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AI가 ‘패션’하는 시대] 신기영 디자이노블 대표 

AI 디자이너의 가능성 

인공지능이 당신보다 당신의 취향을 더 잘 알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창업 5년 차 스타트업 디자이노블이 만든 AI 디자이너는 기존 패션 업체들과 협업하며 생산 효율성과 판매 적중률을 높이고 있다. AI와 인간의 협업으로 낭비되는 자원을 줄이는 동시에 패션 사업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원하는 색상과 디자인, 패턴을 입력하자 다자이노블의 AI 알고리즘이 화면에 결과치를 나타냈다. / 사진:김현동 기자
디자이노블은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술인 크리에이티브 컴퓨팅을 사용한다. AI가 패션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학습한 뒤 사용자가 원하는 이미지 파일을 생성하는 방식이다. 잘 팔리는 디자인, 유행하는 디자인, 브랜드에서 선호하는 디자인 등을 AI에게 학습시키면 AI가 적합한 디자인을 생성한다. 여기에 사람이 더 디테일한 터치를 가미해 최종 디자인을 완성한다.

디자이노블에 따르면 사람이 1년에 디자인할 수 있는 작업물이 1만 개 정도라면 AI는 1초에 1만 개까지 디자인할 수 있다. 72시간 학습한 AI의 판매 예측 적중률은 10년 차 상품기획자(MD)보다 약 20%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기영(36) 디자이노블 대표는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석박사 과정을 밟던 중에 연구실 동기들과 AI, 딥러닝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누가 매일 입을 옷 좀 추천해주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생겨 패션 시장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패션 산업은 타 산업 대비 부가가치가 높고, 이커머스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광고 저리 가라”... AI의 가능성


▎디자이노블의 AI가 디자인한 원피스. / 사진:김현동 기자
그렇게 2017년 7월 연구원 선배인 송우상, 이건일씨와 함께 디자이노블을 창업했다. 창업 전 미국의 패션 AI 기업인 스티치픽스를 벤치마킹했다. 스티치픽스는 고객의 신체정보, 직업, 선호 브랜드 등을 바탕으로 취향을 저격한 옷 5벌을 골라 집으로 보내준다. 신기영 대표는 “딥러닝이라는 분야가 점차 장치산업화되면서 후발 주자들이 따라갈 수 없는 자본 싸움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발 빠르게 아시아 버전을 만들어 경쟁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AI 디자이너 솔루션을 소개하기 위해 업체들을 열심히 찾아다녀 보니 규모가 영세한 곳부터 큰 백화점 브랜드들까지 옷을 싸게, 많이, 재고를 남기지 않고 팔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무신사의 성장으로 쇼핑몰 창업에 대한 시장 수요가 많았는데, 어떤 상품을 얼마에, 어떤 방식으로 판매해야 하는지 AI의 힘을 빌려 정확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생겨났다. 마침 평소 AI 기술에 관심이 많던 디자이너 요니P와 스티브J가 운영하는 SJYP와 협업할 기회를 얻었다. 디자이노블의 AI 솔루션이 SJYP의 콘셉트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학습한 뒤 디자인을 제시했고, SYJP의 터치를 거쳐 출시했다. 또 지난해에는 롯데온과 함께 AI로 의류를 기획 및 제작, 유통하는 브랜드 ‘데몬즈’를 론칭했다. 디자이노블의 AI가 디자인한 의류를 스타트업 ‘콤마’가 생산해 롯데온이 유통하는 방식이다. 주문 후에 생산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채택해 친환경적인 시도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디자이노블은 패션 업체들이 솔루션을 제공하는 B2B 사업뿐 아니라 최근 직접 쇼핑몰을 인수해 B2C 사업에도 나섰다. 디자이노블이 지난해 오픈한 액세서리 쇼핑몰 ‘브렌덴’은 광고 없이 자체 AI 기술만으로 1년 만에 월 매출액 3000만원을 달성했다. AI가 어떤 액세서리가 유행할지 수집한 데이터와 MD들의 사입 능력이 시너지를 내면서 광고 효과보다 뛰어난 AI 기술의 효용성을 입증했다.

