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도시 뉴욕에서 사진작업으로 예술계 큰 주목을 받았던 니키리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글로벌 눈도장을 찍은 유태오 배우에 이어 연예계 샛별로 떠오를, 운명적인 아티스트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 녹사평대로에 자리 잡은 비트닉에서 니키리 대표를 김지원 한세엠케이 대표가 만났다. 아티스트이자 엔터사 대표로서 사업 계획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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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대표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도전하는 니키리 대표를 만나 사업 계획을 들어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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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는 좋아하는 친구이자 존경하는 아티스트예요.”김지원 한세엠케이 대표가 니키리 대표를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며 팬심을 드러냈다. 니키리 대표가 차린 매니지먼트사 비트닉 사무실에는 그녀의 작품인 [레이어(LAYERS)]가 크게 걸려 있었다. 각국에서 그린 그녀의 초상화를 겹쳐서 찍은 사진 작품이다. 이뿐만 아니라 곳곳에 놓인 그의 페인팅 작품, 천장 기둥에 줄줄이 놓인 양초 등이 매니지먼트사 사무실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인 스튜디오 냄새를 짙게 풍겼다. 니키리 대표는 사무실 인테리어를 직접 했고 커튼도 프랑스 몽마르트르 인근 면직물 시장에서 손수 사다가 달았다고 설명했다.아티스트로서 니키리는 이미 미국 뉴욕에서 정상에 섰었다. 유명한 [프로젝트] 시리즈는 자신이 직접 할머니와 댄서, 여피, 히스패닉 등 각기 다른 커뮤니티에 들어가 융화된 모습을 찍은 작품들이다. 그의 주요 작품은 뉴욕의 유명 미술관인 구겐하임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영구 전시돼 있다.그런 그녀가 지난해 11월 비트닉을 차렸다. 소속사 1호 아티스트는 남편인 배우 유태오다. 니키리 대표는 스스로의 예술 작업은 조금 천천히 하더라도 비트닉 소속 배우를 스타로 만드는 본업에 충실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대표 작품인 [프로젝트], [파트] 시리즈가 감명 깊었다. 예술가의 삶은 어떻게 시작했나.어릴 때부터 스스로 ‘난 예술가임이 분명하다’는 점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굳이 예술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거친 길을 가야 할 것 같아서 부정했다.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주연이 아니면 하기 싫었다. 영화감독도 하고 싶었는데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나오신 아버지께서 타협안으로 “사진학과에 가면 영화과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하시더라. 사진학과에 입학한 이유다. 대학에 가선 열심히 공부했다. 상업적인 패션 사진을 하면 좋겠다 싶어 유학을 떠났다. 처음 간 곳이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였다. 막상 하다 보니 패션업이 맞지 않았다. ‘평생은 못 하겠구나’ 싶어서 뉴욕대학원에 진학했다. 거기서 이른바 예술을 접했다. 너무 좋았다. 가난해도 예술가로 사는 것, 이게 내 인생이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작업을 해야겠다’며 마음을 다졌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내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다. 내 작품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거다. 자고 일어난 어느 날 ‘예술계 신데렐라’가 돼 있었달까. 그렇게 시작했다.
사진 작품 주제를 인간의 정체성으로 잡게 된 계기는.시골에서 자랐다. 사실 다른 나라 문화를 접할 일이 별로 없었다. 영화는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많이 보고, 음악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이 들었다. 블루스, 컨트리, 샹송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었는데, 희한하게 그때마다 아티스트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게 됐다. 때론 내 자신이 너무 프렌치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재즈 가수 같기도 했다. 내 안의 정체성이 다양하게 움직이는 걸 느꼈다. 정체성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프로젝트] 시리즈를 시작했다. 작품을 만들어나갈수록 결국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미쳤다. 정체성은 계속 바뀌는 거 아닌가. 이를 단정할 필요도 없고, 의미를 둘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정체성에 깊은 무게감을 둘수록 오히려 자신을 자꾸 배신하게 된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프로젝트]나 [파트]를 보면 작품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천의 얼굴’ 같다. 배우를 했더라도 잘했을 것 같다.오히려 배우와 살다 보니 ‘나와 연기는 맞지 않는구나’를 깨달았다. 배우는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와 같다. 피아노 연습하듯이 매일매일 대사를 연습한다. 유태오 배우도 촬영 들어가면 매일 대사 외우고 공부하느라 작업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저런 사람들이 진짜 배우를 하는 거구나 싶다. 유태오 배우가 내게 한 말이 있다. “무대에 나무로만 서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배우다.”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다.
현재 작업 중이거나 준비하는 작품이 있나.지난해부터 페인팅을 시작했다. 물감 대신 매니큐어로 하는 작업이다. 사실 페인팅을 막 시작해서 열심히 하는 와중에 회사를 세우게 됐다. 그러다 보니 회사 일이 바빠 페인팅 작업은 중단한 상태다. 그렇다고 평생 예술을 놓을 생각은 없다. 예전에 뉴욕에서 한창 활동할 때는 많은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전 작품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야 하고, 내 커리어도 계속 발전해야만 한다는 강박 말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느 순간 커리어에 연연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진짜 예술가가 되려면 나와 예술의 싸움이 돼야 한다. 내가 왜 커리어에 연연하는 예술가가 되려고 했을까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많았다. 지난해부터 작업을 하고 싶어졌고 페인팅을 시작했다. 작품이 다 모아지면 전시를 하게 될 것 같다. 지금은 그저 페인팅과 나밖에 없다. 이 상태가 너무 좋다.
