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한국의 일하기 좋은 기업(3) 한국쓰리엠 

자기주도식 근무의 끝판 왕 

글 유부혁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어디서 일하든, 얼마만큼 일하든, 언제 일하든 상관없다. 목표도 당신이 세워라’ 한국쓰리엠 이야기다. 흔한 업무 매뉴얼과 지침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회사. 대신 자기주도적인 업무를 지지하고 존중하는 회사가 한국쓰리엠이다.

아침 9시 30분. 한국쓰리엠 생활용품사업부 마케팅팀 유 대리의 출근 시간이다. 원래는 8시 출근이지만 아침에 딸 민교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기로 했다. 회사의 자율출근제 덕분이다. 자동차산업부 영업팀 박 과장은 일주일에 한 번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을 때가 많다. 대부분 관계사와의 미팅, 영업활동을 위해 외부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흔히 말하는 ‘얼굴 도장’도 찍을 필요가 없다. 오후 2시. 헬스케어사업부 김은진(가명) 사원은 회사를 나와 근처 영어학원으로 향한다. 회사가 정한 ‘15% 룰’에 따라 업무시간의 15% 즉 1시간 30분 정도는 자기계발에 사용할 수 있다. 오후 7시. 사무실은 불이 꺼져 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퇴근했기 때문이다. 출퇴근에 전혀 눈치를 안보는 이 회사 문화의 단면이다. 시스템 보단 업무 효율성이 기준이 되는 조직문화를 가진 이곳은 한국쓰리엠. 미국 미네소타 본사의 문화와도 동일하다.

기업평판 사이트 ‘잡플래닛’이 추천한 한국의 일하기 좋은 기업 한국쓰리엠. 지난해 이 기업 매출은 1조 8000억원. 해외법인 중 톱5의 실적이다. 서울 사무실 직원 550명, 화성·나주 공장 직원 800명, 동탄 R&D센터 연구진 200명이 함께 이룬 성과다. 이 회사는 한국 진출 후 매년 20~30%대 성장을 유지해왔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희망 퇴직자 50명 외엔 구조조정 역사도 없다. 인사적체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지만 고용보장성 측면에선 최고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국쓰리엠 생활용품사업부 마케팅팀의 이민정씨를 가장 먼저 만났다. 그는 국내 식품 대기업에 다니다 2014년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 소비재 마케팅에 관심이 높았다”고 말했다. 한국쓰리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활용해 보고 싶어서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기업에선 부속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들어갈 때 요구되던 어학능력을 사용할 기회는 별로 없었고요.” 그는 한국쓰리엠으로 옮겨와 영어 사용 비중이 훨씬 늘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치를 했는데 소비재 기업 중 공장이나 연구소를 가진 기업은 많지 않더라고요.” 한국쓰리엠은 나주와 화성에 자체 공장을 가지고 있고 2000년에는 R&D센터도 지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한국쓰리엠 직원의 8~10%가 한국이 아닌 글로벌 업무를 담당할 만큼 본사에선 한국을 인정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씨 역시 폭넓은 업무 경험을 한국쓰리엠 근무의 장점으로 꼽았다. “말단부터 배우는 한국 기업과는 달라요. 맡은 브랜드의 모든 업무를 자기주도적으로 계획해 스케줄도 본인이 조정해 가면서 일합니다. 결과만 놓고 모든 걸 재단하지도 않아요.” 이민정 씨 역시 한국쓰리엠이 자랑하는 인재다. 그는 입사 16개월 차에 지난해 마케팅 업무 써머리 발표에서 대상을 수상, 곧 아태지역 발표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아태지역에서 수상하면 본사에서 발표할 기회를 가지는데 여기서 수상하면 쓰리엠 전용기를 타고 쓰리엠이 보유한 휴양지에서 특별 휴가를 즐길 수 있는 특전을 즐길 수 있다. 이민정씨는 스카치 브라이트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서 거의 처음 글로벌로 진출한 브랜드로 시장점유율 60%를 차지하며 생활용품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기업


이씨는 또 한국쓰리엠이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근무를 탄력적으로 하다보니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는 분들이 많아요. 통제하지 않고 개개인의 자율에 업무를 맡기니 존중 받는다는 느낌도 많이 듭니다.”

김현종 산업용사업본부 자동차사업팀 차장은 장교 전역 후 다음 날 입사해 지금까지 한국쓰리엠에 근무하고 있다. 2003년 7월에 입사해 지금은 13년 차. 그는 입사 전 쓰리엠에 대해 ‘하나의 큰 글로벌 기업’으로 생각했다. “입사 후엔 하나의 큰 브랜드 안에 수많은 세계가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쓰리엠은 B2C부터 B2B까지 8만 가지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크게는 전자, 조선, 자동차, 생활용품, 안전, 헬스케어 상품 군으로 나뉜다. 김 차장이 근무하는 자동차사업팀은 흡음제, 차량 접착제, 고성능 필름, 에어컨 필터 등을 담당하고 있다. 주력 제품으로는 강판과 고무를 붙여주는 실링 솔루션 제품. “볼트와 너트는 시간이 지나면 유격이 발생합니다. 쓰리엠에선 강판과 고무, 강판과 강판을 접합하는 특수 테이프를 만듭니다. 자동차 무게도 가벼워 지고 떨림이 사라지니 소음도 없죠.” 김 차장은 한 직장에서 근무해 왔지만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직무전환이 자유로운 덕분이다. “한 본부 내 영업과 마케팅 부서가 같이 있습니다. 유기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가 말하는 한국쓰리엠의 장점 역시 앞서 이민정씨가 말한 ‘권한 위임’이다. “권한위임이 강해요. 입사 1~2년차와 15년차의 업무 기회와 권한이 동일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한 업무 지침도 없어요.”

