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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수 SK텔레콤 5GX서비스본부장 

세계시장 겨냥하는 한국 ‘혼합현실’ 기술력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혼합현실(MR) 경쟁에서도 자신감을 보이는 SK텔레콤이 도약 준비를 마쳤다. 지난 2010년대 초부터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기술에 투자해온 SK텔레콤은 최근 아시아 최초로 혼합현실 제작소 ‘점프스튜디오’를 갖췄다. 이를 통해 혼합현실 콘텐트를 양산하고 실감미디어 제작 부문에서 아시아 허브로 자리 잡겠다는 전략이다.

SK텔레콤이 완비를 마친 점프스튜디오, 초록색 크로마키로 360도 둘러싸여 소형 홀로렌즈 106대가 다양한 각도로 배치돼 있다. 홀로렌즈는 사용자 주변 환경을 인식해 3차원 홀로그램을 입혀 사용자가 보고 이해할 수 있고 목소리나 손동작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상현실을 만들어준다. 스튜디오 옆 프로듀싱실에서는 방금 촬영한 인물 등 피사체를 360도 다양한 각도에서 3차원 이미지로 생성한다. 그리고 실사 등 다양한 이미지, 영상과 자유자재로 융합해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낸다. 혼합현실의 3D 이미지는 적용 범위도 다양해 건축·설계, 디자인, 교육, 헬스케어, 연구, 엔터테인먼트 등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혁신적인 경험을 창조한다.

SK텔레콤은 점프스튜디오를 국내 혼합현실 콘텐트 제작의 전초기지로 만들 계획이다. 혼합현실은 현실 공간 속에 사실감을 극대화한 3차원 가상 이미지·영상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이 스튜디오의 특징은 AI, 클라우드, 3D 프로세싱, 렌더링 기술로 기존 3D 모델링 작업의 수작업 공정을 상당 부분 자동화함으로써 콘텐트 제작 비용과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점프스튜디오에 모인 SK텔레콤 5GX서비스사업본부 팀원들. / 사진:SK텔레콤
SK텔레콤 혼합현실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인가.

지난 2012년부터 글로벌 AR·VR 시장의 변동을 예의주시하면서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약 8년간 힘겨운 상황들을 넘으며 기본에 충실하게 성장해왔다. 생각보다 시장이 빠르게 열리지 않았지만,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들이 AR·VR 기술회사를 인수합병하면서 기술력을 키워가는 정황에 주목했다. 한국 이동통신사로서 SK텔레콤은 이 기술을 일반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형태로 방향을 설정했다. 즉, 다른 글로벌 기업과 달리 SK텔레콤은 스마트폰을 통해 기술을 체험하도록 한 것이 차별점이다. AR·VR 기술과 더불어 렌더링(화상에 광원·위치·색상 등 외부 정보를 반영하는 기술), 센서, 아바타 등 여러 기술을 융합하며 기술을 고도화해왔다. 초기 ‘T리얼플랫폼’을 만들어 AR·VR콘텐트를 쉽게 개발하고 전달했다. 하지만 복잡도가 높은 기술인 만큼 서비스 제공과 기술에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VR 콘텐트 사용자가 어지러움을 느낀다든지 구동하는 휴대폰의 발열이 심하다든지 등의 기술적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그동안 우리가 제작했던 도전적 콘텐트는 이 분야 글로벌 톱플레이어인 페이스북, 구글과 협업할 정도로 궤도에 올랐다고 본다. 2015년 구글 IO컨퍼런스에 우리 AR 기술과 콘텐트가 초청돼 시연하는 기회를 통해 글로벌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우리의 혼합현실 콘텐트는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고급 기술을 구현한다고 자부한다.

5G 혼합현실 킬러서비스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지난해 3월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의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선보인 AR비룡(Wyverns)은 포브스의 ‘2019년 최고 AR 이벤트’로 선정됐다. 야구장 곳곳을 날아다니며 포효하는 비룡을 전광판과 휴대폰으로 볼 수 있었다. 이 이벤트는 현실 세계를 3D 가상공간으로 재구성하는 ‘하이퍼 스페이스 플랫폼’과 AR 콘텐트 렌더링을 구현하는 ‘시네마틱 AR엔진’ 등 기술이 적용됐다. 사람들에게 혼합현실 기술을 생생히 전달했다는 대외적 평가를 받았다. 그래픽 등 관련 기술을 계단식으로 성장해 완성도를 확보한 결과였다. 5G시대가 열리면서 혼합현실 기술에 기대가 높아지고 이는 고품질 콘텐트 제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또 NBC유니버설과 협업으로 애니메이션[트롤: 월드투어]의 캐릭터를 AR로 구현했고 앞서 NBC유니버설이 제작한 [AR쥬라기]도 작업했다. 그 외 덕수궁 가상체험,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한 전생체험, 버추얼소셜월드의 아바타, 리그오브레전드(LOL) 결승전 가상응원 등도 성공적인 혼합현실 콘텐트로 평가받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직접 현장에 가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현장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혼합현실 콘텐트를 점점 늘려가고 있다.

