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는 수만 년간 끊임없이 살아 있는 교역로였다. 정정이 불안해져도 상인들은 목숨을 걸고 무역을 해서 이익을 남겼을 것이다. 생명수당까지 포함된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의 높은 이익은 이 길에서 사고 팔리는 물건들이 유라시아 구석구석까지 유통되는 동력이 됐다.

▎중국 신장 위구르의 천산남로에 있는 베제클리크 계곡.

팍스 몽골리나 때처럼 무역이 안전해지면 대량의 물건이 거래되면서 가격은 낮아지고 이익률도 떨어졌지만 유통량은 늘었다. 특정 지역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해지면 물류가 어려워지면서 물건 값은 폭등하고 교역량은 급감했다. 200년경 로마와 한나라의 정치가 불안해지자 로마에서 수입되는 중국 상품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로버트 J. 고든 노스웨스턴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석기시대부터 1800년까지 인류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00002%였다. 1870년의 생활환경은 21세기보다 중세시대에 가까웠다. 이처럼 인류가 초저성장시대를 살았을 때 21세기 벤처기업처럼 옛 상인들은 고수익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 사막, 초원, 산맥을 횡단하며 무역을 하고 문명교류를 이루어냈다. 부모, 조부모가 살아온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야심 있는 사람들이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은 생명을 걸고 위험한 장삿길을 떠났다.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한 ‘보이지 않는 손’은 근대뿐 아니라 지난 수만 년간 유라시아 대륙에서 장사꾼들의 손에 의해 문명 교류를 이루어냈다. 영국 학자 수잔 휫필드가 쓴 『실크로드 이야기』라는 책에서 소설 형식으로 풀어 쓴 8세기 소그드 상인 이야기를 읽어봤더니 요즘 21세기 상인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물론 21세기 상인들은 훨씬 더 복잡한 기술, 낮고 빠른 물류비용, 빠른 통신 속도, 다양한 상품과 복잡한 공급망을 가지고 있지만 제한된 자원으로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매하는 기본적인 구조는 1000년 전 소그드 상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히려 오늘날 상인들보다 훨씬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하고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거래비용을 투자해야 거래가 이루어졌다.

현대의 지구촌은 단편적인 사건들로 인한 획기적 전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만 년에 걸쳐 서서히 전개된 과정이 축적되어왔고, 고대문명이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몽골제국시대, 대항해시대, 산업혁명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대량운송수단이 개발되어 무역이 빠르게 성장하다가 현대에 인터넷이 발명되고 초연결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역사의 여명기에는 귀금속, 향료, 비단 같은 고가 제품이 무역되다가 점차 가격이 싸고 부피가 큰 화물로 확대되면서 유라시아 대륙이 통합되었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하면서 아메리카 대륙까지 통합되었다. 이 시대의 제트기, 컨테이너선, 인터넷, 세계화된 공급망은 지난 5000년간 이어진 인류 무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실크로드 무역사를 살펴보면 오늘날 급변하는 국제무역의 패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실크로드에 대한 유목국가와 농경국가의 관심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중국 등 물자가 풍부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경제국은 유목세력을 견제하고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군사적·정치적 이유로 실크로드에 진출했지만, 유목국가들은 당장 자기들에게 필요한 농경지역의 물자를 확보하고 실크로드 교역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일부를 차지하려는 절실한 경제적 동기에서 실크로드를 장악하고자 했다. 따라서 실크로드 교역을 담당했던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상인, 위구르 상인들과 유목국가 사이에 이해의 일치가 이루어져 공생관계가 유지되었고, 실크로드 상인들은 인류 문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또 이들은 유목제국의 농경국가 침략에 선봉대, 정보기관 역할까지 수행했다. 유목민의 군사력과 상인들의 상업력이 결합해 실크로드를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실크로드의 핵심 지역인 신장 위구르는 주로 유목세력들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농경정주세력인 중국은 한나라, 당나라 때 일시적으로 신장 위구르 지역에 진출했으며 청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신장 위구르 지역에 진출하지 못했다.

▎부하라 시장에서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는 세밀화. 세밀화는 돌궐·몽골 유목민들이 좋아하는 그림이었다. 이탈리아 베니스, 사하라사막의 모로코에서부터 인도, 중국까지의 무역을 주도한 실크로드 대상들의 모습을 그렸다. 실제로 고대 소그드 상인들은 아프리카 이집트에서 한반도까지 유라시아 전역을 연결했다. 돌궐, 위구르, 당나라와 같은 제국들은 소그드 상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고대판 군산복합체를 만들었다. 스키타이, 흉노, 돌궐, 몽골에 이르기까지 유목제국들은 유라시아 무역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해 인류문명을 업그레이드했다.

