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환영 대기자의 『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들』(14)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문장』 

김환영 대기자
『문장』은 734~1000여 개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문헌이다. 저자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는 서양 아포리즘 문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문장』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노예와 자유인의 차이는 뭘까. 속박의 유무라는 차이는 있어도 지(知)·지(智), 즉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그것을 올바르게 판별하고 처리하는 능력’의 차이는 없다. 이를 증명하며 문학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긴 ‘평행이론’ 사례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이솝 이야기』로 유명한 우화 작가 이솝(Aesop, 아이소포스, 기원전 620년경~564년경)이 있었다. 이솝은 그리스 사모스 왕의 노예였는데 우화를 재미있게 이야기해 해방됐다. 이솝은 에티오피아 출신 흑인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스에 이솝이 있다면, 로마에는 푸블릴리우스 시루스(활동기 기원전 85년~43년)가 있다. (‘푸블릴리우스’ 대신 ‘푸플리우스’로도 표기된다.) 시루스도 노예 출신이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는지, 아니면 전쟁포로로 노예가 됐는지는 불확실하다. 시리아 중에서도 안티오키아 출신이었다. 주인이 시루스를 로마로 데려간 것은 그가 12살 때였다. 그의 재주를 아낀 주인이 자유와 교육받을 기회를 주었다.

고대 로마 초기부터 인기 마임 작가로 활동


시루스는 고대 로마 초기부터 인기 있는 연극 장르였던 마임(mime) 작가였다. 폭정으로 악명 높은 네로 황제(37~68)가 마임에 직접 출연한 적도 있다. 이탈리아 지방 곳곳에서 명성이 자자한 시루스를 카이사르(기원전 100~44)가 로마로 불러냈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 자신의 탑수스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마임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시루스에게 상을 줬다. 시루스의 마임은 실전됐지만, 후세 사람들이 그의 마임에서 추려낸 명언을 담은 『문장(文章·Sententiae·Sentences)』이 남아 있다. 기원후 1세기에 형성된 문헌이다. 734~1000여 개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문장』은 아직 우리말로는 번역되지 않았다.

시루스는 서양 아포리즘 문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고대 로마 스토아학파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기원전 4년경~65년)도 시루스의 아포리즘을 모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시루스의 아포리즘 대표작으로 우선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가 떠오른다. “부지런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은 침체되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 “많이 떠돌아다니거나 직업을 자주 바꾸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하니 한 우물을 파라”라는 뜻이다. 또 “친숙하면 얕보게 된다(Familiarity breeds contempt.)”가 있다. 이 말은 예수가 한때 고향 나사렛에서 인정받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때 인용된다.

명언이라고 해서 기기묘묘(奇奇妙妙)한 수가 담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생에 진정한 도움을 주는 격언은 집밥처럼 소박하다. 시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 건강과 양식(良識)은 인생에서 양대 축복이다.(Good health and good sense are two of life’s greatest blessings.)

- 단결이 있는 곳에는 항상 승리가 있다.(Where there is unity there is always victory.)

- 힘으로 안 되는 것을 친절로 달성할 수 있다.(You can accomplish by kindness what you cannot by force.)

- 꼭대기에 오르려면 밑바닥에서 시작하라.(If you wish to reach the highest, begin at the lowest.)

-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Suspicion begets suspicion.)

- 모든 사람이 탐내는 것은 지키기 힘들다.(It is hard to keep that which everyone covets.)

-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다.(Even when the wound is healed, the scar remains.)

-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사람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He who chases two hares will catch neither.)

- 가장 큰 편안함은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The greatest of comforts is to be from blame.)

- 나는 종종 내가 말했기 때문에 후회한다.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후회한 적은 절대 없다.(I often regret that I have spoken; never that I have been silent.)

- 연습은 최고의 선생이다.(Practice is the best of all instructors.)

- 말은 영혼의 거울이다.(Speech is the mirror of the soul.)

-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면, 우리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다.(We are interested in others, when they are interested in us.)

부탁·청탁 거절하는 법 알려줘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허스 (1519년경~1581년경)가 그린 ‘격분한 여자’(1570년경). / 사진:사진 우스터 미술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는 하나다. 시루스는 다음과 같이 우리 문화권의 반면교사(反面敎師,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이르는 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에 해당하는 말을 했다.

-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통해 자기 자신의 잘못을 고친다.(From the errors of others, a wise man corrects his own. / The wise man corrects his own errors by observing those of others.)

- 반쯤 아는 것보다 아예 무지한 게 낫다.(Better to be ignorant of a matter than to half know it.)

인생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부탁·청탁을 하고 또 거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핵심은 호혜성(reciprocity)이다. 시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 가장 많은 은혜를 입는 사람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다.(The person who receives the most favors is the one who knows how to return them.)

- 부탁을 정중하게 거절하면, 부탁을 들어준 것과 마찬가지다.(To refuse graciously is to confer a favor.)

- 남에게 받은 도움은 절대 잊지 말고, 남에게 준 도움은 빨리 잊어버려라.(Never forget a favor received; be quick to forget a favor bestowed.)

