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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4) | 손영희 아트부산 이사장 

아트페어 새 역사를 쓴 디테일의 힘 

현재 국내 미술시장은 미술작품에 투자하는 온라인 아트테크와 함께 새로운 소비층인 MZ 세대의 참여로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11회 아트부산은 참가 갤러리 규모와 관람객, 작품 판매액 모두 역대급 실적을 기록해 미술시장 광풍의 중심에 섰다. 지역 축제를 넘어 이제는 K-아트 시대를 견인하고 있는 아트부산의 손영희 이사장을 정승우 유중문화재단 이사장이 만났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아트부산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2012년 ‘문화 불모지’로 여겨지던 부산에서 ‘아트쇼부산’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이제는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로 굳건히 자리 잡은 것. 지난 5월 15일 폐막한 ‘2020 아트부산’은 21개국에서 총 133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나흘간 10만2000여 명이 전시장을 찾았고, 746억원 상당의 작품이 팔렸다. 이는 지난해 판매액(350억원)의 2배가 넘는 금액으로, 국내 아트페어 사상 최대 기록으로 화제를 모았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소장한 미술품인 ‘이건희 컬렉션’이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아트테크 열풍에 힘입어 미술시장에서 2030 MZ 세대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미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여기에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대폭 완화된 뒤 열리는 첫 대규모 미술 행사인 만큼 아트부산의 흥행이 어느 정도 예견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민간 아트페어인 아트부산이 단순히 한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미술 축제를 넘어 글로벌 문화예술 특화를 이뤄낸 유일무이한 사례로 평가받는 데는 아트부산을 설립한 손영희 이사장의 노고를 빼놓을 수 없다.

독일 추상화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 일본 인기 작가 쿠사마 야요이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부터 우리나라의 스타 작가 박서보, 유영국을 비롯한 실험적인 신진 작가 작품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 기획력은 컬렉터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10개 갤러리에 부스 디자인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전체적인 부스 디스플레이의 퀄리티를 높여 눈길을 끌었다. 또 넓은 통로, 휴식용 벤치를 설치해 관람객들의 피로도를 낮추는 등 전시 환경을 개선하는 세심한 디테일로 미술관 같은 쾌적한 분위기를 조성해 호평을 받았다. 정승우 이사장은 지난 6월 8일 서울 방배동 유중아트센터에서 문화 불모지였던 부산을 한국의 마이애미이자 글로벌 아트 특구로 격상한 주인공 손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서 내가 거주하며 사랑하는 도시 부산이 문화예술적으로 더 풍요로운 지역으로 재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 2012년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아트페어를 론칭하고, 지난 5월 11회 행사를 성황리에 마무리한 아트부산을 이끌고 있다. 단순히 규모로 인정받는 행사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적인 요소를 함께 조명할 수 있는 미술 축제를 목표로 기획부터 홍보 활동까지 진두지휘하고 있다.


처음 행사를 시작할 때 정통 미술계 인사도 아니었고, ‘부산’이라는 지역색 때문에 우려가 많았다.

어느 분야에서든 처음엔 다들 우려의 시선을 안고 출발하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미술 비전공자였기에 무모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업에 올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고향 부산을 아끼는 마음 하나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러한 자극 덕분에 업무를 하면서도 매주 두세 차례 서울을 오가며 미술 기관과 갤러리 관계자를 만나고, 예술경영학 석사학위와 디자인경영학 박사과정에도 도전했다. 학위 논문도 ‘아트페어가 도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다룰 만큼 해마다 아트부산을 통해 문화적으로 성장하고 변화되는 부산의 모습을 지켜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 이전 매년 3월에 개최되는 아트바젤 홍콩은 미술시장 관련 종사자와 컬렉터를 포함해 10만여 명이 페어를 찾을 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동시에 열리는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를 통해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로 전환된다. 이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며 홍콩 못지않은 관광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부산국제영화제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도시에서 아트페어를 제대로 만들어 도시 전체를 예술 도시로 바꾸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업무를 진행했기에, 해마다 더 많은 수의 주요 해외 화랑들이 아트부산에 참가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거듭 좋은 성과를 거둔 갤러리들의 한국 내 갤러리 오픈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년간 아트페어를 운영하며 행사를 마칠 때마다 발생한 문제점을 간과하지 않고 내부 논의를 거쳐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바로 다음 페어부터 보완하고자 노력하다 보니 매년 더 발전하는 아트페어로 평가받게 된 것 같다.

