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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 반헤렌츠] “스스로의 선택을 믿어라” 

 

수집가에게 건축은 어떤 의미일까? 루이비통의 베르나 아르노 회장이 프랑크 게리를 초대해 프랑스 역사에 남을 개인 박물관을 건설하고 스위스 컬렉터인 울리 시그도 콩쿠르에 당선된 헤르조그와 드뫼롱(Herzog&de Meuron)에게 위임해 시그 박물관을 건설 중이다. 또 엘리 브로드는 LA에 The Broad 박물관을 건설하기 위해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 건축사에 1억4000만 달러를 과감히 투자했다. 컬렉터가 설립한 개인 박물관은 정기적으로 새로운 주제에 맞는 전시를 기획하는 ‘새 공간의 창조를 위한 실험실’이다. 이 실험실을 담고 있는 대형 조각과 같은 외벽이 건축이다.

▎WALTER VANHAERENTS AND THE DEATH OF JAMES LEE BYARS INSTALLATION © Vanhaerents Art Collection, Brussels Photo by Karel Duerinckx
바젤 페어를 찾는 사람들은 순례자들처럼 어김없이 바이엘러 재단(Fondation Beyeler)을 방문해 새로운 전시를 관람한다. 해마다 수집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전시 기획뿐 아니라 수련을 띄워 놓은 렌초 피아노(Renzo Piano)의 정원을 아우르는 투명한 유리 건축물이다. 이처럼 훌륭한 공간에서 자신의 소장품을 감상하는 것이 모든 수집가의 꿈이다.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헵워스 웨이크필드 건물을 보고 과감히 기증을 결정한 런던의 수집가 팀 사이어(Tim Sayer) 부부는 건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전형적인 모델이다. 부부는 박물관 건축에 반해 그곳에 자신의 수집품이 전시되길 간절히 원하면서 기증을 결정했다. 반면 건축물에 감동받아 본격적으로 수집가의 삶을 선택한 컬렉터도 있다. 벨기에의 모든 컬렉터가 입을 모아 칭송하는 컬렉터, 월터 반헤렌츠(Walter Vanhaerents)다.

그의 초기 수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수집가의 길을 걷게 된 데는 1980년대 새로 지은 독일 박물관들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반헤렌츠는 이미 건축 비즈니스 전문가로서 공간과 공간 내부에 설치된 작품의 관계를 섬세하게 느낄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헤렌츠는 박물관 방문을 통해 난생처음 느껴보는 뜻밖의 감동을 받았다. 독일을 방문 중이던 그에게 예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준 건축가는 비엔나 건축가 한스 홀레인(Hans Hollein 1934~2014)과 영국 건축가 제임스 스터링(James Stirling, 1926~1992)이다. 1985년 풀리처상을 받은 한스 홀레인은 ‘사회의 지진계 건축가’로 불리는 국제적인 인물이다. 그는 독일 묀헨글라트바흐에 압타이베르크 박물관(Museum Abteiberg), 프랑크푸르트에 현대미술관을 건축했다. 제임스 스터링은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과 주립 미술 음악대학을 건축했다.


▎David Altmejd THE HUNTER, 2007, WOOD, MIRROR, EPOXY CLAY, PAINT, HORSE HAIR, 383,5×125,7×104,1㎝, © Vanhaerents Art Collection, Brussels
신축된 박물관 건축을 보는 것이 목적인 건축 답사 여행 당시 그는 이미 5년 동안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다분히 고전적인 수집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건축물 내부에 설치된 작품들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에너지들은 그가 사물과 현상을 보아왔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

이렇듯 건축이 동기를 불어넣은 컬렉터의 첫 수집품이 큐비스트 조각가 자크 립시츠(Jacques Lipchitz)의 조각 작품인 것은 놀랍지 않다. [더 어라이벌(The Arrival)] 조각은 반헤렌츠에게는 마치 새로운 세계에 도착해 발견으로 가득한 여행을 막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이 여행은 이후 40년 동안 지속됐다. 반헤렌츠가 만든 특별한 섬에는 어느덧 대중이 정박하고 있는 수집품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Francesco Vezzoli, © Vanhaerents Art Collection


이성보다 본능과 직관을 따르다


▎Mr. © Vanhaerents Art Collection, Brussels
40년에 걸친 수집에는 철저한 본능과 직관에 의존하는 반헤 렌츠만의 탁월한 선택이 바탕이 됐다. 그는 이성으로 결정하는 일을 피하고 기존 컬렉션과 일관성이 있는지도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본능적인 감동이다. 이렇게 구입한 작품들이 때로는 심하게 충돌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난 후에 작품 간에 어떤 연결고리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터득하게 된다. 그는 철저히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의 순간과 미래의 비전을 향한 선택을 함으로써 훨씬 더 큰 기쁨을 얻고자 한다.

