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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부울경 혁신 리더(2) | 이좌영 유니테크노 대표 

제조업 근본은 기술… 본질은 어디든 통한다 

장진원 기자
1993년 창업 이후 정밀 사출의 외길을 걸어온 이좌영 유니테크노 대표는 모두가 어렵다고 손을 드는 사출업계에서 자동차부품 생산을 기반으로 매년 높은 부가가치와 이익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는 혁신 리더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튼튼한 기초산업 기반은 제조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바탕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 2011년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6대 ‘뿌리기술’을 선정해 관리해오고 있다. 나무의 뿌리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최종 제품에 내재돼 품질과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뿌리산업이라 이름 붙였다.

지난 2021년 정부는 뿌리산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새로운 뿌리기술 8개를 추가했다. 관련 법이 제정된 지 10년 만이다. 당시 추가된 신기술에는 ‘소재 다원화 공정기술’ 분야에 사출·프레스 기술이 포함됐다. 사출은 고분자 소재를 용융한 후 금형 등을 이용해 일정 형태로 가공하거나, 소재에 열과 외력을 가해 형상을 제조하는 기술을 말한다. 흔히 플라스틱 가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단순 생활용품부터 첨단 소재 기반의 초정밀 플라스틱까지, 사출은 우리 생활과 산업 전반에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기술이자 산업이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두 번째로 만난 부울경 혁신 리더는 이좌영 유니테크노 대표다. 유니테크노는 부울경 지역을 대표하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으로, 특히 차별화된 전기차·전장화 부품 경쟁력으로 지역을 대표한다. 삼성SDI에 납품하는 배터리셀 케이스와 각종 전장품 플라스틱 부품, 모터류 어셈블리, 엔진파워트레인용 플라스틱 부품이 주요 생산 품목이다. 특히 유니테크노가 개발해 국내 공정 특허를 따낸 배터리 셀 케이스는 폴크스바겐과 FCA 등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에 장착돼 있다. 이 밖에도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아우디, 폴크스바겐, GM, FCA, 포드 등 웬만한 글로벌 메이커에 유니테크노의 정밀 사출 부품이 공급된다.

사출은 대표적인 뿌리기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국내에 경쟁력 있는 업체가 많지 않다.

사출로 성공한 사람이 별로 없다. 대학 전공 과정도 없다. 과거 부울경 지역 대학에 하나 있던 과정도 그나마 사라지고 없다. 그만큼 수요가 적고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항상 하는 이야기인데, 사출은 종합예술이다. 원자재부터 금형, 기계, 부대 장비에 이르기까지 완벽히 파악해야 한다. 일반 가공이나 프레스는 온도 편차에만 영향을 받지만 사출은 온도는 물론 습도까지 고려해야 해 다루기가 무척 까다롭다. 그만큼 현장에서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가 중요하다. 관련 엔지니어들이 있다지만 영세한 곳이 많고, 그런 곳은 관리 능력이 부족해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 성공하기 참 어려운 업종 가운데 하나다.

일본이 사출산업 경쟁력에선 글로벌 톱이라고 들었다.

소비재든 정밀산업이든 사출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는 없다. 정밀사출로 갈수록 선진국, 특히 일본의 경쟁력이 압도적이다. 우리는 사출 인력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배출하는 교육 시스템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 즉 데이터가 사출산업의 핵심이다. 일본에는 작업자의 메모를 전부 데이터화해서 오랜 기간 축적해온 기업이 많다. 유니테크노도 데이터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일단 대학이 사출 전공을 부활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 오랜 기간 업계에 종사해온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처음 창업에 나선 게 1979년이라 들었다. 출발부터 사출업에 뛰어들었나.


당시 스물다섯 어린 나이였다. 고종사촌 형님이 사출업을 하셨다. 학창 시절부터 곁에서 일을 거들고 잔심부름을 하면서 사출 기술을 익혔다. 주변 지인들께 창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환등기에 들어가는 아크릴 돋보기가 시작이었는데, 처음부터 만들기 까다로운 제품에 뛰어든 셈이다. 돌이켜보면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에 눈을 두는 게 타고난 기질이 아닌가 싶다.

첫 사업의 성과는 어땠나.

