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이재술 소믈리에 

와인과 골프와 음악과 비즈니스의 마리아주를 위하여 

흔히들 와인을 세계 문화의 공통어라 칭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에서 빠지지 않는 술이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와인 한 잔을 마시고 맛에 대해 표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재술 소믈리에가 와인 활용법과 와인을 좀 더 친숙하게 대할 노하우 등을 담은 책 한 권을 내놨다.

“와인에 진실이 있노라(In vino veritas).”

이재술 소믈리에가 최근 펴낸 『소믈리에도 즐겨 보는 와인 상식 사전』을 관통하는 열정을 요약하는 말이다.

이재술 소믈리에를 인터뷰하러 그가 일하고 있는 서원밸리컨트리클럽으로 갔다.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이 운영하는 국내 10대 골프장이다. 박인비 프로골퍼가 결혼한 곳이다.

경민대 호텔외식서비스학과 겸임교수인 이재술 소믈리에는 기업과 대학으로 와인 출강을 간다. 이재술 교수는 LP 마니아다. 우리 추억을 담고 있는 가요를 좋아한다. 안방과 거실을 가득 채운 LP 1300장 중에서 가요가 70%, 나머지는 팝·클래식이다. 나훈아·남진 자료를 다 모으고 있다. 나훈아에 대해서는 자그마한 박물관을 만들 수 있는 정도다. 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 우리는 좀 느리게 살아가야 한다. 아날로그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LP도 골프도 와인도 손으로 하는 아날로그다.”

이 소믈리에는 고객에게 포터블 전축으로 그가 소장한 LP를 들려준다. 추억에 잠기어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고객들도 있단다.


▎이재술 소믈리에는 경민대 호텔외식서비스학과 겸임교수로 기업과 대학에 와인 강의를 나간다.
세상에는 별의별 고민이 많다. ‘와인 고민’도 있다. 소주파·위스키파 최고경영자(CEO)도 와인을 피할 수 없다. 와인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그러기에 더욱, 자칫 잘못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소믈리에도 즐겨 보는 와인 상식 사전』은 와인 고민을 털어낼 작은 와인 백과사전이다. 이재술 소믈리에의 꿈은 은퇴 후 판교나 분당 쪽에서 아늑한 곳을 찾아 조그맣게 와인바를 여는 것이다. 뜻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생각이다.

포브스코리아 독자들은 CEO이거나 미래 CEO를 꿈꾼다. 우리 독자들에게 특히 강조할 말은.

나쁜 와인을 마시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내가 좋아하는 강연 주제다. 이건희 회장은 ‘세계를 정복하려면 와인을 알아야 한다’고 2003년에 말했다. 비즈니스를 할 때도 골프와 와인과 음악이 함께해야 한다. 기막힌 조화, 마리아주(mariage)다. 5시간 반 정도 라운딩하고 식사하면서 좋은 음악을 배경으로 와인 한두 잔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 본격적으로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의외로 많은 분이 와인에 대해 잘 모른다. CEO에게는 와인이 필수다. 학교에서 강의할 때 ‘자기 전공 외에 와인을 공부하면 남들이 갖지 못한 무기를 갖게 된다. 글로벌로 가려면 와인을 모르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와인 법’을 따라야 한다.

사실 와인에 대한 책은 시중에 많다. 『소믈리에도 즐겨 보는 와인 상식 사전』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호텔신라에서 근무할 때부터 축적한 34년 와인 노하우를 공개했다. ‘책을 읽고 와인에 대해 유식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독자가 많다. 와인 목욕 하는 방법도 나온다. 뜨거운 물에 와인을 한 병 붓고, 많이 피곤하면 두 세 잔 마시면 몸이 리셋된다. 과학적 근거도 있다. 메릴린 먼로도 동 페리뇽으로 목욕했다. 우유 목욕보다 와인 목욕이 확실히 낫다.


▎이 소믈리에는 LP 마니아이기도 한데, 우리 가요, 팝, 클래식 등 지금까지 LP 1만3000장을 모았다.
와인은 건강에 좋을까.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 등 논란이 있다.

와인은 성분이 1000여 가지, 향은 500~800여 가지가 우러나온다. 신비스럽다. 병원에서 의사가 소주나 막걸리 마시라고 하지 않는다. 와인은 혈액순환에 좋다. 독일이나 스위스에서는 와인 처방을 한다. 우리나라 의사들도 다른 술은 권하지 않아도 혈압에 문제가 있는 경우 와인을 조금 마시라고 한다. 처음부터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젊어서는 소주나 위스키를 좋아한다. 45도인 위스키는 독하고 5도인 맥주는 심심해 그 평균인 와인을 즐기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 신이 내린 최고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기 요리는 레드와인, 생선 요리는 화이트와인이라고 하는데. 이 ‘규칙’을 깨면 ‘무식하다’고 한다.

