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노트르담 대성당, 다성음악의 산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다성음악이 태어난 곳이다. 다성음악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적 발명품 중 하나이자 근대 유럽 음악의 키워드다.

▎노트르담 대성당. 다성음악이 태어난 곳이다.
지난 4월 15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첨탑과 주변 지붕 일부를 처참하게 훼손한 불은 발화 10시간 만에 잡혔다. 미국 가톨릭대학 베르뮤데츠 교수는 유럽 문명의 뿌리가 탔다며 유감을 표했다. 기원전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고려하면 이런 평가는 다소 과장된 것처럼 들리지만 어떤 면에선 분명히 맞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이 성당은 근대 서구 음악의 뿌리가 싹텄던 곳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를 관통하는 센강 가운데에 자리한 시테섬 동쪽에 있다. 파리와 프랑스의 기원인 이 섬은 파리 시내와 다리들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한 퐁네프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다리일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착공하던 무렵인 12세기에 파리는 여러 면에서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중심지가 되고 있었다. 강력한 세속 권력과 함께 종교 권력이 파리에 터를 잡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러한 권력의 도시 파리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건축물이었다.

대성당에는 부속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는 이후 성당 및 교권으로부터 독립해 유럽의 첫 대학교가 되더니, 이후 유럽의 지식과 교육의 중심지로 발전했고, 유럽 여러 나라로부터 유학생들을 받았다. 파리 대학교다. 유럽 여러 도시에서 파리 대학교를 모범 삼아 대학교가 생겨났다. 파리 시내에 분산되어 있던 건물들 중에서 파리 대학교의 본부 격으로 유명한 것이 소르본이다. 최근 파리 4대학과 6대학이 통합되며 소르본 대학이라는 명칭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노트르담 양식으로 불리기 시작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미창’. 고딕양식의 크고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행정관직을 맡았던 레오냉(Léonin, 1150~1201)은 파리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고, 노트르담 합창단장과 작곡가로서 역할을 했다. 레오냉과 그의 제자들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활동하며 ‘노트르담 악파’ 혹은 ‘파리 악파’를 형성했다. 노트르담 양식 혹은 파리 양식이라 불리던 독특한 음악 양식이 이때 등장했다. 이 양식의 키워드가 다성음악(多聲音樂/polyphony)이다. 다성음악의 반대 개념은 단성음악(單聲音樂/monophony)이다. 단성음악이 혼자 부르는 노래 혹은 여럿이 하나의 선율을 ‘같이’ 부르는 노래 혹은 음악을 가리키면 다성음악은 여럿이 서로 다른 복수의 선율들을 부르는 노래와 음악을 지칭한다. 역사적으로 단성음악이 먼저 출현했고 다성음악은 나중에, 즉 12세기 말경에 등장했다. 오랫동안 다성음악은 유럽적 현상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단성음악은 아무래도 단순하며, 다성음악은 복잡해서 대체로 예술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 복잡성의 이념은 이렇다. 서로 다른 선율 각자가 자율성을 가지되, 동시에 그것들이 서로 잘 어울려 조화로운 음향을 만들어낸다는 것. 다성음악의 감상자는 각 성부를 좇아가면서도 성부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상위 조직을 놓치지 말아야 그 오묘한 미학을 느낄 수 있다. 다성음악의 이러한 이념은 민주주의 국가와 시민적 삶을 떠올리게 한다. 민주국가에서 개인들은 자율성을 갖고 살아간다. 개인들의 서로 다른 삶은 서로 잘 어울려 민주체제와 국가를 만들어낸다. 마치 잘 조화된 각각의 선율이 전체로서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가장 단순한 다성음악을 생활 속에서 실현해보자. 당신은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간다. 당신이 노래를 부를 때 친구들이 그 노래의 선율을 그대로 따라 부른다면 단성음악이고, 누군가가 당신의 선율 위에 다른 음들을 계속 붙여 노래한다면 다성음악이다. 이런 식의 초보적 다성음악으로 해바라기의 ‘그날 이후(졸업)’를 꼽을 수 있겠다. “어울려 지내던 긴 세월이 지나고, 홀로이 외로운 세상으로 나가네”의 선율을 이주호가 부르면 다른 멤버가 이주호의 선율 위로 작게 화음을 붙인다. 정확하게 3도 위 음들의 연쇄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 소리뿐’과 같은 노래 후반부에서 당신의 친구가 선율을 부를 때(이를테면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 걸” 같은 부분의 선율을 부를 때) 당신은 친구의 선율 위에서 (그 선율과 다른 것으로서) 길게 내지르는 음을 부른다.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누군가 용기 백배하여(!) 부를 때도, 이 장쾌한 노래의 후반부에서 그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하며 선율에서 벗어난 어떤 높은 음을 길게 질러대면 그 음을 배경 삼아 당신과 다른 친구들은 선율을 부른다. 모두 다성음악적 상황이다.

