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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환이 만난 혁신 기업가(31)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 

세계 1위 제조업 플랫폼 꿈꾼다 

김민수 기자
한국 최초 우주인 후보로 선발돼 세계에 얼굴을 알렸던 고산씨가 창업으로 인생 궤도를 수정하며 제2의 꿈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거대한 꿈이나 목표는 없었지만 살면서 마주친 다양한 경험에 진심을 다하고, 그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새로운 길이 보였다”는 그는 현재 제조업 매칭 플랫폼 ‘카파(CAPA)’를 통해 제조업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카파(CAPA)란 ‘Capable partners’, ‘Capability’의 줄임말로, 온라인상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능력 있는 제조업 파트너라는 뜻이다. 한국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는 아직 온라인으로 연결되지 않은 거대한 제조업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이 고산 대표를 만나 창업 스토리를 물었다. 다음은 두 사람이 나눈 일문일답.

우주인 후보에서 제외된 이후, 미국으로 넘어가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 석사과정을 밟았다. 어떻게 갑자기 창업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됐나.

하버드 케네디스쿨에 진학하기 전에 실리콘밸리에 있는 싱귤래러티대학(Singularity University)에서 10주간 운영하는 창업 프로그램을 듣게 됐다. 이 대학을 공동 설립한 레이 커즈와일은 국내에서도 『특이점이 온다』는 책으로 유명한 인물로, MIT 출신 발명가이자 현재 구글 기술 고문이다. 그는 기술은 선형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특이점(singularity)이 오기 때문에 인류가 당면한 과제를 기술로 풀어보자는 취지로 이 대학을 설립했다. 학생들은 10년 이내에 10억 명의 삶을 혁신할 수 있는 서비스나 제품 개발을 목표로 뛰고 있었다. 나는 당시 러시아를 떠나 앞으로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곳에서 창업이라는 새로운 꿈을 만났다.

창업에 앞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한국에 돌아와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을 차린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걸 찾았기 때문에 케네디스쿨 과정을 그만두고 한국에도 이런 대학을 만들고 싶어서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여기서 한국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3D 프린터를 만드는 회사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에이팀벤처스의 시초가 됐다. 2009년에 3D 프린터의 핵심기술 특허가 오픈소스로 풀리면서, 대량생산을 전제로 하던 제조업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누구나 ‘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메이커스 무브먼트’가 세계적으로 퍼지고 3D 프린터의 대중화가 시작되면서 제조업에서 굉장한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예감을 받았다.

창업 당시의 사업 모델은 무엇이었나.

처음에는 온라인에서 주문을 받아 3D 프린팅을 해주는 서비스로 시작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적으로 비슷한 회사가 많이 생겨나면서 온라인에서 주문 제작하는 서비스들이 시작됐다. 그런데 3D 프린팅이 ‘핫’하긴 했지만 제조 시장 전체에서 보면 규모가 굉장히 작았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온라인 3D 프린팅 회사에서 온라인 제조 플랫폼으로 사업 모델을 발전시켰다.

사업을 피벗(pivot)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의 카파(CAPA) 플랫폼이 한 번에 만들어진 건 아니다. 먼저 온라인 3D 프린팅 서비스에서 온라인 제조 서비스인 ‘크리에이터블’로 피벗했고, 이 과정에서 금형사출, CNC 가공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고객이 크리에이터블에서 제조 견적을 비교한 뒤 제품 제작을 주문하면 우리가 공장에 의뢰해 제작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카파 플랫폼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주문자와 제작자를 직접 ‘매칭’해주는 서비스로 진화했다.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크리에이터블을 운영하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안했다. 우리처럼 고객과 제조사를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회사가 아닌, 고객과 제조사를 직접 연결하는 곳이 나오면 엄청난 파괴력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객 입장에서도 내가 주문한 물건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직접 보고 싶을 것이고, 제조사도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제조사와 고객을 직접 연결하는 지금의 캐파 플랫폼이 탄생하게 됐다.

처음부터 고객과 제조사를 직접 연결하는 방식으로 시작할 수는 없었나.

단순히 둘을 연결해주는 사업 모델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플랫폼 입장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그래서 도면 자동분석 툴, 커뮤니케이션 툴 등을 만들어나가면서 고객과 제조사 양쪽에 모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왔다. 지금은 우리가 주문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기 때문에 빠르게 성장할 일만 남았다.