지역 축제를 넘어 아시아 대표 축제로 발돋움했다.

유럽과 미주지역 중심이었던 미술시장에서 아시아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아트부산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또 한편으로는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이제는 가까운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아 관람하는 게 새로운 트렌드가 된 듯하다.

작년부터 최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성황리에 열린 이건희 컬렉션이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한 기업가가 오랜 시간 수집해온 국보급 소장품에 관한 관심이 전 국민적으로 확대된 것을 넘어, 젊은 MZ세대들이 아트 토이를 비롯해 판화부터 고가 작품까지 다양한 경계의 작품을 망설이지 않고 구매하는 경향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아트부산 기간 동안에도 기억에 남을 장면들을 마주했다.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미술 애호가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베를린이나 뉴욕 등 주요 미술 도시의 아트위크처럼 아트부산도 모두가 기다리는 미술 축제가 되리라 기대해본다.

마이애미, 홍콩, 상하이와 함께 글로벌 아트마켓으로 주목받는 부산만의 매력이 있다면.

미국과 유럽의 미술 애호가들이 겨울이면 휴양지인 마이애미에 몰려가고, 그 중심에 아트바젤 마이애미가 있듯, 이제 매년 5월이면 많은 분이 아트부산 기간에 맞춰 휴가를 내고 부산을 방문한다. 내가 부산 출신이라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세계 곳곳을 다녀봐도 부산만큼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한 도시는 많지 않다. 아트부산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 미술시장이 더욱 성숙해진다면 앞으로 부산도 국제적인 예술 도시로 성장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홍콩은 자유무역지역이자 영어가 광둥어만큼 활성화돼 있는 데다 글로벌 금융기업이 대부분 입점해 있고, 가까운 중국의 막강한 자본이 유입돼 로컬 컬렉터들과 시장의 편의성을 보고 입점하는 메이저 화랑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마켓이다. 상하이의 경우, 정부 주도의 공격적인 문화정책을 통해 문화예술특구로 지정 개발된 지역에 시의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단기간에 시장을 완성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급속도로 성장하는 도시에 감탄하게 된다. 이를 통해 웨스트번드와 ART021과 같은 로컬 아트페어들이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늘 타깃으로 삼았던 곳은 마이애미인데, 방문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해안 휴양도시라는 점에서 부산과 많이 닮았다. 이처럼 부산도 글로벌 관광도시로서 2030 엑스포가 유치되고 북항에 추진 중인 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되고, 글로벌기업들이 부산에 많이 정착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아트부산에서 선보인 유명 작가 오스틴 리의 대형 조각작품.
이번 아트부산을 역대 최고 실적으로 마무리한 소회를 듣고 싶다.

미술시장의 호황에 따른 긍정적인 흐름으로도 보지만, 무엇보다 아트부산만의 퍼블릭, VIP 프로그램 등 다양한 계층이 만족할 만한 향유의 장을 형성하는 데 기울인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또 총판매액이나 방문객 수가 아트페어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데 가장 흔히 사용되는 지표들인데, 올해는 EXPERIMENT 특별전이나 글로벌 미술계에서 주요 포지션에 있는 아티스트나 미술 기관 종사자들이 참여한 컨버세이션스, 컬렉터의 집을 방문하는 프로그램 등 아트부산이 자체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화제를 모으고 행사를 조명할 수 있어서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토니 곰리와 하우메 플렌자가 함께하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벨베데레미술관이 특별전으로 참여했는데, 우리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거나 오히려 먼저 참가 의사를 밝히는 경험을 통해 아트부산과 한국 미술시장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음을 실감했다. 국내에 입점한 해외 화랑의 참여도가 아직 저조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향후 꾸준히 소통하며 협력 방향을 제안하고 함께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해외 주요 아트페어에서 영감을 얻은 아트부산의 흥행 요소가 있다면.

