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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나의 정상! 

나이 일흔이 되어 대학 66학번 산 친구들과 몽골 서쪽 끝에 있는 알타이산맥의 봉우리를 찾았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사)대한산악구조협회 회장

나이 일흔이 되어 대학 66학 번 산 친구들과 몽골 서쪽 끝에 있는 알타이산맥의 봉우리를 찾았다. 알타이산맥에는 5개 봉우리가 있는데, 최고봉은 후이뚱봉(4370m), 가장 오르기 쉬운 곳이 말칭봉(4025m)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비행기로 약 4시간, 울기라는 몽골 서부지역의 중심도시에 내려, 몽골 친구 오스판이 모는 근사한 지프차를 타고 사막과 초원을 이틀 동안 달리고 달려 알타이산맥과 마주했다. 베이스캠프다. 초원이다. 남쪽으로는 수십 킬로미터의 빙하, 서쪽으로는 흰색의 봉우리가 연달아 있는 알타이산맥, 땅은 먼지가 풀풀 이는 흙 밭이 아니라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초원이다. 아, 우선 눕고 보자. 이리 좋을 수가 있나. 하늘은 푸르고 등은 부드럽고 주변에는 50년을 산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 그리고 내 말이면 무조건 다 들어주는 오스판이 있다. 무엇이 부러우랴.


정상 등정 당일.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기분 좋은 새벽 안개 속을 필자, 조규배, 김학중, 산악 가이드까지 네 명이 짐을 챙겨 일어서는데 뚱뚱이 오스판이 자기도 가겠단다. 가죽으로 된 두꺼운 모피를 입고 있다. 글쎄 갈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초원이 끝나고 오름이 시작되는 곳에서 ‘빠이빠이’ 인사를 한다. 잘 다녀오란다. 부슬비가 오기 시작했다. 오름에는 길도 없다. 그냥 돌무더기뿐이다. 서너 시간, 돌무더기를 오르니 이제 능선인데 빗방울이 굵어진다. 굵은 빗방울이 우박으로 변하면서 사정없이 얼굴을 후려친다. 오르막길이어서 위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4000m 수준이고 빤히 보이기도 해서 우모복도 안 가져왔고, 여분의 장갑과 양말도 챙기지 않았다. 그런데 빗물이 스며들어 신발 속이 온통 물이다. 장갑을 벗어 짜니 물이 죽 떨어진다. 나도 추위를 느낀다. 얼굴에 소름도 끼치고 이도 약간 떨리는 기분이다. 여기 능선만 오르면 정상이 보이겠지 하면서 겨우겨우 오르는데, 김학중이 “야, 익상아. 내 신발 속이 온통 물이야. 여기서 내려가자” 한다. 조규배에게 슬쩍 물었더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라고 한다. 능선 한쪽 약간 높은 곳에 잔돌 몇 개를 올려놓고 빗속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다 같이 “여기가 우리의 정상이다”라고 외쳤다.

하산 후에 김학중 왈, “50년 산행에서 가장 보람 있고 즐거웠던 등반이었다”라고 한다. 맞다. 정상이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최선을 다한 곳이 정상이다. 삶에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해야 한다. 포기가 습관이 되면 안 된다. 그러니, 애초에 산꼭대기를 목표로 하지 말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목표로 하자. 내년 스위스 마터호른봉의 목표는 솔베이 산장이다. 그곳까지만, 그곳까지라도 안전하고 재미있게 다녀오려고 한다. 컴퓨터 배경화면에 중학교 때부터 그리던 그 암봉이 있다.

-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사)대한산악구조협회 회장

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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