생선을 먹을 때 화이트와인을 마시면 드라이 한 맛이 생선 비린내를 잡아주고 확실히 식욕을 돋운다. 생선 요리에 레드와인을 마셔도 괜찮은데 아무래도 덜 어울린다. 고기에 레드와인을 마시면 고기도 부드러워지고 씹는 질감이 다르다. 그래서 어울린다고 한다.

된장찌개에는 화이트와인인가 레드와인인가.

한국 음식은 꼭 국물이 있어야 하는데 국물과 와인은 잘 안 어울린다. 서양 사람들은 풀코스로 식사할 때 국물은 수프 한 코스밖에 없다. 화이트와인이 전(煎)과 잘 어울린다. 스파게티와 탕수육도 화이트와인과 잘 맞는다.

와인을 마실 때 좋은 안주는.

와인은 빵이나 치즈와 잘 어울린다. 빵이나 치즈는 와인과 같은 발효식품이라 좋다. 멸치는 와인의 향을 잡아 없애버린다. 와인은 향이 70%를 차지한다. 맛은 30%다.

와인도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벌써 한 10여 년 전에 연구를 했다. CEO 가운데 84%가 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 시대에 왜 와인이 필요한지, 왜 와인을 마셔야 하는지, 얼마나 마셔야 하는지 전문가들에게 전체적인 내용을 한번 들어야 한다. 와인에 왕도는 없다. 즐기면 된다. 즐기다 보면 어떤 와인인지 궁금해지고 신문을 볼 때도 스크랩하게 된다. 그래서 와인 실력이 조금씩 올라가게 된다. 통 큰 비즈니스를 하려면 반드시 와인을 알아야 한다.


▎『소믈리에도 즐겨 보는 와인 상식 사전』표지
책에 “레스토랑에 초대되었을 때 가장 비싼 것이나 가장 싼 것은 주문하지 않습니다”라고 나온다. 식당에서 와인을 고르는 노하우는.

레스토랑에서 ‘옆 테이블과 똑 같은 와인 주세요’ 했다가 계산할 때 놀라는 경우가 있다.(웃음) 보통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셰프 추천 메뉴가 있다. 식사가 10만원이면 와인도 10만원인 게 좋다. 그리고 상대방을 봐가며 주문해야 한다. 상대방이 와인에 대해 많이 안다면, 그 수준에 맞춰야 한다. 선물할 때도 마찬가지다. 받는 사람의 수준을 잘 고려해야 한다.

와인에도 유효기간이 있는가.

유효기간이라기보다는 마시는 시기가 있다. 5대 그랑크뤼는 한 20~25년 정도. 그 후에는 맛이 꺾어진다. 정점에서 마셔야 한다.

책에서 “결국 소믈리에는 와인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소믈리에는 ‘종합 예술인’인가.

그렇다. 소믈리에는 ‘마인드 엔터테이너’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로봇 소믈리에’도 나올 수 있을까.

와인은 아날로그다. 커피만 해도 기계에서 에스프레소·카푸치노·아메리카노가 다 나온다. 와인은 그렇지 않다. 소믈리에는 와인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고, 오픈해야 하고, 마셔보고 음미해야 한다. 아날로그 직업이라서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한다. AI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와인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있다면.

초보자들이 100만원 넘는 5대 그랑크뤼를 마시면, ‘왜 이렇게 떫지?’ ‘이런 걸 왜 마시지?’ 하며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초보자들에게는 호주·뉴질랜드·아르헨티나·칠레 와인을 추천한다. 마시기에 아주 편하게 돼 있다. 난해하지 않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와인이다. 음악의 끝은 오페라, 도박의 끝은 경마장, 와인의 끝은 샴페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비싼 와인이 좋은가.

비싼 것이 가치가 있다. 3000만원짜리도 있다. 하지만 1만원에서 3만원짜리를 식사할 때 한두 잔씩 즐기는 것도 좋다. 1만원 이하는 두통이 생길 수 있다. 최고의 와인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정다운 대화를 나누면서 좋은 분위기에서 마시는 와인이다. 비싸다고 좋은 와인은 아니다.

책에 와인과 관련된 명언도 실었다. 랠프 에머슨이 “음악과 와인은 하나다(Music and Wine are one.)”라고 했다는데 과장 아닌가.

과장이 아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서 와인만 마시면 절간에서 마시는 것과 똑같다. 너무 조용하다. 그래서 재즈나 보사노바 음악이 깔리면 분위기가 훨씬 업(up)된다.

마지막으로 포브스코리아 독자들에게 강조할 게 있다면.

포브스 독자라면 반드시 와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와인을 알면 남들이 갖지 못한 무기를 가진 것이다. 와인을 알면 맛과 멋과 낭만까지 알 수 있다.

-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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