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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모가 들려주는 예술가의 안목과 통찰(1)] 판화와 회화를 넘어, 작가 황규백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안목(眼目)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식견이다. 통찰(洞察)이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일이다.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판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들이다. 그렇다면 안목을 기르고 통찰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예술가들, 그런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서 가치 있는 작품을 골라내는 컬렉터들이라면 그 비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훈훈한 벽난로가 있는 서울 방배동 작업실에서 황규백 작가를 만났다.
작가 황규백(87)은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파스텔화 같은 그의 판화는 1970~90년대 온갖 국제 판화 관련 페스티벌과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에 초대받으며 일세를 풍미했다. 그는 어떻게 판화가로서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 전쟁이 나자 자원 입대했고 1954년에야 제대할 수 있었죠. 그런데 길을 가다가 미필자로 오인되어 군대에 끌려가게 됐어요. 다행히 아는 사람을 만나 하루 만에 나올 수 있었지만, 이런 나라에서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던 시절, 대학 졸업장은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런저런 작업을 하다가, 기왕 미술을 하려면 프랑스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그가 한 일은 바로 언어 공부. “말만 통하면 돈은 없어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호기를 부리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2년간 프랑스어 공부에 매진한 뒤, 요코하마를 출발해 마르세이유에 도착하는 프랑스 배에 몸을 실은 것이 1968년이었다.

“배에서 한 달 반을 지내며 프랑스 선원들과 온갖 이야기를 나눴지요. 마침 일본 청년 한 명, 스위스 의사 부부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이 일본 청년이 자기랑 함께 지내며 파리 생활을 도와달랬어요. 어느 날 그가 일본인 화가를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같이 만났는데, 그때 제 운명이 결정됐죠.”

화가의 귀띔 덕분에 당시 유럽 미술계를 휩쓸던 판화 열풍을 체감할 수 있었다. 더 감사한 일은 그의 소개로 판화 전문 공방 및 갤러리로 유명한 ‘아틀리에 17’의 스탠리 윌리엄 헤이터를 만났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이곳은 피카소, 미로, 샤갈 등이 판화 작업을 했던 유서 깊은 공방이었다.

“찾아갔더니 ‘당장 일하라’고 해서 넥타이를 풀고 바로 일을 시작했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배우고 만든 덕분인지 이번엔 자기 조수를 하래요. 수업료를 안 내도 돼서 좋았죠.”

그는 동판화 기법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메조틴트(Mezzotint)에 집중했다. 부식액을 쓰는 다른 동판화와 달리 메조틴트는 판을 직접 긁어내야 한다. 힘은 들었지만 세밀한 표현이 가능했다. 2년쯤 지났을까, 유럽 작가들을 찾으러 온 미국 화상의 눈에 띄었다. 공방에서 일하던 여러 작가 중 오직 그 혼자만 미국에 오라는 제의를 받았다. 예술가를 존중하는 파리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경제적으로 훨씬 나을 것”이라는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웠다.

뉴욕에 갔을 때 가진 현금이라고는 방값 50달러가 전부였지만, 파리에서 가져온 작품은 한 점에 7000달러씩 팔렸다. “처음부터 잘나갔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그는 복잡한 맨해튼에 살며 자동차를 구입했고, 스키에 맛을 들여 미국은 물론 유럽까지 스키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좋았던 시절이었다.

미국에 온 지 3년쯤 지난 무렵, 유럽 스타일의 작품들이 문득 꼴도 보기 싫어졌다. 미국 화단은 역동적이었고, 이제 뭔가 새로운 걸 내놔야 했다. ‘새 작품이 없으면 여기서 끝난다’는 스트레스로 피가 마르는 나날이 지속됐다. 한국의 산이 그리워 뉴욕 인근 베어 마운틴을 찾아가 호숫가에 누워 고민을 계속하던 1973년 어느 날, 햇살에 눈이 부셔 손수건을 꺼내 하늘을 가렸다. 그때였다. 하늘, 손수건, 잔디…. 손수건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거다….

은은한 색조, 초현실적 분위기의 컬러 메조틴트 판화로 명성


▎황규백 작가의 회화 작업 ‘MOON AND SWAN’(2016), Acrylic and oil on canvas, 122.2×102.3㎝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에 온몸이 저려올 정도였어요. 손수건을 하늘에 핀으로 꽂자. 손수건에, 손수건 뒤에, 하늘 속에 세상 모든 이쁜 것과 추한 것을 숨겨놓자. 보이지 않는 것을 초현실적으로 보여주자. 메조틴트는 그 생각에 딱 어울리는 기법이었어요. 원래 메조틴트는 흑백인데, 저는 좀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왜 검정만 해야 하나. 투명액을 섞어 회색톤으로 바꾸었죠. 그러니까 창호지의 은은함, 손수건의 부드러운 느낌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하는 고민에서 벗어났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죠.”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헛되지 않으려면 우선 갤러리스트의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 아무리 예술적 가치가 있어도 갤러리스트가 “이건 못 팔겠다”고 하면 새 작업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예술성과 대중성은 작가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두 마리 토끼다. “너무 작품성에 빠지지 말고 타협을 해야 먹고살 수 있겠죠. 그래도 저는 신념이 있었어요. ‘좋은 작품은 팔린다’라는.”