해외에서 아트페어가 열리는 한 주간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변하고 방문객과 시민들 모두가 즐기는 모습을 보며, 아트부산을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 전체가 함께 들썩이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미술 주간에 미술관, 비엔날레, 갤러리가 각각 기획 전시를 선보이고, 도시 곳곳에 다양한 아트 스폿을 만들어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지역의 주요 호텔과 F&B를 비롯해 부산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올해 처음 선보인 로컬 컬렉터의 프라이빗 컬렉션을 오픈해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이러한 취지에서 기획했다. 또 상업성을 지닌 아트페어지만, 아트바젤 언리미티드나 프리즈 조각 프로젝트와 같이 관객 참여형 전시나 미술관급 스케일의 설치작품을 기획하고 선보이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별전도 작년에는 10개, 올해는 14개를 선보였다. 이 중 무려 6개는 참여 화랑이 직접 비용을 부담하고 기획을 진행했고, 그 외에도 호반문화재단, 벨베데레 미술관, 그라운드엑스와 같은 주요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프로젝트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트페어로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고민하고 매년 높은 수준의 페어를 선보이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부족한 면을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아트마켓의 맹주인 키아프와 어떻게 차별화했는지 궁금하다.

키아프는 국내 주요 페어와 마찬가지로 화랑협회 주관 행사이고, 아트부산은 국내에서는 손꼽히는 민간 주관 아트페어다. 이것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고, 해외 아트페어는 모두 민간이 운영한다. 협회나 기관과 달리 경영진과 팀의 연속성이 장점이고, 아트부산의 성장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움직이기 때문에 빠른 결단과 추진력,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에 도전해볼 수 있는 환경이다. 또, 운영위원과 조직위원 모두 아트부산과 부산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아트부산은 지속적으로 해외 성공 사례를 통해 배우며 아트부산만의 특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미술관급 특별전 유치, 다양한 협업 프로그램 도입 등의 노력으로 해마다 눈에 띄는 변화와 성장이 눈으로 보여 많은 분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무엇보다 5월의 부산과 함께하는 페어 자체가 너무 큰 매력이기에 일부러 아트부산 기간 동안 휴가를 내고 부산을 찾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파리 전시에서 한눈에 반해 집 안으로 옮겨온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2018년 작품.
프리즈 첫 진출에 대한 대응 전략이 있다면.

아무래도 글로벌 양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의 아시아 시장 첫 진출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고 또 국내시장이 어떻게 반응하고 성장할지도 기대되지만, 초반엔 시행착오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아트부산은 시작부터 서울이나 키아프를 경쟁 상대로 고려하지 않았고, 부산이라는 지역과 어우러져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언론이나 외부에서 두 페어를 경쟁 구도나 비교 대상으로 삼는 건 아트부산이 성장해오며 자연스럽게 생긴 현상이고 이 또한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아트부산은 앞으로도 키아프나 프리즈 등 다른 아트페어를 의식하고 그에 맞추어 대응하기보다, 아트부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더 강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최근 3년간 아트부산을 통해 새로운 해외 화랑들이 한국 시장에 소개되며 이들을 통해 국내 작가들 또한 해외에 더 많이 소개되는 현상을 보며 남다른 보람과 책임감을 느낀다. 향후에도 페어를 기반으로 성숙한 컬렉팅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할 예정이다. 해외 페어들도 지역에 따라 선호하는 콘셉트가 다른 만큼, 아트부산만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갈 생각이다. 물론 해외 페어나 갤러리들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아트부산도 부산이라는 지역성에서 벗어나 확장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택에 미술관 수준으로 엄청난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들었다. 제일 아끼는 소장품은 무엇인가.

언제 들어도 어려운 질문이다. 아무래도 현재 거주하는 공간이 독채 구조이다 보니 대형 회화나 미술관에서만 만날 수 있을 법한 설치작품을 비롯해 넓은 공간과 함께 어우러져 웅장함을 주는 스케일이 있는 작품에 더 애착이 간다. 타데우스 로팍의 파리전시에서 보자마자 반했던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3m가 넘는 대작, 갤러리위캔드 베를린과 아트부산에서 선보여 화제가 된 오스틴 리의 대표적인 조각작품, 세계 미술계에서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양혜규의 ‘솔르윗 거꾸로 뒤집기’ 블라인드 설치작품을 꼽고 싶다.

향후 아트부산의 방향성은.

지나온 11년간 아트부산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프리미엄 아트페어 브랜드를 안정적으로 구축했다면, 앞으로는 이를 기반으로 전통적인 방식의 아트페어뿐만 아니라 향후 미술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선보일 계획이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과 NFT, 디지털 플랫폼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싶다. 무엇보다 아트부산을 처음 시작할 때 수없이 들었던 ‘부산은 안 된다’는 비관적인 인식들을 결국 이겨냈고 지금까지 왔듯이,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만 보고 나아가고자 한다. 단순히 해외 갤러리나 페어를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속의 문화도시 부산을 만드는 데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207호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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