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타 자블루도비치(Anita Zabludowicz)는 영국인 컬렉터이면서 예술 후원자, 자선가다. 아니타는 남편과 함께 1994년부터 컬렉션을 시작했다. 부부의 컬렉션은 기초부터 단단했다. 컬렉션을 시작하기 전에 아니타는 크리스티에서 현대미술과 경매를 공부했으며 2년 동안 박물관과 갤러리를 방문하며 수많은 전시를 보았다. 당연히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Anita Zabludowicz. Courtesy Zabludowicz Collection. Photo: David Bebb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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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타 자블루도비치는 어머니와 함께 미술관에 자주 다니면서 예술에 흥미를 갖게 됐다. 그녀는 뉴캐슬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남편, 네 자녀와 함께 런던에 살고 있다. 아니타는 뉴캐슬 예술기술대학에서 미술 및 미술사를 전공한 후 10년 동안 인테리어 건축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크리스티에서 현대미술과 경매를 공부했다. 남편 포유 자블루도비치는 1953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으며 고향에서 학교를 졸업했다. 텔아비브 대학교에서 경제정치학을 전공한 후 1990년부터 글로벌 주식회사 테메러스(Tamares)를 경영하고 있다.아니타는 어머니와 박물관에 무수히 다니면서도 ‘아트 컬렉터’에 대해 알지 못했었다. 결혼한 후 우연히 만난 컬렉터에게서 아트 컬렉터라는 특별한 활동을 들었다. 크리스티에서 현대미술과 경매를 배우며 안목을 높여가면서 앞으로 수집할 예술의 방향을 잡게 됐다. 부부의 초기 수집 방향은 영국 모던아트였다. 소더비 경매에서 구입한 영국 작가 벤 니컬슨(Benjamin Lauder Nicholson, 1894~1982)의 작품이 아니타의 첫 수집품이었다.
이후 남편 포유가 매슈 바니의 사진을 구입하면서 수집 방향이 바뀌었다. 이 작품을 구입하기 전까지 자블루도비치 부부는 그들의 집에 사진이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매슈 바니의 사진은 부부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해주고 새로운 취향을 불어넣어주었다. 새로운 테이트 모던 건축 프로젝트에 후원하면서 건축가 토마스 딘(Thomas Dean)을 소개받았다. 생존 건축가와 함께 나눈 건축과 사진에 관한 대화는 부부가 컨템퍼러리 아트에 열정을 불태우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시각적 감수성이 뛰어난 독일 사진 작가 볼프강 틸만스를 소개한 사람도 토마스 딘이었다. 이후 부부는 디지털 아트의 매력에 본능적으로 끌렸다. 그들에게 디지털 아트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예술 세계를 이끌어갈 가장 중요한 분야였다. 아니타는 디지털 아트뿐 아니라 개념미술을 좋아했다. 그녀는 젊은 작가들에게 애정을 가졌고 늘 엽기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작품을 제작하는 그들과 만남을 즐겼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야망과 포부를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할 플랫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아니타는 남편에게 젊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포유 자블루도비치는 아니타의 제안에 동의했고 재단의 설립이 결정됐다. 젊은 작가들은 대중과 함께하는 퍼포먼스와 엔터테인먼트가 원활하게 수용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그리고 아트와 테크로놀로지의 결합체인 가상현실(VR) 체험실은 필수 공간이었다. 부부는 1999년부터 테크놀로지 아트 작품을 수집했는데 이런 배경으로 다른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선호하는 화이트 큐브 공간을 피하고자 했다.