한국쓰리엠의 주력제품은 앞서 말한 실링 제품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포스트 잇도 아니다. 포스트 잇이 쓰리엠 전체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이하다. 한국쓰리엠 주력 제품은 다름 아닌 LCD, LED 백라이트 유닛 뒤 필름의 프리즘 시트. 단일품목으로는 국내에서 매출 비중이 가장 높다. 특히나 삼성, LG와 같은 큰 관계사가 있으니 글로벌 본사 임원의 방문과 컨퍼런스콜도 잦다는 게 한국쓰리엠 관계자의 설명이다.

퇴직·이직률은 선동열 전성기 방어율 수준


윤윤식 수석연구원은 한국쓰리엠에서 디스플레이 재료 및 시스템 사업팀에서 OLED 어플리케이션 개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전 직장은 LG화학. 그는 “쓰리엠에서 배우고 싶은 기술이 있어 옮겨왔다”고 이직 배경을 설명했다. 쓰리엠의 특별한 제품과 광학 설계, 특허부문에 매료됐다. 한국쓰리엠의 위상도 이직 결심에 한몫했다. “제조, 연구, 비즈니스 유닛을 모두 갖춘 지역은 글로벌로 봐도 거의 없어요.” 그는 이직 후 밖에선 보이지 않는 우수한 문화를 경험한 것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 플랜을 짤 때 담당자들이 책임지고 전략까지 수립합니다. 상명하복식의 ‘시키는 문화’가 아닌 ‘스스로 문화’예요. 업무, 시간과 같은 부문을 스스로 콘트롤하니 워크앤라이프 밸런스는 좋아질 수 밖에 없어요.”

윤 연구원은 이어 “한국쓰리엠이 퇴직률, 이직률이 과거 선동렬 선수의 전성기 방어율과 비슷한 이유는 높아진 눈 때문”이라면서 “밖에서 이런 근무조건, 환경을 지닌 기업은 찾기 힘들다는 걸 직원들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원은 이어 “비가 오면 우산,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 모자를 팔면 된다”는 말로 쓰리엠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강조했다. 한국은 총 6개의 사업본부로 꾸려졌다. 인더스트리얼, 헬스케어, 전자재료, 소비자, 안전, 디스플레이. 이 중 디스플레이는 한국에만 있는 사업본부로 삼성, LG와 같은 주요 고객사가 위치해 있고 주력 사업인 만큼 따로 사업부를 떼어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박준엽 팀장을 만났다. 그 역시 김헌종 차장과 마찬가지로 한국쓰리엠이 첫 직장으로 근무경력은 20년이다. 지금은 직원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직원들을 상대하는 만큼 쓰리엠의 스토리에 밝았다. “쓰리엠은 광산개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사에요. 찬송가를 쉽게 찾기 위해 만든 게 포스트잇이죠. 이후 OHP를 개발해 단일 품목으로 1조원을 판매한 회사예요. 시대의 변화상, 소비자의 필요에 맞는 상품을 계속 개발하고 있습니다.”

인사팀에 속한 만큼 그는 한국쓰리엠 인사 문화의 강점을 이야기 했다. “인사에 있어 담당자의 권한이 어느 기업보다 강해서 벤치마킹 온 기업 담당자들이 놀랍니다.” 한국쓰리엠은 모든 권한을 직속 상사에게 부여하고 업무 형태 및 스케쥴 역시 상사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있다. 박 팀장은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 의해 돌아가는 회사입니다. 페이퍼워크보단 구전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이 많아요. 굳이 상사의 기호에 맞는 포인트로 상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문서 작업을 하는데 시간 쏟을 필요가 없죠. 본질 외엔 고민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문화가 정착돼 있습니다.”

인사의 키워드는 ‘다양성’과 ‘포용성’

이런 점 때문에 대기업에서 이직해 온 경력직원들은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 지도 본인이 결정하니 업무 지시가 없다는 점에 당황해 합니다.” 이런 조직 문화가 무조건 좋지만은 않다. 사업 전체를 책임지는 팀이 모여 조직을 구성하다 보니 이해가 다른 조직 간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결국엔 상대방의 의도, 필요를 이해하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직원들에게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는 스마트폰을 쥐어 주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만 알려주면 알아서 묻고 물어 목적지를 찾아갑니다. 반복되다 보면 전체를 생각하는 힘이 생기죠. 쓰리엠이 통합솔루션과 같은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은 이유도 이런 아날로그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국쓰리엠이 인사에 있어 중요시 하는 키워드는 ‘다양성’과 ‘포용성’이다. 세대가 소통하고 주니어들의 자기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소비주체 세대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 인사에 이를 반영한다는 것이 박 팀장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한국쓰리엠은 업무에 있어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한다. “8시간 근무와 업무에 차질이 없다는 걸 전제로 상사와 상의해 근무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거나 아침 시간을 즐기는 직원들은 11시 출근 7시 퇴근, 어린이집 다녀온 자녀와 오후 시간을 보내겠단 계획을 가진 직원들은 7시 출근 4시 퇴근을 합니다. 재택근무도 가능하고요.”

박 팀장에게 낮은 퇴직률, 이직률의 이면을 물었다. 그는 “과장이 막내인 경우가 있어요”라면서 웃었다. 이어서 “인사시스템으로 보정해야 하고 또 능력을 기준으로 인사 역전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글 유부혁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201604호 (2016.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