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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기업승계 전략 

 

기업승계 상담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재산 상속을 떠나 많은 기업인이 ‘내가 없어도 회사가 잘 굴러갈지’를 고민한다. 잘 물려줘서 기업이 더 커지면 좋겠는데,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이들에게 기존과는 다른 승계 전략을 제시한다.

오랜 세월 바람에 맞서 하늘로 쭉 뻗어 있는 아름드리나무는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해준다. 크고 우람한 나무일수록 여름엔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더위도 피하게 해준다. 그런데 큰 나무로 자라려면 하늘로 오른 나무줄기보다 더 깊게 뿌리내려야 대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나무가 뿌리내리듯 자신이 일궈온 재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세대를 이어가길 바라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그래서일까. 근래 들어 가족기업이라는 이름으로 자녀를 넘어 손주에게 물려주어 자신이 기업을 일궈온 이상과 철학을 이어가길 원하는 기업인을 자주 만난다.

1970~80년대에 창업하고 회사를 일군 1세대 기업인들이 세대교체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간혹 후계자가 없거나 자녀들이 기업경영을 꺼려 기업을 매각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을 이끌어나갈 것 같은 자식에게 맡겼더니 뜻하지 않은 재산 분쟁으로 형제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변해야 하는 기업은 손을 놓게 된다. 세금도 상속과 승계에서 빠지지 않는 이슈다. 세금 때문에 승계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도 많다. 세제 혜택을 찾아보고 주위 사례를 들어 사후 관리 요건을 꼼꼼히 정리해보지만, 빛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잡을 리 만무하다. 이 밖에도 경영 수업을 받던 자녀가 급작스럽게 사망하거나 자녀 내외가 이혼을 앞두고 있어 기업승계를 고민 중인 기업인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기업인이 유능한 자녀, 손주 세대와 소통하며 자신의 기업 철학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물론 사회 일반의 인식은 기업을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데 다소 부정적인 것 같다. 가족기업의 승계 문제가 계속 ‘그들만의 리그’로만 여겨지는 몇 가지 사건이 사회적으로 각인된 까닭도 있다. 하지만 점차 그 인식도 서서히 달라져야 할 듯싶다. 통계 자료를 보면 대기업은 전체 기업 수에서 1% 미만에 그치고, 99.9%가 중소기업이다. 근로자 중 80%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중산층 삶의 근간인 중소기업이 단지 가족기업이기 때문에, 사장 자식의 승계 문제가 불거지는 게 싫어서 외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차라리 이들이 성공적으로 승계하고 중소기업을 지속해서 성장시킬 방법을 강구하는 게 양쪽 모두가 윈윈하는 길이다. 수십 년 넘게 사업을 해온 중소기업은 저마다 노하우를 갖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혁신을 꾀해 더 큰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젊음을 바친 근로자들의 일터이자 국가경제의 기반인 셈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런 기업의 승계를 돕는 여러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해외 가족기업의 사례분석에서 우리에게 생경한 제도인 패밀리오피스, Private Foundation, 신탁 제도 등이 등장한다. 다 우리에겐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는 것인지 어렵기만 하다. 과연 우리의 법체계와 세제는 해외에서 가족기업을 승계하는 플랫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2011년 신탁법 개정과 함께 신탁 제도가 유언을 대신하면서 개인의 노후관리를 위한 재산관리 방법으로 활용되며 조금씩 우리에게 알려졌다. 이 신탁 제도의 고유한 특성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면 가족기업의 승계구조를 최적으로 설계하고 자산의 운용과 분배, 다음 세대로의 이전까지 풀어갈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제조업을 일군 김중석(80·가명)씨 사례를 같이 고민해보자. 김씨는 40년 전에 제조업을 창업하여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회사 인재 양성을 위해 각종 교육제도를 마련하고, 직원들의 재교육을 돕고 있다. 매년 기업 혁신에 도움이 되는 연구개발을 위해 국내 유수의 연구기관에 기부하고 협약도 맺는다. 특히 둘째 아들이 앞장서 노력했다. 그래서 세 자녀 중 둘째 아들에게 가장 많은 지분을 승계했다. 다른 자녀도 배당을 받을 수 있도록 일정 부분의 주식을 물려줬고, 작은 기업을 설립해 가족들이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아들과 막내딸의 자녀인 김씨 손주들이 기업경영에 참여하면서 그간 없던 ‘미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자신이 보유한 회사 지분도 빨리 승계해 뭔가 마무리해야겠다는 조바심이 날 정도다. 김씨가 받을 솔루션은 무엇일까.

회사의 분할이나 합병과 같은 큰 구조변경이 없는 한, 결국 승계를 받을 둘째 아들에게 증여하거나 둘째 손주에게 증여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둘째 아들도 이젠 50대 중반이 되다 보니 자녀에게 증여하기보다는 세대를 건너뛰어 손주에게 증여하는 것도 절세전략 차원에서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엔 장단점이 있다. 증여는 당장 증여세 납부 재원이 있어야 하고 젊은 손주의 세금 재원 규명 문제도 있어 증여세 납부를 위해 또 한 번의 증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플랜이 필요해진다.

바로 신탁을 설정하는 것이다. 김씨가 자신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전할 수 있는 제도가 신탁이다. 신탁은 일종의 가상 재단 또는 서류상의 기업과 같은 구조로, 자신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수탁자가 관리하고 운용하는 방법, 또는 매각하거나 다른 자산을 매입하는 기준과 절차 등을 정해서 그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구조다. 김씨는 자신의 이름을 딴 별도의 신탁을 설정하고 자신의 주식과 부동산, 금전 등을 신탁으로 이전하여 관리하는 마스터플랜을 설계했다. 자산별로 별도의 신탁을 추가 설정하여 시장 상황에 맞게 운용, 관리 할 수 있다. 또 자신이 사망할 경우에는 자산별로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비율로 분배할지도 정해놓았다.

신탁의 주요한 특성은 바로 연속적인 자산이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김씨는 자산을 이어받을 수익자를 연속해서 정해주고, 자신의 기업이 좀 더 오랫동안 지속하도록 플랜을 설계할 수 있다. 주식 의결권의 행사하는 방법과 절차도 정해놓음으로써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생길 오해와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해외의 패밀리오피스라는 일종의 투자운용법인을 통한 자산운용과 관리, 의결권 행사 방법과 같이 신탁을 통해 생전에 자산관리 방법을 정하고 더 나아가 다음 세대 승계자에게 직접 귀속시키는 방법도 정할 수 있다.

사실 국내 기업이 신탁을 활용하는 건 걸음마 단계다. 최근 승계 이슈도 세금에 쏠려 있다. 하지만 조만간 ‘후계자가 어떻게 하면 기업을 지속해서 끌어가며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날 거라 확신한다. 이런 고민을 하나둘 풀어가다 보면 한국에서도 100년 가업을 이어가는 중소기업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 센터 본부장

202205호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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