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가 설계해 100년이 넘도록 짓고 있는 독특한 모습의 바르셀로나 성가족성당. 인류를 위한 대작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혜안을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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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지중해를 마주한 해변 모래사장에 각양각색 옷차림을 한 피서객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멀리 보이는 바다에는 거대한 유람선들이 정박해 있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스페인 지중해에 자리해 연간 관광객 3200만 명이 찾는다는 바르셀로나의 풍광이다. 이렇게 많은 이가 바르셀로나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우디라는 건축가 한 사람이 세운 세계유산 7개를 보유하고 있고, 자유롭고 여유로우며 아름다운 지중해 그리고 맛있는 와인과 음식 덕분일 것이다.바르셀로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 바로 다음번에 열린 1992년 올림픽 개최 도시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를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방문하는 명소는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1852~1926)가 건축한 성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이다. 1883년 31세였던 젊은 건축가 가우디가 인수받아 1926년 전차에 치어 사망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반평생을 바친 미완의 작품으로, 가우디 건축의 백미로 불리는 이 성당을 필자도 찾았다. 성가족성당의 건축양식은 외양만 보아도 세계 어디서도 보지 못할 만큼 독특하며 창조성이 넘실댄다. 성당에서 가장 먼저 건축된 입구에서 건물 외벽과 첨탑 쪽을 올려다보면 신성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성당 입구 위쪽과 주변에 설치된 조각의 의미에 관해 설명을 들으며, 그 섬세한 조각에 담긴 성경 이야기에 매료됐다.성당 내부로 들어가자 또 다른 놀라움과 성스러움이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외부의 최초 건축양식 및 조각과는 전혀 다르게 성당 안 기둥과 장식들은 너무나 현대적인 감각으로 건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날렵하게 뻗은 현대식 기둥 윗부분에 박힌 거대한 보석 같은 장식은 성인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러 갈래로 뻗친 기둥의 윗부분과 천장의 디자인이 너무 독특해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모자이크 유리(Stained glass)로 처리된 창문도 유럽의 다른 성당과 달리 현대식 디자인이고 조명도 아주 독특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성당 내부를 돌아보고 반대쪽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시차를 두고 새로 지어진 부분의 외벽과 조각을 보니 또다시 전혀 다른 느낌의 건축양식이 눈에 들어온다. 성가족성당은 지금도 미완성 부분을 짓고 있다. 현대식 타워크레인이 여러 대 설치돼 공사가 한창이다.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아직 정문도 채 완공되지 않았고 언제 공사가 끝날지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인류에게 남겨질 아름다운 건축물답게 결코 서두르지 않으며 1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서 완벽하게 마무리할 모양이다.바르셀로나에서 대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자니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란 화두가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앞서가는 나라들을 빠르게 따라잡기(Fast Follow) 위해서 열심히 땀 흘려왔다. 그야말로 빨리빨리, 숨 가쁘게 뛰었고 그 결과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반면에 성수대교 붕괴, 와우아파트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가슴 아픈 희생도 치렀다. 역사적인 대형 프로젝트를 짧은 기간 내에 마치고자 하는 조급함으로 인해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그러나 이제는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을 갖고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한다. 속도전이 필요할 때는 빨리 밀고 가야겠지만, 시간이 필요할 때는 성가족성당같이 100년, 200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마감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 남는 프로젝트로 완성해야 한다. 선진국으로서 기업이나 국가 경영도 장기적인 안목을 지닌 지속가능 경영을 통해 장수기업과 장수국가로 번영해 나가야 한다.
