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체코 프라하(Praha) 

카프카의 도시 속 유대인 지역 

프라하는 ‘이야기의 도시’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골목골목마다 역사와 전설과 이야기가 배어 있다. 그중에는 유대인과 관련된 것이 적지 않다. 유대인들이 프라하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0세기경으로 추정되니 프라하는 유럽에서 유대인의 전통이 깊게 뿌리내린 곳 중 하나인 셈이다. 구시가지 광장 뒤쪽에는 요세포프(Josefov)라고 하는 유대인 지역이 있다.

▎멀리 프라하 성이 보이는 프라하 시가지. 오른쪽 ‘파리의 거리’가 있는 곳이 요세포프이다. / 사진:정태남
유럽 심장부에 위치한 체코는 서쪽으로는 독일,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따라서 체코 역사에서 독일어권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체코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제국의 종주국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기 때문에 이곳의 역사는 오스트리아의 역사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이 많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세계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그런데 다른 유럽 도시들과 달리 중심지가 한 곳이 아니라 다섯 개 지역에 흩어져 있다. 즉 프라하 성이 있는 흐라트차니, 성 아래의 말라 스트라나 지역, 블타바강 너머 구시가지, 신시가지, 유대인 지역을 말하는데 지역마다 고유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프라하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이 도시에는 서로 다른 세 가지 문화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즉 체코 문화, 독일권 문화, 유대 문화가 그것이다. 이 세 문화는 서로 충돌하기도 했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기도 했다.

유대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


▎구시가지의 시청사 탑에서 내려다본 ‘파리의 거리’와 그 주변의 요세포프. / 사진:정태남
프라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단연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이다. 그는 1883년 프라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성장했는데 1918년에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 시대에 살았던 생애 마지막 6년을 제외하고는 독일어가 공용어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통치하던 시대에 살았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그를 프라하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체코 작가, 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통치 시대에 태어났다고 해서 오스트리아 작가, 또는 유대 혈통이기 때문에 유대인 작가라고 말한다. 그는 『변신』, 『성』 등과 같은 초현실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소설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런데 그는 작품을 체코어로 쓴 것이 아니라 모국어인 독일어로 썼다. 사실 그는 프라하 출신이지만 탁월한 독일어권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이런 카프카의 특성은 바로 프라하가 지닌 특수한 역사 및 문화 환경에서 비롯됐다.

카프카를 낳은 프라하는 ‘이야기의 도시’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골목골목마다 역사와 전설과 이야기가 배어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상당수는 다소 음침하고 기괴하다. 그중에는 유대인과 관련된 것이 적지 않다. 유대인들이 동서교역의 통로인 프라하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0세기경으로 추정되니 프라하는 유럽에서 유대인의 전통이 깊게 뿌리내린 곳 중 하나인 셈이다. 프라하의 중심 구시가지 광장 뒤쪽에는 요세포프(Josefov)라고 하는 유대인 지역이 있다.


▎요세포프에 세워진 카프카 기념상. / 사진:정태남


유대인 지역 요세포프


▎유대인 공동묘지. / 사진:정태남
역사를 뒤돌아보면 다른 유럽 도시에서도 그랬듯 프라하의 유대인들도 차별을 받았다. 그러다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계몽황제 요제프 2세가 1781년에 발표한 유대인 관용 칙령 덕분에 이 집단거주지역 밖에서도 살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이 지역의 유대인 숫자는 감소했고, 오로지 골수 유대주의자와 가난한 유대인만 이곳에 남아 살았다. 세월이 한참 지난 1850년에 요제프 2세를 기념하여 이 지역을 ‘요제프의 도시(또는 지역)’라는 뜻으로 독일어로 요제프슈타트(Josephstadt)로 명명한 것이 ‘요세포프라는 지명의 유래이다. 그런데 현재 요세포프 지역의 웬만한 건물들은 모두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고급스러운 건축물이라서 옛 분위기를 별로 느낄 수 없다. 예로 프란츠 카프카가 태어났던 집도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규모가 큰 건물이 들어섰다. 또 구시가지 광장에서 요세포프의 중심을 가로질러 블타바강에 이르는 길이 약 450m 직선 대로인 ‘파리의 거리(Pařížská ulica)’에는 고급 매장들이 몰려 있다. 사실 이 대로가 있는 지역은 원래 구불구불하고 좁디좁은 골목길로 얽힌 신비에 휩싸인 곳이었으나 1893년과 1913년 사이에 프랑스 파리의 도시계획을 모델로 재개발되면서 기존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되고 말았고, 샹젤리제 거리를 모델로 하는 ‘파리의 거리’가 만들어졌다.