어린 나이에 시작했지만 상당히 잘나갔다. 다양한 거래선을 확보하며 사업을 키워나갔는데, 너무 바쁘고 힘들다 보니 CEO로서 범하기 쉬운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일을 쉽게 하자는 욕심에 거래선을 하나로 줄인 게 화근이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몰빵’을 한 셈인데, 결국 주요 거래선이 어려워지면서 부도를 맞고 말았다. 어리고 경험도 없었던 때라 후유증이 엄청 컸다. 두 달 동안 두문불출하며 햇빛을 보지 못했고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졌다. “죽더라도 나가서 죽으라”는 아버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났다. 다시 심신을 추슬러 방산업체에 입사해 10년간 일했다.

첫 사업 실패, 이후 직장생활 10년이 두 번째 창업에 자양분이 됐겠다.

부도를 맞은 실패한 경영자 신세가 됐지만 신뢰를 저버리면 모든 걸 잃는 거라 생각했다. 빚잔치하고 끝낼 수도 있었지만, 당시 돈으로 수천만원이었던 빚을 직장에서 번 돈으로 다 갚아나갔다. 남의 돈 떼먹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신용으로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싶다. 직장생활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큰 기업에서 사업부장까지 오르며 경영, 즉 ‘관리’의 중요성을 배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이를 관리할 능력이 없으면 100% 실패하게 마련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또 한 번 창업이라는 모험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방산업체는 비즈니스 특성상 1년 중 실제 일하는 기간이 몇 개월 안 됐다. 사업했던 기질이 있어서였는지, 놀면서 월급 받기가 어렵더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나가서 영업하고 기술개발에 매달렸다. 마침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아보라”는 경영진의 권유를 받고 그간 눈여겨봤던 자동차산업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매번 퇴짜를 받았다. 방위산업은 원자재 비용 비율이 크지 않은 데 비해, 자동차는 60~70%가 원자재 비용이었기 때문이다. 점점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커졌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창업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990년에 일본으로 연수를 갔고, 그곳에서 일본인 친구 하나를 사귀게 됐다. 마음이 잘 맞아 절친한 술친구가 됐는데, 알고 보니 당시 매출 600억 엔 규모의 건축 엔지니어링 기업 회장이더라.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간다 했더니 “한번 같이 가보면 안 되겠느냐”는 거다. 한국말도 모르면서 임원실 한쪽에 앉아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당신은 직장생활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3000만 엔을 덜컥 놓고 갔다. “나는 망한 사업 처리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린 사람”이라며 극구 사양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처음엔 그 돈으로 장사를 해볼까, 주유소를 할까 고민했다. 무슨 운명이었는지 결국 다시 사출을 택했다.

사업 초기에는 자동차부품이 아닌 전자부품 쪽으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거래선을 뚫다 보니 전자에서 시작했는데, 전자는 자동차에 비해 시스템이 부족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동성도 컸다. 이에 비해 자동차는 대기업이나 국가의 인증을 획득하면 물량이 보장된다. 일찍부터 자동차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봤던 터였다.

자동차는 대부분 대기업이나 1차 벤더사가 거래처다. 신생 업체가 시장을 뚫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우정밀의 차량용 에어컨 스위치 납품이 시작이었다. 무작정 회사 앞에 찾아가 구매부서에 전화를 했다. 만나주지도 않더라. 아마 “이 사람이 미쳤나” 했을 거다. 그렇게 딱지를 맞아가면서도 계속 찾아가니 결국 “이런 거라도 할 수 있느냐”고 묻더라. 돈도 안 되는 계륵 같은 부품이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다. “해보겠다” 약속하고 성공적으로 납품한 후에야 물량을 조금씩 늘려갈 수 있었다. 웃지 못할 일화도 생각난다. 첫 납품 후 대우정밀 구매 담당자가 회사를 찾았는데, 사하구 구평동 산꼭대기에 있는 창고 같은 공장을 보더니 “이런 곳을 협력업체로 두면 어쩌자는 거냐”며 화를 내고 돌아갔다. 화물차를 끌고 내려가 길을 막고선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매달렸다. 공장을 옮기면 생각해보겠다는 말에, 몇 달 후 신평동에 세를 얻어 새 공장을 세웠다. 글로벌 업체들과 거래하는 대기업이다 보니 협력업체 선정 규정도 그만큼 까다로웠던 거다. 퇴짜를 놨던 그 담당자는 그 일이 인연이 돼 이후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영화 스토리 같다. 결국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고집과 원칙이 성공의 열쇠인 것 같다.


