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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 

빛바랜 골목 너머 트램이 오가다 

멜버른(호주)=글·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호주 남동부 멜버른은 빛바랜 골목 너머 트램이 서성이는 도시다. 고풍스런 유럽풍 건물들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그 옆으로는 현대 건축물과 그래피티가 새겨진 뒷골목들이 늘어서 있다. 골목을 벗어날 때쯤 우연히 마주치는 트램들은 거리의 햇살만큼 더디게 흐른다.

▎야라 강을 따라 도시의 과거와 현대 건축물들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멜버른의 어느 골목을 기웃거려도 작은 일탈은 기분 좋은 상념으로 이어진다. 느릿느릿 오가는 자줏빛 트램과 마주치면 유럽의 외딴 도시에 서 있는 듯하다. 도시는 무모하게 확장을 거듭하지 않았고, 거리 곳곳을 채운 조형물 역시 따사롭게 발길을 붙든다.

도시의 선명한 랜드마크는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이다. 1854년 세워진 멜버른 최초의 기차역은 멜버른의 과거를 대변하는 상징이다. 역사 건너편, 19세기에 지어진 세인트 폴 성당은 고딕 첨탑에서 은은한 종소리를 쏟아낸다. 나란히 들어선 페더레이션 광장은 연중 문화공연이 열리는 만남의 장소다.

멜버른의 뒷골목에 화려한 네온사인은 굳이 필요 없다. 멜버니언의 단골 바들은 막다른 골목이나 허름한 1층 문을 지나 옥상에 보석처럼 숨어 있다.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에서 걸어서 연결되는 골목들에는 멜버른의 속살이 어른거린다. 그중 디그레이브스와 센터 플레이스 일대의 뒷골목들은 멜버른의 골목문화가 압축돼 있다. 노천카페 앞 허름한 테이블에는 멜버른 청춘들의 일상이 낱낱이 드러난다. 높은 천장과 모자이크 바닥이 인상적인 블록 아케이드는 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1869년 세워진 로얄 아케이드는 멜버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골목길에서 만나는 수제 초콜릿 가게, 빈티지 숍 등에서도 풍미가 전해진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알려진 골목인 ‘호시어 레인’은 한국에는 ‘미사 골목’으로 더욱 유명하다. 거리의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그래피티 앞에서 독특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다. 무분별해 보이는 벽화에도 작가들의 사연과 약속이 담겨있다. 그래피티의 속사정을 설명해주는 투어 프로그램이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다.

멜버른은 호주에서 가장 많은 극장과 갤러리, 박물관을 보유한 문화 예술의 도시다. 3000여 개의 레스토랑을 자랑하는 미식가의 도시이기도 하다. 비스듬히 추상적으로 세워져 있는 도로의 게이트나 거리 곳곳에서 문득문득 만나는 현대 조형물들 역시 멜버른 거리가 보여주는 개성 넘치는 광경들이다.


▎빌딩숲 사이를 가르는 트램은 멜버른을 채색하는 매개다.



▎멜버른 최초의 기차역인 플린더스 스트리트역. 역 앞으로는 마차들이 지난다.



▎뒷골목 문화가 압축돼 있는 디그레이브 골목.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푸른 파도와 바위와 어우러져 200㎞ 가량 뻗어 있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배경이 된 호시어 레인.



▎차창에 매달려 달릴 수 있는 단데농의 증기기관차


그레이트 오션로드와 야라 밸리


▎고딕 양식의 뾰족탑이 인상적인 세인트 패트릭 성당.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에서 야라 강(Yarra River)을 건너면 도시는 색깔을 바꾼다. 강 북쪽이 세인트 패트릭 성당, 퀸 빅토리아 마켓 등 고색창연한 공간들로 채워진다면 강 남쪽은 아트센터, 국립미술관 등 현대 건축물들이 도드라진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사우스뱅크 산책로에는 남반구 최고층(88층)인 유레카 타워와 초대형 카지노가 들어서 있다. 유레카 타워에서 내려다보면 야라 강을 잇는 다리들은 묘하게 비틀리거나 유선형으로 우아한 멋을 전한다.

도심을 벗어나 조우하는 멜버른의 근교는 이채로운 풍경들로 채워진다. 서쪽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여행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다. 1차 세계대전을 끝낸 퇴역군인들의 땀방울이 깃든 길은 바람과 바다가 빚어낸 대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채 200여㎞나 뻗어 있다. 기이한 형상을 뽐내는 바위들은 가는 길 내내 청아한 파도 소리를 전한다.

멜버른 동북쪽의 야라 밸리에는 60여 개의 와이너리가 들어선 포도밭 세상이다. 차창에 매달린 채 달리는 단데농의 증기기관차 역시 살가운 추억거리다.

멜버른 인근 어느 곳을 배회해도 도시로의 귀환을 반기는 것은 트램이다. 교통체증으로 트램을 없애자는 의견이 분분했을 때에도 멜버른 시민들은 고집스럽게 옛 탈 것을 지켜냈다. 그 고집스런 길이 도시의 숨통이 되고 색깔을 덧씌우는 매개가 됐다.

- 멜버른(호주)=글·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 길: 한국에서 멜버른까지는 시드니 등을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도심을 한 바퀴 순회하는 시티 서클 트램은 무료로 운행된다. 멜버른에서는 교통 티켓이 있으면 버스, 트램, 열차 등을 자유롭게 환승할 수 있다.

음식: 야라 밸리의 와인이 유명하지만 멜버른 일대는 맥주로도 명성 높은 곳이다. 퀸 빅토리아 마켓 투어를 신청하면 가이드와 함께 먹을거리, 시장 탐방이 가능하다. 트램을 테마로 한 이동하는 트램 레스토랑 역시 도시의 명물 중 하나다.

기타 정보: 가이드와 함께 골목 탐방이 가능한 뒷골목 투어 프로그램이 인기 높다. 야라 강에서는 유람선 투어를 즐길 수 있다. 호주관광청(www.australia.com)을 통해 자세한 현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201705호 (201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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