훌륭한 작품을 찾기 위한 그의 모험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발길은 대부분 비엔날레, 갤러리, 작가의 아틀리에로 향한다. 그가 선호하는 전시는 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보는 기획전이다. 반면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아트 페어에서는 확신이 설 때까지 결정의 시간을 한 박자 늦추고 충분히 숙고한다. 그가 이렇게 신중하게 선정한 작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저명해진 작가들, 브루스 노먼, 제임스 리 바이어스, 크리스토퍼 울, 제프 쿤스, 타카시 무라카미, 폴 매카시, 빌 비올라, 신디 셔먼, 우고 론디노네 등과 최근 미술계의 떠오르는 젊은 스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페인팅, 조각, 드로잉, 사진, 설치, 비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 작품은 컨템퍼러리 아트 시장의 활력을 드러낸다.


▎Painting depot © Vanhaerents Art Collection, Brussels
수집 기간이 10년에 달하면서 구입한 작품 수가 늘어났고 수장고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늘 시간을 두고 고민하는 태도를 지닌 그는 장소를 물색하는 데도 오랜 시간을 들였다. 결국 지난 수십 년간 유럽 내에서도 가장 예술 실험에 앞장섰던 도시 브뤼셀로 정했다. 그리고 브뤼셀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 단사르트(Dansaert) 지구의 주요 공공 예술기관 및 갤러리들과 인접한 건물을 발견했다. 브뤼셀 중심을 기준으로 동쪽에 자리한 총면적 3500㎡인 이 건물은 브뤼셀 박물관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풍부한 지식과 앞서가는 비전을 가진 벨기에 수집가


▎Front view of The Vanhaerents Art Collection in Brussels © Vanhaerents Art Collection, Brussels, Photo by Vincent Verbist
반헤렌츠 아트 컬렉션은 작품을 보관하는 장소이자 복구, 카탈로그, 관리 등을 총괄하는 곳으로, 반헤렌츠는 전체 소장품 중 80%를 이곳으로 옮겼다. 조각과 설치작품이 크레이트 안에 있어도 충분히 식별할 수 있도록 작품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공간을 마련했고 동시에 페인팅, 드로잉, 사진 작품들도 직접 접근이 가능한 설치 공간을 준비했다. 박물관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창조하고 있는 이 공간은 수장고이면서 전시장인 스위스의 샤울라거 박물관과 비교할 수 있다. 샤울라거와 다른 점은 커튼 뒤를 들여다보고 방문자가 자신이 원하는 길로 자유롭게 방문길을 창조하며 작품들을 탐색하는 것이다. 마치 보물을 찾으러 가는 탐험가의 짜릿함을 즐기는 순간이다. 기존 박물관들이 제공했던 전통적인 방법을 초월하는, 친밀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으로 현대미술 애호가들에게는 도전이 되는 신선한 관람 방식이다. 소장품 관리와 특별 전시 기획을 연결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실험하면서, 미학적이며 기능적인 장소를 효율적으로 시각화하는 형식을 채택한 것인데 이것이 애호가들에게 찬미를 받는 또 다른 이유였다.

