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주입식 지식보다 총체적 이해와 문제의식이 필요한 시대 

다음 중 사물놀이의 구성요소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
① 꽹과리 ② 징 ③ 북 ④ 태평소
정답은 ‘④태평소’이다. 10여 년 전 여러 회사와 기관의 입사 시험에 출제된 상식 분야 문제이다. 입사 및 공채 시절이다. 입사 시험에는 위와 같은 식의 기출문제가 꽤 많다. 과연 이런 문제가 입사 여부를 결정할 척도가 될 수 있을까.


▎1737년에 그려진 이탈리아 카스트라토 카를로 스칼치(Carlo Scalzi)의 모습. / 사진:위키피디아
오케스트라 혹은 관현악단은 여러 악기를 한 무대에서 같이 연주하는 음악가 단체이다. 서로 다른 여러 악기가 내는 음들이 조화를 이루려면, 각 악기가 내는 음들이 같아야 한다. 바이올린의 도가 오보에의 도와 다르면 조화를 이룰 수 없다. 각 악기의 모든 음을 하나씩 다 맞출 수는 없고 대표적으로 한 음을 연주회 전에 누군가가 연주하여 그 음에 다른 악기들이 모두 맞추는 관행이 있다. 이것을 튜닝이라고 하며, 그 음은 가온 라, 즉 A음이다. 오보에 연주자가 대표로 이 음을 연주하며, 다른 연주자들은 자신의 악기가 내는 A음을 오보에가 낸 A음에 맞춘다.

1번 문제는 이런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는지를 묻고 있다. 그런데 왜 오보에가 튜닝의 리더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음악사를 연구하는 전문 학자들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많은 연구의 결과, 그것이 어쩌다가 발생해 고착된 관행이라는 점이 알려졌다. 이러한 관행에 대한 지식이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젊은이들의 취직 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것일까.

정답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는 문제도 있다. 3번 문제의 보기 ③에서 미뉴에트를 ‘프랑스에서 시작된 4박자의 빠른 곡’으로 정의했는데, 이 정의는 분명히 틀렸다. 일반적으로 미뉴에트는 4박자가 아니라 3박자 곡으로 알려져 있다. 틀린 것을 고르는 이 문제의 정답은 보기 ③이다. 그런데 보기 ②의 설명에도 약간의 문제는 있다. 론도(rondo)를 ‘프랑스에서 많이 연주된 2박자 계통의 경쾌한 무곡’이라고 했는데, 론도는 실용적 무곡(舞曲)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연주회장에서 연주되는 기악곡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으며, 기악곡인 경우 3박자 계통도 있다(예: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의 3악장). 사실 ‘무곡으로서의 론도’는 한국 직장인이 알면 좋을 상식을 좀 넘어서는 분야이고, 상식으로서는 ‘기악곡 론도’를 기억하는 정도가 적절하다. 따라서 보기 ②도 정답으로 처리하는 것이 맞다.

