함께 무대에서 노래하는 일을 하늘이 자신에게 준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일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수행하고 있고 또 수행할 것이다.

“국가가 저출산 문제에 기금을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러면 이미 낳아놓은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도 생각해 봐야죠.” 김수정 교수가 차분하지만 에둘러 말하지 않고 힘주어 말했다. 혼자서 합창단을 꾸려가는 게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입양 홍보이사이기도 한 김 교수는 사회의 ‘입양에 대한 시선’이 바뀌려면 국가적 관심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보호시설에 있다가 18세가 될 때가지도 새로운 보호자를 만나지 못하는 아이들은 경제자립금 500만원과 함께 거리로 내몰린다. “모든 걸 해줄 순 없어도 해주어야 하는, 해줄 수 있는 건 우리가 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김수정 교수는 노래의 힘을 강조했다. “노래를 하는 아이들은 치유가 되고 노래를 들은 분들은 입양을 결심합니다.” 그가 쉼없이 말을 이었다. “무대에 선다는 것과 노래한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굳이 의학적 근거를 들이대지 않아도 이해가 될 듯 했다. 아이들은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는 연습을 한다.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높아지고 자신감도 생겨난다. 그리곤 무대에서 내려와 더 넓은 무대로 나갈 용기와 소망까지 생기는 것이 아닐까. 김 교수는 “아이들이 내게 소망을 이야기한다”며 신이 나서 말했다. 매년 입양어린이합창단과 KBS청춘합창단이 함께하는 ‘작은 감사’란 공연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아이들이 직접 지은 가사를 들려주었다.

‘나는 알아요. 행복한 아이라는 걸. 나는 당신의 작은 천사가 될게요.’

두세 마디 읽더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 친구가 와서 ‘전 유명한 사람이 돼서 입양이 행복하다는 걸 알릴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단장님이 할머니가 되면 더 이상 합창단을 할 수 없으니 내가 연습해서 단장이 될 거예요’라고 말해요. 특별한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노래하는 게 전부인데 말이죠. 이게 노래의 힘입니다.”

IBK기업은행이 합창단 후원 동참

김 교수는 눈물을 닦고는 다시 사회적 관심을 강조했다. “요즘엔 해외입양도 어려워졌어요. 국내 입양이 늘어야 하는데… 입양아들은 힘이 없어요. 선거권도 없죠. 늘 맨 마지막에 조명되는 게 마음 아파요.” 김 교수의 이 고민에 대해선 정부 역시 고민하는 대목이다. 마냥 입양가정을 지원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의 한 사무관은 “입양과 관련한 시스템 지원과 함께 국민들과 공감대를 이뤄가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라면서도 “정부는 입양특례법 도입과 같은 노력을 계속하고 있고, 선진사례 수집과 함께 다양한 지원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교수의 이런 마음은 헛되지 않았다. IBK 기업은행이 2012년부터 한국입양어린이합창단을 후원하고 있는 것. 김 교수는 “덕분에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자의 경제활동을 돕고 경제 지위향상을 도모한다는 기업철학을 가지고 있다. 기업은행의 사회공헌활동이 비인기 스포츠 종목과 사회단체를 후원하는 것도 이같은 철학의 실천일 것이다. 그녀의 조용한 봉사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해 김 교수에게 국무총리 입양유공자 훈장을 표창했다. 올해는 문화관광부 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김 교수는 “나에게 상을 주는 것을 보면 입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 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정 교수는 인터뷰 내내 한 명의 기자가 아닌 수만 명의 포브스 독자에게 호소하듯 말을 건넸다. “입양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뿐 아니라 한 가정이 더 행복해지는 방법이랍니다.”

- 글 유부혁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512호 (2015.1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