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프랑스 파리(Paris) 

루브르에서 만나는 ‘사비니 여인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의 확산으로 인하여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현재 닫혀 있지만, 여느 때라면 이 박물관의 피라미드 입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연중 내내 전 세계에서 온 관람객들을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수많은 예술 작품 중에는 로마 역사를 소재로 한 그림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 압권은 단연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대작 ‘사비니 여인들’이다.

▎피라미드 입구가 있는 루브르 박물관 안뜰. / 사진:정태남
아니, 이게 나라냐?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Romulus)가 양 떼가 풀이나 뜯어 먹던 팔라티노 언덕 위에 조그만 부락을 세워놓고 ‘나라’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 부락을 그의 이름을 따서 ‘로마Roma’라고 했다는데, ‘나라’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인구도 너무 적었다. 당시 이탈리아반도 중북부 지역은 부유한 ‘첨단 선진국’ 에트루리아(Etruria)가 차지하고 있었고 남부 지역에는 앞선 문화를 자랑하는 그리스 사람들이 이주하여 세운 식민도시국가들인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 대(大)그리스)가 차지하고 있었으니, 달동네 같은 로마는 에트루리아와 마그나 그라이키아라는 두 대기업체 사이에서 이제 막 좌판을 깐 노점상 같았다고나 할까.


로마 역사는 로물루스가 나라를 세운 기원전 753년부터 약 250년 동안 지속된 왕정시대, 그 후 약 480년 동안 지속된 공화정 시대, 그 후 약 500년간 지속된 제정시대, 즉 로마제국 시대로 이루어져 있다. 장구한 1200년 로마 역사의 시작은 그야말로 초라했다.

초대 왕 로물루스는 ‘국가발전’을 위해 인구를 늘리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일단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말이 이민자이지 이들 대부분은 다른 부족사회에서 추방된 자들이거나 죄 짓고 도망친 범죄자들이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로마의 인구를 늘리려면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하는데, 문제는 로마에 여자들이 너무 없었다는 것. 로물루스는 고민 끝에 묘수를 생각해냈다.

그는 축제를 열어 로마 주변에 사는 사비니 부족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남자들만 오지 말고 여인들, 특히 여동생이나 딸들과 함께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어수룩한 사비니 부족의 왕 타티우스는 백성들을 데리고 축제에 참석했다. 그중에는 이미 결혼한 아낙네들도 끼어 있었다. 축제가 절정에 이를 때쯤 로물루스가 신호를 보냈다. 로마 남자들은 굶주린 맹수처럼 여인들에게 달려들어 이들을 납치해 팔라티노 언덕 바로 북쪽에 있는 가파른 캄피돌리오 언덕 위로 달아났다. 사비니 남자들은 여인들을 빼앗긴 채 모두 쫓겨났고, 납치된 여인들은 거칠기 짝이 없는 로마 남자들과 강제로 ‘집단결혼’을 당하고 말았다. 얼마 후 사비니 남자들은 납치된 여자들을 구하러 로마와 여러 차례 격돌했는데 3년이 지난 후에는 캄피돌리오 언덕 바로 아래 평지에서 로마군과 사비니군이 일전을 벌이려고 서로 대치했다. 그런데 이미 로마 장정들의 아내가 되어 자식까지 낳은 사비니 여인들은 이를 보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왜냐면 로마군이 패배하게 되면 과부가 되고, 사비니군이 패배하게 되면 고아가 되는 기구한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여인들은 로마군과 사비니군 사이에 뛰어들어 아기들을 보란 듯이 번쩍 들고 싸움을 말렸다. 로마군과 사비니군은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적으로 결합했다고 한다.


▎드농관 오른쪽 벽면에 걸린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들’. / 사진:정태남


사비니 여인 이야기


▎니콜라 푸생의 ‘사비니 여인의 유괴’. / 사진:정태남
사비니 여인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가 관심을 둔 소재 중 하나였다. 루브르 박물관 드농(Denon)관에는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몇 점 있는데 그중에서 두 프랑스 화가, 즉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과 후세의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의 작품이 특히 눈길을 끈다.

