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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이 만난 아트 인플루언서(17) 하모니시스트 박종성 

“하모니카의 새 역사, 제가 쓰겠습니다” 

유주현 기자
노을 지는 언덕에서 하모니카로 ‘고향의 봄’을 불어주던 옆집 오빠…. 그런 오빠는 있어 본 적 없지만, 하모니카에는 왠지 그런 낭만적인 이미지가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동요 한 곡쯤은 불어본 친숙한 악기라 잠자던 동심을 건드리는 것 같다. 그런데 ‘하모니카는 동요나 부는 쉬운 악기가 아니’라며 동심을 파괴(?)하고 나선 사람이 있다. ‘하모니카의 초절기교’를 시험하고 있는 하모니시스트 박종성(35)이다.

박종성은 견고한 클래식의 성벽을 작은 하모니카로 분주히 두드리고 있다. 올해를 ‘오케스트라 프로젝트의 해’로 삼아 협주곡을 만들어 대극장 공연까지 했고, 클래식 축제에도 당당히 초대받았다. 지난달 열린 제6회 마포문화재단 M클래식 축제의 에코릴레이 콘서트의 주인공이 되어, 직접 섭외한 게스트 피아니스트 문재원, 첼리스트 제임스 김과 트리오 연주를 펼쳤다. ‘전원의 풍경을 담다’라는 테마로 제임스 무디의 ‘톨레도: 스페인환상곡’부터 민요 ‘새야 새야’, 막스 부르흐의 ‘오보에, 첼로, 피아노를 위한 8곡’까지 하모니카의 다채로운 매력을 토해낸 무대였다.

“환경을 테마로 한 콘서트였거든요. 우리가 무심코 행했던 일들이 지구에 상처가 되고 있는데, 그걸 이겨내고자 하는 용기와 극복 의지를 담은 곡들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하모니카 하나 달랑 들고 올 줄 알았는데, 그는 커다란 슈트 케이스를 끌고 왔다. 그 안에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미니 하모니카부터 도깨비 방망이만 한 코드 하모니카까지 빼곡했다. 마치 장인의 연장 가방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인데, 유튜브 촬영을 위해 들려주는 음악도 딱 그랬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작은 네모 상자 안에 피리부터 오르간까지 다 들어 있는 게 하모니카였다. 눈을 감고 들으면 같은 악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음색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하모니카가 무대에서 다른 악기와 같이 연주하기에 손색없는 악기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어요. 10여 년 전만 해도 하모니카 연주자라고 소개하면 ‘우리 아빠도 잘 부는데 전문 연주자가 필요하냐’고 할 정도로 하모니카에 대한 인식이 낮았거든요. 클래식 축제에 주인공으로 초대를 받았으니 이제 시선이 좀 바뀐 게 아닐까요. 저 혼자만의 노력은 아니겠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구나 싶어요.”

“무에서 유 만드는 게 내가 할 일”


▎지난 6월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하모니시스트 박종성 2021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공연 모습. / 사진:© keunho jung
그의 하모니카 인생은 열 살 무렵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시작됐다. 어머니가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한 덕에 어려서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우며 늘 음악과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유독 하모니카에 꽂힌 건 온전히 백화점 문화센터 강사 선생님의 영향이다. “다른 악기들은 제가 손을 댔을 때 음악 감상할 때처럼 좋은 소리가 쉽게 나지 않아서 흥미를 못 느꼈던 것 같아요. 하모니카는 불기만 하면 쉽게 연주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금방 빠져들었죠. 하지만 지금까지 하모니카를 놓지 않게 된 건 저를 가르쳐주셨던 최광규 선생님의 사랑과 열정 덕분이에요.”

지금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 전혀 다른 일을 하신다는 스승은 그 당시에도 ‘하모니카 전문 연주자’라기보다는 그저 하모니카가 좋아서 가르치는 사람이었단다. 아무리 하모니카가 좋아서라지만, 2002년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대회 출전을 권유하러 전남 광양까지 그를 찾아와 참가 경비까지 모두 지원해줬다니, 잘 믿기지 않는다. 일반적인 악기 연주자들의 상식적인 사제관계와는 정반대가 아닌가.

“IMF 외환위기로 집이 어려워져 지방에 이사를 갔었거든요. 대회에 나가자고 저를 설득하러 거기까지 내려오셨어요. 저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학생들한테도 마찬가지셨죠. 세계적인 연주자로 키운다는 목표 같은 것도 없이 그냥 좋아서 그런다는 분이셨어요. 남들은 악기를 힘들게 배웠다고 하지만, 저는 배우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없어요. 선생님은 ‘이거 나는 어려워서 못하겠는데 네가 한번 해볼래?’ 하는 식으로 접근하셨고, 들려드리면 의견을 주시면서 ‘한번 해결해볼래?’ 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주셨죠. 하모니카를 분다는 게 참 즐거웠어요. 선생님께 새로운 곡을 들려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했고, 그게 지금의 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나중에 더 큰 사람이 되어도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거든요.”

