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프랑스 생장드뤼즈와 시부르(Saint-Jean-de-Luz & Ciboure) 

바스크 해안, 라벨의 고향에서 태어난 '볼레로' 

[볼레로]는 라벨이 기존의 작곡 방식을 뒤엎고 기발한 역발상으로 장난 삼아 작곡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 곡은 매혹적이고 단순한 선율과 놀라운 오케스트레이션을 바탕으로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곡이 탄생한 곳은 대서양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바스크 해안에 있는 라벨의 고향이었다.

▎생장드뤼즈 어항. 오른쪽이 생장드뤼즈이고 왼쪽이 시부르이다. / 사진:정태남
드럼 소리와 현악기 소리가 아주 약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마술사의 피리 소리 같은 플루트 선율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흘러가는 드럼의 리듬 위에 올라탄다. 플루트 독주에 이어 다시 클라리넷, 바순 등 여러 관악기가 한 번씩 등장하여 연주한 다음에는 현악기가 다시 이 선율을 받아 연주한다. 그러다가 악기들이 하나둘 가세하면서 이제 모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시작한다. 드럼의 리듬은 처음부터 한결같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C장조 선율은 오로지 한 가닥으로만 흐른다. 그 후 모든 악기가 등장하면서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간다. 이 흐름은 아주 단순하지만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는 ‘음으로 쌓은 정교한 건축물’처럼 느껴진다. 단순함을 역이용하여 엄청난 감흥으로 이끌어가는 듯하다. 그러다가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치닫던 C장조 선율은 갑자기 조바꿈하면서 급속히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오케스트라 곡은 가장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클래식 명곡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볼레로](Boléro)이다. 이 곡을 작곡한 라벨(M. Ravel, 1875~1937)은 그의 동시대 작곡가 드뷔시(C. Debussy, 1862~1918)와 함께 ‘인상주의’ 작곡가로 불린다. [볼레로]는 원래 발레를 위한 음악으로 작곡되었지만 나중에는 독립된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로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서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은 기념비적인 작품이 됐다. 그런데 이 곡은 라벨이 기존의 작곡 방식을 뒤엎고 기발한 역발상으로 마치 장난 삼아 작곡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곡은 단순하면서도 매혹적이고 마법적인 선율과 놀라운 오케스트레이션을 바탕으로 역설과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서양 파도 소리 들려오는 바스크 해안의 소도시


▎바스크 전통 주택들이 늘어선 생장드뤼즈 해변. / 사진:정태남
이 곡이 탄생한 곳은 일반인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작은 도시 생장드뤼즈(Saint-Jean-de-Luz)이다. 위치는 프랑스의 대서양 해변 남서쪽 끝 스페인 국경 근처인데, 수도 파리에서 상당히 멀지만 북부 스페인의 국경에서는 대략 18㎞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 1만3000명인 생장드뤼즈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해변과 어항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대서양을 품어 안은 듯한 긴 백사장에는 잘 단장된 집들과 특색 있는 바스크 전통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어 경제적 여유가 좀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용한 여름 휴양지로 각광받는다.

한편 생장드뤼즈의 어항은 니벨르강이 바다로 흘러가는 지점에 있다. 어항에 정박한 크고 작은 배들 중에는 바스크어로 쓰인 선명(船名)이 많이 보인다. 이곳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프랑스 영토이지만 다른 민족이 사는 땅인 셈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이 사는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 북동부와 프랑스 남서부에 걸쳐 있다. 이들은 유럽 안에서 아주 희귀한 민족으로, 이들이 쓰는 바스크어는 다른 유럽 언어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고립된 언어이다.

시부르에서 태어난 라벨


▎생장드뤼즈에서 본 시부르. 라벨이 태어난 회색 건물 뒤에 그가 유아 영세를 받은 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 사진:정태남
한편 옛날 이곳 어부들은 대구와 고래를 잡으러 험한 바다로 항해했는데 고래사냥은 이미 8~9세기에 바이킹으로부터 배웠다. 또 이들은 ‘부업’으로 프랑스가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던 해적질도 했는데 먼 바다에서 프랑스와 적대관계에 있던 영국과 스페인의 선박을 검문하고 물자를 탈취하여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렸다. 이곳에서 보이는 품위 있는 주요 건물 상당수는 생장드뤼즈가 이처럼 한창 번영하던 17세기에 세워졌다.

