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은 로마 중심지에 고고(高古)히 서 있다. 로마제국 전성기에는 8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원형경기장으로 주로 검투사들의 결투가 이루어졌다. 부분적으로 파괴된 모습은 오히려 1000년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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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감동의 도시다! 로마를 여행하다 보면 여러 곳에서 입이 떡 벌어지고 가슴에 전율이 느껴져서 숨이 막힐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역사·예술·종교! 하나하나가 너무 깊고 소중하다. 거대한 성당에 들어서면 경건한 마음으로 성스러움의 극치를 경험하고, 영화 [로마의 휴일] 주인공처럼 시내를 거닐며 낭만에 흠뻑 젖어볼 수도 있다. 인류 문화를 빛낸 거장들의 신비스러운 그림과 조각을 보면서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시내 곳곳에 있는 유적지를 방문하면서 로마제국의 역사를 되짚으며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보고 미래에 대한 우리만의 지속가능성을 설계해본다.
#1.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부터 이야기해보자. 20대 후반, 꿈 많은 청춘의 한가운데 서 있던 나는 샘플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유럽 전역에 세일즈를 다녔다. 로마를 처음 방문했을 때 만난 트레비 분수는 그야말로 낭만의 장소였다. 전면 공간을 가득 메운 채 막 뛰쳐나올 듯한 역동적인 거대 조각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물과 분수를 배경으로 한 잔잔한 연못 속 깨끗한 물의 조화는 감동 그 자체였다. 분수 가운데에는 물의 신 오케아노스가 서 있고, 양옆에서 바다의 신 트리톤이 보좌하는 모습이다. 트레비 분수 왼쪽은 격동의 바다를, 오른쪽은 고요한 바다를 상징하며 대조적인 장면을 연출한다.오케아노스는 입체적이고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돔으로 처리된 공간과 기둥 사이에 서 있고, 그 옆에는 풍요의 여신이 항아리에서 물을 흘려보낸다. 건강의 신이 잔을 들고 있는 모습도 조각돼 있다. 오케아노스의 나팔수이자 바다의 신인 트리톤이 고동 나팔을 불며 날개 달린 말의 갈기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거친 바다 위로 천마가 날아오를 것만 같다.분수 앞에선 수많은 관광객이 행운을 빌며 동전을 던진다. 트레비 분수를 등 뒤에 두고 서서 오른손에 동전을 쥐고 왼쪽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전통이 있다. 한 개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 개를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올 수 있고, 세 개를 던지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동전을 던져서 그런지 이탈리아를 사랑하게 되었고, 크고 작은 많은 도시와 마을을 수없이 방문했다. 그 덕분일까. 40년이 넘도록 장수 CEO를 하는 행운도 얻은 것 같다. 트레비 분수는 1730년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새로운 분수를 짓기로 결정하고 개최한 공모전에서 이탈리아 건축가 니콜라 살비의 안이 받아들여져서 1732년에 착공했다. 니콜라 살비 사후인 1762년에 완공됐으며,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군중에게 개방했다.
▎경건하고 웅장한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인류는 종교, 역사, 예술에 대한 큰 의미를 학습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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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티칸 대성전(Basilica Vaticana)이라고도 불리는 성 베드로 대성전(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엄청난 높이와 규모에 크게 놀라게 된다. 거대한 돔을 통해 내려오는 성스러운 빛을 맞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내부에 발을 디딘다. 수많은 종교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엄숙한 마음으로 성지인 베드로 대성전을 돌아본다. 전승에 따르면 서기 67년에 순교한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로마 초대 주교, 또 최초의 교황인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전을 세웠다고 한다. 성 베드로의 시신이 대성전의 제대 아래에 묻혀 있기에 예전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시신을 이곳의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 대성전은 4세기 이래 이 장소에 서 있다. 1506년에 공사를 시작해 1626년에 완공되었는데, 길이는 220m, 폭은 150m, 최고 높이 138m이고 돔의 외경은 42m이다.대성전 내부에는 500개에 달하는 기둥과 400개가 넘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으며 따로 분리된 제대 44개와 돔 10개가 있다. 1300개에 달하는 모자이크 그림들이 벽면에 장식되어 있으며, 최대 6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인류는 종교뿐만 아니라 역사와 예술에 대한 큰 의미를 학습할 수 있다. 르네상스부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장이 주임 건축가 직책을 계승하면서 지은 건축 작품이기에 제대 한 곳 한 곳, 조각과 그림 하나하나에서 깊은 종교적·역사적 의미와 예술성을 음미할 수 있다.특히 성 베드로 대성전 입구 오른쪽 경당에는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Pietà)]가 있다. 그 앞에 설 때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조각상은 사람이 조각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 작품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후에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놓인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묘사한 것이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조각한 그 섬세함이 눈을 의심케 한다. 마리아의 얼굴이 매우 앳되고, 예수의 몸에 비해 마리아의 신체 비율이 무척 크게 표현되었다. 사후경직이 일어났어야 하는 예수의 몸을 부드럽게 늘어져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독창적이다. 미켈란젤로는 일생 동안 3개의 피에타를 제작했는데, 이곳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산피에트로의 피에타]가 유일하게 완성한 작품이다. 직접 자기 이름을 새긴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피에타에서 받은 강한 감동으로, 그 후로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피렌체 박물관에서 [피렌체의 피에타]를 감상했고, 밀라노를 방문했을 때는 스포르체스코 성에 있는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감상했다. 미켈란젤로의 3대 피에타를 모두 감상하며 얻은 감동은 이후 미켈란젤로의 생애와 작품에 많은 관심과 공부로 이어졌다.