7번 문제에도 논란이 있다. 오페라와 관련이 없는 것을 묻는 이 문제의 보기는 ①카스트라토 ②프리모 우오모 ③세레나데 ④레치타티브이다. 보기 ②의 프리모 우오모(Primo Uomo)는 오페라의 제1테너 혹은 주연 테너를 가리키는 이탈리아어다. (오페라의 주역이 되는 여성 소프라노 가수는 프리마돈나(Prima Donna)라고 부른다.) 보기 ④의 레치타티브(Recitative) 혹은 레치타티보(Recitativo)는 오페라에서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부분이다. ②와 ④는 오페라의 필수 요소다. 문제는 ①카스트라토와 ③세레나데이다. 카스트라토(Castrato)는 변성기 이전에 거세하여 여성의 높은 음역을 준(準)여성적 음색으로 노래하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성성을 상실한 가수이다. ‘(Castrate’는 거세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이다.) 카스트라토는 여성이 노래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던 중세시대에 등장하여 무대 위에 섰던 존재이다. 몇몇 오페라에서 (예를 들어 헨델과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카스트라토의 배역이 있었다. 물론 모든 오페라에서 카스트라토 배역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폴레옹이 유럽 각국을 점령한 후, 특히 중세시대에 카스트라토 전통이 가장 강력했던 이탈리아를 점령한 후에 야만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카스트라토는 급격한 감소세를 보였고,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19세기 이후에 창작된 오페라에 더는 등장하지 않았으니 카스트라토는 오페라와 늘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게 된다. 한편, 보기 ③의 세레나데 역시 카스트라토처럼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세레나데가 불리는 오페라가 있고 불리지 않는 오페라가 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베르디의 [일트로바토레], 구노의 [파우스트] 등에서 세레나데가 불린다. 세레나데(Serenade)는 17~18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여흥을 위해 많이 연주된 가벼운 기악연주곡이거나, 사랑하는 여성이 사는 집 밖에서 남성 구혼자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이다. 보통 창 아래에서 남성이 달콤한 노래를 부르면 여성은 창문을 열고 화답한다.




위 문제들은 다소 지엽적이다. 주입식 교육과 그에 따른 암기를 통해 정답을 기억할 수 있다는 점도 아쉽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아쉬운 문제는 14번이다. 베토벤은 독일 본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활동한 고전시대의 작곡가이고, 30대 초반부터 청각장애를 앓기 시작해 중년 이후 완전한 어둠 속에서 살았던 불우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 초연 때부터 크게 성공했는데, 그 성공의 현장에서 그가 청중의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를 듣지 못했고, 무대 위의 어떤 연주자가 그를 청중 쪽으로 돌려 박수 치는 청중들을 보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는 꽤 유명하여 베토벤을 다룬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장면으로 처리됐으며, 많은 클래식 음악가가 이 이야기를 대중에게 함으로써 베토벤과 클래식 음악의 위대함과 감동을 전하는 소재가 됐다. 이 일화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당시 연주회장에 있었던 연주자들과 청중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된 이야기라 세부적으로 다른 버전들이 있다는 것이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의 4악장에서 콘트랄토를 맡았던 카롤리네 웅거의 초상화. 웅거는 연주가 끝난 줄 모르고 계속 무대를 보고 있던 청각장애인 베토벤을 뒤로 향하게 하여 열렬하게 환호하고 박수치는 관중을 보게 했다고 전해진다. 콘트랄토는 여성으로서 가장 낮은 음역을 노래하는 성악 파트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어찌됐건, 그런 ‘에피소드’가 뭐가 그리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그걸 아는 이는 합격하고 모르는 사람은 불합격으로 처리됨으로써 인생의 행로가 결정될 정도로 중요한 것일까. 당신이 고용주라면 나폴레옹이 연상의 이혼녀와 결혼했던 작은 사람이라는 점만 아는 사람과 프랑스대혁명의 와중에 나폴레옹이 했던 정치적 행위들의 역사적 의미를 아는 사람 중에 누구를 뽑겠는가. 음악가들의 신변잡기를 단순 암기하고 그에 따른 기억을 토대로 풀 수 있는 문제보다는, 그들의 시대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에 기초해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풀 수 있을 문제가 더 좋지 않을까. 귀족과 왕을 위한 궁정악단의 음악감독이 아닌,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며 실패와 성공의 부침을 겪는 프리랜서 작곡가 베토벤은 프랑스대혁명의 시대이자 혁명가 나폴레옹의 패망으로 인한 복고왕정 및 빈체제의 시대에 살았다. 어떤 특성이 있는 시대가 있었고, 그 시대에 어떤 사회적 지위로 살던 어떤 예술가가, 그 시대의 정신을 마주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했고, 그런 와중에 열정적인 음악과 관조적인 음악을 쓰게 된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102호 (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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