매니큐어로 작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니키리 대표는 비트닉을 통해 소속 배우를 스타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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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 테크닉적으로 잘 그리는 사람은 너무 많다. 하지만 테크닉이 좋은 그림이 과연 예술성도 뛰어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내 그림에 테크닉이 부족하더라도 굉장히 의미 있는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전혀 배우지 않아서 오히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그저 그리면 돼’라고 생각한다. 매니큐어를 선택한 건 나의 얘기가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난 생각보다 페미닌(여성스러운)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손톱에서 매니큐어가 벗겨진 적이 거의 없었고 지금도 매니큐어와 같이 산다.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인 것만 같다. 그래서 매니큐어를 한번 잡아봤다. 소재주의로 천착하는 건 아니다. ‘매니큐어로 그린 그림’이 강조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소재가 나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선택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언젠가 회사를 차릴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은 했다. 막연히 유태오 배우가 글로벌 스타가 돼서 자리가 잡힐 때쯤으로 생각하곤 했다. 실제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여기 있는 김지원 대표 덕분이다. 어느 날 김 대표가 마련한 자리에 갔는데, 그곳에 프레인 창립자인 여준영 대표가 있었다. 이후 여 대표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작은 회사를 하나 세우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이 모든 과정이 인생의 파도라고 생각한다. 파도가 내게 왔고, 그 파도에 몸을 싣고 떠가는 기분이다. 흘러가는 대로 가게 놔두는 식이다. 원래 주어진 일을 열심히 잘하고,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도 아니다.
비트닉은 어떤 방향성을 갖고 꾸려갈 계획인지.사업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이다. 우리도 그 본질에 충실한 회사가 되면 좋겠다.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결국은 매니지하는 배우들을 스타로 만드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다만 너무 크게 벌리고 싶진 않다. 소수 정예로, 내가 케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하려 한다. 우리 배우들이 모두 글로벌 스타로 커가길 소망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비트닉 1호 아티스트는 유태오 배우다. 앞으로 계획은.장르는 그때그때 전략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그러니 모든 장르에 다 오픈돼 있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그 순간에 어떤 것이 더 이 사람에게 필요한지를 고려한다. 나는 그 전략을 잘 짜줘야 하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전략 짜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다. 유태오 배우의 커리어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미국 커리어가 잘 쌓이고 있다.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한 스텝이다. 동시에 한국 시장도 중요하다. 둘 모두 놓치면 안 된다.
소속 아티스트들은 배우로만 뽑을 예정인지, 아니면 다른 장르도 볼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처음에는 뮤지션과 음악 장르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알아볼수록 굉장히 다르더라. 배우 매니지먼트와 뮤지션 매니지먼트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뮤지션 매니지먼트가 하나의 숙제다. 그런데 문제는 유태오 배우가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미국에서 컨트리 가수가 되고 싶어 한다. 그 부분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내 프로듀서 등 음악적 비즈니스 관계자들을 찾고 있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실제 앨범 제작까지 경험하다 보면 이후 우리 회사의 사업 방향도 더 다양해질지도 모르겠다.
비트닉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따왔나.1950~6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을 비트닉이라고 한다. 대표 주자가 밥 딜런이다. 유태오 배우와 나 둘 다 비트닉의 특유한 분위기를 사랑한다. 또 공교롭게도 내 이름 ‘니키’를 줄이면 ‘닉’이 된다. ‘비트닉’에는 나를 뛰어 넘어서라, 이런 중의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강렬하고 힘 있는 이름을 원했다.
2006년에 결혼했으니 머지않아 결혼 20주년이다.잘 산다는 비결은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있다. 각자 행복한 것을 추구한다. 서로 좋은 파트너이고 사랑하지만 상대의 삶을 터치하지 않는다. 같이 살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보자는 데 공감한다. 나는 나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유태오 배우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거다. 각자의 삶을 존중한다고 할까. 아이가 없으니 비교적 자유롭게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 부부의 삶이 절대 모범 답안은 아니다. 아이가 있었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졌을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 둘 모두 예술가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는 거고, 다른 이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따르면 되는 일이다.
※ 김지원 - 한세예스24홀딩스의 자회사인 한세엠케이를 이끌고 있는 김지원 대표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뉴욕 International Culinary Center와 르 코르동 블루,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대학원, 요리 아카데미 츠지원에서 요리를 공부했다. 이후 예스24에 입사하여 경영훈련을 받은뒤 2019년 한세엠케이 대표직에 올랐다. 한세엠케이는 현재 모이몰른, 나이키 키즈, 버커루, NBA 등 유아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대 라이프웨어를 선보이며 패션을 넘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까지 아우르는 비즈니스로 나아가고 있다.- 이정은 기자 lee.jeongeun2@joongang.co.kr _ 사진 박정훈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