당나라 시대에 ‘안사의 난’을 일으켰던 안록산의 아버지는 소그드인이었고 어머니는 돌궐의 무녀였다. 안록산의 뒤를 이어 반란군을 지휘했던 사사명도 소그드인이었다. 안록산의 부모가 각각 돌궐인과 소그드인이었듯이 이들 유목민과 실크로드 상인들은 절친한 공생관계였다. 소그드인들이 본격적으로 중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유목민 세력들이 중국 대륙에 들어온 시기와 일치한다. 3~4세기 선비족 출신들이 북중국에 건설했던 북조 정권, 탁발선비 혼혈집단이 건설한 수당 왕조의 통치 시기, 특히 당나라의 개방성과 국제성은 이전과 이후에 나타난 한족 왕조의 폐쇄성과 매우 대조적이다. 역사언어 학자이자 중앙유라시아 연구자인 크리스토퍼 벡위드는 저서 『중앙유라시아 세계사』에서 실크로드 교역에 대하여 새로운 주장을 했다. 벡위드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고구려에 이르는 유라시아 문화복합체의 핵심 요소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전사 집단 코미타투스였으며, 람세스 2세의 이집트와 맞붙었던 히타이트부터 칭기즈칸의 네 친구까지 유라시아 대륙은 코미타투스 전사들이 휩쓸었다. 군주는 자신을 섬기는 코미타투스들을 위해 금실로 수놓은 비단옷과 황금 장식 칼과 장신구 같은 위신재를 구입하느라 막대한 비용을 썼다고 한다. 이런 사치품은 대부분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조달했고, ‘실크로드’라는 국제무역로는 코미타투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가동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동서 문명교류의 허브, 부하라

▎2000년 이상 한자리를 지켜온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 시장.

찬란한 오아시스 문명이 발전했던 부하라는 지금은 호기심 많은 해외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다. 비단, 차, 유리, 노예와 같은 수많은 문물과 사람들이 부하라 시장에서 거래되면서 부하라는 동서 문명교류의 허브가 되었다. 고대 실크로드를 주름잡았던 소그드인들은 기원전 1세기부터 이 동네에서 수표를 썼다고 하며, 부하라 유대인들은 고대부터 이 지역에서 환전·대금업에 종사하고, 금 자수를 했다고 한다. 몽골제국 시대에는 몽골 귀족들이 이곳 상인들에게 ‘오르톡’이라는 조합을 만들어 주식회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투자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배분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몽골제국 시대에는 세금이 비교적 적었다. 필자는 자본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주식회사, 은행, 수표 등이 베네치아에서 시작된 서양의 근대적 기업 시스템에서 유래했다고 배웠는데, 그 기본 개념이 이미 기원전부터 이곳 실크로드 상인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인들은 경제성장률 2~3%를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렇게 경제성장률이 높아진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특별한 현상이고, 인류 역사의 대부분 시기에 연평균 0.1% 이하의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3%에 불과했다. 해방 이후 10%에 육박했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인류사에서 극히 드문 사례 중 하나였다. 이처럼 저성장 시대였던 고대에는 신분이 동의 제한이 심했고, 열정과 꿈이 있는 사람들은 장사꾼이 되었을 것이다. 실크로드 대상들은 요즘 시대로 치면 벤처기업인과 같다. 목숨을 걸고 수십 배, 수백 배 이익을 남기는 장사를 목표로 실크로드를 오가면서 문명교류를 만들어냈다. 사막을 건너는 장사꾼들은 보통 낙타 200~300마리로 카라반을 편성했고 그중 4분의 3 정도에는 교역품을 싣고 나머지에는 식량과 물 등을 실었다. 기록에 남은 최대의 카라반은 낙타 1만 마리 규모였다고 하니,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이 얼마나 활발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는 모두가 낙타를 탔지만 가는 길에는 카라반의 우두머리와 요리장만 낙타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카라반의 우두머리는 길이 없는 사막에서 별과 미세한 발자취만 보고도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했으며, 여러 언어를 할 줄 알아야 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우물과 오아시스의 위치를 잘 일고 있어야 했다.

유목민족들은 실크로드 상인들의 후원자일 뿐 아니라 사업 파트너였다. 흉노, 돌궐, 위구르 사람들은 중국에서 막대한 비단을 진상품으로 받아서 페르시아와 비잔틴에 팔아 큰 수익을 올렸다. 몽골제국 시절에는 몽골 귀족과 실크로드 상인들이 관민 합작으로 소금과 철을 독점했을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에 거대한 중세판 종합상사 ‘오로톡’들을 운영하기도 했다.

▎1000~2008년의 세계 GDP 점유율.

실크로드의 주인공들은 다리우스 2세, 알렉산더, 칭기즈칸, 티무르 같은 영웅들이 아니라 유라시아 구석구석을 다니며 이익을 추구했던 신드바드와 장보고 같은 장사꾼들이다. 역사상 유명한 영웅들과 왕, 정치인, 군인들은 장사꾼들에게서 세금을 뜯어 전쟁을 하고, 이름을 날리고, 영토를 넓혔지만 실핏줄같이 이어진 유라시아 네트워크의 피를 돌게 했던 이들은 이름 없는 장사꾼들이었다. 이들이 실크로드 문명교류의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한 번 장삿길에 오르면 길게는 10년이 넘는 긴 시간을 실크로드 위에서 보냈다. 그들이 사고판 물품들은 다양한 민족의 문화와 문명을 싣고 널리 퍼져 나갔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당나라 장안에서 산 비단을 싣고 곧바로 로마로 달려간 것은 아니다. 그들은 타클라마칸사막과 파미르고원을 지나 사마르칸트까지 비단을 운반해 아랍 상인에게 팔았다. 아랍 상인이 바그다드를 거쳐 콘스탄티노플에 가져다 팔면, 베네치아 상인이 알렉산드리아와 유럽 각지에 가져다 파는 등 이어달리기 식으로 교역이 이루어졌다. 그들 중에는 8~9년이 걸리는 먼 길을 다니는 대상도 있었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