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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환이 만난 혁신 기업가(30)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 

천재 개발자가 조직문화에 천착하는 이유 

김민수 기자
1998년 네오위즈 인턴 신분으로 웹 기반 채팅 서비스 ‘세이클럽’을 만들고, 이후 검색회사에 창업 멤버로 합류한 뒤 네이버에 인수되어 다운로드 5억 건을 돌파한 카메라 앱 ‘B612’를 개발한 천재 개발자.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를 소개할 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150억원을 개인 투자하며 공동대표를 맡은 것도 보이저엑스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올해로 창업 5년 차를 맞은 남 대표는 딥러닝 인공지능 기술로 우리 생활을 이롭게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천재 개발자로 유명하신 분을 만나 영광이다. 세이클럽이라는 채팅 사이트를 만들어 대박이 났고 그 후에도 트렌디한 소프트웨어들을 계속 만들어오다가 갑자기 인공지능으로 노선을 바꿔 보이저엑스를 창업했다. 인공지능에 소위 ‘꽂힌’ 계기가 궁금하다.

2016년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 세상을 뒤집어놓았을 때 ‘아 저게 바로 다음 아이폰이구나’라고 느꼈다. 그때부터 인공지능 기술을 깊게 들여다봤고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이건 창업을 안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보이저엑스 창업 전까지 어떤 커리어를 쌓아왔는지 간단히 짚고 가자. 20여 년간 개발자로 일하면서 업계에서 이미 유명해졌는데, 그동안 해왔던 걸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기술로 창업하기까지 파란만장한 과정이 있었다.

어렸을 때 이야기부터 하자면 초등학교 때 프로그래밍에 입문해 30년 가까이 컴퓨터만 만지면서 살았다. 1998년 스무 살 나이에 네오위즈에 인턴으로 들어가서 세이클럽을 만들었고, 2006년 ‘첫눈’이라는 검색회사에 창업 멤버로 합류한 뒤 네이버에 인수되자 그곳에서 카메라 앱 B612를 기획해 출시 1년여 만에 1억 다운로드라는 큰 성과도 냈다. 항상 개발이 게임처럼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더는 신기한 것도 없고 호기심이 사라지더라. 건축가가 수많은 건물을 설계하고 완공해서 관리도 해보고 나니 더는 새로운 건물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구글이 인수한 딥마인드의 기술을 접하게 됐는데 이건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건축을 30여 년간 업으로 해왔는데 눈앞에서 갑자기 화장실이 부엌으로 바뀌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걸 본 느낌이랄까. 너무 신기해서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다른 인공지능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보이저엑스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기술 자체에 집중하는 B2B 기업은 많은데 우리 같은 B2C 기업은 별로 없다. 20년 넘게 B2C 웹서비스를 개발하며 사용자 관점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보이저엑스의 서비스와 고객, 제품 개발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사용자 경험에 대한 노하우와 딥러닝에 대한 전문성을 모두 갖춘 것이 우리만의 경쟁력이다. 인공지능은 인터넷처럼 앞으로 우리 생활 곳곳에 쓰이게 될 것이므로 기술만 파고들어선 안 되고 제품화, 서비스화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우리처럼 기술과 사용자 경험, 두 가지 다 잡을 수 있는 회사는 드물다.

페이스북에 다양한 아이디어와 생각을 공유하며 오피니언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모두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디어는 1%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9%는 기획, 디자인, 개발에서 결정된다. 내가 페이스북에 아무리 아이디어를 올려봐야 나머지 99%를 해결해서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계속 올리는 이유는 페이스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온갖 비판을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혼자서는 구할 수 없는 정보나 관점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참고한다. 보이저엑스가 만든 3가지 서비스 모두 출시 전 페이스북에 올려서 여론을 체크하는 과정을 거쳤다.

다양한 아이디어 중에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하는지 궁금하다.

우리 생활에 불편한 게 너무 많으니까 하루에도 수십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단 적어놓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다시 펼쳐본다. 그러면 보통 10개 중 9개는 못 쓰는 생각이다. 살아남은 아이디어는 페이스북에 올리고 회사에서도 아이디어 평가를 거친다. 대다수가 잘될 것 같다고 하면 너무 뻔한 생각이기 때문에 진행하지 않는다.

현재 브이플랫(AI 모바일 스캐너), 브루(AI 영상 편집기), 온글잎(AI 폰트 디자이너) 등 3가지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이 3개 서비스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20여 개 앱을 내놓았다가 철수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들었다. 아이디어를 서비스로 내놓기로 결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가장 큰 전제는 딥러닝 덕분에 가능해진 기술들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딥러닝 기술로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이걸 적용할 수 있는 것만 시도한다. 그 다음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10년 이상 성장할 수 있으면서 △6개월 이내에 론칭할 수 있는 서비스라야 한다.

영상편집 앱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경쟁사들과 차별화되는 포인트가 있다면.