1993년 유니테크노 창업 이후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한차례도 부도를 맞지 않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원칙 있는 경영을 고집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비록 우리가 2차 벤더사지만, 1차 벤더든 원청이든 성장성이 없는 회사라고 판단하면 절대 거래하지 않는다. 오너의 마인드가 별로라면 단기 수익이 높아도 과감하게 포기한다. 첫 창업 때 얻은 교훈 덕에 거래선 다변화도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다. 대우정밀 이후 델파이(DELPHI), 베어(Bher) 등 글로벌기업과 거래를 시작했다. 현재 삼성SDI, S&T모티브, 말레베어(MAHLE Bher), LG이노텍, DY오토 등 국내외 18개사와 협업 중이다.

전기차와 전장부품에 주력하고 있다. 선견지명의 원천이 궁금하다.

협력사의 성패는 결국 독보적인 기술력이다. 기술은 정체되는 순간 끝이다. 끊임없이 유망 사업을 찾고, 이에 맞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미래 에너지는 결국 화석연료에서 대체에너지로 갈 수밖에 없다. 유니테크노는 이미 2016년부터 전기차용 배터리셀 케이스를 중심으로 준비에 나섰다.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부터 선제적으로 대응한 셈이다. 그 결과 현재는 전장품과 전기차 배터리 부품을 주력으로 하는 사업 재편에 성공했다. 세계 특허를 보유한 배터리셀 케이스는 삼성SDI에 공급 중이고, 최근에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셀 케이스 납품 등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 재편 중이다. 최근에는 차량 전자식 변속 레버 핵심인 SBW(Shift By Wire) 양산에도 성공했다. 전장부품, 배터리 부품, ESS 등을 축으로 2030년까지 매출 3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계획이다.

제조업 경쟁력은 역시 기술일 수밖에 없다. R&D 현황이 궁금하다.

유니테크노는 완성품 제조사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직접적인 제품 개발보다는 생산기술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다. 남들이 다 할 줄 아는 일에 집중하는 건 아무 실익이 없다. 우리만 확보한 생산기술을 갖추면 고객이 알아서 찾아오게 마련이다. 생산기술 고도화를 이뤄가다 보니 의도치 않은 오해도 받는다. 상장까지 한 기업이니 협력 비용이 클 거란 선입견이다. 우리도 물론 영업부서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값싸고 맛있는 집’이어야 손님이 찾게 마련이다. 그게 우리 경쟁력이다.

상장 이야기가 나왔다. 2차 벤더사 가운데 상장사가 극히 드문데.

2016년 9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삼성SDI와 거래 때문이다. 삼성의 1차 벤더가 되기 위해선 중견기업 이상이어야 한다. 당시 우리 매출 규모가 500억원 수준이었다. 방법이 없냐 물으니 상장을 권하더라. 보통 길게는 몇 년씩 걸리는 기업공개를 9개월 만에 마쳤다. 사업 경쟁력을 인정받았는데, 무엇보다 자금관리가 투명했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선 투명함이 곧 경쟁력이다. 북미나 유럽 등 선진국 기업과 거래하려면 특히나 재무 건전성이 우수해야 한다.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자동차산업 트렌드 변화를 중심으로 성공적인 사업구조 재편을 이뤄가고 있다. 중장기 목표는 무엇인가?

유니테크노는 어디까지나 기술 중심 기업이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더욱 고도화하는 게 영원한 숙제다. 세상에 운 좋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주변 젊은 경영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기본을 지켜라, 원칙을 세워라, 편법을 피하라’이다. 내실 없이 ‘폼생폼사’ 하다 좌절하는 2세들을 많이 본다. 더욱이 제조업은 장인정신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본질에 충실하면 어디서든 통하게 마련이다.

※ 최영찬 대표는…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정리=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206호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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