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김형일 온마인드 대표 

인공지능과 결합한 가상인간 

노유선 기자
마치 ‘인격’이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딥러닝이 가능한 가상인간. 김형일 온마인드 대표가 꿈꾸는 미래의 가상인간이다.

▎온마인드의 대표 가상인간 ‘수아(SUA)’는 식음료·화장품 브랜드들과 협업하는 등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이다.
틱톡,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셀럽으로 활동 중인 가상인간이 실제 사람을 대신해 광고모델로 발탁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카카오계열 디지털 휴먼 제작사 온마인드가 선보인 가상인간 ‘수아(SUA)’는 최근 던킨도너츠, 라네즈 등과 인스타그램 협업을 진행하며 인플루언서로 활약하고 있다. 코오롱FnC의 골프 브랜드 ‘왁’도 브랜드 홍보대사로 수아를 발탁했다. 김형일 온마인드 대표는 “가상인간은 인플루언서, 광고모델,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하다”며 “메타버스에도 쉽게 적용돼 가상인간 개발 수요는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그리는 가상인간의 미래는 훨씬 광범위하다. 그는 “가상인간과 인공지능(AI)의 결합이 고도화되면 상담사, 개인비서 등 일부 직업이 가상인간으로 대체될 수 있다”며 “AI 가상인간의 출현은 산업 전반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온마인드는 가상인간 중에서도 실시간 인터렉션이 가능한 3D 디지털 휴먼을 개발한다. AI 접목을 위해선 실시간 인터렉션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예리한 ‘촉’… ‘가상인간, 언젠가 뜬다’


김 대표는 2020년 4월 다니던 회사의 팀원 한 명과 함께 단둘이 온마인드를 설립했다. 그는 2012년 넥슨에 입사해 연예인 캐릭터 제작에 참여해왔지만 가슴속엔 늘 ‘사직서’가 있었다. 가상인간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그는 재직 6년 내내 퇴근 후 창업 준비에 전념했다. 그는 “당시 국내 최초 가상인간인 ‘아담’이 나온 지 20여 년이 지났는 데다 그동안 눈부신 기술 발전이 있었다”며 “가상인간이 다시 부상할 시기가 분명히 올 거라고 100% 확신했다”고 말했다.

지난 1998년 국내 최초로 가상인간이자 ‘사이버 가수’로 이름을 알린 ‘아담’의 등장은 대중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인기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여러 기술이 발전했지만 그중에서도 AI의 딥러닝과 컴퓨터그래픽스가 발전한 덕분에 가상인간 시장이 부상하는 기회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딥러닝을 하기 위해선 엄청난 데이터를 동시에 병렬처리할 수 있는 GPU가 필요한데, 이 GPU 기술이 20여 년간 상당히 발전했다”며 “그뿐만 아니라 컴퓨터그래픽스의 발전으로 더욱 정교하고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6년 만에 창업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김 대표는 회사명을 ‘온마인드’라고 지었다. 가상인간이란 용어에서 풍기는 딱딱한 느낌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려는 의도였다. 가상인간이 또다시 부상하리란 그의 예감은 맞았다. 그는 “가상인간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점,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콘텐트 제작이 용이하다는 점, 스캔들이 없다는 점, 시공간 제약이 없고 메타버스에 손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장점이 있다”며 “여러 기업이 우리에게 기업 모델로 활용할 수 있는 가상인간 제작을 의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온마인드 멤버들은 여러 연예인을 스캔하고 캐릭터로 제작해온 넥슨 서든어택팀 출신들과 자이언트스텝 등 VFX(특수시각효과) 스튜디오에서 여러 가상인간 프로젝트를 주도한 팀 리더들로 구성돼 있다. 김 대표는 “전문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멤버들 덕분에 온마인드는 업계에서 3D 디지털 휴먼 개발 기술과 리얼타임 렌더링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인간 제작 기술은 크게 3가지(VFX 합성기술·실시간 엔진기술·딥페이크 기술)로 나뉘는데 온마인드는 최고난도로 꼽히는 실시간 엔진기술을 이용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Full) 3D로 가상인간을 만들고 있다. 온마인드는 실시간 3D 개발 플랫폼 제작 기업 유니티(Unity), 반도체 기업 AMD 등 글로벌 업체와 제휴해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SK그룹의 ICT 투자전문회사 ‘SK스퀘어’로부터 79억원을 투자 받았다.