제조업체를 방문해 견적을 내고 또 서로 비교하는 과정은 B2B 사업의 영역이라 정보도 제한적이고 플랫폼 사업으로 연결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는 시대인데 왜 제조업은 안 될까 고민했다. 이 부분을 온라인으로 연결할 수만 있다면 정말 큰 시장이 되겠다는 비전이 있었다. 특히 B2B 시장은 사람들이 직접 영업활동을 하면서 오프라인에서는 촘촘히 연결되고 있었지만, 도전해볼 만한 분명한 가치가 있었다. 온라인으로 넘어오면 정보 비대칭도 해결되고 최저가와 경쟁업체들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등 편의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제조업 르네상스 이끈다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왼쪽)과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 두 사람은 제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했다.
카파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우선 저가 출혈경쟁은 피하려고 한다. 제조업은 가격만큼 퀄리티가 중요하기 때문에 플랫폼이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저가 경쟁보다는 업체별 기술력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생각이다. 또 업체들에 대한 검증 기준을 마련해 우리만의 인증 체계를 정립해나가려 한다. 아직 아이디어 단계지만 고객들이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를 꾸준히 모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제공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 될 수 있겠다.

카파 플랫폼을 통해 궁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가치가 있다면.

제조업은 문화적 의존도가 낮은 산업이기에 세계로 쉽게 뻗어나갈 수 있다. 한국,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전역에서 제조업은 서로 맞닿아 있고 이를 레버리지로 활용해서 전 세계에서 서비스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에서 탄탄한 기반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카파 플랫폼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B2B 마케팅에서 핵심은 콘텐트다. 고객들이 모든 정보를 비교해보고 신뢰할 수 있는 곳인지 따져보고 구매하기 때문에 양질의 콘텐트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영업팀이 없는 대신 디지털 마케팅 방식으로 이메일을 활용해 고객들을 발굴하고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의 IT 인프라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제조업에서도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인 금형, 단순 가공, 조립 같은 분야는 인건비 문제로 이미 타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중국 등 인근 국가의 인건비도 수년간 많이 올라서 오히려 한국보다 비싼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인건비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제조업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면 어디에서 만들 건 인건비 차이는 미미해질 것이다. 또 세계 각국이 자국에 제조업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추는 게 경쟁력이 될 것이다.

제조업 이외에 다른 산업으로도 확장할 계획인가.

현재는 제품 디자인, CNC 가공, 3D 프린팅, 금형사출, 판금가공, 주조, 기구설계 등 제조업의 기본적인 서비스들을 파편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서 나아가 2022년 1월부터는 제조 분야의 수요와 공급을 더 긴밀하게 연결하는 ‘카파 커넥트’ 서비스를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고객과 제조사가 동시에 도면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툴이다. 향후에는 PM 서비스, 시제품 제작, OEM 등으로 확장할 수도 있고, 카테고리와 제품별로 세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수도 있다.

상당히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가 돋보이는 회사라고 들었다. 에이팀벤처스만의 일하는 방식이 있다면 알려달라.

우리의 문화는 딱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완벽한 솔직함’이다. 서로 100%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를 중요시한다. 많은 회사에서 직급 대신 닉네임으로 부르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려는 이유가 결국 막힘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노력 아니겠나. 중요한 건 직위와 상관없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일이 잘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린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말할까 말까 할 때가 ‘완솔’할 때”라는 문구를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었다. 말할까 말까 고민될 때가 바로 완벽하게 솔직할 때라는 의미다.

목표가 없다면 다양하게 경험해보기

인재 채용 시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다면.

간단히 말하면 같은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초기 스타트업에선 우리와 같은 비전을 볼 수 있는, 그 비전을 확장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얻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어고등학교 출신, 대기업 연구원, 우주인까지 일반적인 창업가의 이력과는 상당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독특한 이력이 창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삶의 다음 단계에 도움이 되는 경험들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하나의 목표를 정해놓고 직진하는 것도 좋지만, 그다음 단계에 뭐가 펼쳐질지 모르는 삶도 있다. 나도 우주인 후보에서 탈락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참 힘들었다. 하지만 그간 해왔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정책으로 나아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창업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면서 또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내가 살면서 경험해온 일들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계속 고민하면서 나아가다 보면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고산 대표 약력
서울대학교 수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인지과학 석사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 석사(자퇴)
삼성종합기술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근무
타이드 인스티튜트 대표
에이팀벤처스 대표

※ 김익환은… 노동력 위주의 제조업인 한세실업에 IT를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 CEO다. 한세드림, 한세엠케이, FRJ 등 패션 자회사들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며 지난해 1조9224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정리=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김현동 기자

202201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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