그에겐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4년마다 독일에서 열려 ‘하모니카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 하모니카대회에서 2009년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고, 하모니카로 대학에 간 것도 그가 최초다. “대학에 갔지만 교수도 없고 선배도 없으니 모든 걸 스스로 터득해야 했어요. 하모니카를 필요로 하는 앙상블도 없으니 제가 꾸려야 했고요. 남들은 선배의 한마디로 배울 수 있는 한 가지를 얻기 위해 삥삥 돌아서 와야 했죠. 하지만 스스로 연구하는 조건이 됐어요. 뭘 하려 하면 없으니까 시도할 수밖에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어려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할 일이라고 느껴지더군요. 선구자가 되려고 한 건 아닌데, 길을 걸으려면 길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작지만 가능성 무한한 악기

특이하게도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 전공으로 석사를 땄다. 하모니카로는 통상적인 관현악단에 끼지 못하는 설움을 지휘로 떨쳐내려 한 걸까. “우연히 협연 기회가 있었어요. 그 전에는 대중음악이나 재즈 연주를 위주로 했었는데, 처음 협연을 하면서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매료된 거죠.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클래식 음악이 떠오르면서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레 지휘에 도전했어요. 그런데 지휘자라는 직업이 단순하지 않아요. 음악의 정말 많은 부분을 알아야 하죠. 지휘를 공부하면 음악의 깊이를 알게 될 거라는 생각에 도전한 건데, 부끄럽지만 배움의 길이 만만치 않더군요. 거대한 음악을 만나면서 새로운 꿈을 꾸기도 했었는데, 무모하게 뛰어들었다는 생각에 당분간은 하모니카 연주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콩쿠르 우승으로 인생이 바뀌는 것과 달리, 하모니카로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것만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하모니카를 소개하고 싶어 2년 전 오디션 프로그램인 JTBC [슈퍼밴드]에 나가기도 했다. “세계대회 우승으로 달라진 건 제 안의 추진력을 얻었다는 점이죠.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던 건 제 음악을 더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다른 악기를 하는 동료들과 다양한 음악을 해보고 싶었는데, 조기에 탈락해 아쉬웠죠.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면서도 속으로 자만했던 것 같아요. 준비한 게 많았는데, ‘이번엔 이정도만 보여주고 다음 라운드에 보여주자’면서 겸손을 가장한 채 적극 어필하지 않았던 거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사실 하모니카를 얕잡아 보는 사람은 아직 많다. 스스로도 “보잘것없어 보이는 악기”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가능성이 반전 매력이다. “그런 시선 때문에 오기로 연주했던 시절도 있어요. 내 연주 듣고도 그러나 보자면서(.웃음) 지금은 오히려 그 반전을 즐기는 게 재미가 됐네요. 겉모습은 소박해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악기라, 지금도 발전하고 있고 개발 중인 악기거든요. 연주자들은 자기 악기와 닮아간다는데, 저도 최선을 다했을 때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과 꿈이 하모니카처럼 무한하다 생각해요.”

지난 6월 선보인 ‘하모니카 협주곡’도 그런 차원이다. 역사가 짧아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갖지 못한’ 악기인 만큼, 연주 레퍼토리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다른 클래식 연주자들과 구별되는 분명한 차별점이기도 하다. “레퍼토리가 부족하니 제 스스로 작곡, 편곡을 하고 있는데 혼자서는 한계를 느껴서 작곡가들을 모집했어요. 김형준 작곡가께서 협주곡을 써보고 싶다고 하셔서 아이디어를 함께 발전시켰죠. 곡 자체가 하모니카의 역사를 다룬 곡이라 더 의미 있었어요. 새로운 주법과 고난도 테크닉도 넣어서 하모니카 연주로서는 굉장한 발전을 이룬 미래지향적인 작업이라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엄청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주법을 연구해 협주곡도 직접 작곡할 것이고, 다양한 아티스트와 새로운 조합의 컬래버도 시험해야 하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만들고 싶단다. 사실 클래식 분야의 연주자를 만나면 으레 대중화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뿐, 악기 자체의 발전을 고민하는 연주자는 본 적 없었다. 박종성의 행보를 지켜보는 일은 하모니카의 역사를 한 페이지씩 새로 써가는 현장에 동참하는 일인 셈이다. 그의 발걸음이 흥미진진한 이유다.

※ 유주현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휩쓸던 영광의 기억을 품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살아왔다. 2010년부터 중앙SUNDAY에서 공연을 중심으로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을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전달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202111호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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