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오스트리아 빈(Wien) 

죽음의 도시에서 노래한 삶의 희망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세상에서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옛날에는 오늘날과 달리 시가지가 좁고 불결했기 때문에 도나우강을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염병이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죽음의 도시로 변해버리곤 했다. 아우구스틴의 흥겨운 노래는 페스트가 빈을 온통 죽음의 공포로 휘몰아가던 매우 끔찍하고 암울한 시기에 탄생했다.

▎‘흑사병 기둥’이 세워진 우아한 빈의 중심가 그라벤. / 사진:정태남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오늘날 세상에서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게다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때면 빈은 낭만적이고 고상하고 우아하며 기품 있는 도시로 연상된다. 이러한 빈을 떠올리게 하는 도나우강은 빈 도심에서 좀 떨어져 있고, 그 대신에 도나우강으로 연결된 운하 도나우카날(Donaukanal)이 빈의 도심을 스친다.

그리혠바이즐 레스토랑


도나우카날과 맞닿은 슈베덴플라츠(Schwedenplatz, 스웨덴 광장)는 옛날에 항구였다. 이 광장은 고풍스러운 좁은 골목길로 연결된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플라이쉬마르크트(Fleischmarkt, 고기 시장 )라는 아주 작은 광장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그리스정교 회당이 있고 바로 옆에는 담쟁이덩굴로 덮인 그리혠바이즐(Griechenbeisl) 레스토랑 건물이 바짝 붙어 있다. 이 레스토랑은 빈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으로, 기원은 14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스토랑의 원래 이름은 ‘노란 독수리(집)에’(zum gelben Adler)였으나, 그리스 사람들이 이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하고 또 17세기에 그리스정교 회당이 세워져 이 지역이 ‘리틀 그리스’가 되었기 때문에 레스토랑 이름도 ‘그리스 선술집’이란 뜻인 그리혠바이즐로 바뀌었다. 이 곳은 예로부터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등과 같은 대음악가들뿐 아니라 화가 발트 뮐러, 미국인 작가 마크 트웨인도 즐겨 찾았는데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 테너 파바로티, 지휘자 무티 등과 같은 유명한 음악가들도 이곳을 잊지 않았다.

레스토랑 입구 윗부분에 있는 백파이프를 부는 악사의 형상과 금색으로 쓰인 독일어 문구 ‘사랑하는 아우구스틴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기의 노래를 불렀다’가 눈길을 끈다. 아우구스틴은 옛날 빈의 여러 술집과 레스토랑에서 백파이프를 불며 익살스럽게 노래하던 떠돌이 악사였다. 한편 백파이프(bagpipe)는 바람 주머니에 저장된 공기가 파이프를 통과하면서 소리를 내는 민속악기로, 스코틀란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 루마니아 등과 중동지방 일부와 아프리카에서도 사용되어왔다.


▎그리혠바이즐 레스토랑으로 연결된 고풍스러운 좁은 골목. / 사진:정태남


떠돌이 악사 아우구스틴


▎그리스정교 회당(오른쪽)과 그리혠바이즐 레스토랑(왼쪽). / 사진:정태남
아우구스틴이 불렀다는 노래는 [오, 두 리버 아우구스틴](Oh, du lieber Augustin), 즉 [오, 너 친애하는 아우구스틴]이다. 아우구스틴은 돈과 여자 등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자신의 신세를 익살스럽게 한탄하며 [오, 두 리버 아우구스틴]을 노래했는데, 독일어 리버(lieber)는 ‘친애하는’, ‘사랑하는’이란 뜻으로 영어 ‘dear’에 해당하지만, 여기서는 반어법적으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즉, 아우구스틴은 자신에게 ‘오, 너 불쌍한 아우구스틴’이라고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아우구스틴의 노래를 듣고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를 ‘리버 아우구스틴’이라고 불렀겠지만. 한편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1643년에 태어났고, 독일에서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태어나기 20일 전인 1685년 3월 11일에 사망했다는 것 정도만 전해진다. 어쨌든 그의 이름과 생몰년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가 후세 사람들에게도 널리 오랫동안 기억되었던 인물이라는 뜻이다. 베토벤이 활동하던 시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음악가 후멜(J. N. Hummel, 1778~1837)은 1814년에 아우구스틴의 노래를 테마로 하는 변주곡을 작곡했다.