반헤렌츠가(家)가 소장하고 있는 작가들 중 미술계를 이끌고 있는 몇몇 젊은 스타 작가만 보아도 그들의 과감하면서도 실험적인 접근 방향을 느낄 수 있다. 우선 반헤렌츠 아트 컬렉션 건물에 들어가 1층 그랜드 플로어에서 처음 만나는 작가는 데이비드 알트메츠(David Altmejd)다. 그는 2016년 벨기에 국립 보자르 박물관에서 실제 인체의 두 배가 넘는 크기의 기괴한 인체조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석고 조각상에 거울, 머리카락, 잘린 손들, 파인 두뇌 속에 여러 개의 안구와 크리스탈 등을 끼워넣고 긁어내는 등 대담하면서도 실험적인 작품들을 기획했던 보자르 전시는 분명 반헤렌츠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2층에서는 알루미늄에 아크릴로 작업한, 325m의 높이를 자랑하는 안느 임호프(Anne Imhof)의 조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안느는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독일관을 빛낸 작가인데, 그녀가 출품했던 [파우스트(Faust)] 작품은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유리 바닥 위를 관람자들이 현기증을 일으키는 두려움과 짜릿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걷게 했다. 안느는 이 작품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Vanhaerents Art Collection, New Presentation © Vanhaerents Art Collection, Brussels
반헤렌츠 아트 컬렉션 건물의 2층에 있는 또 다른 작품은 마르게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의 콜레트(Cholet) 조각이다. 마르게리트는 2019년, 해마다 파리 피악 아트 페어 기간에 수여되는 마르셀 뒤샹 상(Prix Marcel Duchamp)의 후보 작가 네 명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에서 풍성한 조경의 아름다움 속에 흰 조각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2016년 파리 팔레드 도쿄 전시에서 상상 속의 동물과 인체의 생물학적 결합과 같은 조각상으로 신선한 충격을 선사해주었다. 기원전 생물체 같기도 하고 미래의 우주에서 느닷없이 출현한 듯한 그녀의 조각들은 음향과 더불어 더욱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2018년 11월부터 시작된 뷰잉디포(VIEWING DEPOT) 특별전의 작가들은 함라 아바스, 데이비드 알트메츠, 크리스티앙 볼텐스키, 제임스 케이스베르, 제프 엘로드, 샘 폴, 실비 플러리, 마크 핸드포스, 페데리코 헤레로, 매슈 데이 젝슨, 데이비드 호크니, 마르게리트 위모, 알랑 막콜름, 마트 뮐리칸, 블루스 노만, 알버트 오흐랑, 우고 론디노네, 루시안 스미스, 수다르샨 세티,닉반 보어트, 단보 등이다.

2017년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프랑스 역사학 교수인 컬렉터장 샤틀루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평생 수집한 작품을 프랑스가 아닌 벨기에 박물관에 기증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작품을 선정할 때도 온전히 자신의 취향만으로 거칠고 괴기한 작품만 수집한 것처럼 기증하고자 하는 박물관 선정도 별스러웠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자신의 집을 방문했던 수많은 국적의 수집가 중 가장 호기심이 넘쳤고 가장 풍부한 지식과 앞서가는 비전을 지닌 이들이 벨기에 수집가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소장품을 편견 없이 이해할 만한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프랑스 컬렉터가 이토록 높이 평가하는 벨기에 컬렉터는 누구냐는 질문에 모두 한결같이 입을 모아 칭찬한 이는 반헤렌츠였다.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아트바젤 등 대형 아트 이벤트에서 주목하는 컬렉터 중 한 사람으로 해마다 세계 100대 컬렉터에 선정됐다.


▎Walter Vanhaerents on the roof top of the art space with the work of ugo rondinone, Cry Me a River, 1997, ed. 1/2., aluminium structure, neon, plexiglass 430×700×13㎝. © Vanhaerents Art collection, Brussels, Photo by Yann Bertrand
반헤렌츠 컨템퍼러리 아트에 대한 열정은 그의 아이들, 엘스(Els)와 주스트(Joost)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반헤렌츠 아트 컬렉션은 월터뿐 아니라 온 가족의 컬렉션이 됐고, 반헤렌츠 아트 컬렉션은 개인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새롭고 도발적인 예술에 대한 온 가족의 기호를 보여준다.

반헤렌츠가 막 수집을 시작한 예술 애호가들에게 주는 조언은 “참을성 있게 꾸준히 자신의 안목을 스스로 높여가면서 훌륭한 작품을 결정할 능력을 키워가라”는 것이다. 즉, 미디어와 각종 정보에 현혹되지 말고 스스로의 선택을 믿으라는 것이었다.

심리학자 디타드 레오폴드는 “수집은 또 다른 몸, 또 다른 ‘나’를 창조하는 독특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반헤렌츠는 건축이라는 남성적이고 거칠고 복잡하면서도 무거운 비즈니스의 전문가로서 예술이라는 감성 분야를 삶에 접목했다. 건축이 그의 내부에 숨어 있던 예술을 끌어내면서 삶의 균형을 찾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정서적인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평생에 걸쳐 자신만의 섬을 만드는데 매료되어 있는 반헤렌츠의 삶은 모든 수집가가 동경하는 대상이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L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1912호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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