인공지능 기술 자체가 차별화 포인트다. ‘브루’는 인공지능이 영상 속 음성을 인식해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우리가 인터뷰로 3시간 정도 대화한 내용을 촬영해 30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하려면 보통 3~4일 정도 걸린다. 사람이 영상을 일일이 수없이 돌려보며 편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브루에 넣으면 3시간짜리 영상에 대한 워드 스크립트가 한 번에 펼쳐진다. 이렇게 텍스트로 변환된 영상을 간단하게 자르고 붙이면 편집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토스와 카카오뱅크가 기존 은행들과 시작점부터 달랐듯이, 브루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 영상편집기들과는 전혀 다른 문법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영상편집을 과제로 내고, 기업들도 채용에서 영상 자기 소개를 도입하고 있듯이 앞으로 누구나 영상편집을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모바일 스캐너 브이플랫의 제작 히스토리도 공유해달라.


▎(왼쪽부터)서초동 보이저엑스 사무실에서 만난 남 대표와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10년 이상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전 지구인이 쓰는 걸 목표로 한다.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서류나 명함, 책, 메모 등을 촬영하게 된다. 일반 스캐너로 책을 촬영하면 그림자나 뒷면 텍스트가 비치거나 책이 휘어지고 손가락도 찍히는 등 텍스트만 깔끔하게 촬영할 수가 없는데, 브이플랫은 인공지능이 테두리와 커브를 자동으로 인식해 자르고 보정해준다. 촬영한 이미지를 텍스트로 바꿔 원하는 키워드를 검색하거나 복사할 수도 있다. 브이플랫의 ‘두 쪽 모드’로 책 한 권을 찍으면 10분 안에 PDF 파일도 만들 수 있다.

특정한 사업 영역에 국한되지 않은 개발 방식이 독특하다. 이런 사업 모델은 상당한 리스크가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오히려 한 가지만 하는 게 리스크가 더 크지 않을까. 한 회사가 여러 가지 서비스를 운영하는 데서 오는 장점도 많다. 회사가 플랫폼화된다고 할까. 기술적으로나 조직 문화적으로 시너지가 생긴다.

보이저엑스가 서비스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인공지능으로 우리의 삶을 더욱 편하고 즐겁게 해주는 회사가 되는 게 가장 큰 목표이고, 두 번째 목표는 인재 육성이다. 즉, 인공지능 서비스를 잘 만드는 팀을 많이 육성하는 걸 중요한 미션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재 육성을 미션으로 하는 스타트업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전문가 집단을 배출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일반 소프트웨어 개발의 경우 이미 학교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되고 있고 게임도 전문가가 많은데 인공지능 서비스는 아직 B2C로 돈을 버는 회사가 없고 기술도 어렵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회사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내가 알고 있는 딥러닝 지식이 3년도 채 안 돼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이미 습득한 기술과 지식으로 회사에 들어와서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이 1년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하면서 계속 배워야 한다. 이런 산업의 특성 때문에 우리가 인재 채용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은 ‘언러닝(unlearning)’이다.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기술과 지식에 집착하지 않고 계속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사람들만 함께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규칙 없음(No Rules Rules)’처럼 룰은 최소화하고 끊임없이 바꾼다는 원칙을 세우고, 무제한 휴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 외에 보이저엑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을까 고민한다. 바꿔 말하면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게 할까 고민하는 게 내 일이다. 경험상 내 말이 맞을 확률이 높더라도 직원들이 원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시도하도록 내버려둔다. 안 되는 아이디어라도 하고 싶은 걸 해야 책임지고 성공시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원하지 않는데 내가 끌고 가는 순간, 성공률이 높은 아이디어라도 실패할 확률이 커진다. 그래서 난 내 선택이 틀려도 즐겁다. 보이저엑스의 아이디어는 사용자, 팀워크, 성장이라는 3대 가치를 충족해야 한다. 이 3가지 가치가 다른 것과 충돌할 때는 다른 걸 버린다.

최근 알토스벤처스 등에서 3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어떤 분야에 중점적으로 투자하고자 하는가.

사람의 머리와 손이 가장 중요한 회사이기 때문에 대부분 인건비에 들어간다. 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사들은 거의 비슷한 구조다.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진행한 20개 프로젝트 중에 17개는 실패했는데, 실패하면 빨리 접는 게 우리의 장점이라고 어필한다.

최근 크래프톤과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게임 분야에 AI를 어떻게 적용할 계획인지 궁금하다.

앞으로 초거대 인공지능은 게임을 비롯해 어떤 산업에서든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크래프톤과 인공지능 전문회사인 우리가 함께 1년간 같이 개발해오고 있다. 연구개발을 위한 장비에 들어가는 비용만 최소 수십억이기 때문에 독자적으로는 하기 힘든 프로젝트다. 아직은 시작 단계고 점점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보이저엑스가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위대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 숫자로 이야기하자면 고객 10억 명에게 사랑받는 회사이자 직원 10만 명이 애정을 갖고 즐겁게 일하는 회사라고 하겠다. 이런 회사로 성장하게 되면 주주들은 돈을 벌고 사회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면서 윈윈할 수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실패할 거라는 생각과 성공하겠다는 마음, 둘 다 필요하다. 창업하면 90%는 실패한다. 창업은 내 돈과 시간, 명예를 다 걸어야 하는 일인데 실패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내가 얼마까지 잃어도 되는지 미리 계산해놓고 시작하길 바란다. 근데 또 누가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고 창업을 하겠나.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배울게 많다. 특히 지금은 창업하기 너무 좋은 시대다. 그래서 응원한다.

- 정리=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신인섭 기자

202112호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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