▎로마 성베드로 대성전 입구 경당의 피에타(Pieta) 상.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만든 이 조각상은 사람이 조각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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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의미 곱씹게 하는 예술 작품들#3.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려 벽을 돌아보면 숨 막히는 감동으로 전율이 느껴진다. 르네상스시대의 대표적 예술가들인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 피에트로 페루지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등이 그린 그림들로 천장과 벽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렸다고 믿을 수 없는 장관에 눈을 뗄 수가 없다. 교황이 선종했을 때 전 세계 추기경들이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경당의 내부 모습이다.시스티나 경당(Aedicula Sixtina)은 바티칸시국에 있는 교황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경당 내부는 천장화와 벽화를 보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관광객으로 항상 붐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는 교황 율리오 2세의 주문으로 미켈란젤로가 1508년부터 1512년까지 그린 작품이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천장 중앙 부분에 크게 묘사된 9개 그림이다. [빛과 어둠의 분리·해와 달의 창조·물과 흙의 분리·아담의 창조·이브의 창조·유혹받은 아담과 이브, 에덴동산에서의 추방·노아의 번제·대홍수·술에 취한 노아]가 차례로 펼쳐져 있다. 천장 중앙에서 하나의 띠를 형성하는 작품을 둘러싼 양 측면에는 예언자 7명과 여사제 5명을 그려놓았다.예언자들과 여사제들 사이 천장과 벽이 만나는 삼각형 공간과 주변에는 예수의 선조들을 그렸다. 그리고 사방의 펜던티브에는 유대 민족을 구원한 남녀 영웅 4명과 그들과 관련된 사건으로 [모세와 청동 뱀·유딧과 홀로페르네스·하만의 형벌·다윗과 골리앗]을 나타냈다. 시선을 돌려서 제대 위를 보면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작품 [최후의 심판]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자세히보면 왼쪽에는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영혼들이, 오른쪽에는 지옥의 불로 떨어지는 영혼들이 묘사돼 있다. 왼쪽 아래에는 종말 이후 죽은 이들의 부활이, 오른쪽에는 영원한 벌을 선고받는 이들의 영혼을 나르는 카론의 배와 이들을 심판하는 미노스가 있는 지옥을 그려놓았다. 그 위에는 위엄 있는 심판자 모습을 한 그리스도가 있다. 천당과 지옥이 바로 눈앞에 현존하는 듯 보여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곱씹게 해준다. 교황 바오로 3세의 요청에 따라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 작업을 마친 지 24년이 지난 1536년에 다시 [최후의 심판] 작업을 시작해 1541년에 완성했다.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 벽에 로마 제국이 차지했던 거대한 영토가 유럽 전역의 지도 위에 표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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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제 고대 로마제국의 흔적을 찾기 위해 콜로세움(Colosseum)으로 자리를 옮긴다.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 벽에는 과거 로마제국이 차지했던 영역이 유럽 전역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그려져 있다. 북쪽으로는 영국, 서쪽으로는 스페인을 포함한 이베리아반도와 남쪽으로는 터키와 북아프리카, 동쪽으로는 동부 유럽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영토를 가진 대제국이다.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건축된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은 석회암, 응회암, 콘크리트 등으로 지어졌는데 일부가 훼손된 상태이지만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로마 중심지에 자리한 콜로세움은 로마제국 전성기에는 관중 5만~8만 명을 수용했고, 현재는 로마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이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거상(巨像) 콜로수스(Coloss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으로,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해 8년 뒤에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완공했다. 그 후 수 세기 동안 여러 건축 양식으로 계속 개축되어왔다.
▎콜로세움 내부를 돌아보면 검투사들이 휘두르는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맹수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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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보듯 주로 검투사들의 결투가 이루어졌으며 모의 해전, 동물 사냥, 신화 재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중세에 이르러 로마제국이 쇠퇴하고 폐허로 변하자 약탈과 채석 같은 파괴 행위로 많은 부분이 손상됐다. 그러나 아직도 콜로세움은 로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2018년에는 관광객 480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얼마 전 [로마제국]이라는 드라마 형태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가 당시의 장면을 충실히 재현했고 때때로 역사학자와 평론가들이 설명을 더해주어서 로마제국을 더 깊이 공부할 수 있었다.로마 연대기를 살펴보면 태평성대를 누리게 한 황제의 시대도 있었고, 여러 차례의 전쟁과 수많은 암살·암투로 인한 암울한 시대도 있었다. 로마제국이라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역사적으로 해석해보면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와 견주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1000년이 넘는 제국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국가가 훌륭한 리더를 갖고 시민의식이 깨어 있을 때는 태평성대와 번영을 누릴 수 있지만, 잘못된 리더를 가진 시대에는 국가가 쇠락과 멸망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에서 기업이나 국가의 지속가능이라는 숙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기나긴 로마제국의 역사에서 특히 눈여겨본 부분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위한 후계자 계획(Succession Planning)이었다. 로마 역시 적당한 후계자가 없어서 내부적으로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에 실패하고 외적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번영을 누렸던 로마제국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나라나 외국의 역사적 사례를 기업이나 국가의 현재 상황과 비교해보면, 후계자 계획이 한 기업과 국가의 성장과 흥망성쇠 사이클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대 로마의 역사적 교훈을 음미해보면서 ‘지속가능성 공식’을 구상해보았다.
-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후계자}x[{가치 철학}+{내적 변화와 혁신 능력}+{글로벌 안목과 외적 대응 능력+도전 능력}]+알파(열정+행운 등)-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Rome was not built in a day!※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