▎Donna Huanca, SCAR CYMBALS, 2016, performance view at Zabludowicz Collection, London. Photo: Thierry B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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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로 대중이 직접 체험
▎Installation view: Rachel Maclean, Zabludowicz Collection, London. I’m Terribly Sorry, 2018. Virtual reality installation. Produced in collaboration with Werkflow. Commissioned in partnership with Arsenal Contemporary. Courtesy the artist and Zabludowicz Collection. Photo: David Bebb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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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을 시작하면서 부부는 난관에 부딪쳤다. 정작 그들이 사고자 했던 작품에 접근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니타는 이 과정에서 컬렉션은 대화와 소통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컬렉션은 오로지 그들이 혼자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2007년 아니타와 남편은 런던에 있는 19세기 감리교 예배당에 전시 공간을 열었다. 영국 및 해외 작가 및 큐레이터들과 함께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되도록 많은 대중이 방문해서 작품을 감상하고 소통하길 원하며 그에 필요한 모든 노력과 비용을 스스로 충당하고 있다. 개인 박물관인 프랑스의 루이비통 재단과 비교하면 규모는 매우 협소하다. 두 재단의 성향도 매우 다르다. 다행스럽게도 대중이 무료로 감상할 수 있고 신진 작가들에게 우선적으로 전시를 기획해주는 이런 공간이야말로 작가들에게는 매우 이상적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자블루도비치 재단은 무료이기 때문에 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설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 어느 곳에 가도 붐비는 VR 조차도 여유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블루도비치 부부의 소장품 감상, 신진 작가 발견의 즐거움, 영상작품들과 VR 작품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세 가지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예배당이었던 건축물이 컨템퍼러리 아트 전시장으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교회로 사용되었을 때 골조를 그대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전시 공간이 무조건 크다고 작가들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자블루도비치 컬렉션 공간은 규모는 작지만 대중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가족들의 방문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VR체험을 여러 나라에서 갤러리와 페어, 비엔날레에서 해봤지만 15m가량을 VR 마스크를 끼고 걸어서 왕복하면서 작품 속에 빠져본 경험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일반적으로는 그 자리에 서서 보거나 앞으로 몇 발자국 나갔다가 돌아오는 작은 공간만을 요구한다. 게다가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이 소장된 곳에서 미술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의 드로잉을 보는 경험도 신선했다.어느새 컬렉션의 역사가 25년이 되어 작품 수는 3500점이 넘었다. 작품들은 페인팅, 드로잉, 사진, 영상, 퍼포먼스, VR, 설치, 조각 등 다양하지만 한결같이 젊은 신진 작가들로 선별했다. 전 세계에서 VR을 대중에게 처음 소개한 아트 재단도 바로 이곳이다. 25년 전부터 수집해온 젊은 신진 작가들은 그 사이 나이도 들었고 미술계에서 높이 평가받는 대가가 되어 있다.
웹사이트(www.zabludowiczcollection.com)에 등록된 작가 리스트는 부부가 유럽과 북아메리카 작가에 특히 더 많은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부부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전 세계의 박물관 전시에 작품을 대여해주고 있다.
▎World Receivers, 2019, Installation View, Zabludowicz Collection, London. Photo: Tim Bowdit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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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타는 무명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한다는 것은 가장 큰 모험이란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그들에게 후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부부는 핀란드 로비사에 있는 살비살로(Sarvisalo)섬의 3 개 지역에서 초청된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제작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2015 년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아티스트 레지던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영국 황실에서는 예술 메세나로서의 부부의 공로로 신진 작가들의 예술 작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점을 인정해 OBE(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훈장을 수여했다. 자블루도비치 부부는 자녀들과 그들의 열정을 나누고 있으며 자녀들도 적극적으로 부모의 메세나 행로에 동반하고 있다.컬렉터들에게 가장 높은 안목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젊은 신진 작가의 작품을 주관을 갖고 과감하게 선택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사를 공부해야하고 미술시장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며 미술계에서 작가들과 직접 교류하는 딜러, 큐레이터, 평론가들과 소통해야 한다. 비록 젊은 시절부터 컬렉션을 했다고 해도 개인 컬렉터들의 재단을 방문해보면 이미 그 가치가 치솟아버린 작가들이 대부분이고 막 보자르를 졸업한 젊은 무명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런던 중심부에 있는 자블루도비치 컬렉션(Zabludowicz collection) 재단에서는 신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다. 전시를 얼핏 보아도 컬렉터가 무명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2층 전시장에서 눈에 띈 작가는 1990년생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제스퍼 스파이세로(Jasper Spicero)였다. 몇 년 전 파리 뉴갤러리 전시에서 단추, 넥타이, 모자, 신발끈, 인형, 스탠드, 평범한 나무 테이블과 의자 등 생활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재료로 완성한 설치작품들을 소개했던 작가였다. 당시 받았던 신선한 감동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젊은 작가를 파리 갤러리와 런던에서, 특히 자블루도비치 소장품에서 재발견하는 기쁨은 매우 컸다. 자블루도비치의 소장품을 보면 컬렉터들은 자신의 국적과 무관하게 더욱 더 세계적인 컬렉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적인 소장품을 이어가는 컬렉터들의 욕구에 부응하듯 전 세계 예술가들의 실력도 그 한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은 개인 대 개인의 경쟁은 물론이고 회화가 더 월등한가, 조각이 더 월등한가를 두고 장르의 결합을 벌였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였다. 16~17세기에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푸줏간과 시골 농가에까지 예술 작품이 걸릴 수 있었던 것 역시 예술가들의 선의의 경쟁이 바탕이 됐다. 그리고 이런 훌륭한 작품들을 직접 보기 위해 수집가들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두 달이 넘는 긴 마차여행을 감행했었다.
