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김익환이 만난 혁신 기업가(24) 정준영 엔코드 대표 

명품 시장의 아마존 꿈꾼다 

정리=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김현동 기자
해외직구, 구매대행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다. 코로나19 이후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하거나 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글로벌 명품 판매 사이트들은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내 시장에 발을 넓히고 있다. 해외직구 춘추시대에 파격적인 전 세계 최저가 프리오더 시스템으로 주목받는 곳이 있다.

▎정준영 엔코드 대표가 사무실 물류창고에서 택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가장 많이 한 일을 꼽으라면 택배 포장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엔코드가 운영하는 패션 셀렉트샵 ‘디코드’ 프리오더 서비스를 간단히 소개해달라.

해외 패션위크 기간 동안 공개되는 해외 유명 브랜드의 컬렉션 상품을 한 시즌 앞서 주문을 받아 정식 발매 기간에 배송하는 서비스다. 소비자들은 유럽의 생산자권장가격(Manufacturers Suggested Retail Price ·MSRP)보다 25%까지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대신 제품을 받기까지 최대 4~5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시작한 프리오더 시스템이 첫 번째 시도부터 대박이 났다고 하던데.

당시 국내 백화점에서 51만5000원에 판매되던 부테로의 카레라 스니커즈를 33만원에 선판매했다. 두 달 뒤에 배송하는 조건으로 브랜드에서 100켤레를 받았는데 16시간 만에 완판되면서 고객들의 니즈를 확신할 수 있었다.

가격을 33만원까지 낮출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하다.

부테로 카레라 스니커즈의 유럽 생산자권장가격은 290유로다. 한화로 환산하면 40만원이 좀 안 되는 가격인데 여기서 20%를 할인하면 딱 33만원이 된다. 브랜드가 우리에게 허용하는 할인율은 유럽 생산자권장가격의 20~25% 정도인데, 이는 시즌이 시작되고 두 달 뒤 진행되는 첫 번째 시즌할인의 할인율이 25% 선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시즌 시작 이후 8주가 지난 세일 가격으로 다음 시즌 제품을 선판매하고 있다. 반면 한국 생산자권장가격은 유럽이나 미국보다 1.3배, 많게는 1.5배로 설정되어 있어, 국내 백화점에서는 이 제품이 5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된다.

브랜드, 유통사들과의 네트워크,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규모도 작은 스타트업이 어떻게 글로벌 브랜드들을 설득했나.

구글에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 부티크들을 일일이 찾아 콘택하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물건을 소싱하기 위해 이탈리아 출장을 줄기차게 다녔는데, 명품을 유통하는 이탈리아 부티크들은 대부분 가족경영으로 운영되는 사기업들이라 직접 오너들을 열심히 만나러 다녔다. 돈이 없어서 배낭여행을 하듯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맨땅에 헤딩하는 날이 많았다. 이동하는 비행기나 기차 안에서 항상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고치면서 믿고 물건을 보내주면 다 팔 수 있다는 포부 하나로 열심히 설득하고 다녔다. 지금은 유럽 부티크 80여 곳이 보유한 브랜드를 우리에게 소싱해주는 기반으로 프리오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관심사를 사업 아이템으로


▎정준영 엔코드 대표와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
학생 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아 해외 구매대행 경험을 쌓았고, 본격적으로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5년 6월 법인을 설립한 후라고 들었다. 왜 창업을 결심했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우연히 이탈리아에서 부티크를 운영하는 사람과 알게 되어 한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명품 구매대행을 하게 됐다. 2008년부터 2011년에 군대에 가기 전까지 3년 정도 학교를 다니면서 명품 등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바잉하는 방법과 유통 방법 등을 익혔다. 졸업 후 귀국해서 명품이나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자는 게 시작이었다. 당시 아이디어로 정부지원 과제(스마트벤처창업학교 3기)에 당선되면서 1억원을 지원받았고, VC에서 1억원을 투자받아 시작했다.

학창 시절 게임보다 패션 잡지를 더 좋아했다고 하던데 많은 패션 아이템 중에서 명품을 선택한 이유는.

내 경험치도 있고, 판매량 대비 마진이 가장 높은 카테고리가 명품이었기 때문에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했다. 어렸을 땐 브랜드가 주는 만족감과 과시욕이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그 당시 유행하던 디젤 청바지를 사고 싶어서 최저가를 검색해봤더니 25만원이더라. 너무 비싼 것 같았다. 당시엔 해외직구도 없을 때라 이베이에 들어가서 같은 제품을 14만원에 낙찰받을 수 있었다. 이걸 디젤매니아라는 카페에서 22만원에 팔았다. 여기서 재미를 붙여서 비슷한 시도를 많이 했다.

자신 있는 분야에서 창업을 했지만 초반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들었다.

처음엔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물건을 바잉해서 판매하면 될 거라고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창업 이후 3년 정도는 ‘내 안의 퍼스널 쇼퍼’, ‘개인 맞춤형 쇼핑 플랫폼’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는데, ‘트렌비’나 ‘발란’처럼 유사한 해외직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생기면서 적자가 이어졌다. 생존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다. 그때부터 경매 시스템, 다단계 피라미드식 판매 시스템 등 8가지가 넘는 내부 프로젝트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시도한 프리오더 프로젝트가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렇다면 2018년에 프리오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사업 모델을 완전히 바꾼 것인가.