100년 넘은 공사가 남길 인류의 유산
▎구엘 공원 입구. 가우디가 디자인한 재미있는 건물들은 만화에나 나올 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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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족성당에서 받은 감동을 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내용을 검색해보았다.“안토니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 시내와 인근에 지은 7개 건축 유산은 그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건축과 시공 기술의 발전에 매우 창조적으로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이 기념물들은 건축뿐만 아니라 정원, 조각, 모든 장식예술의 디자인을 자유롭게 시도하면서도 절충적이고 매우 개인적인 스타일이 표현된 것이다. 7개 건축 유산은 카사 비센스(Casa Vicens),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가우디 작품인 예수 탄생 파사드(Nativity facade),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예배실, 카사 바트요(Casa Batllo), 콜로니아 구엘(Colonia Guell) 성당의 지하 예배실 등이 있다.”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없는 나라도 많은데, 하물며 한 건축가의 작품이 7개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것은 그의 건축물들이 얼마나 독창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대변한다. 가우디의 또 다른 작품이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구엘 공원을 찾았다. 카르멜 언덕 위에 있는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경제적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도시를 모델로 건축됐다.만화에나 나올 법한 타일 모자이크 장식 건축물들, 인공 석굴 등이 가우디가 좋아했던 곡선미를 잘 보여준다. 석굴 기둥의 곡선미는 파도가 휘말려 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돌기둥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명암의 신기한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돌기둥들은 종려나무들과 너무 잘 어우러져 있다. 공원 이곳저곳에서 가우디의 독창적인 예술적 흔적을 감상할 수 있다. 공원 계단을 내려오다 본 서양 용(龍) 모양의 분수도 재미있다. 가우디는 본래 이곳을 화려한 도시로 만들려 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완공하지 못했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것을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사들여 공원으로 바꾸었다.방향을 틀어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타디움을 방문했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우리가 영원히 잊지 못할 중요한 경기가 있었다. 몬주익 언덕에 있는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대한민국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몬주익 경기장 앞에 새겨진 황영조 선수의 경기 모습과 태극기, 황영조 선수의 풋 프린팅을 보고 있으니 그저 감개무량할 뿐이다.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 언덕을 뛰어올라 결승선에 골인하던 장면,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게양되는 감동적인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현장에서 가슴 벅찼던 추억에 잠겼다.올여름도 올림픽의 계절이다. 팬데믹 때문에 조용히 시작된 도쿄 올림픽이지만 경기장에서의 열기는 점점 달아올라 커다란 기쁨과 감동을 전해주었다. 승자의 환희와 환호, 패자의 아쉬움에 찬 눈물을 보았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노력하며 흘린 땀의 결과에 경의를 표하며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 하나하나가 모두 승자라고 생각한다. 폐회식에서 울려 퍼진 올림픽 찬가는 “우정과 동료애가 모든 민족의 영혼을 에워싸도록 하라”라고 말한다. 가사처럼 올림픽 정신이 전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길 바란다.특히 우리 양궁 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여자 양궁팀은 이후 33년 동안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아홉 번이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야말로 위대한 역사적 기록이다. 모든 언론이 한국 양궁의 9연속 금메달 소식을 대서특필하고, 어떻게 이런 훌륭한 결과가 나왔는지 여러 원인을 분석해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바로 ‘공정한 경쟁’이었다. 모두에게 문호를 열고 과거 경력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투명한 과정과 결과를 이끌었다. 과거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1, 2차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고 3차 선발전과 평가전만으로 국가대표를 뽑던 관행과 특혜를 과감히 없앴다. 혹독한 검증을 거친 결과 17세와 40세로 이뤄진 남자 대표 원팀이 경기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한국 양궁이 일깨워준 공정한 미래
▎몬주익언덕의 올림픽 경기장 앞에 있는 황영조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의 역주하는 모습과 풋프린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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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고 투명한 경쟁 과정을 거쳐 실력으로만 선발되는 공정의 가치가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어 명실공히 선진 대한민국의 상식이 되길 기대한다. 이러한 공정의 가치는 국민의 행복 지수를 한껏 올려줄 것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한 십대 소년 소녀들과 젊은 선수들의 활기차고 용기 있는 활약은 우리나라의 미래가 희망적이고 밝다는 생각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었다.33년 전, 1988년에 열린 서울 올림픽은 우리 역사 발전에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와 글로벌화가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올림픽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진출하려는 외국계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Inward Foreign Direct Investment)를 할 때는 반드시 국내 파트너와 합작투자(Joint Venture)를 해야만 했다. 지금 개발도상 국가들이 외국인의 100% 투자를 허용하지 않고 합작투자만 허용하는 경우와 같다. 그러나 88올림픽을 전후해 우리나라는 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전 세계 외국기업이 소유 지분을 100% 확보할 수 있게 됐고, 공장 등 부동산도 100% 소유할 수 있어서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이다.이후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이 우리나라 제조업과 무역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흔히 접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들, 가령 맥도날드나 버거킹, 피자헛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이때부터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들은 올림픽 이전만 해도 외국에 나가야만 볼 수 있었다. 올림픽 전에는 홍콩이나 일본, 유럽, 뉴욕에 가야만 볼 수 있었던 루이비통, 에르메스, 샤넬, 구찌 같은 명품 매장들도 올림픽 이후 한국에 등장했다. 이제는 우리나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브랜드들이다. 그만큼 올림픽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대단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파도가 휘몰아치는 듯한 가우디의 인공 동굴이 매력적인 구엘 공원. 곡선과 빛의 조화가 특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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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30년 남짓이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발전을 거듭해 올해 7월 세계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에 공식 진입한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된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개회식과 폐회식의 감동, 경기장을 찾아서 응원하던 그 열기가 지금도 마음에 느껴진다.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에서는 첫째, 가우디의 세계유산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지속가능성과 장수(Longevity) 경영에 관한 성찰을, 몬주익 언덕의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공정의 가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았다. 공정(Fairness)의 가치는 지속가능성을 잉태하고 창출하며, 장수기업과 행복한 국가를 이루는 바탕이 될 것이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