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19) 

대상의 본질-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관점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유일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페테르 클라스 [정물화] 1644.
19세기 후반은 유럽의 문화적 번성기였다. 교통망과 기계가 발달하면서 산업이 발전했고 부유한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문화에 관심이 높아졌다. 진보적이고 도전적인 미술양식에 관대해지면서 인상주의와 같은 새로운 화풍에도 너그러워졌다.

20세기 초는 신선한 물리학 이론들이 대거 출현했던 물리학의 전성기였다.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모든 것이 기계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다른 가능성이 부재하다고 주장한 뉴턴의 고전물리학과 전혀 다른 접근의 상대성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그동안 절대적으로 여겨졌던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에서 두 사건이 공간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날 때 관측자에 따라 시간은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길이, 폭, 깊이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3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가 4차원을 경험할 수 없는 이유는 시간을 팽창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한 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는 미시세계에서는 복수의 가능성이 중첩되고 정해진 것은 없다고 이야기했다.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한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1900.
시간과 공간을 합쳐진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성(synchronisity)의 개념은 20세기 초 새로운 예술을 갈망하던 예술가들의 움직임에서도 발견되었다. 동시성의 개념은 공간을 초월하면서 사물들의 모든 측면을 한 번에 보여주는 그림의 탄생에 관여했다. 화가들이 사물의 앞과 측면뿐 아니라 위와 아래, 혹은 뒷면까지 함께 보이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확장되고 공간이 수축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을 큐브와 같이 단순화하고 해체해 펼쳐놓아야 여러 면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림 속에는 이제 앞과 옆, 위와 아래, 뒷면까지 모두 한 장에 담기게 되었다. 시점을 이동하며 그림을 담아낸 입체주의는 고정된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공간의 표현 규칙인 원근법을 파괴한 것이다. 절대적이었던 고전물리학이 유일한 답이 아니었듯이 절대적이었던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 규칙들도 이제 유일한 답이 아니게 되었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지평이 과학과 함께 확대되면서 다차원적인 시각을 담는 예술이 함께 탄생했다.

그림 한 장에 담긴 다양한 시점


▎파블로 피카소 [정물화] 1901.
르네상스 이후부터 화가들이 암묵적으로 따랐던 약속이 있었다. 하나의 시점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직선 원근법을 지키고, 형태와 명암의 규칙에 따라 입체감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후기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은 놀라운 변화를 시도했다. 그림 한 장에 여러 개의 시점을 동시에 담아 그린 것이다. 네덜란드 화가 클라스의 정물화에서는 테이블과 접시, 주전자를 바라보는 시점은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세잔의 정물화에서는 도자기 주전자와 사과 접시들, 테이블을 보는 시점이 모두 다르다. 일부는 뒤로 쓰러질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앞에 그려놓은 사과 접시는 앞으로 쏟아질 것처럼 보인다.

파격적이고 당황스러운 구도와 정물 배치에 많은 사람이 세잔의 그림을 조롱했지만 그의 정물화에 담긴 다양한 시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화가가 있었다. 천재 화가로 불리는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가 그 주인공이었다. 이 둘은 입체주의의 개념에 동의한 동료 작가로서 함께 작업하며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사물의 다양한 진짜 모습을 평면에 보여주기 위해 다각도로 접근한 방식은 입체주의라는 완전히 새로운 미술 사조를 만들어냈다.

늘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때로는 유일한 정답이 아닐 때가 있다. 수백 년 간 모두가 따랐던 규칙이 깨지는 순간 놀라운 미술이 시작되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 이미 존재했던 것들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본질을 찾다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산] 1885.
브라크는 세잔의 풍경화에서 대상을 점차 단순하게 바라보는 본질적인 접근에 큰 영향을 받았다. 세잔은 처음에 인상주의 화가로 시작했지만 순간을 그린 인상주의 그림에 만족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영원할 수 있는 대상을 남기려 했다. 하나의 풍경을 수도 없이 그리던 세잔은 세상에 있는 모든 형태의 본질은 원통, 원뿔, 구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전통회화를 넘어선 그림을 남겼다.

브라크의 풍경화에서는 계절감과 날씨를 느낄 수 없다. 풍경 그 자체를 그린 것이 아니라 풍경의 본질을 그리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이미 당시에 미술계 거장이었던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매년 가을 프랑스에서 열리는 미술전시회인 ‘살롱 도톤느’에 출품된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집들]을 보며 “그림 속에 작은 입방체들이 있다”고 설명했으며 여기에서 입체주의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조르주 브라크 [에스타크의 집들] 1908.
이후 ‘과거의 관념에서 미술을 해방시켰다’는 극찬을 받은 입체주의식 접근은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대상의 형상을 사라지게 하고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만 남겼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해석이나 감정은 작품에 들어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무엇을 그리는가’에 관한 주제보다는 ‘어떻게 그리는가’와 관련된 표현 방식에 우선순위를 두었기에 대상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복잡한 구조를 지닌 유기체이다. 그러나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원자이다. 우주의 폭발로 인해 생겨난 원자들이 생명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원자들은 우리의 몸을 만들고 우리가 사망하면 다시 원자로 돌아간다. 복잡성을 모두 제외하면 가장 단순한 것만 남게 되는 원리이다. 미술적 접근에서 보면 가장 본질적인 것은 색이 아닌 형태, 가장 단순화된 구조였으며 입체주의는 그 본질을 바라보는 시도에 가장 충실했다.

단순하게 바라보기


▎폴 세잔 [목욕하는 5명의 여인들] 1887.
1907년 입체주의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그림이 완성되었다.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은 피카소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은 아비뇽 거리에 있는 매음굴의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높은 찬사와 악평을 동시에 받은 그림이기도 하다. 마티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었다가 악평을 들은 피카소는 10년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피카소는 이 그림에서 단순화한 여성의 몸을 기하학적이면서 왜곡된 모습으로 그렸다.

생각의 관점에서 무엇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화 작업이 필요하다. 하나의 대상은 수많은 묘사와 표현이 섞여 있는 복잡한 덩어리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집합화하고 단순화해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저마다 다른 삶의 경험이나 관점, 지식이나 추구하는 바에 따라 단순화하는 방법도 제각기 다를 것이다. 너무나 복잡해진 세상에서 삶의 양식과 생각을 단순화해 살아가는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유일한 정답은 없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은 한 사물의 본질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가 친구가 파인먼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꽃의 아름다움을 느껴야 하는데 꽃의 세포와 꽃의 역학만 바라보는 네가 안타깝다.” 파인먼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물의 본질을 더 많이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기 때문에 내 지식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화가는 색채적 지식이 더 많기에 색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데는 나보다 뛰어날 수 있겠지만, 내가 꽃의 DNA 구조, 꽃이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대한 관점으로 바라본 꽃도 여전히 아름답다.”

한 사물의 본질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한 가지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치 정답이고 더 나은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대상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본질과 가치는 다양성과 생명력을 지니며 성장한다.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다양성은 더욱 확장된다.

입체주의는 한 가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편견이 없는 그림이다. 복합 시선을 그림 하나에 표현한 점은 우리가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 차별은 한 가지 관점에서만 바라보려고 하는 편견에서 비롯된다.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가 물리학의 지평을 열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냈지만 여전히 뉴턴의 고전물리학은 가장 기초적인 진리로서 지금도 유효하다. 뉴턴의 이론이 틀린 점은 ‘고전물리학만이 맞다’라고 접근한 것뿐이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직선원근법 역시 미술에서 가장 기초적인 접근법이지만 복합 시선의 입체주의도 틀리지 않았다.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이제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유일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109호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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