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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음악과 삶 | 똑똑한 고등학생과의 논문 협업 

 

음악학자는 음악 현상을 연구한다. 그는 박사논문을 제출해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어 논문을 쓴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을 고등학생이 음악학자와 함께 음악학 논문을 쓸 수 있을까.

▎서울 고려대학교 후문 게시판에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고교 재학 시절 의학 논문 1저자 등재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대자보가 붙어 있다. / 사진:뉴시스
2016년 봄, 정부는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 사업’의 하나로 프라임(PRIME, 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 사업을 추진했다. 미래 사회가 요구한다는 공학계열 학생들을 양성하고자 관련 대학 정원을 늘리고 인문 및 예체능계 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 지원 사업이었다. 이 사업에 선정된 21개 대학이 교육부로부터 거액의 지원금을 받았고, 그 대학들에서 인문사회-자연과학, 예체능계열 정원이 전부 4429명 줄었으며, 같은 수만큼의 공학계열 정원이 늘었다. 내가 일하는 국립안동대학교도 이 사업에 지원서를 냈으나 선정되지 못했다. 당시 구조조정 대상 학과 구성원들이 이 사업에 반대했었다.

내가 속한 음악과는 30명 정원이었는데 15명 정원인 음악교육과로 바뀔 계획이었다. 입시 경쟁률이 낮은 과들이 폐지될 계획이었으며, 그 과 교수들은 교양학부로 소속이 바뀔 계획이었다. 음악과 폐지로 받아들인 거의 모든 음악과 학생, 동문, 교수가 극력 반대했고, 음악교육과로의 전환을 적극 지지했던 나는 졸지에 매국노가 되어버렸다. 어떤 이는 ‘국립대에서 음악예술 분야는 보호 대상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었다. 이 논리는 맞지 않다. 한국은 세계에서 음악대학과 음악과가 가장 많은 나라다. 많은 사립대가 음악대학과 음악과를 없앤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음악과가 학문적 보호대상이라는 논리는 궁색하다. 어찌 됐든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음악 분야에서 보호대상이 되어야 마땅한 전공 혹은 학과가 있다면 인기 없는 음악학과일 것이다. 화려한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며, 십중팔구 ‘그런 학문도 있나?’ 같은 질문을 불러일으킬 음악학과에서는 다양한 음악 현상을 관찰하여 그 속에서 어떤 패턴이나 원리가 있는지를 연구한다. 음악은 예술로 분류되는 경향이 강하니 넓게 보아 인문학 혹은 이른바 자유과(liberal arts)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회적 현상이자 생물학적 현상이며 물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작곡하고 연주하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된다면 공학적 현상이기도 하다. 이처럼 음악학은 여러 특성을 갖는 현상을 연구한다.

나는 SQL(Structured Query Language)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복잡하고 예술적인 현대음악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짜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QL은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의 생성과 관리에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다.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는 포털이나 검색 엔진의 개념적 모델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나 컴퓨터 기반 음악분석 시스템에 대한 ‘개념’은 여전히 잘 알지만, 프로그래밍 언어의 기술적 측면에는 감이 좀 떨어졌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면 내 연구에 진척이 있었을 것이다. 대학생도 좋고 고등학생도 좋다. 내가 개념을 설명하고 컴퓨터를 잘하는 과학고 학생이 나와 협업한다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 그 과정과 관련된 기술적·음악학적 문제들을 정리하면 논문이 나올 수 있다.