다성음악은 그 이념을 계속 세련되게 발전시키면서 이후 예술적 서양음악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로 여겨져왔다. 최고 수준의 다성음악가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다. 그의 피아노 혹은 오르간을 위한 대위법적 음악들은 (대위법이라는 용어는 고차원적 다성음악을 가리킨다) 한 연주자가 가진 10개 손가락을 통해 많게는 6개의 서로 다른 선율이 연주된다.

한국 전통음악도 다성음악일까


▎최고 수준의 다성음악을 보여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한편으로 이것은 비서구권이 다성음악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창안해내지 못했고, 다성음악으로 평가할 수 있을 혁신적 음악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전통음악 중에서도 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이 있는데, 이런 음악을 다성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이견들이 있다. 여러 연주자가 연주한다는 점에서는 다성음악일 수 있다. 하지만 복수의 연주자가 서로 다른 선율을 연주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나의 선율을 여러 연주자가 약간씩만 수정하여 연주할 뿐이다. 그래서 좀 덜 발달한 다성음악, 즉 헤테로포니라고 평하는 이가 많다.

서유럽에서도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다성음악이 늦게 등장했다. 파리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동안 이탈리아는 중세의 전통인 단성음악을 답습했다. 그 이유로 학자들은 자유로운 세속 권력의 부재 및 교황청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교권이 세상을 압도했던 중세 말의 현실을 든다. 과거의 종교적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했던 교황이 프랑스에서의 실험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다. 교황이 판단하기에 화려해지고 복잡해진 다성음악은 가사를 전달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하나의 가사를 서로 다른 선율로 여러 명이 부르면, 하나의 가사를 여러 명이 하나의 선율로 부르는 것에 비해 듣는 이의 입장에서, 가사를 파악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은 맞다. 우리는 공식석상에서 애국가를 제창, 즉 단성음악으로 부르지 다성음악으로 부르지 않는다. 다성음악은 진지하고 엄격한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편이다. 결국 이탈리아에서는 14세기가 되어서야 다성음악이 등장했다. 그것도 종교음악이 아닌 세속음악의 영역에서 말이다.

다성음악은 음악 예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케 하는 계기가 된다. 음악은 단순히 가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일까? 가사 내용의 전달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인류가 하고 있음을 고려하자. 이를테면 감정에 호소하거나, 예술적 세공(細工)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음을 고려하자. 이런 것들을 여러 이유로 싫어하는 이들에게 노래는 낭송에 가까운 어떤 것이어야 한다. 할 말이 많고 불만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즐기는 랩은 노래에서 벗어나 낭송에 가까워진 음악이다. 낭송이 단순하다고 느끼는 이들은 음풍농월하는 듯한 화려한 선율의 세계에 끌릴 것이다. 화려한 선율은 시(詩)로서의 가사를 압도하는 음악적인 무엇이다. 2016년 미국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아마도 노래의 선율보다는 가사가 가진 문학성을 높이 산 결과인 듯하다.

민속음악이나 대중음악은 복잡할 수밖에 없는 다성음악적 특성을 여간해서는 취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 여러 명이 등장하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의 대부분도 다성음악이 아닌 제창, 즉 단성음악을 한다. 속된 말로 떼창이다. ‘제창-단성음악-떼창’은 엄밀히 말하면 그룹 구성원들의 개성을 살리는 쪽이 아닌, 그룹의 전체주의적 특성을 살리는 쪽으로 가는 전략이다. 이른바 ‘칼군무’가 어울리는 이유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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