디자이노블은 브렌덴의 성장에 힘입어 최근 여성 의류 쇼핑몰 한곳을 인수했다. “액세서리에서 여성복으로 카테고리를 넓혀 AI 솔루션의 가치를 증명해내기 위한 실험”이다. 신 대표는 “우리가 직접 패션 유통업을 경험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좋은 기회에 이미 우리의 AI 솔루션을 쓰고 있던 쇼핑몰을 인수할 수 있게 됐다”면서 “상품기획, 가격 책정, 판매량 예측까지 모두 AI가 계산해서 디자인할 수 있도록 기술력을 향상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경영학도가 AI 전문가가 된 이유

신 대표는 디자이노블을 창업하기 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 마케팅팀에 입사한 그는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다 휴학을 하고 2014년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인 비밀닷컴을 만들었다. 그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와 창업 멤버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만들어서 3300여 개 기업체를 카테고리별로 순위를 매겼다. 연봉, 복지, 육아휴직, 정시 퇴근 등 취업준비생이 생각하는 중요도에 따라 회사를 추천하는 서비스였다. 그러나 같은 사업 모델을 가진 잡플래닛이 크게 성장하면서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사람이 수집해 제공하는 정보의 양과 퀄리티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해 사업을 접었다. 이후 IBM 데이터 애널리틱스팀에 입사한 그는 당시 IBM의 AI ‘왓슨’의 사업성을 직접 보고 배운 뒤 포항공대로 복귀했다.

학교로 돌아온 그는 다음 창업을 위해 다시 아이디어와 기술을 다듬었다. 다음 아이템은 궁극의 소개팅 AI였다. 당시 신 대표와 공동창업자들이 주목한 포항 지역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남녀 성비의 불균형이다. 이들은 포항 지역의 20~30대 남성들이 만남과 연애가 힘들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했다. SNS에 있는 글과 사진, 장소들의 유사성을 AI가 분석해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 5명을 가려내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 결과 엄청나게 높은 트래픽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사업이 성숙할수록 수익이 높아지는 구조가 아니라고 판단, 타깃을 소개팅에서 패션으로 선회했고 디자이노블이 세상에 나오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AI가 디자인했는지, 사람이 디자인했는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 수준이 높아졌지만, 초기에는 검색 결과가 옷의 형태로 생성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계속 도전한 끝에 전국 빅데이터 경진대회 특별상(2016), 포스코 아이디어 마켓플레이스(IMP) 최우수 스타트업상(2017),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입주사 선정(2018), 도전! K-스타트업 대통령상 수상(2019) 등 실적을 내기 시작했다.

패션 산업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가상 공간에서도 커지고 있다. 아직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메타버스(가상 세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산업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게임뿐 아니라 아바타에 옷을 입히는 서비스들이 10~2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네이버 손자회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제페토에 구찌가 입점해 큰 화제를 모았다. 제페토는 AR, 3D 기술 등을 활용해 아바타를 만들어 사용자들 간에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전 세계 사용자 규모가 2억 명에 달하는데 80% 이상이 10대다.

구찌는 올해 제페토에 의류, 핸드백, 액세서리 등 60여 가지 제품을 정식 출시한다. 현실의 나보다 가상의 내(아바타)가 구찌 ‘신상’을 입는 것이 더 중요해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콘텐트들이 필요해진 것이다. 제페토의 성장세가 가팔라지면서 지난해 빅히트엔터테인먼트, YG인베스트먼트, YG플러스, JYP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들이 발 빠르게 170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BTS, 블랙핑크 등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콘텐트들이 제페토 안에서 소비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 행보로 분석된다.

신 대표는 “전 세계 Z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모이는 글로벌 플랫폼이 된 제페토에서 AI를 활용한 패션 아이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신기술이 기존 산업과 시너지를 내는 사례는 앞으로도 다양하게 발생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김현동 기자

202103호 (2021.0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