- 줄 수 없는 사람은 받지도 말아야 한다.(He who cannot give; should not receive.)

“명예를 잃은 사람은 더는 잃을 게 없다(He who has lost honor can lose nothing more.)”라고 말한 시루스는 재물이나 권력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긴 것 같다. 재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많은 게 부족하면 가난, 모든 게 부족하면 탐욕이다.(Poverty is the lack of many things, but avarice is the lack of all things.)

-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면, 돈은 축복이다.(When reason rules, money is a blessing.)

‘운칠기삼(運七技三)’을 넘어 행운이 전부인 것 같기도 하다. 시루스는 행운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 운은 그가 지나치게 편애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Fortune makes a fool of him whom she favors too much.)

- 행운은 많이 빌려주지만, 공짜로 주는 법은 없다.(Fortune makes many loans, but gives no presents.)

그 어느 때보다 분노 조절이 필요한 시대다. 시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 분노한 사람은 제정신을 차렸을 때 자기 자신에게 분노한다.(An angry man is again angry with himself when he returns to reason.)

- 그 누구도 당신을 정당한 이유로 혐오하지 않도록 조심하라.(Take care that no one hates you justly.)

분노는 판단력 부족을 낳는다. 잠시 사람을 미치게 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시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 응징하려고 이웃집에 불을 내는 것은 미친 짓이다.(It is folly to punish your neighbor by fire when you live next door.)

-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미친 짓이다.(It is folly to take what the uncertain or the certain.)

『문장』, 행복과 성적 문제 다룬 자기계발서

시루스는 다음과 같이 친구·우정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냈다.

- 번영은 친구들을 만들고 역경은 친구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Prosperity makes friends, adversity tries them.)

- 친구를 잃을 때마다 우리는 죽는다.(We die as often as we lose a friend.)

- 당신의 은밀한 이야기를 세상에 이야기하는 사람을 친구로 여기지 말라.(Count not him among your friends who retail your privacies to the world.)

- 친구의 잘못에 눈을 감지도 말고, 잘못 때문에 친구를 미워하지도 말라.(Be not blind to a friend’s faults, nor hate him for them.)

- 우정은 항상 이익을 안겨주지만, 사랑은 항상 상처를 입힌다.(Friendship ever profits, but love ever injures.)

- 친구는 ‘잠재적 원수’로 대하라.(Treat your friend as if he might become an enemy.)

- 새 친구가 생기면 옛 친구를 잊지 말라.(If you gain new friends, don’t forget the old ones.)

- 친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친구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다.(He who distrusts his friend knows not the meaning of the word.)

- 적을 용서하면 많은 친구를 얻는다.(When you forgive an enemy you gain many friends.)

정치나 권력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 주인은 자신이 다스리는 사람들을 두려워할 때 노예가 된다.(The master is a slave when he fears those whom he rules.)

- 바다가 잔잔할 때는 누구나 배를 몰 수 있다.(Anyone can steer the ship when the sea is calm.)

- 변통(變通) 없는 계획은 나쁜 계획이다.(It is a bad plan that admits of no modification.)

- 일부 치료법은 질병보다도 나쁘다.(There are some remedies worse than the disease. / Some remedies are worse than the disease.)

-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자신도 두려워할 사람이 많다.(He whom many fear, has himself many to fear.)

- 병사의 용기는 장군의 지혜에 달렸다.(The courage of the soldiers depends upon the wisdom of the general.)

- 주인의 요청은 명령이다.(The request of a master is a command.)

『문장』은 도덕 지침서이자, 행복과 성공의 문제를 다루는 시원적 자기계발서다. 행복과 불행에 대해 시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No man is happy who does not think himself so.)

-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가.(How unhappy is he who cannot forgive himself.)

동서양 모두 대담함과 신중함을 중시한다. 상대적으로 서양은 대담함 쪽으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대담함에 대해 시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 대담함은 용기를, 주저함은 공포를 증가시킨다.(Audacity augments courage; hesitation, fear. / Valor grows by daring, fear by holding back.)

시루스의 『문장』에는 동서고금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좀 지긋해져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그의 명언에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 우리가 바라는 것을 우리가 얻어도, 그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Even when we get what we wish, it is not ours.)

- 시도하기 전에는 누구도 자신이 얼마큼 할 수 있을지 모른다.(No one knows what he can do until he tries.)

- 사람들은 당신의 마지막 행동으로 당신의 과거 행동들을 판단한다.(Men will judge your past deeds by your last.)

- 누구나 남들은 못 하는 어떤 것에 뛰어나다.(Every one excels in something in which another fails.)

- 대중의 의견보다는 당신의 양심에 물어보라.(Consult your conscience; rather than popular opinion.)

- 한 사람에게 생기는 일은 모든 사람에게 생길 수 있다.(What happens to one man may happen to all.)

- 몇 명이나 기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기쁘게 할 것인가를 고려하라.(Don’t consider how many you can please, but whom.)

- 김환영 대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 김환영은…중앙일보플러스 대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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