현재 요세포프에는 6개 유대교 회당, 공동묘지, 구청 건물 정도만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중 구신(舊新) 유대교 회당(Staronová synagoga)은 독일 나치의 강점 기간을 제외하고 지금까지도 사용되는 가장 오래된 유대교 성전으로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양식 건축물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100m 지점에 있는 공동묘지는 1478년에 조성되어 1787년까지 사용된 것으로, 유럽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대인 공동묘지이다. 이곳에는 유대교 율법박사 랍비 뢰브(Rabbi Löw,1513~1609)의 묘소가 있던 흔적도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골렘(Golem)’을 만들었다고 한다.

골렘 이야기는 16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랍비 뢰브는 당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매일 간절히 기도하던 중 하늘로부터 골렘을 만들라는 계시를 받았다. 골렘은 히브리어로 ‘아직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데 보통은 흙으로 빚은 사람 형태를 말한다. 랍비 뢰브는 유대교의 비법에 따라 블타바강 변의 흙으로 골렘을 만들고는 종교 의식에 따라 주문을 하고 히브리어로 ‘진실’이란 뜻의 글자 에멧(Emet)을 골렘의 이마에 붙였다. 그런 다음 코에 정기를 불어넣자 골렘이 생명을 얻어 일어섰다. 기골이 장대한 골렘의 임무는 이곳에 사는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일이라 유대인들은 이제는 안심이었다.


▎유대인 레스토랑 내부에 있는 골렘 형상. / 사진:정태남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골렘은 날로 점점 포악해져 유대인까지 죽이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거칠게 항의하자 랍비는 골렘을 파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골렘의 이마에 붙은 글자에서 에(E)를 떼어냈다. 그러자 골렘은 그만 생명을 잃고 흙의 형상으로 돌아갔다. 히브리어로 멧(Met)은 ‘죽음’이란 뜻이다. 생명이 없는 골렘은 구신 유대교 회당의 다락방에 숨겨졌고 다락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가는 것이 금지됐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후세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러고 보면 골렘 이야기는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1년 1월 25일 프라하 국립극장 무대에서 초연된 [R.U.R]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펙이 1920년에 쓴 공상과학 희곡 [R.U.R.]은 체코어 Rossumovi univerzální roboti의 약자인데 영어로 바꾸면 Rossum’s Universal Robots이다. 즉, [로숨의 만능 로봇들]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 ‘로봇(robot)’은 원래 영어가 아니라 희곡 [R.U.R]에서 최초로 사용된 체코어인데, ‘(강제로) 일을 해주는 자’를 뜻하는 옛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했다. 이 희곡에 등장하는 로봇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로봇 태권V’나 ‘아이언맨’ 등과는 모습이 다르고, 초보적인 인조인간 형태의 골렘에 비하면 최첨단 바이오 기술로 대량 생산된 인조인간이며, 인간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모습을 갖추었으나 영혼은 없다.


▎프라하 최초의 고딕양식 건축물 중 하나인 구신(舊新) 유대교 회당. / 사진:정태남
한편 프라하에서 유대인 박해는 20세기에 대대적으로 재현됐다. 즉, 프라하를 점령했던 나치 독일은 수많은 유대인을 죽음의 집단수용소로 몰아냈던 것이다. 희생자들 중에는 카프카의 여동생들도 있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들을 폐기 처분해도 되는 영혼 없는 인조인간 정도로만 여겼던 것일까? 그런데 나치 독일은 유대 공동묘지나 유대교 회당을 폭파하든가 불도저로 완전히 깔아 뭉개버릴 수도 있었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골렘이 다시 살아나서 이 지역을 지켰기 때문일까? 그 이유는 아주 엉뚱한 곳에 있다. 히틀러가 이 지역을 ‘멸종된 민족 박물관’으로 보존하려 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2102호 (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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