점프스튜디오 구축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난해 3월 프로야구개막전에서 SK텔레콤은 인천SK 행복드림구장에 AR기술을 활용해 비룡을 등장시켰다. / 사진:SK텔레콤
최근 ‘알렉사’ 등은 AI 기술을 스피커로 구현했지만 이제는 더 나아가 연예인이나 아이의 홀로그램이 눈앞에 나타나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도 사람 얼굴을 스캔해 이 기술에 도전했으나 표정이나 움직임이 어색해 언캐니밸리 효과(안드로이드의 괴상하고 기이함에 반감이나 혐오감을 느끼는 현상)가 문제로 지적됐다. 완벽하지 않으면 하지 않으니 못하므로 결국 아바타로 바꿨다. 그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기술에 관한 논문에 주목했다. 볼류메트릭 비디오 캡처(Volumetric Video Capture) 기술은 인물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홀로그램 비디오로 구현하고, 우리가 그동안 개발한 공간인식·렌더링 기술을 더하면 홀로그램과 현실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콘텐트를 만들 수 있겠다는 발상이었다. 이제 우리는 아시아 최초의 혼합현실 스튜디오를 확보함으로써 완성도 높은 혼합현실 콘텐트를 제작하는 데 한 걸음 다가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혼합현실 콘텐트들을 제작할 계획인가.

다양한 실용 사례가 가능하다. 셀러브리티, 동물, 영화 캐릭터를 가상현실에 생생하게 등장시킬 수 있다. 현재 SK텔레콤의 혼합현실 콘텐트는 ‘점프AR’, ‘점프VR’ 앱을 내려받으면 경험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뿐만 아니라 공익적 활용 계획도 있다. 최근 연세 세브란스병원과 힐링을 위한 마음챙김(Mindfulness) 콘텐트도 공동 제작하고 있다. VR 힐링콘텐트는 사용자의 높은 몰입감을 유도해 환자들의 심리치료에 효과적이다. 또 다양한 공포증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 한편 국방, 소방 등의 영역에서도 훈련·시뮬레이션 사업과 관련해 정부기관과 협업을 중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5GX서비스사업본부는 얼마나 혁신적이고 다이내믹한 조직인가.

대기업 내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스타트업 문화를 대기업에서 구현하는 게 쉽지 않지만 이 환경을 갖추지 않으면 변화를 쫓아갈 수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흡수하고 활용하려면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전환’하며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우리 조직은 절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조직원 구성은 정말 다양하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자, 피디, 그래픽 엔지니어, 클라우드 서버 관리자, 기술기반 아티스트, 모델러, 기획자 등 10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20여 명이 점프스튜디오에 투입됐다. 구성원 모두 전문성이 높은 수준이고 서로 너무 다른데, 각자의 색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조직 내 의견 대립을 권장한다.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생산적 논쟁이기 때문에 치열하게 의견을 피력하고 적당한 양보는 없다. 긴장감을 유지하며 다음 레벨로 나아가는 게 우리 문화다.

AR, VR, MR의 연구·개발·서비스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큰 흐름상 AR, VR, MR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가시적 비즈니스모델이나 수익성은 답보 상태가 지속됐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현실적 이유로 연구개발에 맥이 끊기면 재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조직을 계속 유지하고 끌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그래서 나와 조직원은 모두 몇 배 더 많이 도전하고 작업에 몰두했고 그 덕분에 끈끈한 조직력과 신뢰로 무장할 수 있었다.

현재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은 무엇인가.

혼합현실의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장비와 제작 비용도 크게 감소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희망적이다. 점프스튜디오가 입체감을 추구하는 콘텐트 제작의 아시아 허브로서 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아시아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한국의 기술력이 이끌 것이다. 우리의 서비스는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대기업의 AR·VR 서비스 조직의 수장으로서 국내 스타트업들의 AR·VR 서비스 개발 노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 분야의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우리는 독립 3D 콘텐트 제작사들과 협업하고 함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본다. 파트너 스타트업을 육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특히 연내 클라우드게임 상용 서비스(xCloud) 출시를 앞두고 게임 제작사를 발굴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가상현실 헤드셋 개발 업체인 오큘러스(Oculus)를 인수, 협업하는 사례처럼, 국내 게임 제작사와 함께 제작하고 글로벌 콘텐트로 키우는 게 목표다. 궁극적으로 AR·VR 콘텐트의 다양화, 양산화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 전진수 5GX서비스사업본부장 약력 - 한양대 컴퓨터공학 학사·석사. 삼성전자 모바일디비전 책임연구원, SK텔레콤 ICT기술센터 미디어랩장, 5GX서비스사업본부장(현)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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