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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제넨바이오 대표 

이종 간 장기이식, 꿈이 아니다 

장진원 기자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이 돼지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했다는 뉴스는 전 세계를 흥분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장기이식 권위자인 김성주 제넨바이오 대표도 국내 이종이식 연구 분야의 선구자를 자처했다.

▎김성주 제넨바이오 대표는 삼성서울병원 등에서 국내 장기이식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활약한 의사 출신 CEO다.
지난 1월,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메디컬센터는 임종을 앞둔 위급한 환자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했다고 발표했다. ‘인간의 몸에 다른 종의 장기를 이식할 수 있느냐’는 의학계의 해묵은 연구가 현실로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는 안타깝게도 두 달 뒤 숨을 거뒀다. 그렇다고 이종(異種) 간 심장이식이라는 첫 발자국이 완전히 무색해진 것은 아니다. 그동안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혔던 이식 직후 초급성 거부반응을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선 이식 후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처음부터 제거한 유전자가위 기술이나 장기이식용 형질전환 돼지의 효용 가치 등을 증명한 것도 메릴랜드대학 이식팀이 거둔 주요한 성과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이종 간 장기이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국내에서도 활발하다. 김성주 대표가 이끄는 제넨바이오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9년 제넨바이오 최고경영자(CEO)로 합류한 김 대표는 국내 장기이식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다. 외과의사로서 지난 25년 동안 2500건 넘는 장기이식수술을 집도한 김 대표는 지난 2019년까지 8년 간 삼성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을 역임하며 이종 장기이식 분야 연구를 이어왔다. 김 대표가 주도한 장기이식센터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기이식 관련 면역관용유도 이식, 혈액형 불일치 조합을 포함한 교환 이식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역시 국내 최초로 형질전환 돼지의 췌도를 원숭이에게 이식해 성공적으로 혈당을 유지하는 ‘형질전환 돼지 이용 이종 췌도 이식’에 성공하는 성과를 거뒀다. 국내 이종이식의 지평을 한 차원 넓힌 셈이다.

김 대표는 병원 재직 시절부터 턱없이 부족한 이식용 장기 공급의 대안으로 이종이식에 큰 관심을 갖고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다. 삼성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 내 의료진과 함께 영장류 전문 비임상 실험대행연구기관(CRO)인 에이피알랩의 실험을 총괄하면서 동물 임상 부문의 전문성을 확보했고, 2011년부터 장기이식센터장으로 일하며 다양한 국내 최초 기록들을 써 내려갔다. 김 대표는 2018년 제넨바이오의 제안을 받고 본격적으로 이종이식 연구와 사업에 함께하고자 고민 끝에 2019년 CEO로 합류했다.

돼지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적인 화제였는데. 이종이식의 개념부터 설명해달라.

문자 그대로 종이 다른 세포나 장기조직을 이식하는 걸 말한다. 의료적 치료제가 아닌 ‘이식’으로 인정되려면 각막이든 피부든 장기든 이식하는 개체의 세포가 살아 있어야 한다.

2014년 돼지 췌도를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췌도란 이름 자체가 낯설다.

췌도는 췌장 안에 조그만 섬이나 알맹이처럼 박혀 있는 조직을 말한다. 그 안에 다양한 종류의 세포가 뭉쳐 있는데, 알파세포와 베타세포가 가장 중요하다. 알파세포는 우리 몸의 당수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베타세포는 이를 바탕으로 인슐린을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베타세포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파괴되면 인슐린 분비가 이뤄지지 않는데, 이게 바로 1형 당뇨다. 특정한 세포를 우리 몸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베타세포가 망가지면 외부에서 인슐린을 공급해주는 방법밖에 없다.

췌도를 이식하면 1형 당뇨를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인가.

1형 당뇨는 일반에 널린 알려진 당뇨(2형 당뇨라 부른다)와 다르다. 인슐린펌프를 부착하고 주기적으로 혈당을 체크해 인슐린을 공급해야 한다. 2형 당뇨의 경우 중장년층 이상 환자가 많은 반면, 1형 당뇨는 일찍 발병하는 경우가 많아 소위 소아당뇨로 불리기도 한다. 당뇨는 고혈당보다 저혈당 쇼크가 훨씬 위험하고 사망률도 높다. 저혈당 상태가 지속될수록 쇼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아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사망할 수 있다. 소아 환자가 많은 1형 당뇨가 더 위험한 이유다. 그러니 췌도 이식이 꼭 필요하다.

사람의 췌도가 아닌 돼지 췌도로 이식이 가능한가.


췌도는 이종이식 중 가장 간편한 축에 속한다. 간에 모인 혈관 중 하나인 문맥에 주사하면 된다. 2시간이면 끝난다. 국내에선 뇌사자의 췌장을 이식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1년에 5건 이하에 불과하지만, 외국에선 췌도 이식이 이미 1만 건 이상 이뤄졌다. 이종이식은 돼지의 췌도만 분리해 주사하는 방식이다.

이종이식에 돼지가 주요 종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뭔가.