생장드뤼즈의 어항 맞은편은 시부르(Ciboure)라는 어촌인데 행정구역상 독립된 마을이지만 생장드뤼즈와는 200m 정도밖에 안 되는 다리와 연결돼 있어 행정상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시부르의 강변도로에 있는 바스크 전통 건물 사이에는 17세기에 세워진 네덜란드식 회색 석조건물이 있는데, 이곳에 시부르 관광안내소가 들어서 있다. 이 건물 입구 벽면에는 ‘이 집에서 모리스 라벨이 1875년 3월 7일에 태어났다’라는 문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니까 이 건물은 시부르에서 가장 중요한 관광 자산인 셈이다. 라벨은 이곳에서 태어나 6일 후에 이 건물 뒤에 있는 성당에서 유아 영세를 받았다. 그가 태어난 집과 영세를 받은 성당은 멀리서도 잘 보인다.

라벨의 어머니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성장한 바스크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어머니로부터 바스크족의 피와 스페인적인 정서를 물려받은 셈이다. 반면에 그의 아버지는 바스크 사람이 아니라 스위스 출신의 토목 엔지니어이자 발명가로서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깊었으니, 아버지로부터는 음악적 재능과 스위스적인 치밀함을 물려받았으리라.

라벨은 이곳에서 태어난 지 3개월 후에 가족이 모두 파리로 이주했기 때문에 파리에서 성장했다. 따라서 이 지역은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매년 여름이 되면 휴가차 생장드뤼즈로 내려오곤 했다. [볼레로]는 그가 53세이던 1928년에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이 집에서 라벨이 1875년 3월 7일에 태어났다'고 새겨져 있다.(왼쪽)/ [볼레로] 작곡 3년 전인 1925년의 라벨. / 사진:정태남
'볼레로'의 탄생


▎라벨이 태어난 건물 / 사진:정태남
[볼레로]의 탄생은 유대계 러시아인 발레리나 이다 루빈슈타인(Ida Rubinstein, 1888~1960)이 그에게 편곡을 의뢰한 것이 계기가 됐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그녀는 스페인풍의 이국적 분위기가 넘치는 발레 제작을 기획하고는 라벨에게 스페인 국민주의 작곡가 알베니스(I. Albéniz, 1860~1909)의 대표작인 피아노 모음곡 [이베리아] 중에서 여섯 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알베니스의 곡을 스페인 지휘자 아르보스가 이미 오케스트라로 편곡해놓은 상태라서 저작권 문제가 걸렸다. 이 사실을 안 아르보스는 라벨에게 저작권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라벨은 남의 곡을 편곡하느니 아예 자기가 쓴 곡을 편곡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마음을 바꾸고 아예 완전히 새로운 곡을 쓰기로 했다.

1928년 6월, 라벨은 여름휴가차 이곳으로 내려왔다. 바다가 보이는 고향 땅에서 그는 피아노에 앉아 머리에 떠오른 멜로디를 친구에게 손가락 하나로 쳐 보이면서, “이봐, 이 멜로디에 뭔가 끈질긴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이것을 수도 없이 반복할 거야. 오케스트라 소리는 점점 더 커지게 하고 말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볼레로]가 태동하던 순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라벨은 이 곡의 제목을 처음부터 [볼레로]라고 붙인 것은 아니고 [판당고](Fandango)라고 했다. 판당고도 스페인 춤곡의 일종이다. 한편 볼레로는 원래 18세기 후반의 스페인 춤곡인데, 라벨의 [볼레로]는 기존의 볼레로와 달리 매우 느린 곡이다.

이 곡은 그해 11월 22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이다 루빈슈타인 주역의 발레 무대에서 초연됐다. 그런데 이 곡이 연주되던 중 관중석에서 한 여자가 ‘라벨은 미쳤다!’고 소리 질렀다. 이 사실은 전해 들은 라벨은 미소 지으며 ‘그 여자는 내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라벨은 [볼레로]를 작곡하고 나서 확신이 서지 않아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꺼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관중도 당연히 눈살을 찌푸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은 곧 라벨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떠올라 독립된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고 이듬해에는 대서양을 건넜다. 1929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볼레로]를 미국에서 초연했을 때 청중의 반응은 엄청나게 뜨거웠다.

이듬해 토스카니니는 유럽 순회연주를 했는데, 그가 지휘하는 [볼레로]는 라벨이 생각했던 것보다 템포가 빨랐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라벨은 그에게 이 곡을 더는 연주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다. 하지만 고집불통의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이 곡을 제대로 살리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맞섰다. 두 사람 간에 언성이 높아졌다가 나중에는 결국 서로 화해했는데 두 거장 간의 갈등은 이 곡을 더욱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노이즈 마케팅’ 효과였을까?

라벨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볼레로] 연주 시간은 17분이다.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15분 전후로 연주한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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