그렇다. 고객들이 정말 원하는 게 차별화된 서비스인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부분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본질을 파고들기 위해 최대한 담백하게 생각한 결과, 한국 사람들이 명품을 구입할 때 가장 민감한 부분은 가격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떻게 하면 가격을 압도적으로 싸게 팔 수 있을까. 브랜드 입장에서는 재고 리스크를 줄이고, 고객들은 싸게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 이렇게 다음 시즌 제품을 백화점 매장가 대비 30% 이상 저렴한 가격에 선주문을 받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지금의 프리오더 시스템을 시도하게 됐다.

지금은 패션 업계에 프리오더라는 말이 보편화됐지만,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 프리오더를 시도한 것은 엔코드가 국내 최초라고 들었다. 사실상 전례가 없던 시도였던 셈인데,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

경쟁사들이 생기면서 마진이 거의 안 나는 상황이었고, 투자금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몇 달 뒤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잘될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아이디어였고, 다행히 팀원들이 지지해줬다.

신상 명품 가장 싸게 파는 곳

모바일 쇼핑 플랫폼, 클라우드 펀딩, 선주문 전자상거래 등 프리오더가 이젠 익숙한 개념이 됐다. 디코드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본질은 소싱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상품 하나를 몇천 개씩 바잉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경우 우리가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하고 있고, 메종키츠네, A.P.C., 아미, 커먼 프로젝트 등 컨템퍼러리 브랜드와 보테가베네타, 구찌, 셀린, 펜디, 몽클레르, 이세이 미야케, 톰포드 등 지난해에만 80여 개 브랜드의 제품 4000여 종을 프리오더로 판매했다. ‘신상 명품을 가장 싸게 판다’는 게 우리의 핵심 경쟁력이다. 유럽 부티크들 중에 규모로 10위 업체 중 5곳이 국내에선 우리와 단독계약을 맺고 있다.

제품을 평균가보다 더 싸게 팔면 브랜드 입장에서 명성에 금이 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이 디코드의 프리오더 시스템에 동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샤넬, 에르메르, 루이비통 등 톱티어 럭셔리 브랜드를 제외하면 브랜드 파워로만 제품을 판매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브랜드마다 소비자들이 사고 싶어 하는 제품들이 정형화되어 있다. 우리가 한국에서 제품을 선판매해보면 뭐가 제일 잘 팔리는지 데이터가 쌓인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우리의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고 부담을 줄이고 잘 팔릴 만한 제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당장은 싸게 팔아서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재고 리스크를 없앨 수 있는 방향이다.

‘패스트패션’ 트렌드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가 심각한데 프리오더 시스템이 하나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맞다.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알 수 있다면 그만큼 재고를 줄일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환경 훼손을 줄일 수 있다. 명품 브랜드들은 가격을 할인하면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받기 때문에 재고를 계속 쌓아놓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두 소각한다. 버버리는 매년 약 300억원, 샤넬은 매년 약 400억원에 달하는 재고를 태워 없앤다. 이처럼 비용이나 환경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시즌에 앞서 미리 원하는 상품을 주문받고, 그만큼만 생산하는 프리오더 시스템이 대중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온라인 쇼핑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수혜를 봤을 것 같다. 지난해 사용자 수가 많이 늘었나.

유럽 부티크들은 대부분 유럽 관광객들로부터 수익이 발생하는데 지난해 하늘길이 막히면서 재고가 넘치는 상황이 됐다. 많은 브랜드의 재고 소진율이 70%에서 50% 수준까지 떨어져서 그들에게도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패션위크도 열지 못하고, 패션 플랫폼의 디지털화가 빨라지는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우리도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지난해 4만여 명 수준이었던 디코드 가입자는 지난 2월 기준 12만 명까지 늘었고, 매출액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13억원, 26억원에서 지난해 140억으로 늘었다. 올해 매출 목표는 400억원대로 잡고 있다.

디코드의 비전은 무엇인가.

패션뿐 아니라 의식주와 관련된 럭셔리 카테고리로 프리오더 시스템을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하반기부터 명품 식자재 판매를 시작한다. 유럽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트러플과 와인, 캐비어 등 현지 레스토랑, 와이너리와 협의해 소비자들이 더 쉽고 저렴하게 좋은 식자재를 구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이를 위해 독일에 글로벌 소싱 헤드쿼터를 세우고 내년 상반기부터 독일에서 직배송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해외 진출 계획이 궁금하다.

일본 진출도 준비 중이다. 몇 년 전 일-EU FTA가 체결되면서 2025년부터는 독일에서 일본으로 배송 시 무관세 혜택이 적용된다. 일본은 아직까지 오프라인 시장이 메인이고, 명품 시장의 온라인 침투율은 6.5% 수준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구매 패턴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현지 업체들과의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7년째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을 것 같다. 절대 어기지 않는 내 자신과의 약속이 있다면 알려달라.

‘꿈’과 ‘뻥’의 경계를 냉정하게 구분하려고 노력한다. 안 되는 걸 될 거라고 부풀리지 않았기에 처음에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프리오더라는 아이디어는 투자자들조차 믿어주지 않아서 신용보증기금에서 4억원을 대출까지 받아가며 버텼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철저히 내실을 다녀야 한다. 모든 걸 ROI(투자자본수익률) 관점에서 생각해왔다. 개인적으로도 인생의 ROI를 찾는 게 목표다. 부모님과 사회에서 받은 인풋 값의 최소 100배는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10년 안에 글로벌 매출 1조원, 20년 안에 100조원을 달성해 이 분야에서 아마존 같은 존재가 되겠다.

※ 김익환은… 노동력 위주의 제조업인 한세실업에 IT를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 CEO다. 한세드림, 한세엠케이, FRJ 등 패션 자회사들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며 지난해 1조9224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images/sph164x220.jpg
202104호 (2021.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