니콜라 푸생은 로마에 체류하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이루어졌던 예술적이고 지성적인 전례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화가였다. 그는 ‘사비니 여인의 유괴(L’Enlèvement des Sabines)’라는 제목으로 유화 작품 두 점을 남겼다. 하나는 1634년에서 1635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크기는 세로 154㎝×가로 206㎝인데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소장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은 1637년에서 1638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첫 번째 그림과 크기가 거의 같은 세로 159㎝×가로 206㎝ 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괸 ‘사비니 여인의 유괴’를 보면 왼쪽 높은 곳에서 지휘자처럼 서 있는 로물루스가 보내는 신호에 맞추어 로마 장정들이 사비니 여인들을 막 유괴하는 숨 가쁜 순간이 격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배경은 기원전 8세기의 로마가 아니다. 즉, 로물루스 시대의 초라한 달동네가 아니라 제국시대의 번듯한 대리석 신전과 석조건물들이 배경이며 로물루스도 황제 같은 자태이다.

니콜라 푸생이 ‘유괴사건’의 시작을 다루었다면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 사건의 대단원을 다루었다. 이 그림 제목은 ‘사비니 여인들(Les sabines)’이고 크기는 세로 약 3.8m×가로 약 5.2m인데 자크 루이 다비드의 또 다른 거대한 명작인 ‘나폴레옹의 대관식’ 바로 옆에 걸려 있다.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들’


▎관람객 너머 보이는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들’. 거대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 사진:정태남
이 그림은 캄피돌리오 언덕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높은 성채를 배경으로 사비니 여인들이 서로 격돌하려는 로마군과 사비니군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리고 화합으로 이끄는 장면을 묘사했다. 오른쪽 로물루스의 방패에는 ROMA라는 글자와 로마를 상징하는 늑대 형상이 뚜렷하다. 로물루스와 대치한 왼쪽 인물은 사비니족의 왕 타티우스이다. 두 팔을 벌리고 이들을 말리는 여인 헤르실리아는 로물루스의 아내가 되어버린 타티우스 왕의 딸이다. 어떤 여인들은 아기를 번쩍 들고 있고 있다. 또 바닥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보인다. 오른쪽 늙은 로마 장군은 칼을 칼집에 도로 넣고 있고, 타티우스 왕 뒤의 사비니족 장군은 공격을 멈추라는 듯 뒤를 돌아보며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신고전주의 양식을 이끈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5년 동안 로마에 체류하면서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을 연구한 결과에 기초하여 자신만의 양식을 발전시켰고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당시 사회에 교훈이 되는 작품을 더러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에 돌아와서 혁명의 소용돌이에 연루되어 프랑스를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로베스피에르를 지지했으나 로베스피에르가 1794년에 처형당하자 곧 투옥됐다. 그 후 실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다행히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궁정화가로 임명했다. 이 그림은 그가 주문을 받아서 그린 게 아니고 옥중에서 구상하여 1796년에 착수, 1799년에 완성했는데 혁명 이후 분열된 프랑스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고 화합하자는 의미로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사비니 여인 이야기의 의미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들’ / 사진:정태남
한편 전설 같은 사비니 여인 이야기는 당시의 결혼 풍습이었을 수도 있다. 신랑이 신부를 유괴해 가는 것은 고대사회에서 흔히 행해지던 결혼 풍습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로마 역사의 흐름에서 본다면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로마는 사비니족과 결합하여 처음부터 다민족 국가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또 그들은 공동의 적이던 에트루리아에 대치하기 위해 결합했을 수도 있다. 당시 에트루리아는 뛰어난 기술과 앞선 문화를 갖추고 사비니족이 살던 남쪽 지역과 로마의 영역으로 힘을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가 초기 발전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상대였다. 로마는 왕정시대 후반에 에트루리아계 왕들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에트루리아에서 전수받은 앞선 기술과 문화로 나중에는 오히려 에트루리아를 제압했다. 그러고는 남부의 그리스 문화권을 포함해 이탈리아반도 전역을 흡수한 다음 눈을 바다로 돌려 해상강국 카르타고를 꺾고 지중해를 장악했다. 그 후 유럽 상당 부분과 북아프리카, 중동지역에 이르는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대제국을 건설했다. 유럽의 웬만한 주요 도시들은 그 당시에 처음 세워졌는데 파리도 ‘루테티아(Lutetia)’라는 로마제국의 도시였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2103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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