런던에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리즈와 프리즈 마스터스 아트 페어를 제외하고도 선데이 아트 페어(Sunday Art Fair), 런던 오리지널 프린트 페어(London Original Print Fair), 스타트 아트 페어(START Art Fair), 브리티시 아트 페어 (British Art Fair), 1-54 컨템퍼러리 아트 페어(1-54 Contemporary Art Fair) 등 다양한 아트페어가 있어서 신진 작가 발굴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호기심 많은 컬렉터들은 16세기 수집가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페어와 갤러리를 방문해 실있는 젊은 작가들을 찾아다닌다.
▎Haroon Mirza/hrm199, Pathological Theology, 2017, Installation View, Zabludowicz Collection. Photo: Tim Bowdit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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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블로브스키 컬렉션은 작가, 큐레이터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예술을 대중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이상적인 전시 공간이다. 디지털 아트가 주를 이루는 자블로브스키 컬렉션에서 보여주고 있는 예술은 21세기 현실을 담은 체험의 기쁨이었다.
[박스기사] 작가들을 세 종류로 분류
▎Installation view Jon Rafman, 2015 at Zabludowicz Collection, London. Photo: Thierry B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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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약 5~10년 전부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토비 지글러(Toby Ziegler), 리나 베너지(Rina Banerjee), 네일 벨루파(Neïl Beloufa), 마틴 보이스(Martin Boyce), 애런 커리(Aaron Curry), 덱스터 달우드(Dexter Dalwood), 샘 폴(Sam Falls), 라이언 갠더(Ryan Gander), 이사 젠켄(Isa Genzken), 엘라드 라슬리(Elad Lassry), 사라 모리스(Sarah Lucas), 조너던 몽크(Jonathan Monk), 에바 로스차일드(Eva Rothschild),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울라 폰 브란덴부르크(Ulla von Brandenburg)…②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스타 작가들: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안드레아 걸스키(Andreas Gursky),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피에르 휴그(Pierre Huyghe), 매슈 데이 잭슨(Matthew Day Jackson), 신디 셔먼(Cindy Sherman), 토마스 슈트루트(Thomas Struth), 제프 월(Jeff Wall), 크리스토펄 울(Christopher Wool)…③ 아시아 작가들: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송송리(Songsong Li),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 백남준(Nam June Paik), 구앙 시아오(Guan Xiao), 양혜규(Haegue Yang), 유민준(Minjun Yue), 박준범(Junebum Park), 박기준(Ki-June Park)…
▎Signe Pierce, VORTEXTU ALIT Y, 2019, Installation View, Zabludowicz Collection, London. Photo: Tim Bowdit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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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y Wood, Mad at Me, 2018, Installation View, Zabludowicz Collection, London. Photo Tim Bowdit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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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an trecartin, lizzie Fitch/Ryan trecartin, Priority innfield (way), 2013, installation View, Zabludowicz collection, london, 2014. Photo: Stuart whipp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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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na Huanca, ScAR cYMbAlS, 2016, installation view, Zabludowicz collection, london. Photo: thierry b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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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