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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늪 

 

이진원 기자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이래 세계경제는 공급망 혼란, 상품가격 변동성, 고용시장의 혼돈, 관광수입 감소 등으로 크나큰 도전을 받았다. 세계은행은 팬데믹으로 인해 거의 9700만 명이 극심한 빈곤을 겪고 있다고 추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정부, 기업, 가계 모두 부채가 크게 늘어 2021년 기준 세계 부채는 사상 최고치로 치달았다. 한국의 가계·기업별 부채도 글로벌에서 높은 수준이어서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포브스코리아 인텔리전트 유닛은 한국과 각국의 부채 규모를 비교하기 위해 지난 2월 국제금융협회(IIF)가 발간한 ‘세계 부채 보고서(Global Debt Monitor)’에서 국가별 GDP 대비 부채 데이터를 수집하고 시각화했다.

2021년 세계 부채는 사상 최고치인 303조 달러에 달했다.[그림 1] 전년에 비해 약 10조 달러가 늘어난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의료 비용, 실업, 식량 불안정 등에 대처하고 기업의 생존을 지원하기 위해 지출을 늘려야 했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부채를 떠안았고, 그 결과 반세기 만에 세계 부채 수준은 가장 높아졌다.

지난해 글로벌 부채 급증의 80%는 중국을 포함한 신흥시장에서 일어났고, 업종별로는 각국 정부와 비금융 기업이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특히 중국에서 부채가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부채는 빠른 속도로 100조 달러에 가까워지고 있다. 신흥국 부채는 2021년 약 8조5000억 달러가 늘어나 95조 달러 이상으로 급증했다.

베트남, 태국, 한국 등의 GDP 대비 부채비율도 전반적으로 크게 증가했다.[그림 2] 신흥국 부채 수준은 GDP의 약 248%로, 팬데믹 이전에 비해 20%p 높다. GDP 대비 부채비율은 국가의 공공부채를 경제 생산량과 비교하는 간단한 지표다. 한 국가가 빚을 지고 있는 금액과 연간 생산량을 비교함으로써 경제학자들은 한 국가의 부채 상환 능력을 이론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주체별 부채 규모를 살펴보자.


한국을 비롯한 각국은 ‘저금리의 종말’ 속 거대 괴물처럼 몸집이 커져버린 부채라는 폭탄이 세계 어느 곳에서 불씨가 되어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안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경제 불안정성에 어느 국가에서건 부채 폭탄이 터진다면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공포가 확대되고 있다. 한편, 선진국을 중심으로 회복되고 있는 경제와 높은 인플레이션은 부채 수준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IIF는 설명했다.

가계부채


우선 한국의 가계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그림 4] IIF 부채 분석 대상국 37개국(유로지역은 단일 통계)에서 분기별로 1, 2위를 다투고 있다. 가장 최근 발표인 2021년 4분기 기준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는 106%로, 레바논(115.7%)에 이어 2위다. 2021년 동안 전년 동기 대비 2.6%p 증가했다. 지난해 2분기에 한국은 104.2%로 1위에 오른 바 있다.

소득 대비 부채비율을 살펴보면 그 심각성은 더 커진다. 지난 2020년 기준 가계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201%로, 전년 188%에서 껑충 뛰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팬데믹 기간 동안 재난지원금 등 정부가 가계에 지원한 이전소득 확대 효과를 제외하면 가계부채 비율은 208%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가계부채 증가의 특징,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팬데믹 이후의 완화적인 금융 환경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은 중기적으로 소비 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많은 가구가 부채를 늘려 자금을 확보했고 이는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됐다. 또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으로 인해 이미 민간 소비의 둔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계부채가 누적됨에 따라 민간 소비 약화가 지속되는 경우, 대내외 충격에 대한 취약성이 커져 총수요의 둔화로 인해 향후 성장잠재력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정부부채

2021년 4분기 기준 한국의 정부부채 규모는 GDP 대비 45.6%다. 전년 동기(44.5%) 대비 1.1%p 증가했다. 조사 대상 37개국 중 26위로,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정부가 산출·관리하는 부채 통계는 국가채무(D1), 일반정부부채(D2), 공공부문부채(D3)로 나뉜다. 일반정부부채(D2)는 국가채무에 비영리공공기관 부채를 포함한 수치이며,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국가 간 비교에 활용하는 국제기준이다. 2020년 기준 일반정부부채(D2) 규모는 945조1000억원으로 전년(810조7000억원) 대비 134조4000억원 증가했다.

글로벌 정부부채 순위에서 일본(247.3%)과 레바논(255.3%)이 200%를 상회하는 GDP 대비 부채비율로 1, 2위를 차지했다. 이어 싱가포르(150.6%), 미국(126.3%), 영국(120.3%), 유로(114.9%) 순이다.

일본은 이미 2010년에 정부부채 비율이 200%를 넘은 최초의 국가가 됐다. 일본 정부는 신규 부채를 조달하기 위해 주로 일본은행이 사들인 채권을 발행한다. 2020년 말까지 일본은행은 정부부채의 45%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한 데는 경기침체가 주요 원인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높을수록 해당 국가가 채무불이행을 할 가능성이 높아져 시장에 금융 공황이 발생할 수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GDP 대비 부채비율을 장기간 77% 이상으로 유지한 국가가 경기침체를 겪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코로나19는 2008년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부채위기를 악화시켰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저소득 국가를 위한 세계은행-IMF 공동 부채 지속 가능성 프레임워크)는 최소 100개국에 보건, 교육 및 사회보장에 대한 지출을 줄일 것을 주문했다. 또 개발도상국 중 30개국은 부채 문제가 심각하여 부채 상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기업부채


기업부채에서도 한국은 위험 국가에 속한다. 2021년 4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비금융기업과 금융 부문 모두 6위다.[표 1]

비금융기업 부문에서 한국은 115.7%로, 전년 동기 대비 5.4%p 증가했다. 글로벌에서 홍콩(292.9%), 레바논(264.6%), 중국(154.8%), 베트남(137.4%), 싱가포르(135.3%)의 뒤를 잇고 있다.

금융 부문에서는 한국은 83.6%로 100% 미만이다. 전년 동기 대비 0.1%p 감소했다. 글로벌에서 일본(193.1%), 싱가포르(181.1%), 영국(179%), 홍콩(174%), 유로(115.5%)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경제연구원(KERI)은 ‘한국의 민간부채 현황과 G5와의 비교’ 보고서에서 기업들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낮아 금리 방어력이 양호한 편이기는 하나, 한계기업(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기업) 비중이 높아 금리인상 시 영세기업들의 타격이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은 투자자금 조달 시 내부자금을 먼저 사용하고, 부족한 금액은 다른 경제주체로부터 차입해 조달한다. 비금융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2010년 초반까지 전반적으로 가계 저축을 상회했다. 이에 따라 가계의 잉여자금은 기업 투자에 활용됨으로써 실물경제로 순환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내부자금 증가, 투자 둔화 등으로 2014년 이후 비금융기업의 자금 부족 규모가 가계 저축을 하회하고 있다. 이는 가계의 잉여자금이 실물경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며, 향후 성장잠재력이 낮아질 수 있다.

-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

202204호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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