초기부터 당뇨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돼지 혈액에서 분리한 인슐린을 사용해왔다. 인간의 인슐린과 아미노산 하나만 달라, 사람 몸에서도 별다른 부작용 없이 작용한다. 돼지 췌도에 대한 효과는 이미 의료계에서 오래전부터 검증된 사안이다. 실제로 10년 전부터 중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등에서 돼지 췌도를 사람에게 이식했다. 이후 2009년,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세계이종이식학회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무균 형질전환 돼지로 영장류 실험을 거치고, 7마리 중 4마리 이상이 성공적으로 6개월 이상 가야 한다” 등의 규칙이다. 현재 이 같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임상을 신청한 니라는 한국의 제넨바이오와 미국 등 두 나라뿐이다. 우리의 1차 목표도 이종 간 췌도 이식이다. 간, 심장 같은 고형장기(solid organ) 이식도 국책과제로 영장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세포가 살아 있어야 하는 피부이식은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팀과, 각막이식은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연구 중이다.

형질전환 돼지란 무엇인가.

이종이식 분야에서 이름난 해외 기업 중 상당수가 형질전환 돼지를 생육하는 곳이라 보면 된다. 형질전환 돼지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개체와 완전히 다르다. 다 자란 성체도 50~60kg 정도인 미니돼지라 이해하면 쉽다. 임상시험을 위해선 이들을 완전한 무균 상태로 관리해야 한다. 균과 질병 인자가 전혀 없는 돼지를 임신시키고, 제왕절개를 통해 돼지 자궁까지 적출해 인공포유로 키워내야만 비로소 실험에 쓸 수 있는 형질전환 돼지를 얻을 수 있다. 제왕절개 전에 유전자가위 기술로 불필요한 유전자가 없는 돼지를 임신시킨다. 돼지를 키우고 얻기 위한 특별한 시설, 이를 진행할 기술자가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다.

제넨바이오도 형질전환 돼지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나.

그렇다. 우리는 형질전환 돼지 생육부터 세포분리시설, 영장류 실험시설 등 이종이식 연구를 위한 주요 시설을 자체적으로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기업이다. 외국에서는 형질전환 돼지 생산 기업이 대학, 병원 연구팀 등과 협업하는 사례가 많다. 이종이식이 어려운 건 이식 후의 거부반응 때문이다. 특히 이식 직후 몇 시간 안에 찾아오는 초급성 거부반응이 난제다. 사람과 맞지 않는 돼지의 유전자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런 기전 자체를 몰랐는데,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람에게는 없고 돼지에게만 있는 세 가지 유전자가 발견됐다. 혈액형이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면 쇼크가 일어나는 반응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쉽다. 얼마 전 메릴랜드대학 팀이 바로 이 세 가지 유전자를 없앤 돼지 심장을 이식한 케이스다. 초급성 거부반응을 피했다는 것 자체로 의의가 크다.

까다로운 FDA가 이종 심장이식을 승인한 이유는 무엇인가.

해당 환자는 이종이식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돼지 심장을 받느냐, 그대로 사망하느냐의 갈림길에 있었기에 FDA가 긴급승인을 내줬다고 이해한다. 심장이나 간은 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는 장기다. 심장만 유일하게 인공심장, 즉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데 이 역시 누구나 사용할 수 없다. 맞는 사람이 한정돼 있다. 기계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혈전 발생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뇌사자 외에는 불가능하다. 동종 간 이식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이종이식이 유일한 방법인 환자가 있고, 메릴랜드 케이스가 바로 그랬다.

국내 이종 장기 개발 및 이식 수준은 해외와 비교해 어느 정도인가. 또 제넨바이오는.

형질전환 돼지 생육을 위한 복제기술 등은 세계 톱 수준이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아직 부족하지만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제넨바이오는 지난 2020년 9월에 문을 연 제넨형질전환센터에서 형질전환 돼지 개발과 양산을 진행 중이다. 올 2월 평택에 완공한 제넨코어센터에서는 이종이식 제품 원료에 대한 유효성 평가와 제품 제조 및 비임상시험을 통한 검증을 담당할 예정이다.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시설 등 고도화된 연구시설에서 세포 분리 등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제넨코어센터는 이 밖에도 수술실, 중환자실, 일반병실 등 영장류 실험을 위한 제반 시설을 완벽히 갖췄다. 모든 시설을 완비하는 데만 1000억원 이상이 투자됐다.

향후 사업 추진 계획은.

췌도 이식은 이미 식약처에 임상 신청을 해놓은 상황이다. 올해 안에 승인을 받아 임상을 시작하는 게 목표다. GMP 시설 완공으로 피부이식에 대한 임상 준비도 올해 안에 갖추려 한다. 미국에선 이미 화상 환자에 대한 임상이 이뤄졌다. 피부와 각막의 경우 영장류 실험도 진행 중이다. 이후 간과 신장 같은 장기이식 연구로 확대해갈 예정이다. FDA의 이종 간 심장이식 승인이 화제가 되면서, 이에 대한 가능성을 대중도 인식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된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국내외에서 이종이식의 상용화는 언제쯤 가능할 거라 보나.

피부나 췌도 등은 100% 상용화될 거라 본다. 장기는 시간이 걸릴 거라 봤는데, 지난번 심장이식은 예상보다 훨씬 빨라 놀랐다. 고형장기 중에선 심장과 신장이 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세계이종이식학회 등에 참여하면 글로벌 선두 기업들과 FDA 등이 활발히 논의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실질적인 임상 돌입은 5년 안에 충분히 가능할 거라 전망한다. 우리도 고형장기의 임상시험 진입 시기를 6년 이내로 정했다. 미국이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갈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우리에게도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다. 분위기나 인식 개선 효과뿐 아니라 시행착오를 줄이는 등 벤치마킹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204호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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