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20) 

진실과 거짓-얼마나 나를 속일 수 있을까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한 빈도의 거짓말은 행동과 책임을 수반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치명타를 날릴 수도 있다. 빛나는 거짓말이 커질수록 그림자는 더욱 커지며, 이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는 스스로의 거짓말로 인한 심리적 몰락을 경험할 수도 있다.

▎마거릿 킨 [The First Grail] 1962
사람들은 진실만 이야기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사실을 숨기며 살아가기도 한다. 굳이 알릴 필요가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하기도 하고, 크게 피해가 가지 않는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모든 사생활을 이야기하지도 않으며 부부간에도 모든 것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어주는 거짓말이 인간관계를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10분 안에 거짓말을 세 번 하게 된다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 거짓말은 자신의 체면과 존엄을 지켜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거짓말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부터 거짓은 부정적인 힘을 가지기 시작한다. 거짓의 힘에 매료되어 자신이 만든 가짜 세상 속에서 마치 진짜인 것처럼 살아가기도 하며, 자신의 거짓말이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점차 무감각해진다. 이미 만든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느 순간에는 멈추지 못하는 상황을 만나기도 하고, 이제 와서 진실을 밝히기에는 그동안 내뱉은 거짓말이 너무 많아 주워 담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거짓말의 그늘 속


▎마거릿 킨 [갈색과 금발의 소녀들] 1962
미국 화가 마거릿 킨(Margaret Keane)은 10년간 자신을 거짓말의 세계 속에 숨긴 채 살아가야 했다. 자신의 작품들이 사랑받고 있는 도중에도 자신이 그 그림의 화가라고 세상에 밝힐 수 없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유양돌기염 수술을 받은 후 한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된 그녀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의 눈을 보는 법을 배웠다. 아이들의 깊고 큰 눈을 영혼의 창이라고 생각한 마거릿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아이들의 큰 눈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The first grail] 속 아이는 지저분하고 좁은 골목에서 어둡게 드리워진 그림자 앞에 말없이 서 있다. 그녀가 느낀 세상은 눈으로 소통해야 하는 곳이었다.

마거릿이 자신을 숨겨야 했던 이유는 두 번째 남편 월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딸을 키우며 지내던 때 월터 킨(Walter Keane)을 만났다. 부동산 중개업자였던 그는 입담이 화려했고 마거릿은 그에게 빠르게 매료되어 결혼하게 됐다. 월터는 그녀의 그림을 판매하기 위한 전략에 몰두했는데, 그녀의 그림을 클럽 벽에 전시하면서 판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때 월터는 아내의 그림을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처음에는 그림을 팔기 위한 작은 거짓 말이었다. 그러나 여성 화가의 입지가 좁고 자신의 언변이 그림을 판매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마거릿을 설득한 월터는 그 뒤에도 계속 그녀가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화가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녔다. 월터는 세계를 여행하며 보아온 전쟁 고아들을 그린 그림이라는 콘셉트로 인터뷰를 했고,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결혼을 한 마거릿이 서명한 ‘Keane’은 월터의 성이기도 했기에 사람들은 의심 없이 그의 말을 믿었다.

빅아이즈 시리즈는 사업 수완이 좋았던 월터 덕분에 한순간에 주목을 받았다. 매체와 대중은 큰 눈의 아이들 그림에 매료되었고, 월터는 빅아이즈 시리즈를 통해 스타 작가가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갤러리를 열었고,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포스터와 엽서 등 복제품을 대량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중미술의 상업화를 이루면서 명성을 얻은 월터는 성공에 취해 아내에게 더 많은 그림을 그리도록 요구했다. 마거릿은 하루에 16시간 이상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리면서 그림을 생산해내야 했지만 자신은 뒤에서 숨어 지내야 했다. 방송과 매체는 연일 월터를 조명했고, 그녀가 진짜 화가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월터는 아내를 학대하고 협박했다.

그녀가 어둠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안 월터는 동시대 작가 중 가장 성공하고 인기 있는 예술가가 됐다. 월터는 마치 진짜 예술가처럼 행동했고, 자신이 정말로 화가라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유명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파티를 즐기는 월터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강압적으로 압력을 넣는 월터가 동시에 존재했다.

내가 존재함을 외치다


▎마거릿 킨 [엄마와 아이] 1963
월터의 그림자처럼 살아야 했던 마거릿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다.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 진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월터를 설득하여 ‘MDH Keane’이라는 서명과 함께 그림을 세상에 내놓았다. MDH는 그녀의 처녀 시절 이름이었던 Margaret Doris Hawkins의 약자였다.

그녀는 어린아이가 아닌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림 속에는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답답함과 점차 정신적으로 망가지는 모습이 표현됐다. [갈색과 금발의 소녀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딜리아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긴 얼굴과 목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눈 속에는 어둠이 보인다. 창백한 얼굴과 입술, 눈 밑에 드리워진 그늘은 세상에 존재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허망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신의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자신도 입을 다문 채 정면을 응시한다. 수없이 반복적으로 자신을 그림 속에서 마주하고 또 찾아가려 노력했던 그녀는 고통스러워했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생존법을 찾은 것이다.