당연히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주도적이며, 그 학생은 내 수족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똑똑하면 수족이되 이 모든 과정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그를 내 유능한 수족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 모든 과정을 친절히 설명할 것이다. 그가 영어를 잘하면 나는 그에게 영작을 시킬 수도 있다. 전문 용어 관련 몇몇 영단어는 내가 미리 알려준다. 그가 그것들을 잘 엮어 영작해 오면, 내가 최종적으로 교정할 것이다. 완성된 그 글이 논리성과 독창성을 갖추었다면 나는 그 글을 음악학 학술지에 논문으로 제출해 심사받게 할 것이다. 심사 결과 그 논문은 게재되거나 기각될 것이다. 그 학생에게 나는 무엇을 주어야 하나? 공짜로 그 일들을 부탁하나? 논문 저자 중에 하나로 그를 끼워주면 어떨까. 나를 도왔던 학생들 중에서 제일 열심히 했다면 1저자도 가능하다. 물론 내가 책임저자다. 내 지위가 더 높다. 그런 내가 논문 탈고 당시의 연구윤리에 기초해 그의 1저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나는 평범한 일반고에 다니는 성실한 학생과도 협업할 수 있다. 음악이 사회적 현상이라고 했다. 나는 어떤 특정한 소리 현상 혹은 음악작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의 미학적·심리적 반응을 살피는 연구를 생각해낼 수 있다. 사회조사연구(survey)는 기본적으로 여러 계층, 여러 세대, 여러 지역에서 수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야 한다. 내가 고안한 문제의식을 잘 이해한 후 일반고 학생은 수천 명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과 대면해 질문하고, 설문지를 회수해 1차 분석을 할 수 있다. 나와 그는 같이 일을 마무리해 논문을 쓸 수 있다. 고등학생들이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이상의 이야기는 특정 고교생이 과거에 정말로 논문을 썼는지를 밝혀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구윤리에 기초한 제1저자


▎미국에는 고등학생들의 논문만 게재하는 학술지도 있다. / 사진:https://ed.unc.edu/high-school-journal/
성과급제가 시행된 후 많은 대학교수가 논문의 양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명문대 이공계열 교수의 논문 편수는 백 수십 편에 이른다. 인문학 분야 교수의 논문 편수는 많아봐야 십수 편이다. 백 수십 편의 논문은 분명 여러 사람과 협업해 썼을 것이다. 주로 대학원생들이나 다른 교수들과 협업한 연구가 많겠지만, 언제부턴가 고교생도 가세했다. 9월 11일 자 MBC 뉴스데스크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고교생이 저자에 포함된 논문 총수는 411건이며, 저자로 등록된 고교생 수는 1218명이었다. 2007년에 학생부 종합전형이 처음 도입됐고, 2014년부터는 학생부에 논문 실적을 쓸 수 없었다. 이 조치로 인해 고교생이 논문을 써야 할 중요한 이유가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2014년 이후에도 고교생이 교수와 함께 논문을 썼을 수 있다. 아마도 외국 대학 진학용일 가능성이 크다.

서민들에게 이 상황은 기막히다. 주위에 아는 교수가 없는 이가 더 많지 않은가. 그들은 애초에 논문 쓸 기회를 원천 봉쇄당한 것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의 박탈감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고교생 논문저자의 부모가 교수였다면 분노감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공정이라는 가치가 이렇게 교묘하게 무너지다니. 물론 그런 제도가 어쨌든 합법적으로 허가된 적이 있었고 언론에도 보도되고 장려되었음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상황과 무관하게, 나는 앞서 가정했던 프로그래밍 잘하는 과학고 학생이나 똑똑한 일반고 학생과의 협업을 십수 년 동안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내 제자들과는 그런 협동연구를 할 수 없었다. 논문 작성은 피아노 치고 바이올린 연주하는 것에만 관심 있는 그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일이 절대 아니었다.

나는 고등학생이 교수와 함께 논문을 쓴 후 그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에 찬성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애초 취지는 서민 배려였으며, 어찌 됐든 그런 제도가 논문을 쓰게 하는 동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고등학생에게 교수를 쉽게 만나게 해주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교수와 협업하기를 원하는 모든 학생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한다면 대학입시는 창조적 일을 해낸 아이들을 뽑을 기회로 여전히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인문사회계열과 자연과학계열, 예체능계열 정원을 줄이는 프라임 사업의 취지를 지지한다. 학생 정원을 줄이는 일을 이 분야들을 탄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어떤 학문의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 모든 대학에서) 그 학과가 계속 존속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분야 학자들의 생활과 연구, 그 수요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이공계열 학생들이 이수해야 하는 인문학 강좌 수를 과거보다 더 늘림으로써 인문학 교수들의 직을 보장해줄 수 있다. 정부는 인문학 교수 임용률을 대학평가에 반영해 해당 분야 교수 임용률을 높이도록 대학들을 압박할 수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원이 줄어드는 분야의 교수들이 지역 내 똑똑한 고등학생과 협업하도록 정책적으로 유인하면 어떨까. 지식인들의 하방운동이 필요해 보인다. 학령인구 감소, 이공계열 학생들이 더 많이 요구되는 미래사회, 고등학생들이 논문 써서 대학 가는 창의적 제도의 존속을 위해서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1910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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