일주일 만에 만들어 가져간 가로 30㎝, 세로 35㎝ ‘손수건 작품’을 보고 “와, 이런 작품 처음 본다”는 화상의 반색에 ‘이제 살았구나, 작품 계속하며 살 수 있겠구나’ 비로소 안도했다고 그는 말한다. “만약 ‘손수건’이 잘 안 됐으면 그냥 배추장사나 했을 것”이라고도 털어놓았다. 그렇게 만든 작품은 프랫 그래픽센터에 걸렸고, 이듬해인 1974년 영국 브래드포드 판화 비엔날레에도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당시 작품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사 간 사람 중에는 나중에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리처드 스나이더의 부인도 있었다.


▎회화 작업 ‘A ROCK WITH HAT’ (2018), Acrylic and oil on canvas, 122×102㎝
매년 판화를 10점가량 제작했고, ‘K.B.HWANG’이라는 명성도 작품만큼 쌓여갔다.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 브리티시 뮤지엄, 런던 빅토리아&알버트 뮤지엄,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브뤼셀 왕립 도서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별안간 유고슬라비아 조직위원회가 연락을 해왔다. 전 세계에서 작가 20명을 선정해 포스터를 만들려고 하는데 참가해달라는 얘기였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난색을 표했더니, 담당자가 힌트를 주더라고요. 너희 나라에는 ‘토끼와 거북이’ 얘기가 없느냐고요. 그래서 잔디밭 칠판 위에 토끼와 거북이가 있는 묘한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어 보냈는데, 제 작품으로 만든 포스터가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하더라고요. 20명 중에는 데이비드 호크니도 있었는데 말이죠.”

30년간의 파리와 뉴욕 판화시대 접고, 2000년 귀국해 회화로


▎황규백 작가의 판화 작업에 터닝 포인트가 됐던 ‘White Handkerchief on the Grass’(1973) /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황규백 작가
1990년대 중반 들어 세계적으로 판화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야했다. 판을 네다섯 장 만들어 파고 찍어야 하는 판화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작업이기도 했다.

2000년 귀국을 앞두고 혼자 이탈리아 만토바를 찾았다. 프레스코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준비는 역시 철저했다. 3개월간 이탈리아어를 배웠다. “프랑스어와 크게 다르지 않아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칠순을 앞두고 판화에서 회화로 전향했다. 판화 기법상 자유롭지 못했던 부분을 붓으로 더 과감하게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판화가는 그림을 못 그린다는 편견에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고도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이프를 적극 활용했다. 물감을 나이프로 문대어 오묘한 색의 혼합을 이끌어냈다. “바위를 그린다면 정말 바위처럼 그려야죠. 그런데 붓으로 일일이 칠하기보다 나이프를 이용하는 게 효율적이에요. 그렇게 하면 벽돌 하나에도 골동품처럼 세월의 때를 그릴 수 있죠.” 손때 묻은 판화 도구는 강원도 원주에 개관한 한솔뮤지엄(현재 뮤지엄 산)에 판화 공방을 만들어달라고 기증했다.


▎판문점 도보다리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을 형상화한 ‘SOUTH AND NORTH SUMMIT’(2018)을 설명하고 있는 황규백 작가 / 사진:정형모 기자
2월 14일부터 3월 10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리고 있는 [황규백] 전은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이후 첫 전시다. 판화 없이 모두 회화로만 20여 점을 준비했다.

그의 그림은 초현실적인 측면이 돋보인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푸르스름한 달, 열린 문밖으로 바로 보이는 호수와 백조, 바늘이 없는 시계, 주인 없는 바이올린 등이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박민혜 가나아트센터 큐레이터는 “일상적 오브제를 그것이 속한 환경에서 떼어내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초현실주의 기법 중 하나인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 잘 구현돼 있다”고 설명한다.

황 작가는 “작품 속 풍경과 정물은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자연 다큐멘터리건 패션잡지건 그가 본 것은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섞여 다시 그림 속 오브제로 구현된다. 예를 들어 구석에 가만히 서 있는 우산은 작가의 페르소나다. 또 화면 가운데를 널찍한 벽으로 그려낸 집은 “구도자, 인간 그 이상의 존재가 살고 있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접혀 있는 쪽지 그림은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기에 관람자에게 생각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번 그림 전시에서 작가가 가장 애착을 보인 작품은 아크릴과 오일로 그린 ‘SOUTH AND NOTRH SUMMIT’(2018)이다. 지난해 남북 정상이 함께 만난 판문점 도보다리를 그린 작품인데, 창가에 기대 있는 우산은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엿듣는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작가는 에너지가 넘쳤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일 없이 매일 작업에 몰두한다. 자식 없이 부인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예술가의 관심은 오로지 작품이다.

“난 죽는 날까지 붓을 놓으면 안 돼요. 그림을 보면서 다음엔 뭘 그릴까 늘 생각하고, 상상의 세계에서 살면서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합니다. 좋은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주거든요.”

-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쳐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 hyung@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201903호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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