온마인드가 개발 중인 가상인간은 AI와 결합해 실시간 인터렉션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비주얼로만 승부하는 합성방식은 빠른 이미지 소비로 인해 캐릭터의 라이프타임을 지속하기 어렵다”며 “지속가능한 IP(지식재산)로 성장하기 위해선 디지털 휴먼 또한 사람처럼 제약 없는 인터렉션이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온마인드는 실시간 인터렉션이 가능하며 실사에 가까운 것은 물론 심미적인 완성도가 높은 디지털 휴먼 개발 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실사형이면서도 호감이 가도록 만든 데다 실시간 인터렉션이 가능하도록 개발하는 것은 글로벌시장에서도 사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단둘이서 시작한 창업과 뚝심

창업 초기 김 대표의 발목을 잡았던 건 부족한 자금도 열악한 작업환경도 아니었다. 물론 충분치 않은 자금과 열악한 작업환경이 어려운 문제이기는 했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그는 “당시 대중적으로 가상인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미래가치를 보지 못하는 모습에 많이 실망했었다”며 “ 그만두고 싶다가도 애착을 가지고 만들었던 캐릭터를 한순간에 버릴 수 없어서 악착같이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가상인간 제작 과정에서는 실제 인간과 가상인간 사이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불편함을 제거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3D 형태로 실사에 가까운 가상인간을 제작하는 것에서부터 높은 허들이 존재한다”며 “사람과 닮게 만들수록 어느 순간 어설퍼질 때 급격히 호감도가 떨어지는 현상, 다시 말해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없애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온마인드는 가상인간을 만들 때 실제 사람 모델을 두지 않고 상상으로 인간의 형태를 만들어나간다. 그는 “수많은 근육의 형태와 조합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며 “사람이 인지하는 미적 요소와 기준에 대한 성형학적 이해가 동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형상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인간의 본성과 관련 있다고 봤다.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을 보면 대부분 인간과 흡사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각종 신화에서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모습은 인간과 매우 흡사하게 묘사돼 있다”며 “ 인간이 무언가를 창조할 때는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이미 만들어놓은 환경에서 가상인간이 활동하려면 인간의 형태일 때가 가장 효율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온마인드는 불쾌한 골짜기를 없애는 데 1년 넘게 매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수아(SUA)’다. 수아는 온마인드가 2019년에 선보인 가상인간으로, 온마인드 자체 3D 디지털 휴먼 구현 기술을 적용해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는다. 김 대표는 “수아 초창기, 유니티 홍보 모델로 발탁됐을 때 한 기사에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선 유쾌한 골짜기’라는 댓글이 있었다”고 말했다.

‘Do what I want’를 슬로건으로 한 수아는 밝고 깨끗한 이미지와 톡톡 튀는 매력을 내세우며 SNS, 모델, 가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셀럽으로 활동하고 있다. 슬로건은 도전을 즐기는 수아의 세계관을 반영해 만들었다. 수아는 루오에스(LUOES)라는 가상공간에서 서울로 왔으며 음악을 좋아하는 소녀라고 한다. 나이는 없고 자동차 수집이 취미이며 트렌디하면서도 엉뚱한 캐릭터다.

김 대표가 보는 미래 가상인간의 역할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는 “가상인간의 의사소통 구조가 단방향에서 쌍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낼 뿐 아니라 실시간 채팅으로 유저와 대화하고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가상인간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세계 아이돌’이라는 그룹은 올해 초 음원 공개 후 뮤직비디오 조회수 700만 회를 넘기고 음원차트 상위권을 휩쓸기도 했다”며 “가상인간의 활약은 ‘반짝’ 하고 사라질 현상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향후 가상인간이 연예인보다 광고모델 등으로 선호될 가능성에 대해서 김 대표는 “공생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인과 달리 가상인간은 각종 사건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며 “또 메타버스와 뉴미디어에 쉽게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사람만 할 수 있는 감정표현은 가상인간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완전히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각각 장점이 다르기 때문에 공생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광고모델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분야로 가상인간 시장을 확장하는 것이 김 대표의 단기 목표다. 최종 목표는 가상인간과 AI를 결합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가상인간을 제작해 서비스하는 것이다. 그는 “AI와 결합돼 인격을 가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수준 높은 개발이 이뤄진다면 가상인간이 안내원, 상담사, 교육자, 헬스트레이너, 개인 비서 등 다양한 직업을 대신할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개개인이 자신만의 가상인간을 보유할 수 있는 시장을 직접 개척하고자 한다”며 “실제 사람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헬스케어를 지원하며 쇼핑을 비롯한 라이프 전반에 관여할 수 있는 가상인간을 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정준희 기자

202207호 (2022.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