그런데 아우구스틴이 부른 이 흥겨운 노래는 아주 암울한 시기에 탄생했다. 흑사병, 즉 페스트가 빈을 온통 죽음의 공포로 휘몰아가던 매우 끔찍한 시기였던 것이다. 옛날 빈은 오늘날과 달리 시가지의 길이 아주 좁고 불결했다. 따라서 도나우카날의 항구를 통해 외부에서 들어온 전염병이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빈은 순식간에 죽음의 도시로 변해버리곤 했다.


▎노란 독수리’ 간판과 백파이프를 부는 아우구스틴. ‘친애하는 아우구스틴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그의 노래를 불렀다’는 내용의 금색 문구가 뚜렷하다. / 사진:정태남
아우구스틴이 살던 시대인 1679년에 페스트가 창궐하자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며 거리 곳곳에 시체가 널렸다. 이에 시체처리 작업반은 죽은 자들을 도시 성곽 밖에 파놓은 구덩이에 집단 매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우구스틴이 흥겹게 부르던 노래는 죽음의 공포에 떨던 모든 사람에게 작은 즐거움과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아우구스틴은 선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난 다음 술에 취한 상태로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만 도랑에 빠져 쓰러진 채 잠에 곯아떨어졌다. 시체처리 작업반은 그가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은 줄 알고 그를 도시 성곽 바깥에 파놓은 구덩이에 다른 시체들과 함께 내던졌다. 이튿날 아침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우구스틴은 시체 더미에 깔린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시체를 헤치고 구덩이 밖으로 나가는 게 불가능했고 ‘사람 살려’라고 소리쳐도 멀어서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도 백파이프가 손에 잡혔다. 그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 노래를 백파이프로 불었다. 그러자 멀리서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그를 구하러 달려왔다. 그런데 아우구스틴은 죽은 자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는데도 감염병에 걸리지 않고 멀쩡했다. 술을 잔뜩 마셨으니 혹시 알코올 효과 덕분이었을까? 어쨌든 졸지에 그는 당시 빈 시민들에게 삶의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아우구스틴이 노래를 불렀던 그리혠바이즐 레스토랑 내부. / 사진:정태남


‘흑사병 기둥’


▎빈 중심가 그라벤에 세워진 ‘흑사병 기둥’. / 사진:정태남
한편 당시 황제 레오폴트 1세는 빈을 떠나 다른 안전한 지역으로 도피하면서 페스트가 물러나면 성모의 은총에 감사하는 기념물을 빈의 중심가 그라벤 한가운데에 세우겠다고 맹세했다. 페스트는 자그마치 7만6,000명이나 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다음에야 수그러들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걷히자 이 기념물은 건축가 피셔 폰 에를라흐(1656~1723)를 비롯해 여러 조각가와 무대미술가에 의하여 1682년에 착공, 오랜 시간이 흐른 1694년에 제막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무대 장식 같은 이 하얀 기념비는 ‘삼위일체 기둥’이라고도 하며 ‘흑사병 기둥’이란 뜻으로 페스트조일레(Pestsäule)라고도 한다. 이 기둥 한쪽 면에는 찬란한 금빛으로 장식된 합스부르크 왕조의 휘장과 무릎 꿇은 모습의 레오폴트 1세 조각상이 보인다. 그런데 아우구스틴은 페스트조일레가 착공된 지 3년 후에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만약 살아 있었더라면 제막식 때 [오, 두 리버 아우구스틴]을 흥겹게 부르지 않았을까?

세월이 흐른 후 이 노래는 독일어권에서 동요로 널리 불렸으며,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은 다음과 같은 가사를 붙였다.

동무들아 오너라 오너라.
동무들아 모여서 같이 놀자.
어여쁜 새들이 방긋이 웃는다.
동무들아 모여서 같이 놀자.

물론 이것은 원곡의 가사 내용과 완전히 다르다. 어쨌든 코로나19 창궐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절실한 요즘, 이 가사처럼 동무들이 다시 함께 모여서 마음껏 놀며 삶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2201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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