[엄마와 아이]처럼 아이와 어머니의 유대관계는 그녀의 그림에 종종 등장하는 소재였다. 월터에 대한 두려움 안에서도 그녀가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데는 딸의 역할도 컸다. 모성이 그녀를 버티게 만들었고, 결국 용기를 내어 1964년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거릿은 딸과 함께 하와이로 떠나 월터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월터는 이혼 조건으로 빅아이즈 그림을 요구했고, 하와이에 가서도 월터의 이름으로 그림을 그려 보내주어야만 했다. 그러던 그녀는 더는 자신을 속이며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마거릿은 딸의 응원에 힘입어 1970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이 빅아이즈를 그린 화가임을 밝혔다. 방송이 나가고 신문에 기사가 실리자 미국 미술계는 발칵 뒤집혔다.

다시 찾은 나


▎마거릿 킨 [증거물 224호] 1986
월터는 쉽게 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USA Today를 통해 그녀가 방송에서 말한 것이 모두 거짓이라고 인터뷰를 하고, 그녀가 미쳐서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그대로 보도됐고 1986년 마거릿은 월터와 USA Today를 모두 고소했다. 그녀는 법정에서도 계속 거짓말을 하는 월터와 싸워야 했다. 월터와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그림의 화가가 월터라고 그녀 스스로 이야기한 증거가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립에 판사는 마거릿과 월터에게 법정에서 60분 동안 빅아이즈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월터는 어깨가 아프다는 핑계로 그림 그리기를 거절했고, 마거릿은 53분 만에 [증거물 224호]를 완성했다. 법원은 그동안의 그림이 마거릿의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었고 월터에게 손해배상금 40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에 열광하는 동안 마거릿은 어둠 속에 있어야만 했고, 지속적인 가스라이팅과 협박은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10년 동안 자신과 주변의 모든 사람을 속이며 살아왔고 그것이 마치 지속될 것처럼 여겨졌지만 그녀는 결국 진실과 마주하기를 택했다. 결국 그동안의 거짓된 삶을 보상받듯 하와이에서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됐다. 월터는 끝까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진짜 예술가라는 거짓된 세상 속에서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자신을 되찾은 마거릿의 그림은 점차 다양해졌다. 월터가 만든 가짜 세계에서 벗어났고 일부러 자신의 화풍과 다른 그림을 그리려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중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은 “킨의 작품은 틀림없이 휼륭하다. 작품이 볼품없다면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할 리 없다”고 그녀의 그림을 지지했다.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두 개의 세상을 보여준다. 왼쪽에는 폐허가 된 세상에 있는 불안한 아이들을 그린 반면 오른쪽에는 즐거운 세상에 있는 행복한 아이들을 표현했다. 왼쪽 세상의 아이들의 눈은 어둡기만 하지만 오른쪽 세상 속 아이들의 눈에는 생기가 있다. 그녀가 세상 속에서 자신을 찾기 전과 후의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한 듯한 그림이다.

“저는 이제 밝은색 물감으로 어린이들이 동물들과 함께 즐겁게 미소 짓는 행복한 그림, 지상 속 낙원을 그립니다. 세상에는 슬픔도 있으니 때로는 슬픈 그림들도 그리지만요.”

거짓말, 그리고 책임감


▎마거릿 킨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1992
거짓말은 상호적인 행동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하는 거짓말은 그 어떤 힘도 갖지 못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거짓말에 동의하게 되는 순간 거짓이 완성된다. 마거릿도 처음에는 좋든 싫든 윌터의 거짓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이 사람들로부터 크게 사랑받지 않았더라면 한 번의 그림 판매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데 중요한 것은 거짓말의 크기와 빈도이다. 자신에게는 진실이어도 남에게는 기분이 나쁜 상황이라면 우리는 거짓말을 선택한다. 소중한 사람이 해준 음식이 맛이 없어도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확연한 도덕적 잣대가 없지만 모순적이게도 개인마다 구체적인 잣대가 있다. 살인은 나쁘다는 도덕적 잣대는 무조건적이지만 거짓말은 그렇지 않다.

지나친 거짓말은 스스로를 거짓 세계에 살게 만드는 리플리 증후군을 유발하기도 한다. 거짓말에 매몰되면 거짓말을 함으로써 거짓말에 맞는 행동까지 하게 된다. 월터도 처음부터 악마는 아니었을 것이다. 둘이 잘 살아보자는 취지로 거짓말을 시작했지만, 그의 마음도 점점 거짓에 잠식되어가며 고통받았다. 결국 아내의 재능이 자신의 것인 듯 행동해야 했고, 자신이 받는 찬사가 높아질수록 자신의 한심함이 증명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스스로에 대한 분노는 아내에 대한 학대로 이어졌다. 반복적인 거짓말은 끊임없이 좌절감을 만들어냈고, 유명 인사들과 파티를 즐기고 돌아오는 내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진행되었던 교도소 실험을 극화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대학생들은 건물 지하에 만들어놓은 가짜 교도소에서 교도관과 죄수의 역할을 각각 부여받은 채 실험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이 합의된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교도관 역할을 맡은 대학생들이 진짜 죄인이 아닌 대학생에게 가혹행위를 하며 실험은 급히 종료됐다. 일정 수준에서 벗어난 거짓말은 부부간이라거나 실험이라는 사실을 떠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허용될 수 없다.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한 빈도의 거짓말은 행동과 책임을 수반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치명타를 날릴 수도 있다. 빛나는 거짓말이 커질수록 그림자는 더욱 커지며, 이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는 스스로의 거짓말로 인한 심리적 몰락을 경험할 수도 있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110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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